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일 가족 여러분과 함께 함께 살펴보는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진 일명 열 처녀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 종말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러나 이성과 과학이 판을 치는 요즈음 현실에서 보면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마지막에 될 종말론은 별 재미없는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설교자들은 할 수 있으면 이런 주제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을 피하려 합니다. 그다지 인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가능하면 안 하고 싶은 생각을 가졌습니다만 성경을 읽으면서 오히려 종말론 설교는 자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더러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멀쩡한데 무슨 재림이 있고 종말이 온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지라도 주님께서 세상 끝 날에 도적과 같이 오신다는 말씀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이미 종말과 심판은 한참이나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잘되어가고 있고 만사가 편안하다고 여깁니까? 그때가 종말이 깊어지고 심판의 때가 더욱 다가왔음을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각성하는 시간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기름 준비는 주님 맞이할 준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당시의 결혼 풍속을 살펴보겠습니다. |
01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오늘 말씀을 여는 중용한 단어 하나를 보겠습니다. 그때에라는 부사(副詞)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자주(약 90회) 사용되는 단어로 주로 심판과 관계된 단어입니다. 예수님 재림의 양면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된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에 관하여 마 24장에서 여러 차례 소개하셨습니다(24:29, 31, 36, 50, 51). 특별히 재림을 이해시키기 위해 당시의 결혼풍습을 예로 드셨습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간. 이스라엘의 결혼풍습을 알아야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결혼풍습은 지방마다 가정마다 조금씩은 달랐습니다. 그러나 일반으로 결혼풍습은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생략된 부분이 있습니다. 신랑이 신부 아버지에게 상당한 결혼 지참금을 주고 결혼 약속받은 것 말입니다. 신부에게도 당연히 선물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내 신랑은 곧 신부와 함께 살 집을 준비하기 위해 본가로 돌아갔습니다. 이때부터 정혼 한 관계가 성립되었고 신랑과 신부는 약 일 년 동안 가정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살림살이를 준비합니다. 신랑 신부 수업 기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에는 몇 가지 절차가 있습니다. 결혼 준비가 끝나면 신랑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몇몇 친구와 함께 신부를 데리러 갑니다. 신부 집에서 종교의식을 비롯한 여러 예식을 마치고 밤 중쯤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옵니다.
양가의 거리가 가까울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양가가 거리가 멀 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오늘 말씀은 신붓집에서 일어난 일로 신랑 신부의 집이 거리가 좀 먼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붓집에서는 신부 중심으로 신부 부모님과 들러리를 맡은 열 처녀가 이제나저제나 신랑 일행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대인은 결혼식을 왜 밤에 합니까? 우리나라는 대부분 토요일 일요일 낮에 하는 데 말입니다. 또 결혼식을 해도 순서가 우리와는 조금 다릅니다. 유대인은 잔치를 먼저 하고 결혼식을 마지막에 합니다. 오는 손님에게 먼저 극진하게 대접하고 나서 마지막에 결혼식을 거행합니다. 왜 밤에 결혼식을 합니까?
첫째 너무 더워서 낮에는 예식을 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반면 해가 진 다음에는 습기가 없어서 시원합니다. 그래서 밤에 예식을 합니다. 둘째 낮에는 다 일터가 있습니다. 당시는 주로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낮에는 농장에서 바쁘게 일해야 합니다. 낮에 결혼식을 하면 올 사람이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요즘처럼 교통문화가 발달 된 것이 아닌 그저 걸어 다니던 시대입니다. 낮에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안식일도 해당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셋째 유대인의 날짜 개념입니다. 유대인은 날짜 개념이 우리와 다릅니다. 저녁이 되면 하루가 끝난 것이 아니라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으로 보았습니다. 천지 창조 때 하루 개념과 같습니다
창 01:0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2. 기름 없는 등이 있습니다. |
0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0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전기가 발달하지 못한 2천 년 전의 문화에서 오늘 말씀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전기는 기록으로는 B.C 600년경 그리스 과학자 탈레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에디슨이 1879년 10월 전구를 발명했는데 그때는 전구가 얼마나 희미한지 촛불을 밝혀야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첫걸음 되어 오늘날에는 밤도 낮과 같이 밝게 되었습니다.
