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심령이 건강한 성도가 받는 복(요삼 01:01~02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6. 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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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서 조용기 목사님 하면 모두가 그 명성 정도는 아실 것입니다. 이 분이 오늘 본문을 놓고 3중 축복론, 3박자 구원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혼축복, 물질축복, 건강축복 이라는 의미인데 영혼이 잘 된다는 말씀은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우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할 수 있다고 하니 듣기만 해도 은혜가 되었습니다.

오순절 교단, 순복음교회에서 이 본문은 거의 주제 성구처럼 어떤 본문으로 설교하든지, 모든 설교의 결론으로 자주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특히 70,80년대 한국의 경제 성장기와 맞물려,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육체적으로 병들고, 정신적으로 공허한 자들에게 영혼과, 물질과, 건강을 약속하는 삼박자 구원론은 매력적이었습니다.

 

피상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삼박자 구원론, 아주 은혜롭게 들립니다. 그러나 오순절 교회의 삼박자 구원론이 어쩌면 왜곡된 복음을 전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영적축복, 개인의 만사형통, 개인의 육체적 건강이 성도의 최고의 목표인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까? 꼭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사도 요한은 요한삼서를 기록할 때 삼박자 구원의 축복을 펼치기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요한은 어떤 의도로 기록하였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특정 구절만 떼어 내어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전후 문맥을 잘 살피면서 해석하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이 그의 사랑하는 친구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면서 한 인사말입니다. 요한은 이 말씀 속에서 최고의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최고의 복으로 받으면서 오늘 강론 제목을 “심령이 건강한 성도가 받는 복으로 정했습니다. 은혜 받는 시간되기를 원합니다.

 

 

  1. 영혼이 잘 된 자는 모두에게 사랑을 입습니다.

 

0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01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자기를 장로하고 칭하면서 주님 안에서 믿음의 가족인 가이오에게 편지를 통하여 문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첫 인사 말이 아주 따뜻하고 좋습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본서의 주인공 가이오가 어떤 인물이기에 사도 요한이 이런 따뜻한 사랑을 표현합니까? 성경을 보면 가이오라는 사람이 몇 곳에 나옵니다. 기쁨, 환희, 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이 가이오는 당시에는 아주 흔한 이름으로서 이들을 압축해 보면 세 사람으로 됩니다.

 

첫째는 바울이 세례를 주고 후에 데살로니가의 첫 번째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고린도의 가이오(16:23, 고전 01:14), 둘째는 바울의 동역자의 한 사람인 마게도냐의 가이오(19:29), 셋째는 바울의 마지막 선교 여행 때 동행하였던 더베의 가이오(20:04)입니다.

여기서 세 번째, 더베의 가이오가 요한에게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며, 요한에 의하여 버가모의 첫 번째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요한은 가이오와의 관계에서 개인적인 사랑의 돈독함을 강조하는 참으로 사랑하는 자, 이 호칭을 넣어서 오늘 우리 믿음의 가족들끼리 sns 문자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라는 말은 진리 안에서 라는 뜻으로, 인간적인 기복적 감정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진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01절을 보면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 02절에서도 사랑하는 자여, 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입니까?

아무나, 즉 그저 그런 사람끼리는 이런 문자나 편지를 주고받지 않습니다. 격이 안 맞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가이오는 이미 건강한 성도요, 믿음의 부자입니다. 그러나 제가 건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육신적 의미의 건강이 아니라 심령이 건강하다는 의미입니다

 

요한과 가이오의 사랑의 관계가 무엇입니까? 사랑은 누구나 하는 것이고, 사랑의 표현은 있겠지만 일단 사랑은 많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더 주고 싶어집니다. 마지막엔 모든 것을 다 주고 맙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05:0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렇게 사랑으로 무장되어 사랑의 길을 가는 성도가 건강한 성도요, 이런 건강한 성도의 영혼은 복 된 영혼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가이오를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너의 영적 생명이 건강하다고 믿음의 칭찬을 합니다.

