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9년 말씀

겨자씨 원리로 천국을 확장합시다.(마 13:31~32)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11. 30.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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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을 통해서 천국을 7가지로 비유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 13장을 일명 천국 비유 장이라고 부릅니다.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24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44 천국은, 45 또 천국은, 47 또 천국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언제 천국이 임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0, 21). 너희 안에 있다는 말은 질문한 바리새인들 가운데 예수님이 있다는 말이고 또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관계 속에도 있고 영원한 하나님 보좌가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천국이 이루어지며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과의 관계에도 천국은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시작된 천국은 전 세계로 전파되었고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7가지 천국 비유 가운데 3번째 겨자씨 비유입니다.

왜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합니까? 처음에는 미약하게 보이지만 나중에는 새들이 깃을 들일 정도로 크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이 천국 확장을 더 넓게 확대하면 우리 교회의 확장으로 적용해도 되겠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확장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겨자씨 원리로 천국을 확장합시다로 정했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겨자씨가 자라면 채소입니까? 나무입니까?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겨자씨(σίναπι).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가장 작은 것을 표현할 때 먼저 겨자씨를 연상하였습니다. 이 겨자씨가 얼마나 작을 것 같습니까? 우리나라의 참깨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아주 작은 것을 비유할 때 뭐라고 합니까? 콩알만 하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 작은 것을 비유할 때는 깨알만 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작은 것을 이야기할 때 겨자씨만 하다고 합니다.

향신료 식물인 이 겨자는 팔레스타인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몇 종류와 작물로 재배되는 검은 겨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밭에 심는 흑겨자를 오늘 우리에게 소개하십니다.

 

겨자는 채소밭뿐만 아니라 야생에서도 잘 자랍니다. 누가 심지 않아도 지천에 늘려 있어서 저절로 자라는데 가을이 되면 노란 꽃이 꼬투리가 되어 그 속에 씨앗이 들어찹니다. 이 씨로 만든 향신료가 우리가 아는 머스타드(mustard)입니다. 이 겨자씨가 다 자라면 2m 정도 되지만 처음 씨를 뿌릴 때는 그 지역에서 자라는 어떤 식물 씨보다 작습니다. 오늘, 이 겨자씨는 야생식물이 아닙니다.

밭에 재배하는 식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심은 이 겨자씨가 다 크면 나무가 되어서 새들이 머물다 가는 쉼터 역할을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들을 때 혹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겨자씨에서 자란 이것이 과연 나무인가입니다. 산에 가면 각종 나무가 있지 않습니까? 이런 나무는 사람이 올라갈 수도 있고 톱으로 켜서 목재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겨자 나무는 그런 나무가 아닙니다. 우리의 일반 상식으로는 밭에 씨를 심는 것은 나무라 부르지 않습니다. 풀 종류의 식물 즉 채소입니다.

 

반면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땅에서 직접 잎이 피는 것은 풀이나 채소라 하고 줄기가 올라오는 것은 나무라고 부릅니다. 그 줄기가 굵고 단단한지 혹은 다년생인지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겨자는 채소가 아니라 나무입니다. 자라면 채소와 비교되지 않는 크기의 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나무로 말씀하십니다. 겨자씨가 다 커서 나무가 되면 새들이 깃들이고 곁을 지나가는 나그네도 그 그늘에서 땀을 식힙니다. 매우 작은 씨앗이 어떻게 커다란 나무 수준으로 자랍니까? 겨자씨에는 크게 되는 유전자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었다 하면 나무 수준으로 자랍니다. 예수님은 비록 작지만 크게 역사가 일어날 일을 설명하실 때 겨자씨 원리를 들려주십니다.

 

17: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

 

 

  2. 천국을 왜 겨자씨에 비유합니까?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가지에 깃들이느니라(κατασκηνόω). 안전한 장막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새가 깃을 들인다는 말은 단순히 가지 위에 잠시 내렸다 날아가는 의미가 아닙니다. 새가 겨자나무에 떼를 지어 둥지를 짓는데 어떤 새는 가지에 둥지를 짓고 어떤 새는 풀숲 땅바닥에 둥지를 짓습니다. 왜 이곳에 둥지를 짓습니까? 겨자나무 군락지 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가 겨자가 익을 때 그 씨를 따 먹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천국 비유에서 왜 겨자씨로 천국을 설명하십니까? 제자들이 해상수훈(海上垂訓)을 통해서 천국 비유를 들을 때 큰 기대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거대할 것으로 믿고 그 힘으로 로마 제국을 즉각 무너뜨리는 현실의 전환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천지개벽하는 것과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들은 승리자가 되는 엄청난 환희를 체험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대하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가장 작은 것, 보이지 않을 만큼 숨겨진 곳에서부터 천국이 진행되고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 생각과는 차원이 다른 곳에서부터 설명하십니다.

 

31절은 사람이 자기 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갈릴리 주변에서는 겨자씨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겨자씨를 내 밭에 갖다 심는 비유를 들려주십니까?

