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9년 말씀

야곱의 행복한 인생 마무리(창 49:29~33)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12. 2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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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상에 태어났지만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납니다. 가기 싫어도 떠나야 합니다. 이 법칙은 아무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날이 오기 전에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은 삶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인생은 태엽 시계와 같습니다. 인생 시계는 단 한 번 감기고 맙니다. 그리고 그 시곗바늘이 어디서 멈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보다 한 시간 더 빨리 멈출 수도 있습니다. 만일 고장이 나면 더 일찍 멈출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의 죽음의 질은 세계 하위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먹고 살기 위해 성장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작 중요한 죽음에 대하여 등한히 한 탓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삶을 잘 다듬어서 믿음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짧은 삶을 믿음으로 잘 가꾸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삶을 마치면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바탕으로 심판하는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그날에는 내 삶이 잘못되었어도 장기 한 수 물리듯 물려서 살지 못합니다. 잘못된 삶을 회복할 기회가 절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은 연습이 없는 생방송과 같아서 지금부터라도 인생 관리, 믿음 관리를 잘하여야 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남은 삶을 믿음으로 잘 마무리해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잘 서도록 합시다. 오늘 말씀은 야곱이 인생을 정리하는 모습입니다. 야곱의 마지막 삶이 무척 인상 깊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행복한 인생 마무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함께 은혜받는 귀한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자녀를 축복하는 야곱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창세기 26장 이후 내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야곱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더구나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야곱이 130세에 애굽으로 이주하여 147세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17년간 아들 요셉의 후광으로 평안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애굽에서의 평안함보다는 할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물려받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는 삶을 더 즐거워하였습니다. 가나안이야말로 야곱의 잔뼈가 굵은 곳이요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과 함께 3대가 거하며 믿음을 키우던 언약의 땅입니다.

 

야곱이 147세가 되자 건강 지수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48:01). 이미 죽을 때가 되었음을 믿음의 감각으로 알았습니다(47:29). 이에 야곱은 자신의 남은 삶을 하나하나 마무리합니다

우선 아들들을 불러놓고 차례로 앞날을 위한 예언 기도를 하였습니다(48:01~27). 기도 내용을 보면 저주 성격의 기도도 있습니다(03~07). 바로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에 관한 기도입니다. 야곱이 단순히 아버지로서 자식을 향한 소원이라기보다 성령님의 영감을 받은 예언자로서 기도를 선포합니다.


열두 아들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언 기도를 보면 그 아들들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복을 빌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납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불가항력입니다. 그날이 오면 모든 일을 멈추고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09:27). 성경은 모든 일은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도 때가 있음을 안내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는 안내입니다(03:01, 02). 우리 모두 죽음의 날을 맞으면 세상을 떠납니다. 다만 그날이 언제 일지는 모릅니다. 알면 좋겠지만 하나님께서 모르게 하셨습니다.

 

0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지혜로운 자는 그날을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여기고 삽니다. 반면 미련한 자는 아직도 날이 많이 남아 있는 줄로 여기고 세월을 허비하며 삽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사람은 유한한 존재, 죽을 수밖에 없는 종말의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삶은 잠깐입니다. 심판대 앞에 서야 할 때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장래에 대한 준비 없이 살다가 갑자기 마지막을 맞을 때 나는 준비가 안 되었다는 말은 안 통합니다. 육신을 지탱하기 힘든 마지막에 야곱이 아들을 차례로 불러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기도로 잘 소통한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평소에 기도의 내공이 있어야 가능하지 그렇지 않으면 기도는 고사하고 자기 인생 마무리도 힘듭니다. 당당히 자녀에게 복을 빌 수 있는 삶을 삽시다.

 

 

 2. 가나안을 품은 야곱의 마무리가 아름답습니다.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차례로 예언 기도를 한 후 자신의 장지를 가나안 막벨라 굴로 지정합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막벨라 굴까지 거리가 매우 멉니다. 요즘이야 교통수단이 발달해서 웬만한 나라는 한나절이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 고대시대에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서 장례식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너무도 멀기 때문입니다. 혹 군사 이동 같으면 속력을 내어서 갈 수 있지만, 장례식인 만큼 속력도 마음대로 낼 수 없습니다. 그때 장례위원 규모가 나오는데 역시 어마어마합니다.


50:07.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08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09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장례위원들 숫자를 보아 가나안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민폐로 본다면 보통 민폐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야곱이 장지를 가나안으로 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들이 애굽의 총리이니 죽은 후에라도 자기 이름을 더 높이기 위해서입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입니까? 야곱의 장지에 관한 일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을 이해할 때 풀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후손들에게 가나안을 영원히 주실 것이니 이곳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라는 언약입니다(창 12:01~03; 26:02, 03).

