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네소타 로테스터 시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메이요(Mayo Clinic) 병원이 있습니다. 이 병원의 주인은 메이요 박사인데 이 분의 일화 가운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어느 날, 한 동네를 찾아 언덕을 올라가는데 자동차가 멈춰 섰습니다.
얼마나 당황되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걸어서 동네에 도착하여 한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집은 매우 허름한데 그 집의 여주인은 매우 상냥합니다. 안녕하세요, 제 차가 고장이 나서 그런데 전화한 통 쓸 수 있을까요? 그러세요. 들어오세요. 전화는 저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더위를 먹었는지 매우 힘들어 보이시네요. 제가 찬 우유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자동차 때문에 당황하고, 걸어오면서 지쳐있는데 시원한 우유 한 잔을 주겠다고 하니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한 잔을 기분 좋게 먹고 나니 여주인은 또 한 잔을 주겠다고 하여 염치불구하고 우유 두 잔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하여 자동차 수리공이 와서 자동차를 고쳐 길을 떠났습니다.
우유 두 잔은 가격으로는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위로와 격려는 인생의 어떤 경험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메이요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 여인에 대해 자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몇 해 지나 큰 병에 걸린 어떤 사람이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곧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을 사람인데 알고 보니 자신에게 우유 두 잔을 대접했던 그 여자 이었습니다. 어떻게 하였겠습니까? 메이요 박사는 정성껏 수술을 마치고 나서 청구서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 청구서에는 수술비, 약값, 입원비, 검사비 등을 포함하여 1,500달러가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메이요 박사는 그 청구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상 위의 수술비는 몇 년 전 여름, 자동차가 고장 난 사람을 위해 제공한 전화 한 통과 우유 두 잔의 값으로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웃을 섬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복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는 기회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가이오가 주님 안에서 사랑의 섬김을 한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섬길 수 있을 때 믿음과 사랑으로 섬김을 잘 감당한 결과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그 사랑의 흔적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사랑의 섬김은 선교입니다. 로 정했습니다.
1. 진리 안에서 섬기는 일에도 때로는 고난이 따릅니다. |
0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10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 도다.
구약시대 때, 여호사밧(유다 4대)이 왕으로 취임한지 3년쯤에 백성들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기 위하여 특별한 일을 하나 추진하였습니다. 5명의 관리와 9명의 레위인, 2명의 제사장을 전국 각지로 순회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대적으로 가르치게 한 일입니다(대하 17:07). 아주 유익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복음시대에는 예루살렘 공회가 이제 막 교회가 세워진 곳에 순회 전도자들을 파송하여 교회와 성도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전도자들이 여러 지방이나 낯선 곳을 다니다보니 경제면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왜냐하면 자비량 선교이기 때문입니다(07). 가는 곳마다 이 전도자들을 잘 이해하여 따뜻하게 맞아들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숙박문제로 눈치 밥을(?) 먹으면서 여간 고통을 당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03절을 보면 가이오가 섬기고 있는 버가모 교회 지역에 나그네 즉 순회 전도자가 복음을 들고 찾아 왔습니다. 이들을 영접하는 일은 교회의 몫, 성도의 몫입니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이 전도자들로 인해 교회들이 힘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제대로 신학 체계가 세워지지 않은 당시에서는 이단 논쟁이 벌어질 때 해결사 역할도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이오는 자기 영역에 들어 온 전도자를 사랑의 관례를 따라 잘 모셨습니다.
가이오의 사랑의 대접을 잘 받고 떠난 이 전도자들이 사도 요한에게 가서 가이오가 베푼 사랑의 행위를 자세하게 보고하였습니다. 이에 요한이 이런 보고를 듣고 가이오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03) 요한은 최상급인 행한다. 를 사용하여 순회 전도자를 향한 가이오의 대접을 최고의 섬김이라고 칭찬을 합니다. 가이오의 대접의 행위를 요한이 진리 안에서 행한 일이라고 평가하였다면 이는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진리 안에 행하는 삶이란, 주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를 철저히 하고,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과 관련을 지웁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보다는 가이오가 복음의 진리를 반대하는 거짓 교사들의 온갖 위협에도 위축되지 않고 믿음으로 섬긴 일을 진리 안에서 라고 표현 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또 05절에서 가이오의 전도자를 위한 섬김을 신실한 일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가이오의 섬김의 행위를 정리하면 진리 안에서 신실한 일을 한 가이오(03~05)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이오의 섬김 뒤에는 가슴 아픈 일도 많았습니다. 교회의 일부 중직자들이 시기와, 질투와 견제를 하였고, 노골적인 방해도 하였습니다. 이런 협박과 방해의 일로 인해 가이오가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09,10).
10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 도다.
사람은 누구든 선한 일을 하다 걸림돌 같은 일을 만나면 중단하기 쉽습니다. 자칫 믿음도 무너지기 쉽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하는 원리를 따라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믿음의 일꾼은 오직 믿음만을 앞세우고 나아가야 합니다.
갈 06:0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2. 사랑의 섬김은 결국 인정을 받습니다. |
0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기이오가 섬기는 교회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은 전도자들이 각 자 돌아가서 선교 보고를 한 내용입니다. 당시의 전도자들은 복음을 전하면서도 불신자로부터 대접은 일절 사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혹 얻어먹기 위해 다닌다는 말을 들을까 염려하여서 입니다.