등(λαμπάς). 둥근 심지를 담가 기름을 넣어 사용하는 기구입니다. 결혼식에서 신부 들러리는 이 등을 기다란 막대 끝에 달아 신부를 맞으러 오는 신랑의 길을 밝게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등불을 각자가 알아서 준비해야 합니다. 만일 등불을 들지 않은 자가 있다면 그는 불청객이나 훼방꾼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런데 신부 들러리로 참여한 처녀가 열 명이나 됩니다. 열 명이면 작은 수가 아니지만, 탈무드에 의하면 유대인의 결혼 행렬과 장례 행렬은 열 명의 인원을 필요로 했다고 합니다. 이 열 처녀가 03절에는 미련한 자들 다섯으로 04절에는 슬기 있는 자들 다섯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미련한(μωρός) 자들. 미련하다는 말은 어리석은, 우둔한 이런 의미입니다. 마태가 어떤 이유로 03절의 다섯 처녀를 미련한 자들이라고 표현합니까? 등은 가지고 있되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음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힙니다.
슬기 있는(φρόνιμος) 자들. 슬기 있다는 말은 지적인, 통찰력 있는, 신중한 이런 의미입니다. 그러면 마태가 어떤 이유로 04절의 다섯 처녀를 슬기 있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까? 등과 함께 꼭 필요한 기름을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열 명의 처녀가 신부와 더불어 집에서 신랑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신랑이 제시간에 오지 않습니다(05). 신랑이 더디 오다 보니 밤 문화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시대인지라 다른 놀이할 것은 없고 열 처녀가 다 졸다가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신랑의 길을 인도하는 사람의 소리가 들립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고대하던 음성을 듣고 각자가 등에 불을 켜서 맞으러 나갑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그만 다섯 처녀가 등에 기름이 없어서 불을 켜자마자 이내 꺼져 가는 겁니다.
신랑을 맞으러 가는 거리가 그렇게 멀지도 않을 건데 등불에 불이 꺼져 가니 어찌해야 합니까? 이럴 때 좋은 친구가 필요합니다. 기름이 없어 등불이 꺼져 가는 다섯 처녀가 기름이 있는 다섯 처녀에게 절박한 부탁을 합니다.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08).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이고 조금 전까지 웃음꽃을 함께 피우던 친구 아닙니까? 정을 생각해서라도 나누어 줄만 합니다. 친구들 반응을 보겠습니다.
0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세상인심이 야박하다는 생각 됩니까? 이기주의 같은 마음이 듭니까? 이 말의 초점은 신령한 것은 빌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신령한 것은 각자가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늦은 밤이기에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겨우 기름을 사서 등불을 켜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신랑은 기름을 준비한 자들과 함께 결혼식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히고 말았습니다.
3. 기름 준비는 주님 맞이할 준비입니다. |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기름 준비를 못 한 다섯 처녀가 늦게 기름을 사서 돌아왔을 때 이미 신랑은 등불을 준비한 다섯 처녀와 함께 잔칫집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문도 굳게 닫혔습니다. 11절의 안타까운 외침을 들어보십시오.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주여, 주여(κύριος κύριος) 라고 하는 호칭입니다. 주여, 주여 라는 이 호칭은 마 07:21, 22절 절에도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따라서 미련한 자들이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아무리 애타는 심정으로 부르짖을지라도 그들에게는 더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10절에 기름을 준비한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κλείω 클레이오). 는 동작 완료 단어 때문입니다.
잔칫집 문지기의 입장에서 늦게라도 기름을 사서 돌아온 다섯 처녀의 애끓는 소리를 살짝 들어줄 만하지 않습니까? 문지기가 사사롭게 열어주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결혼풍습은 밤에 잔치가 시작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하여 문을 걸어 잠근 이상 마칠 때까지 열어주지 않습니다. 잔칫집의 법도입니다(눅 13:25). 02절을 잘 보십시오. 다섯 처녀는 슬기롭고 다섯 처녀는 미련하다고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만 봐서는 누가 슬기롭고 누가 미련한지 알 수 없습니다. 열 명 모두 신부 들러리로 혼인 잔치에 왔고 모두 신랑 맞을 등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또 열 명 모두 기다리다 졸며 잤고(05), 꼭 같은 상황에 있습니다. 겉모습으로는 전혀 슬기로운 자인지 미련한 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로 보아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구분이 외모나 환경 여건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결혼식 주인공인 신랑이 도착하였을 때 구분되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으러 먼 곳까지 갈 것을 예상하고 기름을 별도로 준비했습니다.
