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마침내 백배의 복을 받았습니다(창 26:12~1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10. 1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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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희랍(그리스)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큰 대리석을 정으로 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조각가는 깜짝 놀라 사방을 살펴보다가 그 고통스러운 소리가 대리석에서 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너는 왜 아프다는 소리를 내는 거야?

당신이 지금 날카로운 정으로 나를 쪼아서 내 살점을 뜯어내고 있으니 너무도 아파서 그러는 겁니다. 대리석은 아파서 견딜 수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자 조각가는 어리석은 대리석아, 내가 네 몸을 정으로 쪼고 다듬어야 네가 걸작품이 되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거야, 너를 그냥 놔두면 너는 한낱 돌덩이에 불과해. 그러나 네가 정을 맞으며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참기만 하면 불후의 명작이 될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복도 처음부터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갖 시련과 연단을 치른 후에 마침내 주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후 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시나이 사막에서부터 무려 사십 년 고난을 극복한 후에 마침내 들어갔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삭이 블레셋 그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마침내 거부가 된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우리도 이런 복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을마침내 백배의 복을 받았습니다로 정했습니다. 믿음으로 도전받기를 축원합니다.

 

 

1. 백배의 복을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아브라함이 175세를 살다 죽은 후 이삭은 헤브론에서 네게브 지역 브엘라해로이(25:11) 지역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브엘라해로이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우물이란 뜻을 지닌 우물이 있는 곳입니다. 16:14절에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왔다가 죽음의 직전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 생명을 건진 샘이 있는 곳입니다.

 

또 이삭이 자기의 아내 리브가를 맞이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묵상하던 장소입니다(26:62). 그런데 브엘라해로이를 비롯한 가나안 전역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삭이 흉년을 만나 살기 위하여 물이 넉넉한 애굽으로 내려가는 중입니다(01). 그러나 애굽으로 가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입니다. 애굽은 우상의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곳으로서 옛날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다가 크게 믿음의 손해를 본 적이 있습니다(12:10~20). 그런데도 이삭이 애굽행을 멈추지 않자 가나안 남쪽 경계 지역 그랄 지방을 경유할 때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그랄에 머물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명령이니 순종은 해야 하겠지만 블레셋 국가 그랄에 머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랄 지방은 약 70년 전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지만(20:01), 이삭이 이곳에 머물려면 그랄 지역을 관장하는 아비멜렉 왕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 허락이 쉽습니까? 그랄도 큰 흉년을 만나 물이 부족하고, 또 한정된 공간에 이삭의 많은 식솔이 머문다면 그럴 사람과 충돌할 수 있습니다.

이삭이 환경이나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는 그랄에 머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순종합니다.

 

이쯤에서 이삭이 누구인지 살펴봅시다. 이삭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대를 이은 2대 족장으로서 아브라함처럼 목축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농사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농사꾼이 아닌 유목민이 땅을 개간한다는 것은 여간 고달프고 힘든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농사를 지어본 경험도 없는 이삭이 그랄 지역에서 목축업과 함께 농사를 지어 그해에 백배의 결실을 거두었으니 놀라운 일 아닙니까?

 

동시에 가축도 크게 번성하여 양과 소가 떼를 이루었고, 집안의 종도 많이 불어났습니다(14). 결과를 놓고 보니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랄 지역 사람들이 크게 시기를 할 만큼(14) 복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믿음의 눈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12절 후반에 나오는 문구입니다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이삭이 이처럼 크게 복을 받은 것은 자기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크게 주셨기 때문에 된 일입니다.

 

이삭이 한 해에 백배나 수확을 올려 거부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 거부가 되었는지는 본문이 자세히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을 받는 사람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이유를 들면,

첫째 하나님의 특별 은혜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 그랄 지역에 머물므로 된 일이고, 셋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12:02). 우리 믿음의 가족들도 이런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2. 마침내 이삭이 거부가 되었습니다.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巨富)가 되어.

 

이삭이 농사를 지어 백배 수확을 한 일로 창대하고 왕성하였으며, 13절 하반에는 이삭이 마침내 거부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문장 구조를 보면 마침내라는 말이 없어도 거부가 되었음을 전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어. 그런데도 마침내라는 꾸밈말 부사[副詞]를 사용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삭을 거부로 만들어 주셨음을 강조하기 위함과 하루아침에 거부가 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된 일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일과 심판을 하시는 일에 마침내라는 부사를 33회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마침내 를 사용한 곳이 어디입니까? 12:05입니다.

 

창 12:0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에게 적용된 마침내라는 이 문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상 때부터 터를 잡고 살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에 아버지 데라를 설득하고, 큰 조카 롯의 가족들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고자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지리상으로 보면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직행하여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하란에서 상당한 기간 머뭅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가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버티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앞날을 아버지가 막고 있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귀한 일꾼으로 쓰일 아브라함의 발목을 잡는 데라를 하나님께서 불러 가심으로 아브라함은 하란의 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으로 들어왔습니다(07:02~04).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나이가 칠십오 세였는데 칠십오 새면 웬만한 사람은 은퇴한 나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육신으로는 왕성한 시기를 좀 지난 때임에도 하나님께서 힘을 주실 줄 믿고 미래에 대해 새로운 도전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 마침내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막을 지나고,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견디고, 강도와 짐승들의 위험을 극복해 낸 온갖 고난이 다 들어 있는 단어입니다.

