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9년 말씀

벨사살 왕이 심판을 받았습니다.[단 05:01~3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10. 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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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391012일 벨사살[Belshazzar, B.C. 553~539] 왕이 바벨론() 왕궁에서 귀족 천 명을 초청하여 흥겨운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때는 잔치할 때가 아닌데 잔치를 벌입니다. 왜냐하면 고레스 왕이 이끄는 메대[מָדַי]와 바사[פָּרַס] 연합군이 바벨론 수도를 에워쌌기 때문입니다.

수도가 함락되기 직전인데 잔치가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벨사살 왕의 자만심에서 나온 잔치입니다. 벨사살은 바벨론 왕국은 망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고고학 증언에 따르면 당시 바벨론 궁중의 성벽은 매우 견고하였고 벨사살도 이 성벽을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으로 확신하였을 것이라 합니다.

 

벨사살은 백성에게 아무리 적군이 쳐들어와도 우리는 끄떡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바벨론 국정을 담당한 행정, 정치 관료 핵심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잔치의 의미는 바벨론은 망하지 않는다. 바벨론은 영원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교만의 잔치 가운데 갑자기 한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맞은편 하얀 석회벽에 글씨를 쓰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05). 벨사살이 그 모습을 보면서 흥을 즐기던 얼굴빛이 번민에 사로잡혀 사지가 벌벌 떨리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06). 흥겹던 잔치는 이내 공포의 분위기로 변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답은 02~04절에 있습니다.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 온 금, 은그릇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왕과 모든 귀족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그 잔에다 술을 따라 마시고는 바벨론의 신 우상을 마음껏 찬양하였습니다. 죽음을 자초하는 행동입니다.

이 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벨사살은 그날 밤 죽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중심으로 제목을 벨사살 왕이 심판을 받았습니다로 정하고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저울에 달린 벨사살 왕이 누구입니까?

 

01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벨사살[בֵּלשַׁאצַּר 벨삿챠르 B.C. 553~539]. 바벨론 최고의 신 말둑의 이름을 딴 왕으로 벨이 왕을 보호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02절을 보면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그릇에 담아 마셨습니다

문자 그대로만 보면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의 아들이 됩니다. 그런데 실제는 아들이 아닙니다.

아마 벨사살의 어머니가 느부갓네살의 딸이기(11~13) 때문에 아들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아버지[אַב 아람어 아브]는 원어 상 함축 의미로 조상도 됩니다. 조상으로 봐도 된다는 뜻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신 바벨론 왕조 계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B.C.605~562]→②에윌므로닥[52:31 B.C.562~560]→③네르갈사레셀[B.C.560~556]→④라바시 말둑[B.C.556]→⑤나보니두스[B.C.556~539]→⑥벨사살[05:30 B.C.550~539]

 

본서에는 벨사살이 바벨론() 왕조 최후의 왕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바벨론 비문(碑文)에 의하면 나보니두스[Nabonidus B.C. 550~539]의 장자입니다. 그러면 왕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당시 실제 왕은 나보니두스입니다.

이 나보니두스 왕이 B.C. 555년에 왕으로 등극한 후 3년 후쯤 바사 왕 고레스 2세와 전투에서 패한 후 통치권을 아들에게 맡기고 바벨론을 떠납니다. 07절을 보면 벨사살이 바벨론 전국의 술객과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서 손가락 글씨를 해석하게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글씨를 해석하는 자가 없자 벨사살이 특별 약속을 합니다. 이 손가락 글씨를 해석하는 자에게 바벨론 셋째 통치자로 삼겠다는 약속입니다


셋째 통치자의 의미가 바로 벨사살 아버지인 나보니두스 왕이 있다는 뜻입니다. 바벨론이 메대-바사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인 B.C. 539년에 나보니두스가 바벨론으로 돌아왔지만, 통치권은 아들 벨사살이 행사하였습니다. 그래서 벨사살의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정식 왕이기 때문에 그의 지위가 첫째이고, 벨사살은 섭정왕으로 둘째이고, 손가락 글씨를 해석하는 자에게 셋째 자리를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07 왕이 크게 소리 질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되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라.

