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가장 긴급한 일도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기도, 헌금, 전도도 중요하지만, 예배는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의 성공을 보장받습니다.
반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의 실패를 가져온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됩니다. 오늘 말씀은 구약시대 때 활동한 흔히 말하는 소 선지자 열두 명 가운데 한 명인 요엘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는 제8대 요아스 왕의 재위 동안(B.C. 835~796) 유다에서 사역하다 B.C. 830년경 요엘을 기록하고 그의 일생을 마쳤습니다.
요엘 선지자가 전하는 메시지 주제는 하나님께 예배 즉 제사를 회복하자는 운동입니다. 만일 제사를 회복하지 않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제사 회복, 예배의 회복은 우리에게 최우선순위입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서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은혜도 받습니다. 교회도 복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 자손이 잘되는 복도 받습니다. 예배 회복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만나는 정점이요 믿음생활을 건강하게 하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하나님께 드릴 제사를 회복합시다. 로 정했습니다. 예배를 회복하자는 뜻입니다. 함께 은혜의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제사 회복을 부르짖는 요엘이 누구입니까? |
01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구약성경에서 요엘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본서에서 요엘은 브두엘의 아들이라고 명시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보아 그 부친도 어느 정도 명성 있는 인물로 짐작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주제는 그 아버지 브두엘이 아닙니다. 그의 아들 요엘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이니 성경 해석 원리를 따라 요엘 이름 뜻부터 보겠습니다.
요엘(יוֹאֵל).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요는 여호와를 뜻하며, 엘은 하나님을 뜻하는 말로 두 단어가 합성되어 요엘이 되었습니다. 요엘은 신실한 믿음의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 부친 브두엘(פְּתוּאֵל) 이름이 하나님에 의해서 강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브두엘을 믿음 안에서 살도록 강권하셨다면 그 자녀들도 믿음의 길을 걸었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됩니다. 요엘이란 이름이 그 증거입니다.
이 요엘이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기 전 유다 왕국의 정치 상황을 간단히 살펴보는 것이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 데 좋을 것 같습니다. 유다 왕국에는 도무지 왕이 되어서는 안 될 자가 쿠데타로 집권하여 제7대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남북왕국을 통틀어 유일한 여왕 아달랴입니다.
아달랴는 아합과 우상의 나라 시돈 출신 이세벨 사이에 난 딸입니다. 이런 여자가 유다 왕국의 경건한 왕 여호사밧 며느리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여호람 때 왕비가 되었다가 아들 아하시야를 거쳐 직접 왕이 되었습니다. 아달랴가 통치하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마침내 유다 왕국에는 큰 변혁이 일어납니다. 제7대 왕 아달랴를 몰아내고 7세밖에 안 된 어린 요아스를 제8대 왕에 옹립하는 혁명입니다. 이를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주도하였습니다. 여호야다는 어린 왕을 보필하면서 나라를 안정시킵니다. 동시에 바알 숭배를 제거하고 성전을 수리하며 백성들이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이후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그만 요아스 왕은 우상의 길에 들어섭니다.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는 죄악에 빠졌습니다. 이런 정치 상황 속에서 요엘이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보통 선지자 예언은 당대의 흥망성쇠에 관한 일이나 요엘의 예언은 종말론의 관점에서 선포하는 예언입니다. 오늘 우리와도 관계되는 예언입니다. 요엘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약시대의 성령님 강림에 대하여 처음 예언한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시대가 옴을 선포할 때 시차는 있지만, 훗날 오순절 날 성령님 강림 사건 때 요엘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베드로와 누가가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출신 요엘의 신분을 놓고 많은 학자가 요엘이 혹 제사장 출신은 아닐까? 라는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예언 선포의 대상이 시온의 자녀들이며 외치는 지역이 시온이기 때문입니다(02:01, 02:15, 23). 특별히 제사장들에게 회개를 강조하며, 금식일을 정하고 장로들과 주민들을 성전으로 불러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명령하는 것은 같은 격(格)이 아니면 감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14).
2. 유다 왕국에 제사가 끊어졌습니다. |
09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 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소제(מִנחָה 민하)와 전제(נֵסֶך 네세크). 소제는 5대 제사 중의 하나인 상번제로서 매일 아침저녁 곡식과 포도주가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피 없는 제사입니다. 전제(奠祭)는 제사 지낼 때 마지막에 포도주를 붓는 의식으로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제사가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방법입니다.
끊어졌고(כָּרַת 카라트). 요엘 당시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番祭)가 서서히 형식에 치우치다 어느 때부터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겔 45:17에 의하면 소제와 전제는 월삭, 안식일 같은 절기에 속죄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는 전통과 더불어 삶의 필수로서 대대로 잘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가 바벨론에 멸망되기 전부터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끊어졌다는 말은 어떤 외부 요소로 인해 제사가 중단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에 요엘 선지자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0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기울일지어다(אָזַן 아잔).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단어가 늙은 자들 즉 장로들과 땅의 모든 주민보다 앞서 나옵니다. 매우 강조하는 명령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단되어서 안 되는 게 제사입니다. 그런데도 제사가 중단되었으니 위기 중의 위기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서 요엘이 예언하던 당시의 주변 정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북쪽에는 베니게, 블레셋, 에돔이 서로 팽팽하게 견제하고 있습니다. 남쪽에는 애굽이 강대국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다 왕국보다 힘이 센 나라가 주변을 에워싸고 수시로 침략해 왔기 때문에 국가 경제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하였습니다.
