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선교의 열정을 품은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행 18:01~0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4. 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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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시절의 한 문서에 이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우리 중에 가장 으뜸 되는 부부의 이상형이었다.

무척이나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소개하는 기록입니다. 이 부부의 이상향이 세상 물욕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헌신하는 이상향입니다. 성경에는 이 부부의 이름이 여섯 번 나옵니다. 그런데 부부 이름이 항상 같이 등장합니다.

 

18장에 세 번 나오고(2, 18, 25), 16:03, 고전 16:19, 딤후 04:19에 각 한 번씩 이렇게 여섯 번 나옵니다. 그런데 네 번은 아내의 이름 브리스길라가 먼저 나오고, 두 번은 남편 이름 아굴라가 먼저 나옵니다또 여섯 번 중 브리스길라로 세 번 브리스가로 세 번 나옵니다.

 

혼선될 것 같아 이름을 정리하겠습니다. 본 이름은 브리스가이고 브리스길라는 애칭입니다전형적인 로마의 귀족 유형의 이름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세 번을 브리스가라는 이름보다 그의 애칭 브리스길라로 기록합니다이방인을 상대로 기록한 사도행전의 저자다운 인권 주의자 기록입니다.

 

부인의 이름이 네 번이나 먼저 기록된 것은 부인이 더 헌신하고, 더 유능하고, 더 충성하고 더 봉사하는 것을 간접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성인이며 영적 깊이가 있는 모습으로 보아도 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남존여비 사상이 그렇게 강했던 시절에 부인의 활동을 잘 이해하는 남편도 매우 돋보입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아내의 이름 브리스길라를 앞세워 「선교의 열정을 품은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로 제목을 정했습니다.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누구입니까?

 

0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먼저 아굴라의 출생지 본도(pontus)가 어떤 곳인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본도는 당시 소아시아(터기)의 북부 지방에 있는 촌락 지역입니다.

아굴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일부 전하는 바로는 아굴라는 유대인 노예였다가 후에 로마에서 자유인이 되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브리스가와 결혼하였다고 합니다.

시골 사람이 당시 세계의 수도 격인 로마에 어떻게 왔으며, 명문가 출신인 브리스길라와도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은 미스터리 한 일입니다.

 

어떤 경로든 아굴라가 로마에서 브리스길라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이들은 천막 제조업으로 로마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고, 후일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 도운 것을 보면 재물도 좀 모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로마제국의 제4대 황제 글라우디오가 재위 9(49년경)에 모든 유대인은 로마를 떠나라는 강제 추방령을 내립니다.

 

이런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진 것은, 당시의 유대인들이 로마로 몰려와서 장사하여 상당 부분의 상권을 장악하였기 때문이고, 유대인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계속 전도해서 많은 로마인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강제 추방령 때문에 브리스길라 부부는 고린도까지 쫓겨 왔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아침에 사업 터를 잃고 떠돌이 인생이 되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을 하자면 권리금 한 푼도 못 받고, 공권력에 의해 물품을 그저 빼앗기다시피 하여 파산 선고를 당한 처지입니다

이때 글라우디오 황제는 유대인들을 추방하면서 배우자가 로마 시민권을 가졌을 경우 당사자는 로마에서 살 수 있는 아량을 베풀었습니다그러나 브리스길라는 자기만 살겠다고 남편인 아굴라를 버리고 로마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미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생활을 한 이상 앞날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부부가 함께 가는 믿음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믿음의 길을 가는 자의 앞날에 은혜를 베풀어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 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끓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남편과 죽을 각오를 하고 정든 로마를 떠났습니다. 믿음의 길을 위하여 세상에 속한 인간적인 정과 물질까지를 완전히 내려놓은 것입니다.

이제 로마에서의 경제권은 다 날리고 고린도라 하는 새로운 곳에 이사를 왔습니다이들 부부가 살기 위해 도착한 고린도는 주 후 50년경 로마가 속 주()로 삼은 아가야(그리스 남부)의 수도입니다. 인구가 무려 65만 명(자유민 25, 노예 40)이나 됩니다.

 

낯설고 물 설인 곳이지만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천막 제조업의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천막 제조업이 그렇게 수월한 일이 아닙니다.

거칠고 힘든 노동에다 밤늦게까지 바느질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업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나름 믿음의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 바울과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0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0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과정에서 고린도로 옮겨 왔을 때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 02:03). 바울답지 않게 왜 이런 약한 소리를 하는 겁니까?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 번째는 고린도에 오기 전 아덴에서 사역이 큰 성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거의 혼자 영적 싸움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탈진하였기 때문입니다.

 

영육 간에 지쳐 있는 바울, 역시 영적으로 다운 상태에 있는 브리스길라 부부가 고린도라는 도시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면부지의 사람이 만납니까?

천막 제조업이라는 동일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사업상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업상 만날지라도 알고 보면 그들의 만남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잘 만나야 합니다. 잘 만남은 복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울과 브리스길라 부부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적인 만남입니다.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획하신 프로그램 안에서 만났으며, 이 만남으로 저들의 삶이 새롭게 바뀌어서 고린도의 복음화를 이루는 기초를 놓게 됩니다.