성도의 영혼은 하나님과 통하는 자아입니다. 불신자의 삶을 살 때는 그 영혼이 귀신과 통하고 우상과 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그 영혼이 죄 씻음을 받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명분을 회복하여 하나님과 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헌금을 드리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음으로 인하여 영적 부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염려와 걱정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삶이 방황하면 영혼이 빈약해지며, 영혼이 빈사상태에 있으면 교회생활도 사회생활도 불안하여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우리 여러분, 가이오처럼 영혼이 잘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심령이 건강한 성도는 범사가 잘 될 수 있습니다.

 

0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가이오는 이미 영혼이 잘 되어 있었고, 그 잘 되어 있는 영혼 위에 요한은 범사가 잘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범사(凡事)란 우리가 사는 동안에 접촉하는 모든 인간관계, 사회적 관계, 문화적 관계 등에 대한 전반적인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런 것에서 잘 될 것이다. 가 아니라 잘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왕이면 예수님 스타일처럼 잘 될 지어다. 라고 선언을 하였다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우리나라의 목회자들 남의 흉내 워낙 잘 내지 않습니까? 가는 곳마다 잘 될 지어다. 지어다. 지어다. 이런 식으로 선언을 한다면 상당히 혼란스럽고 시끄러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대는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면서 직접으로 사탄을 명하고, 병을 명하고, 자연을 명하는 때가 아닙니다. 사도 시대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응답을 받아 일하는 시대입니다. 명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요한이 가이오에게 범사가 잘 되기를 기도하였던 거처럼 우리도 자신을 위하여, 이웃을 향하여 범사가 잘 되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넉넉한 마음 가지십시오. 그런데 우리의 기도 제목들을 보면 좀 균형이 좀 없는 것 같지 않습니까? 범사가 잘 된다는 것은 인간관계가 잘 풀리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 막혀 있는 곳이 많습니다.

 

막혀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일일이 다 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푸는 일이 어디 쉽습니까? 어렵다보니 자기중심의 편의적인 면만 풀고 맙니다. 범사가 잘 되는 것은 물질적 복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날마다 승리하며 복되게 살아가는 삶 그 자체를 말합니다. 부정적인 자세를 긍정적인 자세로 바꾸어 살아가는 삶 말입니다. 범사에 하는 일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맡은 일마다, 다 행복한 관계를 맺는 이 복을 범사에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범사의 삶을 믿음으로 디자인 하는 그 길이 때로는 험난한 가시밭길 같을 때가 있습니다. 또 신령한 가치관은 상실한 체 세상적 가치관들이 승승장구한다고 범사에 복을 받았다 말 할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어떻게 지도하고, 어떻게 안내하는지 거기에 기준을 맞추고 삶의 발걸음을 하나하나 옮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적인 가치관만 기준으로 삼고 살다보면 오히려 그 겉모습의 번영이 멸망의 길이 될 수도 있고, 범사에 실패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축복예배를 부탁합니다. 어떤 경우는 목사님과 사모님만 오시면 됩니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여관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불편하니까 정말 목사 부부만 가면 되는가 보다 하고 그렇게 갑니다.

그런데 예배 장소에 가면 더 오실 분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은근히 실망을 하더라고요? 실망을 할 바엔 전체 광고를 내는 게 났지 않겠습니까? 거기다 가끔은 축복예배의 메뉴가 나옵니다. 목사님, 이번에는 사업이 좀 잘되어야 하니 설교도, 기도도 특별히 빡시게 해달라는 주문서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축복예배를 도깨비방망이 두드려 복이 나오는 것처럼 이해하는 문제입니다. 그런 상상력과 생각은 진정한 복을 가로 막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범사가 잘 되도록 복을 빌 되 그 범사의 복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본인의 사모하는 믿음의 중심에 달려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요한도 가이오에게 범사에 잘 될지어다 가 아니라 잘 되기를 기도하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성도의 일이 범사에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 될 수도 있으니 알아서 믿음으로 선택하십시오.

 

0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3. 심령이 건강한 성도는 강건함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0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의 영혼은 하나님과 통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가이오는 이미 영혼이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건강이 있다고 육신도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부자이나 건강이 취약점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20163UN에서 발표한 세계 행복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이 615일 발표되었습니다. 기대수명은 남자는 78.5, 여자는 85.1세입니다.

