은혜의 강단/2019년 말씀

오해는 전쟁을 불러옵니다.(대상 19:01~1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12. 1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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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정치계에 등장하기 전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들어올 때 여자들이 춤을 추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울 왕이 그 노래를 못마땅히 여기는 순간 다윗을 향한 질투가 일기 시작했습니다(삼상 18:07~09). 그때로부터 사울은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기회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을 추격한 기간이 10년 세월이고 그 기간동안 다윗에게는 피가 마르는 생활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권력이 미치는 이스라엘 영역에서는 발붙이고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웃 나라 암몬으로 잠시 피하였습니다. 그때 암몬에는 나하스라는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이 다윗을 괄시하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 극진히 대접하였습니다. 위기 때 도움을 받는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고마움입니다.

 

이후 다윗은 하나님 은혜로 왕이 되었습니다. 왕의 자리에 오른 다윗은 지난날 암몬 왕 나하스의 은혜를 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때 암몬의 나하스 왕이 다윗을 배척하였다면 다윗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는 처지였을 것입니다

은혜란 받은 자의 입장에서는 잊지 않고 잘 간직하여야지 헌신짝처럼 저버리면 그 행위는 복 받는데 지장 됩니다. 다윗은 훗날 임종할 때 자기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놓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은혜를 대대로 갚으라고 유언을 한 일이 있습니다(왕상 02:07). 

이렇게 다윗은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다윗이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자 조문 사절을 보냅니다. 그러나 암몬에서는 다윗을 오해하여 원수로 갚습니다. 오해가 불러일으킨 대형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오해는 전쟁을 불러옵니다.로 정했습니다.

 

 

 1. 인간관계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02 다윗이 이르되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전에 내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리라 하고 사절들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죽음을 문상하게 하니라.

 

02절 말씀은 바로 다윗의 너그러운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암몬과 모압 사람을 가까이해서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을 거의 마치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무렵 이스라엘을 후미에서 공격하여 고통을 크게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민족은 몰라도 암몬과 모압은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예들이니 이스라엘과는 형제와 다름없습니다. 형제와 같은데 이스라엘을 공격하다니요. 그래서 모세는 암몬과 모압 이 두 민족과는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지 말라고 법으로 정했습니다.

 

23:0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런 역사 속에서 다윗은 암몬 왕 나하스가 죽자 조문 사절을 보냅니다. 다윗의 너그러운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시작되는 01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여기서 그 후에라는 말을 잘 보십시오

일반 상식으로 보면 앞의 18장은 19장에 비하면 선행된 일입니다. 그래야 19장이 나옵니다. 그런데 18, 19장 흐름을 보면 사건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 역대상 저자가 사건 선후 관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흐름을 위해 1819장의 순서를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대상 18장만 보면 다윗은 이스라엘 주변국에 큰 이름을 떨치는 막강한 왕입니다. 당시의 강대국인 이스라엘 주변 블레셋과 모압을 정복하였습니다.

그 외에 소바 왕 하닷에셀, 아람 나라, 에돔 모압 암몬 자손 아말렉 등을 차례로 정복하여 식민지국으로 삼고 조공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상대국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강하지만 힘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내키지 않는 조공(朝貢)을 바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자 다윗이 조문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18장과 연결해 보면 오히려 오늘 말씀 19장이 먼저 진행된 일입니다. 평행본문 삼하 10:01~19; 11:01; 12:26~31을 보면 대상 18장과 19장 행적을 바꾸어서 기록해 놓았습니다.

 

삼하 10:02 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같이 하리라 하고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보내. 12:26 요압이 암몬 자손의 랍바를 쳐서 그 왕성을 점령하매.