 

이삭도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기까지에는 온갖 고난과 역경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거부가 된 일도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된 일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거부가 된 일을 수식하기 위하여 13절에서 마침내라는 부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임하는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안에서 은혜받는 일이나 복을 받는 일이 그저 따라 오는 것이 아닙니다. 상당한 믿음의 내공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합니다.

 

남들이 놀 때 일하고, 잠을 잘 때 기도하고, 낭비할 때 절약하며, 성실함과 끈기와 경건한 생활로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드릴 때 마침내라는 단어가 따라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마침내 이루어지는 복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로또 복권 당첨을 기다리듯 시간을 단축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믿음의 방법이 아닙니다.

 

약 0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3.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도 고난을 만납니다.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2절 말씀에서 이삭이 농사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백배의 복을 받은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백배의 복이라면 파격적인 일 아닙니까?

일을 하는 데는 능력도 중요하고, 기회와 환경도 잘 만나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조차 주장하시는 이가 누구입니까? 불신 세계의 사람들은 운이다, 혹은 재수라고도 하나, 믿음의 사람은 이를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입니다.

 

이삭은 종자조차 건지기 어려운 흉년의 때에 농사로 백배를 얻은 데다, 또 양과 소가 떼를 이루었습니다. 또 집에서 일하는 노복도 많이 불어났습니다.

이삭도 이제 아브라함처럼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삭의 식솔이 많아서 블레셋의 그랄 왕이 위협을 느끼고 직접 찾아와서 떠나라고 할 정도입니다(16).

 

그랄의 원주민들도 이삭에 대하여 시기와 텃세를 막 합니다. 그 시기의 방법으로 아브라함 때 판 우물, 이삭이 물려받은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버립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라도 고난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습니다.

광야나 사막 같은 곳에서 우물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이들과 다투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팠는데 물이 솟아납니다.

그러자 그랄 원주민들이 또 와서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이삭은 또다시 그 우물을 그랄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팠습니다. 거기서도 물이 솟아납니다.

 

또다시 그럴 사람들이 빼앗았습니다. 이삭은 네 번째 옮겨 우물을 팠는데 역시 우물이 솟아납니다. 이번에는 그랄 사람들이 빼앗지 않음으로 계속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삭이 우물을 개발하는 일에는 전문가입니다. 아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개발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랄 사람들은 우물을 빼앗고, 이삭은 빼앗긴 후에 다시 우물을 개발하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무려 우물을 일곱 개나 개발하였습니다(18~22, 25).

 

이삭이 백배의 복을 받고 우물도 일곱 개나 개발한 거부이지만 물질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랄의 모든 우물을 두고 브엘세바로 이동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 생활 제대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나아가는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염려 말라. 네게 자손의 번성을 주시겠다고 하자(24) 이삭도 상응하는 행동을 합니다.

 

25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5절 말씀을 영적으로 적용해 보겠습니다. 제단은 신앙이요, 장막은 가정이요, 우물은 직업입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가 잘 되고 육체도 건강해집니다.

이 순서를 무시하여 마음대로 바꾸지 마십시오. 세상에 고난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고난을 나를 연단하고 훈련하는 기회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과잉으로 보호하시지 않습니다. 더욱더 강하고 보다 성숙한 사람을 만들고자 때로는 시련과 연단의 골짜기로 밀어붙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공과 거부는 고난을 견디며 극복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으로 살아도 시험이 있고 고난도 있습니다.

 

복을 받은 사람도 흉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며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도 흉년을 만났고, 이삭도 흉년을 만났습니다.

신앙인은 흉년을 만나도 복이 됩니다. 무너지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복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삭이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큰 복이 무엇입니까? 부자가 되는 복입니까? 아닙니다. 부자가 좋기는 하지만 최고의 복은 아닙니다.

부자라고 다 복 받은 것은 아닙니다. 부자이지만 하나님께 교만하고 자기가 재물의 주인이 되어 산다면 그 사람은 눅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들에 잠깐 피었다 지는 풀과 같은 신세입니다.

하나님 없는 복은 불행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할 수만 있으면 많은 물질을 얻어서 그 물질의 노예가 아닌 관리자로 살기를 바랍니다. 여기 아비멜렉 왕이 하는 말을 보십시오.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삭을 시기하여 우물을 계속 빼앗지만, 이삭은 양보합니다. 장소를 옮겨 계속 우물을 개발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은 열 곳 스무 곳을 파도 물이 나지 않는데 이삭은 어디서나 파면 물이 막 솟아나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일들을 통해 아비멜렉은 이삭이 비록 타향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막강한 사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 말씀에 앞서 당신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입니다. 라는 고백이 또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6년 정도 지켜보고 한 말입니다. 이때 아비멜렉은 이삭 때의 왕 아비멜렉이 아닙니다. 무려 70년의 시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 21:22 그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잘 유지하고 있으므로 상대 쪽에서 찾아와서 화친하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김삼일 가족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마침내 큰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주위의 사람이 먼저 찾아와서 당신과 잘 지내기를 원합니다. 나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 다니고 싶습니다. 라는 고백을 들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