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나를 위기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시 34:01~1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10. 2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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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끔 듣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되고, 역경을 거꾸로 읽으면 경력이 되고, 인연을 거꾸로 읽으면 연인이 되고, 내 힘들다 를 거꾸로 읽으면 다들 힘내가 됩니다. 받을 만한 말입니까?

그리고 impossible(불가능한)에 점 하나를 찍으면 I 'm possible(나는 가능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 하나로, 행동 하나로 우리들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늘 행복하면 좋겠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부정의 단어조차 긍정으로 바꿀 수 있는 씩씩한 마음가짐으로 생각을 바꾸면 밝은 미래가 보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사울 왕의 박해를 피하여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 망명을 하였다가 오히려 그 신하들로부터 죽음의 위기를 만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문제를 잘 수습하고는 세월이 좀 지난 어느 시점에서 우리에게 자기를 건져주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동시에 우리도 다윗을 위기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제목을나를 위기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으로 정했습니다

 

 

  1. 다윗은 기도 가운데 건져 주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0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우리를 둘러 싼 환경이 낙심과 절망 가운데로 몰아가는 상황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기도를 통하여 위기탈출을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사방이 꽉 막혀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솟아날 구멍조차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위기를 만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픔의 소리를 들으시면 그때는 소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시편 34편 표제를 보시면 다윗이 어떤 상황에 처하여 있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34편의 표제를 읽어 봅시다. 다윗이 아비멜렉 왕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본문의 배경인 삼상 21:10절을 보면 다윗이 사울의 박해를 피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고 나옵니다.

아비멜렉 왕과 가드 왕 아기스, 이름이 다르지 않습니까? 여기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함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헷갈리는 혼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나안 정착 시대의 블레셋은 다섯 개의 성읍이 중심을 이루는 연합체이었습니다. 아스돗, 가사,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이렇게 다섯 성읍입니다.

 

삼상 06:17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이 다섯 성읍을 놓고 넓은 의미로는 블레셋이라 부르고, 좁은 의미로는 연합체의 한 성읍 명칭을 부릅니다. 아비멜렉 왕과 가드 왕 아기스이해가 되십니까? 04절은 다윗이 사울 왕으로부터 박해를 피하여 이웃나라 블레셋 가드로 망명을 갔던 때의 일을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정치적 망명은 일반적으로 나름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정치적인 망명을 하였음에도 대접보다 죽음의 위기를 만납니다.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하는 말을 보겠습니다.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삼상 21:11)?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사울임에도 외부에서는 다윗을 왕의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 왕으로 표현을 합니까? 삼상 18:07절을 보면 다윗이 블레셋의 영웅 골리앗을 죽이고 성으로 들어 올 때 여자들이 뛰놀면서 노래를 부른 일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라는 이 노래가 블레셋에 생생하게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이러한 소문이 난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다윗이 정치적 망명을 해 왔으니, 아기스의 신하들은 이 틈에 자기들의 영웅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죽여서 원수를 갚으려고 합니다.

다윗은 정치적 망명으로 인해 오히려 죽음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미치광이처럼 임기응변적 행동을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미친 사람 흉내를 내야 하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다윗은 아기스 왕 앞에서 수염에 침을 흘리고 대문짝에 낙서를 막 합니다. 주먹으로 대문을 꽝꽝 두드리는 볼썽사나운 행동을 계속 합니다. 이때 다윗은 자기가 비록 미치광이 흉내는 내고 있지만 이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한 행동이었고, 하나님께서 이에 대한 응답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2. 다윗은 하나님의 천사가 자기를 건졌다고 고백합니다.

 

0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 도다.

 

여호와의 천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할 목적으로 보낸 천사를 말합니다. 07절 가운데 우리에게 힘이 되는 특별한 용어가 나옵니다. () 치고 라는 집합 단수 명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동원 된 천사의 숫자가 진을 치듯이 많다는 뜻입니다.

다시 가드 왕 아기스를 보겠습니다. 통이 큰 사람입니다. 정치적으로 망명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왕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고, 그렇다고 신하들이 죽이자니 무시하는 것도 부담입니다. 이때 다윗은 살기 위하여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행동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순간 아기스는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인해 다윗을 살려 보내고 싶어서, 신하들 앞에서 아주 실감 있는 연기를 합니다. 아니, 미친 녀석 아니냐? 왜 이런 자를 끌어 왔느냐? 나에게 미치광이가 부족해서 이런 자까지 데려다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왕궁에 이런 자까지 들여와야 되느냐(삼상 21:14,15)? 하며 쫓아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유대 광야 아둘람 굴로 긴급히 도망을 하여 목숨을 건졌고, 여러 사람들이 다윗 곁으로 몰려들면서 상당한 힘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삼상 22:01).

하나님은 이미 가나안에서 왕국을 세우기 위해 준비 된 인물(삼상 16:12,13)이기 때문에, 적군 아기스 왕의 마음까지도 친히 간섭해서 살리신 것입니다. 다윗 스스로 아기스 왕과 그 신하들 앞에서 살아나온 이 사건을(07), 훗날 백성들 앞에서 간증하기를 하나님께서 많은 천사를 보내어서 자신을 구출한 일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다윗도 자기의 뜻과는 달리 고난을 많이 겪게 됩니다만 그때마다 위기의 현장을 잘 넘겼습니다. 다윗은 이런 많은 위기의 현장들 속에서 살아나온 일들을 놓고 자기의 능력으로 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고난의 현장이라도 하나님의 천사가 도우는 일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믿음의 모습이 정말 멋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천사의 이야기를 좀 더 보겠습니다.