 

1854년 이후에 벨사살에 대한 바벨론 문헌들이 계속 발견되었는데 그때마다 벨사살이 왕자 또는 왕의 아들로만 언급됩니다. 다만 다른 어느 비문에서 벨사살이 비록 법으로 왕위를 계승 받지 못하였으나 그 부친 나보니두스와 바벨론의 공동 섭정을 하였다고 나옵니다.

이 벨사살이 신전에서 사용하던 전리품 중 하필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하던 거룩한 기물로 술을 따라 먹는불경한 짓을 합니다. 자기 힘을 과시하려는 교만함과 함께 약소국에 대한 조롱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온갖 우상을 다 섬기는 벨사살, 자신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은 벨사살,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가로채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벨사살을 하나님께서 두고 보시겠습니까?

 

나보니두스 비문과 고레스의[Cyrus II, BC 559~530] 기록을 보면 철옹성으로 여겼던 바벨론 성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고레스 휘하의 장군에게 함락됩니다. 벨사살은 그날 밤 하나님 심판으로 죽습니다. 그리고 B.C. 5391012일 금 머리 제국으로 불렸던 바벨론()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메대인 다리오(62)가 통치합니다(31).

 

 

 2. 벨사살은 하나님의 저울에 미달하여 심판을 받았습니다.

 

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서론에서 손가락 글씨로 인해 바벨론 왕궁의 잔치는 공포의 분위기에 잠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태후(太后)가 연회장을 찾아와 왕을 진정시킵니다(10). 이 태후[מַלכָּא 말카]는 느부갓네살 왕비입니다(02:48, 04:08). 지난날 바벨론 정치사와 다니엘에 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공포의 현장을 해결할 자로 다니엘을 추천합니다. 추천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느부갓네살이 오래전에 벨드사살로 개명했던 자를 태후는 다니엘로 기억합니다. 태후와 왕이 다니엘로 호칭하는 점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바벨론 신 벨이 총애하는 자라는 뜻의 벨드사살과 달리 다니엘은 하나님은 심판자라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 주제와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태후는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을 총애한 까닭도 알려줍니다.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함이 뛰어나서 꿈을 능히 해석하고 은밀한 말도 밝히 알기 때문이라. 최고의 추천을 한 셈입니다. 당장 불러들이고 싶은 추천입니다.

이에 다니엘이 연락을 받고 오자 벨사살이 묻습니다.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선대(先代) 왕이 총애한 벨드사살이냐고 묻지 않고 포로 출신을 업신여기는 어투로 묻습니다.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다며?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도 있고 의문도 잘 푼다더라.

 

16.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면 네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걸어 주어 너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

 

벨사살이 다니엘을 그다지 신뢰하는 절박함이 안 보입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으니 한 번 맡겨보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에게 큰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허세 부리는 거만함이 묻어나옵니다. 이에 다니엘이 그 글자를 읽고 해석합니다.

메네 메네[מְנֵא]. 세다 무게 단위로서 수동태 형의 세어지다 는 뜻이고 데겔[תְּקַל]. 저울에 무게를 달다. 라는 단위로서 역시 수동태 형의 달아지고라는 뜻이고 우바르신[פְּרַס 페라스].]. 두 개로 나눈다는 의미로서 우바르신의 단수 수동태 형 나누어진다.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 절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벨론의 기한이 찼고(26) 벨사살 왕 역시 하나님의 기준에 미달하였기에(27) 하나님 심판을 받아 메대와 바사에 멸망한다는 예언입니다. 세고, 저울에 달고 나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을 벨사살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너 벨사살은 세어지고 달아졌고 바벨론도 이미 나누어졌다는 심판입니다. 벨사살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즉 왕의 자격이 없으니 왕좌에 더는 앉아있을 인물이 못 된다는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신다면 이제 망하는 길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기준은 하나님의 자()와 하나님의 저울입니다. 하나님의 자로 재어보니 이미 꽉 찼다. 망할 때가 되었다. 그런 말입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를 가지고 측량하시고 하나님께서 시간을 조정하십니다.