건강수명도 73.14세로 세계 평균(62.31)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의 1인당 GDP 평균은 31824달러이니 대단한 수준입니다. 이만하면 무지 잘 사는 수준인데도 삶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건강의 문제도 고민과 고통을 많이 겪어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관심사는 건강입니다.

 

과거에는 장수가 최고의 복이었는데 이제는 건강하면서 오래 사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기대수명보다 건강수명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당연히 건강에 도움 되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건강을 위해서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하고, 어떤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하는지에 관심을 많이 둡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육신의 건강을 주셔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건강하여야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 활동을 하고, 인생을 믿음으로 디자인 할 수 있습니다.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남자답게 강건하라고(고전 16:13) 주문을 하였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받은 우리 믿음의 가족들도 가이오를 향한 요한의 중보기도를 나를 위한 중보기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의 힘으로 걸어와서 예배를 드립니까? 대단한 감사거리입니다. 건강하기 때문에 직장에 소속하고 있습니까? 대단한 복을 받은 줄로 알고 감사하십시오. 오늘 예배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실 것인데 여러분의 손으로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음에 대하여 감사하십시오. 이런 일들은 건강이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가이오를 향해 강건함을 빌어주는 것처럼 우리도 이웃에게 강건함의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은혜와 사랑의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으면 강건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므로 강건해질 것이고, 목사가 기도로 뒷받침해서 강건해 질 것입니다.

 

한 번은 세브란스병원에서 교인들과 불신자들을 각각 100명씩 건강을 진단하여 비교 관찰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교인은 100명 중에 40%가 병자였고, 불신자는 100명 중 80%가 병자였습니다. 분석결과 네 가지의 이유가 나왔습니다.

첫째, 교인들은 하나님의 복으로 건강하다. 둘째, 교인들은 교회에서 박수치고 찬송할 때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넘치고 스트레스가 풀릴 뿐만 아니라, 온 전신의 근육과 신경이 운동하게 되므로 건강하다. 셋째, 교인들은 새벽기도를 오며 가며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때문에 폐가 아주 건강하다. 넷째, 교인들은 교회에 와서 기도하여 마음속에 쌓였던 근심과 걱정, 속상함과 불안 등을 해소하므로 울화병이 안생기고, 간에도 무리가 없어 건강하다. 이었습니다.

 

육신의 건강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마음의 건강입니다. 아무리 육신이 건강해도 마음이 병들고, 비뚤어졌고, 악하다면 그 몸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건강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마음이 병 들면 육신의 건강 때문에 더 저주받을 짓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건강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항상 좋은 생각을 합니다. 되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안 좋은 생각은 일단 내려놓습니다. 여러분, 좋은 생각이 강건함을 만들어 가는 줄 믿고 좋은 생각에 사로잡히십시오.

 

0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어느 대학교에서 학생 세 명이 한 가지 실험을 하였습니다. 말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하여 세 학생이 한 학생을 지목한 실험입니다. 그리고는 첫 번째 학생이 그 친구가 정문을 열고 들어올 때 너 오늘 많이 피곤해 보인다. 내가 뭐 좀 도와줄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 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친구가 복도를 지날 때 두 번째 친구가 나타나서 너 무슨 걱정거리 있니? 얼굴이 많이 창백해 보여. 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강의실에 들어가서 수강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어서 마지막 세 번째 친구가 와서 너 어디 아픈가 보구나.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피곤하면 방에 가서 쉬어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조금 후에 그 친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누었습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보인다고 하니까 정말 자기가 몸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일단 말이 입에서 나오면 긍정이든 부정이든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말을 하고, 복을 빌어주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 시간 믿음과 정성으로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영혼이 잘 된 성도이다. 나는 범사에 잘 될 줄 믿는다. 나는 강건함의 복을 받을 줄 믿는다. 고백한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성령님의 9가지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고 먹음직스럽게 익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 안에서 부패가 아니라 발효가 되어 좋은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