 

다윗이 조문 사절단을 짜서 암몬 왕 나하스를 문상(聞喪)하는 것은 지난날 입은 은혜를 갚으려는 다윗의 고마움의 표현입니다. 문상하면서 무엇을 가지고 갔다는 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가기야 했겠습니까? 정성이 들어있는 예물을 가지고 갔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미 주변국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막강한 왕입니다. 이런 왕이 조문 사절단을 보낸 것은 무엇보다 지난날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도움 입은 그 은혜를 생각해서 보낸 진정한 조문입니다.

 

 

 2. 이웃의 호의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03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 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는지라.

 

다윗이 고마움의 표시로 조문 사절단을 보냈지만, 나하스의 뒤를 이은 하눈 왕의 핵심 실세들이 다윗의 조문 사절단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의 조문 호의를 자기들을 정복하려는 음모로 오해합니다. 국상을 빙자하여 우리나라를 치기 위해 정탐꾼을 보낸 것으로 판단했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하눈에게 우리 암몬의 국가 기밀을 정탐하러 온 자들이 분명하니 내치라고 조언합니다.

다윗의 호의를 왜 이렇게 오해합니까? 아마 당시 확장되어 가던 다윗의 군사력에 대한 저들의 염려 때문에 그만 상대방의 호의를 원수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다윗이 보낸 조문 사절단은 암몬으로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격을 당하고 맙니다. 그 현장 모습을 보겠습니다.

 

04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조문 사절단 모두를 잡아 수염을 깎아버렸습니다. 당시 수염은 명예와 권위의 상징으로서 사절단의 수염을 깎은 것은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처사입니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10:04 절은 그 수염 절반을 깎았다고 나옵니다.

이는 수염 밑부분을 자른 것이 아니라 얼굴의 한쪽 면에 있는 수염을 깎고 다른 쪽은 그대로 놔두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수염이 깎인 것은 분명히 자신의 위엄과 관습과 종교에 대한 모욕입니다. 더 나아가 중형(重刑)을 선고받은 벌과 같은 수치입니다.

또 의복도 엉덩이 중간까지 잘랐다고 했는데 이 의복(מֶדֶו 메데우)은 발목까지 길게 내린 옷을 의미합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속에 내의를 입지 아니했으므로 그들의 옷을 엉덩이 윗부분까지 잘랐다는 것은 벌거벗겨 놓은 것과 다름없는 행위입니다.

 

국가 간에 이런 무례한 일을 벌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전쟁 선포와 같습니다. 이 정도의 사건이면 서로 협상과 화해는 물 건너간 상황입니다. 하눈 왕이 상황을 파악하고 보니 수하의 장군들이 엄청난 일 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한 셈이니 어찌합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쟁하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암몬 왕 하눈은 큰돈을 주고 아람의 군대 즉 용병(傭兵)을 사서 전쟁에 착수합니다.

 

06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 지라 하눈과 암몬 자손은 더불어 은 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 마아가와 소바에 보내 병거와 마병을 삯 내되

 

은 천 달란트를 아람(시리아)의 용병을 고용하기 위해 일시에 지급하였습니다. 돈의 규모가 병거 삼만 이천 대와 기병을 비롯한 병력 삼만 이천 명 값입니다(삼하 10:06). 은 천 달란트의 가치를 보겠습니다

은을 무게로 따지면 약 37t에 해당합니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1드라크마로 환산하면 은 1달란트는 6천 드라크마에 해당합니다. 이를 다시 천 달란트로 환산하면 6백만 드라크마가 됩니다. 노동자 하루 품삯을 30,000원으로 계산해도 천 8백억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아람 왕 하눈은 다윗 왕과 한판을 벌이기 귀해 국가의 모든 경제력을 동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암몬 왕 하눈은 자신의 군대와 함께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하였습니다(07).

 

 

 3. 분별력 없는 오해는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08 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냈더니 09 암몬 자손은 나가서 성문 앞에 진을 치고 도우러 온 여러 왕은 따로 들에 있더라.