30절과 31절을 보면, 다니엘의 해석대로 그날 밤에 바벨론은 그렇게 끝이 나고 메대 사람 다리오의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벨사살이 열었던 잔치는 멸망의 잔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김삼일 가족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질을 감찰하실 때 하나님의 저울에 맞는 생활을 하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저울로 우리의 삶의 질을 측량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는 선언 듣지 말아야 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이 소리 들어야 합니다(25:21).

 

 

 3. 하나님의 저울에 나는 얼마나 부족합니까?

 

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조금 전 데겔[תְּקַל]은 저울에 무게를 달다. 라는 단위로서 수동태 형의 달아지고. 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벨사살 왕만 하나님의 저울에 달았겠습니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장차 우리 모두를 저울에 달 것입니다.

동시에 지금도 달아보십니다. 혹 하나님의 기준에 내 믿음의 무게가 형편없이 모자라는 것은 아닙니까? 반드시 점검하여야 합니다. 저는 방문 앞에 저울이 놓여 있습니다. 하루에 두 번 정도는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무게가 늘었는가 싶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줄었는가 싶어 올라갑니다. 어쩌다 기대하는 몸무게 숫자가 나오면 마음이 편하지만 혹 수치가 높게 나오면 은근히 신경이 쓰입니다. 그래도 자주 저울에 올라서 점검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기독교인은 수치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주가 수치, 여론 수치, 경제 수치가 아닌 믿음의 수치 말입니다. 벨사살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릴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 저울은 과거의 무게를 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무게만 측량하는 기구인 줄 아시지요. 우리가 왜 매일 저울에 올라갑니까? 그냥 몇 개월 전에 쟀던 몸무게로 기억하면 마음이 편할 텐데 말입니다. 저울의 기능은 현재의 무게만 보여주는 기구입니다.

또 무게를 잴 때 포장지와 같은 부수 실체는 걷어내고 실제 물건만 재어야 합니다. 그래서 체중을 잴 때도 옷을 벗고 몸무게를 잽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는 교회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이 필요합니다. 회를 이끌어가는 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지막 저울에 달릴 때는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것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직분의 무게, 장이라는 모자의 무게는 전혀 소용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무게가 나갈만한 믿음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현재 신앙 무게를 체크 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보실 때 든든한 믿음, 사람이 보기에도 든든한 믿음을 꾸리십시오. 무게가 나갈 정도의 값어치 있는 믿음생활을 꾸려야 합니다. 행여나 하나님의 저울로 우리의 믿음을 달아볼 때 턱없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받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루하루의 삶을 믿음으로 잘 관리하여야 합니다.

 

과거의 믿음의 무게가 아무리 좋았을지라도 그건 지나간 일입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믿음뿐인 줄 아십시오. 하나님께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잴 수 있는 정밀한 저울이 있습니다

데겔이라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의 무게를 재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의롭게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저울에 데겔 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세상 사람 모든 의를 합친다 해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예수님 보혈의 공로로 모든 죄를 가려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메네와 데겔은 하나님의 저울로 쟀다는 뜻이고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우바르신 곧 메네 데겔에 이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09:27). 지금 내가 하나님의 저울에 어느 부분이 미달 되어 있습니까? 그 부분이 무엇입니까? 지금부터라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합니다. 예배, 봉사, 헌신, 기도를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최종 달아보시고 우바르신 하기 전에 채워야 합니다. 바벨론 왕조는 벨사살 왕이 심판을 받음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 미달하면 내 믿음의 가문도 문을 닫을지 모릅니다. 지금부터 준비합시다.

 

다니엘서 5장 말씀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벨사살 왕이 교만하여 감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다가 멸망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16:18). 펑크 난 타이어로는 차가 멀리 갈 수 없습니다. 당장 때워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어떤 심판 받을지를 내다보며 지금부터 믿음을 재정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