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9년 말씀

우리 모두 처음 가는 길을 갑니다.(수 03:01~1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11. 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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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일 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옆의 분과 만나서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라고 인사하십시오. 따뜻한 인사에 주님께서 복을 크게 주실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교회에 오셨습니다

교회는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는 곳이 아닙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개콘 웃찾사 프로그램을 보시면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듣는 곳입니다. 그래서 전에 들었던 말씀을 지금도 듣고 앞으로도 듣게 될 것입니다. 이일기 목사는 하나님 말씀 전하려고 나름 진액을 짭니다. 오늘 주일을 맞아 성도 여러분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으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다듬어 은혜의 일꾼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에는 비슷한 사건들이 나옵니다. 반석에서 생수가 나온 일,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이나 원망을 한 일, 홍해를 건넌 일과 요단강을 건넌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가 바다를 중심으로 홍해를 건넌 일을 비교하여 여호수아가 강을 중심으로 요단강을 건너는 일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건널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넌 것처럼 요단강도 건너게 됩니다. 그래서 제목을 우리 모두 처음 가는 길을 갑니다.로 정했습니다.

 

 

 1. 우리 모두 처음 가는 길을 갑니다.

 

0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 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 보지 못하였음이니라.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앞에 두고 있는데 건너기만 하면 바로 가나안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40년 전에 가본 사람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이 외의 사람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김삼일 가족도 전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왕 가는 길 믿음으로 잘 걸어가야 합니다.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인생길에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남보다 빨리 달리고 싶은 속도입니까? 속도보다는 믿음으로 바라보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일이 넘실거리는 요단강입니다. 이 요단강을 반드시 통과해야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봉착한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거의 불가능입니다. 어떻게 그 많은 이스라엘 민족이 범람하는 강을 건널 수 있습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도 세상을 처음 살아갑니다. 인생을 여러 번 반복해서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때는 인생 연습을 충분히 했다가 마지막 삶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를 못합니다. 한 번 밖에 못산다고 해서 부르는 말이 일생입니다. 일생이라도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좀 길고 좋은 일 형통한 일이 많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쉽게도 그것조차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세는 우리의 삶을 짧은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90:0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오래전에 한 젊은 학생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천국이 정말 있습니까? 분명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내세(來世)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뭐라고 답을 했겠습니까? 있다고 했겠습니까? 없다고 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내가 아직 가보지는 않았다. 다음에 학생과 같이 가보면 제일 확실할 거야. 지금은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 믿자. 예수님도 우리가 다음에 가서 보면 되기 때문에 내세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성경도 천국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직 제가 천국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가봤다면 정확하게 말할 수 있지만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은 답하기가 좀 곤란합니다. 흔히들 죽었다가 살아났다며 전국으로 간증 다니는 분들 더러 있습니다. 이런 분들 가운데 간증 사례비 따지는 분들 있습니다

그러면 그냥 무시하십시오. 사기성 매우 짙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으로 가라 하실 때 그곳을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만 말씀하셨지 어떤 땅인지 세밀하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가면 알게 되기 때문에 미리 많은 것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믿을 수 있는 만큼, 필요한 만큼만 말씀하시고 그다음은 신뢰하고 따라오라고만 하셨습니다.

 

 

 2. 처음 가는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셔야 합니다.

 

0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 가니라.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싯딤을 떠나 요단강 앞에까지 와서 사흘을 휴식하였습니다. 사흘을 휴식한 것은 일단 방전된 체력을 충전하는 시간입니다. 동시에 오래전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땅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비전을 품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흘 동안 이스라엘이 깨달아야 할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맹목적 휴식이 아닌 특별 휴식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빨리 가면 1주일, 적당하게 가면 15일 늦게 가도 30일이면 됩니다. 그런데 왜 40년이나 광야에서 방랑 생활을 하였습니까? 모세가 광야생활 40년 목적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08:02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십 년간 고난의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일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을 더욱 겸손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은혜로 살아감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론은 40년간의 광야생활에서 불평과 원망으로 얼룩진 생활을 정리하기 위함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마음가짐이 어떠합니까? 이미 요단강 앞에 오기 전 싯딤에서부터 이스라엘의 간부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당신이 명령한 모든 것을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우리를 어디로 보내든지 가겠습니다. 우리가 전에 모세의 말을 따랐듯이 당신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만약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당신을 배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죽여도 좋습니다. 그러니 힘을 내시고 용기를 내십시오(01:16~18). 절대 충성서약입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이스라엘, 가나안을 믿음의 눈으로 보면 가슴 설레지만, 불신앙의 눈으로 보면 두려운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인도하시면 그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도전하면 됩니다. 변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할 수 없고 나아갈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가나안을 향해 가는 길목의 장애물은 요단강입니다. 이 요단강을 극복하는 방법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을 바라보면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을 통해서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바라볼 것을 바라보아야 일이 해결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성숙한 믿음은 행함에 있습니다. 물이 갈라지는 기적 보려면 성숙한 믿음, 담대한 믿음이 요구됩니다. 믿음은 결단이요, 행함이요, 순종입니다.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는 말씀 따라 기도하고 믿음으로 붙잡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02:26). 우리가 믿음생활 한 지 일 년입니까? 오 년입니까? 십 년입니까? 평생입니까? 그러면 믿은 그 시간 만큼 믿음이 자라서 행동하는 믿음으로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3. 요단강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이스라엘이 광야의 길을 행군할 때 위험하지 않은 길을 갈 때는 언약궤를 이스라엘의 중앙에 두게 하였습니다. 언약궤 앞쪽에는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가 앞장섰고 뒤쪽에는 단, 아셀, 납달리 지파가 따랐습니다(10:13~28).