 

야곱은 임종을 앞두고 먼저 요셉에게 특별 부탁을 합니다. 애굽에서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47:29)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안장하라는 부탁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묻히고자 하는 가나안의 막벨라 굴이 어떤 땅입니까? 특별한 가치가 있는 땅입니까? 세상 가치관으로 보면 별 것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먼 곳까지 가서 안장하라고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신령한 언약 때문입니다.

 

47: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곱이 죽으면서 몇 번이고 막벨라 굴을 이야기한 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그 언약 안에 있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너희들도 하나님의 언약, 곧 언약의 조상들이 묻힌 그곳에 있기를 원한다. 이렇게 자기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야곱이 묻힐 그 굴에는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할머니 사라,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 그리고 야곱의 첫째 아내 레아가 이미 묻혀 있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장지에 집착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후손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히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일본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해방 후에 돌아오지 못하고 사할린에 남아 정착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50년이 지난 1999년 사할린에서 몇 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에 뼈를 묻고 싶다고 영구 귀국하였습니다.

당시 71세 정삼출, 귀국하자마자 폐 수술에 이어 직장암 수술을 받은 69세 손옥자, 귀국하자마자 1년여 동안 암투병하다 생을 마감한 72세 고 서덕수와 그 부인 65세 이두리. 가슴이 사무치도록 조국이 그리워서 자식과 손자들과 생이별하고 귀국했으나 돌 봐줄 사람이 없어 양로원에서 지낸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들에게 조국 땅에 뼈를 묻어야 한다는 강렬한 소망을 두게 했습니까? 단 하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3. 김삼일 가족 여러분 야곱처럼 돌아갈 곳이 있습니까?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야곱은 마지막까지 맑은 정신으로 아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한 후 삶을 마쳤습니다. 야곱이 비록 험한 일생을 지냈지만, 마지막은 아들의 손에서 임종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던 예언의 성취입니다(46:04).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이 표현은 먼저 조상들이 간 그 세계에 야곱도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아직은 장례식을 치르지 않았으니 막벨라 굴에 묻히지 못했습니다. 곧 거대한 장례문화 절차를 따라 묻히게 될 것입니다.

그의 백성에게 돌아갔다는 말은 천국에 갔다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육신의 고향이 아닌 영원한 고향 천국 말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육신의 고향 갈대아 우르가 있었으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11:15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가나안 막벨라 굴 장지를 지목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혹 치매라도 와서 장지를 정하지 못했더라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애굽의 어느 왕들 수준에 버금가는 피라미드에 묻혔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지 순례를 하는 사람은 야곱의 피라미드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도 가나안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내리지 않았으면 역시 애굽의 한 피라미드에 묻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묻힐 곳은 세상이지만 영혼의 고향은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따로 있다는 말로 받으십시오. 우리가 국립묘지에 묻히지 않아도 됩니다. 대전 현충원에 안 묻혀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이 천국에 갈 수 있느냐? 갈 수 없느냐입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이 가서 영원히 누리고 살 곳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가는 천국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먼저 가서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14:0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김삼일 가족 여러분 현재 믿음의 자세가 어떠합니까? 사도 바울처럼 천국의 시민권자(03:20)로 살아갑니까? 갈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습니까? 지금은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지만, 곧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할 자임을 한시라도 잊지 않고 살아갑니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0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주님은 또 네 보물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보물을 쌓고 천국에 마음을 두고 살기를 축원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죽음을 맞을 때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조상들이 먼저 간 그곳에 갈 줄로 믿었습니다. 이런 확신의 근거가 60년 전 벧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언약 때문입니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장차 구원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0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01:51 절에서 사도 요한이 구약시대 야곱이 경험한 일을 자세하게 해석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야곱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듯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04:12).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다윗이 40년간 이스라엘 왕국을 든든하게 세운 후 자기의 죽을 때가 가까워져 오자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유언합니다(왕상 02:01~04). 이럴 때 유언은 대부분 나라를 어떻게 잘 다스릴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을 전수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유언은 일반 사람의 유언과는 다릅니다. 유언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가지로 요약이 되는데 첫째 힘써 대장부가 되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라는 유언입니다. 그리고 다윗 자신의 인생 마무리 고백을 들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세상 욕심을 비운 다윗의 인생 마무리가 참 아름답습니다.

 

육체와 정신과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문화를 웰빙(well-being)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웰빙보다 웰빙의 종착점 웰다잉(well-dying)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잘 죽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 사람이 가는 길에 벌써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각자 남은 세월을 어떻게 살며,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하여야 합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 지금부터 야곱처럼 여유 있게 죽음을 준비합시다. 기독교인다운 임종을 보일 수 있도록 자신을 믿음으로 단장합시다. 만일 자신의 남은 인생을 믿음으로 단장하지 못하면 마지막에 두려워 떨면서 망연자실하고 맙니다. 오늘부터 야곱처럼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보여주는 삶으로 출발하기를 바랍니다.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그의 묘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며 살았고, 응답하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