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복음의 열정이 넘치는 아볼로(행 18:24~2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4. 16. 17:19
728x90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이 광고 문구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1984년 부산에서 설립한 천호식품 회사의 카피입니다.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시켰고 좋은 광고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사 제품이 좋다는 것을 광고주는 잘 알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사용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일이라는 사실을 어필하는 데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독교의 복음, 말씀의 능력이 얼마나 좋은지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좋은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십시오.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가 박해가 심한 고린도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회심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아볼로가 어떻게 해서 고린도교회에서 말씀의 능력을 나타내었고 또 큰 영향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복음의 열정이 넘쳐나는 아볼로로 정했습니다.

 

 

1. 아볼로의 고향 알렉산드리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왕(BC 356~323)이 이집트를 점령하고 자기의 공적과 헬라 문화의 우수성을 기념하기 위해 주전 332년경 지중해 연안 북부에 한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알렉산드리아라 명명하였습니다.

해상과 육로가 함께 열려있는 조건을 갖춘 도시입니다. 개방의 분위기로 인해 지중해 지역에서 로마 다음가는 큰 도시로 성장하였습니다.

학문으로는 아테네에 견줄 만한 도시였고 또한 유명한 이집트의 대학과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고문서들을 소장한 도서관과 박물관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교육과 문화 활동을 위한 시설들이 체계적으로 갖추어지면서 로마제국 내에서 학문의 명성을 떨치는 도시가 되어 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유학을 왔습니다이 알렉산드리아에는 일찍 유대인들이 이주함으로 도시 인구의 약 5분의 2정도 되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교회사에서 볼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전 1세기경 70인 역이 번역된 일입니다. 신학을 하신 분들은 다 아는 일입니다.

히브리어와 부분 아람어로 되어있는 구약성경을 당시의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국제 공용어 헬라어로 번역한 일입니다.

 

알렉산더 왕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이 70인 역 명칭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6명씩 뽑은 72명의 번역자가 각각 독방에 들어가서 구약성경 전체를 번역한 데서 유래합니다. 놀라운 일은 그들의 번역이 모두 같았다고 전해집니다.

72명이 번역했지만, 그냥 줄여서 70인 역 혹 라틴어로 LXX 이렇게 표기하고 헬라어로 셉투아진트(Septuagint)라고 부릅니다.

70인 역이 만들어진 것은 기독교의 차원에서 보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복음 전파에 큰 공헌을 한 정말 역사의 의의가 있는 일입니다.

 

그중의 하나가 이 70인 역으로 인해 유대교의 회당 예배가 기독교식으로 응용 발전되면서 복음의 확장이 크게 이루어졌습니다.

아볼로를 놓고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고 표현합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고 알렉산드리아에서 학문을 익혔으니 이렇게 표현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볼로의 행적을 한번 추적해 보십시오.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 문화와 철학, 천문학, 기하학, 수사학 등을 두루 익혔을 것입니다.

헬라 문화와 히브리문화를 익힌 배경에다 언변까지 뛰어났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데 좋은 자질을 갖춘 유능한 성경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시대의 정치, 문화, 경제의 배경들 아래서 배우고 익힌 아볼로가 복음의 사명을 띠고 사역자로 주 후 52년 여름쯤 에베소에 왔습니다.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의 중심 도시로서 인구가 약 30만 명 이상이 되었고 유동 인구도 많아서 교역과 물류가 풍성하였습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 온 때는 바울의 제3차 선교 여행 시기로서 많은 전도자에 의해 복음이 로마제국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의 열매도 상당한 결실을 하는 때였습니다.

 

 

2. 말씀 앞에 낮아진 아볼로의 모습입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장사와 종교 교육을 겸하면서 각국으로 돌아다니는 일종의 이동상인 같은 유대인 나그네를 소개합니다.

물론 이들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 상당한 지식과 세상 지혜를 겸비하고 왕족이나 귀족들을 찾아 상대하였던 독특한 상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나타난 아볼로의 사역 현장을 보고 학자들은 이동 상인이라고 해석합니다.

이곳저곳 유대인 회당을 다니면서 성경을 강론하며 예수님을 전하는 아볼로의 행적이 분명히 당시의 이동 상인의 모습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볼로가 성경에 능하며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나름대로 잘 가르치고는 있지만, 그 수준이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은 불완전한 신학입니다.