이런 때에 갑자기 메뚜기 재앙이 유다 왕국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전 국토가 황폐하게 됩니다. 거기다 극심한 한재(旱災)까지 겹칩니다. 국가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만났습니다. 이 정도면 제사가 제대로 드려지겠습니까?
제사의 기능이 정상으로 수행될 수 없습니다. 이 제사 가운데 곡물과 포도주가 쓰이는 소제와 그에 따르는 전제는 당연히 마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09절을 보십시오.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이 슬퍼합니다. 여기까지에 이르자 유다 백성은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재앙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은 요엘을 예루살렘에 보내어서 재앙의 원인을 전합니다. 국가 지도층과 백성 모두의 불신앙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그러면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돌아와서 신실한 제사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요엘은 백성들에게 현재의 고난에 좌절할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심판의 날을 만나지 않도록 제사 회복을 촉구합니다.
제사에 관한 부분을 우리가 받을 때는 예배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지금 예배가 끊겨 버린 현실은 아닙니까? 오늘 예배의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어쩌면 신령한 예배는 중단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나의 예배를 단절하는 방해물이 무엇입니까? 굳이 설명 안 해도 각자 마음이 잘 알 것입니다. 세상일에 얽매이다 보니 예배를 빼앗깁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결석이라고 생각합니까? 결석이 아니라 빼앗김입니다. 사탄에게 말입니다. 사탄에게 예배를 빼앗기면 그때는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을 만납니다.
3. 요엘은 여호와의 날을 선포합니다. |
15 슬프다. 그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여호와의 날. 여호와의 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날이 본서에서 다섯 번 사용되었습니다(01:15, 02:01, 11, 31, 03:14). 여호와의 날은 구약에서 16회 나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스바냐 등 여러 선지자가 여호와의 날을 심판의 차원에서 사용하였습니다(사 02:12, 렘 46:10; 습 01~03장). 이 가운데 요엘이 본서를 통하여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현장을 직접 나타내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에 가끔 모습을 드러내셨고 그때마다 시대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예로 노아의 홍수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본서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날은 이방 나라가 유대인에게 행한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를 퍼붓는 날입니다(욜 03:01~08).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קָרוֹב 카로브). 매우 두려운 예언임과 동시에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멸망의 날입니다. 이날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종말이 임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엘이 예언한 여호와의 날은 일차로 B.C. 586년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이며, 이차로는 예수님의 재림 때 이루어질 최후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신령한 은혜를 받는 구원의 날입니다. 오늘 우리 김삼일 가족에게도 복된 메시지로 받으면 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장차 여호와의 날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 특징을 봅시다. 첫째, 어둡고 캄캄한 날입니다(02:02). 어두움은 절망을 암시합니다. 둘째, 불로 온 땅이 탑니다(02:03). 천둥, 번개와 아울러 화산, 지진이 일어나게 되면 온 땅은 화재로 가득 찰 것입니다. 이날에는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으며 화산을 피하면 지진 속에 묻히고 지진을 피하면 번개로 온 땅과 건물이 허물어져 내립니다.
셋째, 여호와의 날은 파멸이 아니라 구원입니다(02:28). 그 증거가 심판 전에 만민에게 성령님 강림을 내려주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고통과 죽음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악한 죄인일지라도 마음을 돌이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딤전 02:0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요엘은 여호와의 날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하나님이 전해 주시는 묵시로 알았습니까? 아닙니다. 자연환경에서 믿음의 감각으로 심판 날을 알았습니다. 04절을 보면 여호와의 날이 선포되기 전에 메뚜기 재앙이 먼저 임했습니다.
요엘은 이 메뚜기 재앙을 여호와의 날의 징조로 깨달았습니다. 유다 왕국 전역을 휩쓴 메뚜기 재앙과 한재야말로 다가올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로 깨달았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역사에서 이루어졌고, 장차 인류에게 임할 날이며, 우리 모두에게 임하는 날입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예배를 회복하는 자리에 이르러야 합니다.
벧후 0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가 단절되면 기근이 찾아옵니다.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생활이 너무 어려워 예배를 드리기 어렵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주일에 예배드리지 못한다고 핑계를 하나 이 일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아무리 일정이 어려워도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해서 소망과 기쁨과 즐거움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단절되면 인생의 신령한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사회에서 지위가 높아도 하나님 없는 생활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예배 없는 생활은 즐거움이 아니라 근심과 걱정입니다. 하나님 없는 그 어떤 것도 인생을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작은 일도 주님 안에서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 예배드리는 즐거움을 누리면 인생이 즐겁습니다.
하나님 없는 부자 보십시오. 그들은 항상 불안합니다. 세상 거리를 잃을까 봐 걱정입니다. 더 많이 모으려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만족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성도 여러분에게 기쁨이 사라졌습니까?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고 있는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혹 예배가 끊어졌습니까?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살길이요 복된 길입니다. 예배가 단절되면 심령도 가정도 사업도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0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오늘 말씀을 자녀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후손들에게 계속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자녀에게 직접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앞장서서 신앙교육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신령한 자녀로 다듬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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