그런데 위험한 길을 갈 때는 언약궤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언약궤를 앞에 세우고 그 뒤를 열두 지파가 따라가도록 하였습니다(10:33~36). 성경을 연구할 때 이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요단강 앞에 진을 치고 있는데 이때 요단강을 건너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곡식 거두는 3, 4월 경이면 요단강 물이 항상 범람하기 때문입니다. 왜 요단강이 넘칩니까? 가나안의 겨울은 특별히 비가 많이 옵니다


거기다 북쪽 헤르몬산의 눈까지 녹아내려 큰 강물을 이룹니다. 큰 강물이 형성되니 강폭도 늘어나고 수심도 깊어집니다. 물살도 빨라서 사람이 강을 건너는 일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서 요단강을 건너야 할 이스라엘은 남자 장정만 대략 60만입니다.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합치면 200만이 넘습니다

이 많은 사람을 태우고 갈 여객선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구포대교 같은 든든한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홍해를 건너는 일처럼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 여호수아의 첫 출발이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요단강을 극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방법을 발표합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여. 요단강 물가에 도착하거든 멈추지 말고 요단강에 바로 들어가라(08).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여호수아의 명령을 하나님 명령으로 알고 요단강으로 갑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과 이스라엘 거리가 약 900입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넘실대는 요단강에 발을 내디디려면 그들 모두가 하나처럼 믿음의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서로 뜻이 맞아야 합니다.


제사장들 가운데 법궤를 멘 제사장은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 아닙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상징인 언약궤를 메고 믿음으로 요단강을 향해 전진합니다.

동시에 900뒤에서 따르는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메고 가는 제사장만 바라보며 행진하면 됩니다

사람의 생각이 절대 개입할 수 없는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아무리 하나님 명령이라도 그 명령이 내 머릿속에 맴돌고만 있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언약궤를 멘 제사장에게 요단강에 들어가라고 할 때 그들이 지도자님 물이 이렇게 흐르는데 어떻게 들어갑니까? 하고 망설이면 못 건너갑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데리고 홍해를 건너갈 때는 하나님이 홍해를 갈라놓은 것을 보고 편안하게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의 경우는 다릅니다. 먼저 물에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물에 들어가면 어느 순간에 물이 그칠 것이라는 명령입니다. 16절 읽읍시다.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끓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할렐루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자동차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창설자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입니다. 그는 1903년 천신만고 끝에 T형 포드를 개발한 뒤 은행을 방문했습니다. 생산 자금을 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대출 담당 직원에게 자동차를 보여주었습니다. 자동차가 가져올 새로운 미래를 열심히 설명하였습니다. 그러자 은행 직원은 창밖을 내다보며 한심스럽다는 듯이 말합니다. 저길 보세요. 저렇게 멀쩡한 말이 많은데 자동차가 팔리겠어요

은행원이 가리키는 창밖의 거리는 마차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했습니다. 그 은행원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말이 끄는 현재의 마차입니다. 그러나 포드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은 미래의 마차인 자동차입니다.

은행원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안주하다 보니 기계로 움직이는 미래의 세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포드는 자동차가 펼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해 인류 문명을 바꾸었습니다. 그의 성공으로 마차는 박물관 신세가 되었습니다. 거리에는 말발굽 소리가 사라지고 자동차 경적으로 가득했습니다[국민은행 월간지 <Gold&Wise> 20191월호 참조].

 

모세와 함께하신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서도 일하심을 보여주시기 원하십니다. 요단강이라는 큰 장애물을 해결하여 가나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일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사회의 일이나 교회의 일을 하다 보면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일 맡으신 분들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능력이 없다. 해 본 적이 없다. 자신이 없다는 말은 겸손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불신앙일 수도 있고 교만의 다른 얼굴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43:01.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0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