, 내 밭에 심어야 내 것이 되고 더욱 정성으로 가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겨자씨를 내 밭에 심은 이유를 알았으니 다시 31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 비유를 천국 비유를 전제로 말씀하십니다.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는 말씀을 보십시오. 농부가 자기 밭에 겨자씨를 한 움큼 심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종자는 이왕이면 많이 뿌려야 합니다. 그런데 한 주먹도 아니고 두 알도 아닌 한 알 심었습니다. 농사 원리로는 도무지 맞지 않음에도 예수님께서 한 알을 심은 비유를 말씀하심은 놀라운 생명력 때문입니다.

 

왜 한 알인가에 대한 이유를 볼까요? 천국을 상징하는 이 씨앗은 단일 복음을 의미합니다. 다른 복음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의 천국 비유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08:11). 천국 복음의 진리는 예수님입니다. 천국 확장의 복음은 어느 시대나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은 사람이 천국을 다르게 선전합니다. 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천국 복음의 씨는 같아야 합니다. 다르면 안 됩니다. 이단이 나오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말을 보겠습니다.

 

01:0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제가 천국 복음에 관해 말씀드려도 신령한 감각이 없는 분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천국에 관한 메시지는 우리 모두 받아야 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농부가 겨자씨를 자기 밭에 심었다고 했습니다.

복음의 씨를 우리 김삼일 가족의 밭에 심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가 바로 내 밭입니다. 나와 함께 생명을 같이하는 밭입니다. 교회론에서 볼 때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나 신앙원리로 보면 교회는 내 교회입니다. 내 교회이어야 교회를 더 사랑하고 더 확장하는 사명자로 살 수 있습니다.

 

 

  3. 천국 모형인 김삼일 교회는 확장되어야 합니다.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 외치신 첫 메시지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소식입니다(04:17). 세례 요한의 첫 메시지도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소식입니다(03:02). 겨자씨 비유의 핵심은 천국 확장입니다.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시행되는 곳이고 이곳에서 천국의 확장이 이루어집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상대로 기록했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단어 사용하는 것이 두려워 천국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반면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상대로 기록했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표현하였습니다.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의미입니다.

 

천국은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장차 우리가 가서 영원히 살게 될 장소의 천국과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형태의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거부되는 곳에는 진정한 자유와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열두 제자를 포함한 모든 유대인은 이 땅에 천국의 실현을 기대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죽어서 가는 하늘의 천국보다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시길 원하셨던 천국 확장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 영역에서 이루어야 할 우선순위가 천국입니다.

 

0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곳에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장은 변화로서 인격이 성장했다는 말은 우리의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는 의미를 다시 새겨보십시오. 천국으로 상징되는 기독교의 출발은 작다는 암시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즉 교회는 심어진 겨자씨처럼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 겨자씨처럼 자라야 합니다. 성장하는 사명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생명을 가졌습니까? 교회는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 모여서 이 땅에 천국을 확장해 가는 공동체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언젠가는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씨앗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한 과학 잡지에 실렸습니다. 이스라엘 루이스 보릭 국립 의학연구소 사라 살론 박사팀이 마사다의 헤롯 왕 요새를 발굴하다 찾은 대추야자 씨앗입니다. 2005년에 이 씨 3개를 심어 하나를 발아시켰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 소식을 2008613일 사이언스 발표하였는데 실험 대상 씨앗 2개를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분석해 보니 대략 2천 년 전의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식물의 씨앗에 들어 있는 생명력은 신비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씨앗에 있는 생명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휴면기를 맞아 잠을 자고 있을 뿐입니다. 언제든지 발아할 수 있는 산소와 물과 온도의 조건만 되면 싹을 틔웁니다. 씨앗은 살아있는 개체이기 때문에 휴면기에도 숨을 쉬고 물질대사를 합니다.

이제 우리 김삼일 가족이 싹을 틔워야 할 때입니다. 다시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08:07) 말씀을 품고 나가야 합니다.


겨자나무에 모여든 새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예쁜 새도 모여들고, 좀 못생긴 새도 둥지를 틀고, 먼 곳으로 날아가다 지친 새도 들어오고, 배고픈 새도 들어옵니다. 어떤 새는 잠깐 쉬었다 날아가기도 하고, 어떤 새는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겨자나무는 어떤 새가 와도 다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김해삼일교회 모습이 겨자나무 같아야 합니다. 교회는 누구든지 오는 곳입니다. 죄인들, 삶에 지친 사람, 상처로 인해 더는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오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치료받는 병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겨자씨 비유에 대한 주님의 뜻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비유는 천국 운동의 확장과 교회 성장을 위한 열정을 어떻게 품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데서 출발했지만 성장하면서 열방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겨자씨는 볼품없이 작지만, 이것이 자람으로 공중에 나는 새도 깃을 들이기도 합니다. 자라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생명을 품고 살아가는 증거입니다. 생명은 변화합니다. 정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장하고 성숙의 과정에 들어갑니다. 겨자씨는 심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심어지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씨앗임을 알 수 있습니다.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생명의 씨앗은 큰 바위도 부서뜨립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나에게 있을 때 내 고정관념과 나의 옛 모습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 김삼일 가족을 주변 사람이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생명의 사람이라는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 겨자씨가 결국은 겨자 나무가 되듯이 성숙하고 성장하는 믿음의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