 

암몬에서 이웃의 호의를 잘 분별하지 못하고 정탐꾼으로 판단했으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국가로서는 엄청난 전쟁비용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전쟁을 벌이게 된 근본 이유는 정보의 부재 탓입니다. 정보에 대해 밝지 못했어도 그 중의 실세 장관(방백) 한 사람이라도 무례한 일을 벌이는 것은 전쟁 행위라며 강하게 만류하였다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이럴 때 다윗이 보낸 조문 사절단을 잘 예우하고 전쟁 불가침 조약이나 맺었더라면 암몬 왕국의 앞날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건을 만날 때는 좋은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결국 암몬은 아람 연합군과 함께 이스라엘과 전쟁에 돌입합니다.

 

07 곧 병거 삼만 이천 대와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를 고용하였더니 그들이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부터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

 

암몬 군대는 아람 용병군이 메드바에 진 쳤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이스라엘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용기가 충만했습니다. 다윗은 군대 장관 요압을 사령관으로 하여 암몬과 아람 연합군에 맞서 싸우게 하였습니다. 요압은 상당한 전략가입니다. 요압은 정세 판단을 하고는 정예부대를 뽑아 아람 군대와 진을 치게 하고 그 부대의 지휘자로 나섰습니다

나머지 부대는 자기 동생 아비새에게 맡겨 암몬 군대를 대항하도록 했습니다(10, 11). 중과부적에다 앞뒤로 적군과 싸워야 하는 일은 이스라엘에 불리한 형세입니다. 요압은 아비새가 후방의 암몬을 저지하는 동안 정예부대를 직접 이끌고 아람 군대를 선제공격으로 제압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리고 아비새에게 부탁합니다.

 

12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전쟁에는 전우애가 최고의 전력입니다. 곁에 있는 동료가 끝까지 함께 싸워줄 것이라는 신뢰가 사선을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승리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합니다.

 

13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지금 전쟁이 벌어지는 곳은 암몬의 수도 부근입니다. 요압과 아비새의 군대는 이스라엘의 성읍들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요압은 무엇이 이스라엘에 승리를 가져오게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요압은 하나님을 배경으로 전쟁에 임합니다

처음에는 절대 불리하게 보이던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요압의 작전대로 적군의 주력 아람이 초전에 대패하고 도망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암몬 군대도 자기들이 믿던 아람 군대의 패배를 보고 전의를 상실하여 성으로 후퇴하였습니다

16절 이후부터 20장까지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군대는 암몬의 수도까지 완전히 점령하여 전쟁을 승리로 종결지었습니다.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 전쟁에서 아람의 병거 칠천 승이 박멸되었고 보병만 사만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람 군대의 총지휘관 소박 장군도 죽었습니다(18). 


한순간의 오해와 실수가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다윗 왕과 하눈 왕 사이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길을 참모들이 잘못 판단하여 원수가 되었고 멸망까지 맞았습니다. 분별력 없는 오해는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한 잡지사에서 앙케트 조사하면서 거리를 지나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여러분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시고 들으십시오. 그때 많은 사람이 그럭저럭 살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인의 특유한 발뺌 작전입니다. 정확한 대답을 피하고 중간 치기를 잘합니다. 다음으로 많은 대답이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좀 나은 대답입니다. 잘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 라는 대답도 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어떤 대답을 하겠습니까? 삶의 기준을 잡고 삽시다. 목적의식이 없는 사람은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합니다. 꿈이 있고 감사가 있는 사람만이 건강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남의 말을 잘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 잘 분별하는 지혜가 최고입니다

불필요한 자존심은 오해의 지름길입니다. 오해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일의 걸림돌입니다. 내가 이웃에 피해 주는 일이 없도록 먼저 넓은 마음부터 가지십시오. 상대방을 배려하는 지혜로 살아갑시다. 이해력이 떨어지면 오해를 잘하게 됩니다. 시한폭탄 같은 사람 되지 않도록 분별력을 잘 갖추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