 

영국을 한 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렀습니다. 이렇게 불린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빅토리아 여왕(Victoria, 1819,5,24~1901,1,22) 때문입니다. 이 빅토리아가 왕위에 오를 때 무릎을 꿇고 성경을 펼쳐들며 이렇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영국의 왕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는 64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자신이 기도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린 결과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 되었습니다.

이 빅토리아 여왕이 어느 날 특급열차를 타고 안개가 짙은 밤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기관사는 시간 내에 무사히 목적지까지 모시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헤드라이트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은 교량 가까이 있는 지점이라 기관사는 급정거를 하였고 차장과 승무원들이 나가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몇 야드를 더 나가보았더니 놀랍게도 교량 한 가운데가 급류에 휩쓸려 끊어져 있었습니다.

만약 그 이상한 형상이 아니었다면 열차가 탈선하여 빅토리아 여왕을 비롯한 수백 명이 강에 쳐 박혀 몰살하는 사고가 났을 것입니다. 그 후 교량이 복구되고 열차가 무사히 런던에 도착하였는데, 기관사가 헤드라이트 아래쪽을 살펴보니 큰 나방 하나가 죽어 있었습니다.

차에 올라가 헤드라이트를 켜보니 바로 그 나방의 날개가 깃발을 흔드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에게 이 사실이 보고되자 여왕은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가 우리를 지키시는 방법이었소.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보호하시는 방법입니다.

 

0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3.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함 할 것을 권합니다.

 

0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 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믿음이 성장하려면 기도의 벽, 말씀의 벽, 찬송의 벽, 헌금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해 보려면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성경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설교도 지루하고 거기다 헌금을 하려면 아까워 죽을 지경입니다.

주일이 되면 교회 가려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바쁜 일이 생기면 한 주, 두 주 예사로 빠집니다. 그러다 한 달 두 달 믿음생활을 포기하기도 예사입니다. 왜 이런 믿음의 권태기가 옵니까? 한 마디로 믿음의 맛, 하나님의 영적인 맛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생활은 영생의 삶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이것에 실패하면 모두가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을 잘 하려면 말씀의 맛, 기도의 맛, 헌금 드리는 맛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 체험을 하여야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임합니다.

다윗은 특별히 말씀을 듣고 깨닫는 그 영적 즐거움의 맛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는 표현을 하였습니다(19:10). 사람들은 송이꿀에 대하여 많이 오해를 합니다. 식용 버섯 송이로 말입니다. 송이꿀이란 그런 식용 버섯의 송이가 아니라 벌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덩어리 꿀을 말합니다. 다윗이 말씀에 대하여 금이나 꿀과 같은 상징적인 표현을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는 그와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 지어다. 성도 여러분, 컴맹, 색맹(色盲), 문맹(文盲), 미맹(味盲)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을 컴맹,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색맹, 글자를 모르는 사람을 문맹이라 합니다.

그리고 미맹은 정상인이 느낄 수 있는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거나, 아니면 다른 맛으로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이 미맹으로 인해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인생의 절반이 무너진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 지어다. 라는 말씀에 믿음으로 접근하지 못하여 교회 생활에 권태기를 느끼는 일입니다. 영적 슬럼프가 오면 교회를 떠나기 쉽고, 예수 믿어도 별 수 없더라 하면서 세상으로 돌아가기 알맞습니다. 다윗이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치광이 연기를 하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기도하였겠습니까?

마침내 하나님의 응답으로 문제가 잘 해결되었습니다. 이후 5년 후 쯤 지나 다윗은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인생 말년쯤에 오늘의 이 사건을 떠 올리면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절체절명 위기의 현장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역사야말로 다윗에게는 진정한 은혜의 체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몸부림을 치는 자를 보호하십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이 약 정도를 기록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1인칭으로 기록된 부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을 많이 하였기 때문인데 그 대표적인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18:0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0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그 외에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로 시작하는 시편 23편이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그저 수사법으로 쓴 게 아니라 자신이 체험이 녹아있는 생생한 표현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젊은 사자, 활동성이 강하고 먹잇감을 얻는데 조금도 거칠 것 없는 동물 아닙니까? 사자가 먹을 것을 찾지 못해 굶주린다는 것은 큰 흉년과 같은 때를 비유합니다. 젊은 사자가 먹을 것을 찾지 못해서 궁핍하여 주릴 상황을 만날지라도, 하나님을 찾는 성도, 하나님의 은혜를 영적으로 체험하는 일꾼은 넉넉한 삶을 살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다윗은 B. C. 1020년부터 1010년까지 약 10년가량을 사울왕의 박해를 피하는 유랑자로 지냈습니다. 이 도피 생활에 대해서는 삼상 21~31장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이 기간 동안 다윗은 어떤 상황을 만나도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음을 이렇게 간증을 합니다.

 

40: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성도 여러분, 이런 다윗의 믿음생활이 이해가 되십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을 체험하였기에 하나님을 향하여 오직 찬송과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이제부터 믿음생활에서 다윗처럼 기도의 체험, 말씀의 체험, 은혜의 체험으로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꾼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치기 힘든 습관은 불평과 불만을 토하며, 남을 헐뜯는 악습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그 무엇보다 입술을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를 향해, 성도를 향해, 하나님을 향해 원망이나 불평을 할 일이 있습니까? 감사로 방향을 전환하십시오. 신실한 믿음의 사람은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의 약함을 감싸주는 사명자임을 기억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