오직 복음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니는 전도자들, 믿는 성도들 가운데 누군가는 이들을 대접해야 했기 때문에 가이오가 앞장을 서게 된 것입니다. 이런 선교의 보고는 당시 에베소교회를 섬기고 있는 요한에게도 들려졌고, 요한도 가이오에 관한 소식을 듣고 상당히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만일 06절이 없다면 어쩌면 가이오의 사랑의 대접, 믿음의 행위는 시기와 질투, 불평과 불만을 표출하는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가려졌을지 모릅니다. 요한삼서 전체의 내용을 볼 때 가이오의 사랑의 수고가 냉소와 왜곡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02장을 보면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온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은 일이 나옵니다. 그 칭찬은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하게 하신 결과가 되었습니다.
성도가 칭찬을 받는 것은 교회가 부흥되는 밑거름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로 어떤 면에서 칭찬을 받았습니까?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고, 이웃을 사랑으로 조건 없이 섬기는 가운데 칭찬을 받았습니다.
03,058절을 보면 요한이 가이오에게 너의 행한 일이 믿음으로 행한 일, 진리 안에서 행한 신실한 일이라고 칭찬을 해 줍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말이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말이요, 예수님을 위하여 그 어떤 것도 드리며 산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적인 칭찬꺼리들을 놓고 배설물과 같이 여겼으며(빌 03:08), 베드로는 이런 것들을 썩는 것이요, 쇠하는 것이라고 던져 버렸습니다(벧전 01:04). 영혼이 잘 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칭찬과 인정받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며,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인정과 칭찬이 따릅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서 그의 지혜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남방의 스바(남예멘 지역) 여왕이 지혜를 배우고자 찾아 왔습니다(대하 09:01~12). 그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하고자 아름다운 꽃 화분 두개를 들고 와서는 어떤 것이 생화인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생화이고, 또 하나는 사람 손으로 만든 조화입니다.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두개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신하에게 벌과 나비를 몇 마리 잡아오라고 명하자 신하가 나가서 각각 몇 마리 잡아 왔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모든 문을 닫게 하고는, 벌과 나비를 날리면서 생명이 있는 꽃에는 꿀이 있어서 벌이 날아들고, 나비는 향기가 있어서 날아 든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꿀과 향기가 있듯이, 믿음의 사람이 주님 안에 있으면 칭찬을 받는 법입니다.
롬 14:18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3. 나도 사랑으로 전도자를 섬깁니까? |
0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요한은 전도자들이 마땅히 교회의 따뜻한 사랑과 환대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밝힙니다. 단순히 전도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다음 목적지까지 어려움 없이 갈수 있을 것이며, 든든한 후원은 복음이 그만큼 원만하게 전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도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일을 하면서도(07), 실질적으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해 쓰러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여간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요한은 전도자들을 섬기는 일은 그 선교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고, 진리의 동역자가 되는 것이라고 밝힙니다. 동시에 가이오에게는 계속 이런 순회 전도자들을 잘 영접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그러면 김삼일 가족들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역에 얼마나 동참을 하며, 전도자들을 위해 후원하는 일에 얼마나 동역자로 참여합니까? 가이오와 같은 믿음의 자세로 참여를 합니까? 그 선교적인 사랑을 무엇으로 증언하겠습니까?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손과 발, 그리고 시간과 물질로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에 감격하여 우리도 삶의 장점과 에너지를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08절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요 바로 나를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따릅니다, 맡깁니다. 라고 말을 하는데 우리의 삶의 행위는 어떻습니까? 참 제자로 살면서, 주님을 따르며, 진리 안에서 동역자로 동참을 합니까?
마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독일의 유명한 정치가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4,1~1898,7,30)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감동적이어서 소개하겠습니다. 내가 오늘 한 일에 대하여 내일 다른 사람들의 여론을 들어보면 태반이 잘못되었다. 그러니 남의 칭찬을 받는다고 하여 기뻐하지 말고 남의 비난을 받았다고 하여 실망하지도 말라. 본래 인간은 이러나저러나 간에 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 후세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사람도 있으나 지극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도 내 마음을 못 알아주는데 어찌 백 년, 천 년 후의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랴?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만이 네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어라. 너무 세상의 칭찬에 관심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도록 힘써라.
가이오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은 사랑의 증거는 무엇보다 복음 전도자들에게 아낌없이 베푼 사랑의 흔적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칭찬이야말로 진정한 칭찬이며, 최상의 칭찬입니다. 빌립의 전도로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나올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음에도 그의 사람됨을 알아보시고 그의 인격과 성품을 칭찬하셨습니다.
요 0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일본 도쿄에서 바다 쪽으로 나가면 쯔꾸바란 도시가 있습니다. 20여 년 전 그곳에서 일본의 첨단 기술을 세계에 알리려는 야심으로 박람회가 열렸습니다. 박람회장 입구에 일본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조그만 전시물이 있었는데, 그곳은 예상 외로 토마토 한 그루에 무려 일만 육백 개가 열리는 현장이었습니다.
박람회가 열리던 날 토마토 한 포기에 열린 엄청난 열매를 본 기자들이 그 토마토를 기른 농민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농업을 할 수 있습니까? 기자들의 질문에 농민이 답하기를, 하나님(가미사마)께서 토마토 씨앗 속에 부여하여 놓은 생명의 힘을 농사꾼이 뒷바라지만 잘 하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의 심령에도 하나님께서 좋은 장점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선교의 에너지를 심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선교를 해야 된다고 말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가이오처럼 선교의 동력을 잘 관리하여야 합니다.
복을 받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가이오처럼 복을 받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돌아보십시오.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기를 소망하십시오. 일상생활에서 좋은 멘토를 만나 성숙한 삶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무엇보다 귀중한 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가이오처럼 나도 섬기고 인정을 받는 믿음의 사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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