반면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으러 가까이 갈 것으로 예상하고 기름을 별도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기름 준비의 기준이 자기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일명 열 처녀 비유를 우화나(allegorically) 혹은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먼저 신랑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 예수님을 신랑으로 묘사합니다(마 09:15; 요 03:29; 고후 11:02; 엡 05:27; 계 19:07, 09). 예수님은 우리에게 신령한 면의 신랑입니다. 그러면 열 처녀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이 가운데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누구인 것 같습니까? 김삼일 가족으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막 13: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사람은 여러 형태로 나누어집니다. 피부 색깔로, 학력이나 재산이나 나이 환경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세상 마지막 때는 두 종류만 있습니다. 주님 맞이할 준비가 된 사람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때가 되면 재물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성공하였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 맞이할 준비 천국에 들어갈 준비 하나로 족합니다. 기독교인은 주님의 재림을 지난 2천 동안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재림은 없는 겁니까? 아닙니다.
우리 김삼일 가족이 할 일은 세상의 종말이 언제이든지 상관없이 항상 깨어 있으면 됩니다. 주님 맞을 준비를 했으면 됩니다. 아직 준비 안 되었습니까? 불가능한 때가 오기 전에 하십시오. 요즘은 주택에 경보장치(security system)를 해놓은 분이 많습니다. 이런 장치가 되어있으면 아무래도 도둑이 들까 걱정되어 잠 못 이루는 일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일도 이렇게 예비하는데 성도는 주님 맞을 준비하고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물고기는 잠을 잘 때 눈을 감지 않습니다. 죽을 때도 눈을 뜨고 죽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초대교회 시절 많은 기독교인이 핍박을 피해 로마 외곽의 지하 동굴 카타콤으로 도피했습니다.
이곳은 원래 시체를 매장하는 장소입니다. 로마는 장지를 신성불가침 지역으로 여겨 접근을 꺼렸습니다. 결국 기독교인들은 10대에 걸쳐 300년 동안 이곳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들은 카타콤 벽면에 물고기 그림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익투스(IΧΘΥΣ)라는 글을 넣었습니까? 헬라어 표기로서 Ιησουσ Χριστοσ Θεου Υιοσ Σωτηρ의 첫 글자를 합성한 단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어쩌면 물고기처럼 자나 깨나 신령한 일에 깨어 있으라는 메시지가 담긴 뜻입니다.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천국 들어갈 준비를 잘하였습니까? 아니면 준비하는 중입니까? 아직 준비를 안 했습니까? 그래서 마지막에 은혜로 들어가려 합니까?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죽겠다, 미치겠다. 라는 말 있습니다.
사실은 바쁘다, 바빠. 라는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안 바쁜 사람 어디 있습니까? 알고 보면 그렇게 바쁘지 않습니다. 잘 돌아보십시오. 쓸데없는 데 시간을 쓰기 때문 아닙니까? 혹 세상을 불공평하다고 원망합니까?
이 역시 알고 보면 전혀 불공평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는 동안 그 어떤 것보다 귀한 것이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주님 맞이할 준비 잘하라고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김삼일 가족은 중요한 일에 집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신령한 일에 준비가 된 자를 쓰십니다. 믿음은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평소에 꾸준히 훈련되어야 합니다. 도저히 세상 종말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때에 믿음생활 잘해야 합니다. 허송세월로 다 잃어버린 다음에 비로소 소중한 것을 깨달을 때는 늦습니다. 문이 닫히고 나서 준비하면 무엇합니까? 지금부터 신령한 믿음준비 주님 맞을 준비 잘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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