26절을 보면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나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로 이사를 온 부부입니다.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아주 신실한 믿음의 부부입니다.

 

안타깝게도 고린도에서도 복음의 박해를 받아 에베소로 옮겨 왔습니다. 이때 아볼로도 에베소로 와서 복음을 전하다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보니 회당에서 한 젊은이가 말씀을 전하는데 구약성경에 기초하여 비교적 정확하게 그리고 열성을 다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의 메시지는 예수님의 존재와 세례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까지만 알 뿐 그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성령님의 강림으로 시작된 교회와 사도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아볼로가 아직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볼 때 아볼로는 자기들과 같은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복음에 대해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젊은 일꾼 아볼로를 집으로 초대하여 교제하면서 자기들이 그동안 보고, 듣고, 배운 복음의 진리를 자세히 가르쳤습니다.

 

25, 26절을 보면서 우리는 아볼로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으로서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여러 분야에 학문을 익혔습니다. 어떤 곳에서도 탁월하게 웅변하는 복음의 말쟁이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처음 보는 브리스길라 아굴라라는 중년의 부부에게 복음의 진리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말씀 앞에 낮아진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겸손은 상대방이 나보다 약하고 부족하고 어리석게 보여도 또 나와 전혀 다른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가졌을지라도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말합니다.

당대의 학자라 할 수 있고 구약에 정통한 엘리트가 천막 제조업자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에게 복음의 도를 배운 것은 이것이 겸손이다. 라고 본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3. 더욱 담대한, 전도자 아볼로의 모습입니다.

 

28 이는 성경으로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27절을 보면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는 과정이 나옵니다. 베자 사본(Codex Bezae)에는 고린도교회 성도들 몇 명이 에베소에 와 있다가 아볼로의 사역을 보고 자기들과 함께 고린도교회에 가서 목회해 주기를 요청하였다고 나옵니다.

또한, 아볼로의 고린도 사역을 위해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추천장을 써 준 것을 보아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이에 아볼로는 에게해를 건너 아가야의 수도 고린도에 가게 되었고,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의 추천서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아볼로를 잘 영접하였습니다.

 

여기서 당시 아가야의 수도 고린도 지역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린도는 기독교에 대하여 유대인의 핍박이 극심한 지역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다 박해당할 때 유대인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18:06).

 

행 18:0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바울은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인들 때문에 결국은 고린도를 떠났습니다. 바로 이런 지역에 아볼로가 건너가서 그것도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메시아가 예수님이라고 증언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아볼로는 두려움 없이 유대인의 회당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으며, 살기등등한 유대인 공중 앞에서 끈기 있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대단한 복음의 열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28 이는 성경으로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뛰어난 설교자요 변증가 아볼로, 죽음조차 두려워 않는 불굴의 전도자 아볼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많은 유익을 끼쳤습니다.

이어지는 행 19:01 말씀을 보면 아볼로가 고린도에 머물고 있다는 것 외에 더는 그에 대한 행적은 소개되지 않습니다.

이후 아볼로에 대한 기록은 고린도전서에 나옵니다. 그 내용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서로 다투고 편을 갈라 나누어진 파당의 한 부분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고린도교회는 네 파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파, 게바파, 바울파, 그리고 아볼로파입니다. 파를 정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아볼로가 고린도교회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는 뜻입니다.

아볼로는 자기의 재능을 주님께서 쓰실 때 아낌없이 드렸고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도는 아니지만,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고 변증가로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아볼로는 자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좀 인기가 있다고 하여 바울을 업신여기거나 불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역자와 동역하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서신에서 아볼로에 대해 평가할 때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고전 03:06) 하였고 또 아볼로를 형제로 평가하였습니다(고전 16:12).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신약성경 히브리서 저자가 정확히 누구인지 모릅니다. 짐작할 때 사도 바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537년 루터가 처음으로 히브리서 저자는 아볼로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후 여러 학자가 아볼로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내었습니다그 이유는, 히브리서 내용이 구약에 능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복음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입니다또 뛰어난 헬라어 문장력과 수사학적 능력이 없이는 기록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아볼로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만일 히브리서를 아볼로가 기록하였다면 이는 외형적으로는 좀 무시해도 될 만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에게 말씀을 배운 결과의 산물입니다우리도 복음의 불덩이가 된 아볼로처럼, 끈기 있는 전도자의 삶,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에 이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