실제 고린도에서의 천막 제조업은 상당한 사업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고린도에 주둔하는 군인들 숙소 용으로 납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막 제조업은 가죽 제품을 재료로 하여 여러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바울과 브리스길라 부부의 확실한 생계 수단과 자비량 선교의 근거였습니다(20:34).

 

고린도에 온 브리스길라 부부, 아덴에서의 여지없는 실패로 의기소침하여 고린도에 온 바울, 이들의 심령은 말할 수 없는 정서 불안정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의 선교를 위해 브리스길라 부부를 먼저 로마에서 고린도로 오게 하셨습니다.

곧 뒤이어 고린도에 오게 된 바울을 만나게 하고 고린도 선교, 세계 선교의 복음화에 가장 가치 있는 선교팀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브리스길라 부부가 고린도로 오기를 잘했습니다. 물론 로마에서의 모든 것을 잃고 쫓겨나는 그 순간에는 마음이 심히 아팠겠지만 결국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역사를 분명히 나타내십니다.

 

롬 0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람은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 안에서의 만남은 더욱 중요합니다. 바울과 브리스길라 부부가 만남으로 인해 고린도의 복음화가 잘 이루어졌습니다.

11절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일 년 육 개월이나 체류하면서 복음 전파와 함께 제자 양육하였습니다. 이때 브리스길라 부부도 체계적으로 말씀 공부를 하였을 것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바울과 브리스길라 부부의 만남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브리스길라 부부가 먼저 고린도에 오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로 된 일인 줄 믿습니까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앞으로 우리 교회에 오실 분들을 위해 준비된 믿음의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십시오.

나에게는 분명한 사명이 있다고 여기십시오. 나를 먼저 우리 교회에 심으신 것은 김해삼일교회에 오실 분을 섬기기 위해 사명자로 심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바울은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동역자로 이해하였습니다.

 

롬 16:0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브리스길라 부부를 놓고 롬 16장에서 아주 의미 있는 메시지 하나를 남깁니다.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

바울은 브리스길라 부부를 동역자로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권에 사업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동업자라고 말합니다.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을 동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동역자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목회하는 사람끼리 부르는 호칭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를 나의 동역자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목회자였기에 당연히 동역자라는 말이 통합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 부부는 디모데처럼 목회자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이들을 나의 동역자라고 불렀습니다. 브리스길라 부부가 주님의 일을 위하여 바울과 손을 맞잡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울과 이들의 관계가 어느 정도이기에 이런 표현을 하는 겁니까?

 

롬 16:0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바울의 복음 사역에 브리스길라, 아굴라의 헌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표현하는 문구입니다. 여기서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어놓았다는 말씀을 주목해 봅시다.

문자대로 해석하면 사형 집행자의 도끼 밑에 자기 목을 내어놓았다.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문자의 해석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다는 말은 바울을 향한 무지막지한 박해의 손길에서 브리스길라가 부부가 바울을 구하고자 극단의 위험도 겪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극단의 사건이 고린도에서 일어났는지 아니면 에베소나 그 밖의 지역에서 일어났는지 또 언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분명한 것은 브리스길라 부부가 바울이 위기에 처하였을 때 일사각오 정신으로 보호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 부부가 자기를 위해 목숨까지도 걸어준 일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다가 로마서를 통하여 여러 사람에게 소개합니다.

 

목회자에게 브리스길라 부부와 같이 동역해 주는 성도가 있다면 그 목회자는 행복한 목회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과거의 가락교회에서 목회할 때 새벽기도 시간에 최 모 집사가 제게 전달해 준 메모를 떠 올려 보았습니다. 그때 말씀이 딤후 04:09~11절입니다.

 

딤후04:0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그때 메모지 내용이 이런 글입니다. 저도 누가처럼 목사님 곁에 있기를제가 그 글을 받고 무척 행복하였습니다. 그 후의 그분 일은 생략하겠습니다.

저의 목회에 브리스길라 부부처럼 마음을 같이 해 주는 분이 있다면 저는 행복한 목회자일 것입니다. 그래서 24년 전에 받았던 그런 메모의 내용이 오늘은 은근히 기다려집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안개꽃 아시지요. 주로 꽃다발 만들 때 배경으로 사용하는 꽃, 말입니다. 아름다운 꽃은 안개꽃이 뒤에서 받쳐줌으로 인해 더욱 돋보입니다. 이처럼 복 된 인생은 뒤에서 누군가를 세워주고 격려해주는 안개꽃과 같은 인생입니다.

18:19을 보면 바울이 브리스길라 부부를 에베소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고전 16:19에는 이들 부부가 에베소에서 머무는 동안 자기들의 집을 교회로 개방하였습니다.

 

믿음의 형제들 편리를 제공하였고 또 예배를 돕는 일도 하였습니다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바울과 선교팀을 이루어 일했습니다.

에베소에서 머물다가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은 후에 로마의 복음화를 위해서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복음 운동을 잘했던 것처럼 로마에서도 복음 사역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길에서 이런 경우를 만날 때는 이렇게 하십시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십시오.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십시오.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십시오. 줄까 말까 할 때는 주십시오.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십시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처럼 일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볼까 말까 합니까? 충성하십시오. 갈등과 두 마음에 갇히면 하나님을 만나기도 힘듭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길 얼마나 될는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시간이 있고, 힘이 있고, 믿음이 있고, 젊음이 있다면 즉시 충성하여야 할 때입니다. 충성의 열매를 맺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