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부활주일] 부활의 증인 막달라 마리아(눅 08:01~03; 요 20:11~1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3. 2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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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생겨난 남아선호, 남존여비 사상이 현대에게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여자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대해야 함을 법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헌법 제11.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32.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이런 법조문을 보면 남아선호 사상이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지금의 환경은 아들을 많이 낳을수록 더 불행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녀평등 대신 새롭게 등장한 용어가 있습니다. 양성평등이라는 단어입니다. 남녀가 동등하다는 말인데 이런 양성평등의 정신은 다 기독교 정신에서 생겨나왔습니다. 사도 바울도 선교와 복음을 확장하는 가운데서 고비 고비마다 여 성도의 역할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였다고 로마서 16장 서두에서 밝힙니다

 

16:01 내가 겐그레아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02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이나 십자가의 죽음 이후를 보면 요소요소마다 여자들이 결정저적인 역할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방인 여자나 소외 된 여자를 볼 때마다 그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특별히 은혜를 더 베푸셨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과 열 두 제자를 위해서 소리 없이 봉사를 한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남자들 못지않게 쓰임을 받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강론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 부활의 증인 막달라 마리아로 정했습니다.

 

 

  1.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

 

08:0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מרים המגדלית). 성경에는 4명 정도의 마리아가 나옵니다. 이런 이름이 많은 것은 헤롯왕의 왕비 이름 마리암네 때문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여자들은 이름을 지을 때 왕비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마리암네에서 파생한 마리아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성경에 마리아라는 이름이 많으며, 또 특정한 마리아를 구분하기 위해 주로 이름 앞에 지명을 붙여서 호칭을 하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런 의미입니다. 막달라에 살고 있는 마리아, 막달라가 고향이라는 뜻입니다. 이 막달라는 탑 또는 망루(望樓)라는 의미로서 갈릴리 바다의 서쪽 가버나움 남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에 사는 여자들은 특별한 일감이 없다보니 주로 갈릴리 바다에서 잡은 고기를 가져와서 소금에 절이는 일을 하여 조금씩 받는 임금으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남자들은 주로 염색업과 직물업으로 생계 수단을 삼았는데 이런 일들로 인해 다른 지역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부 사람의 왕래가 있으면 주로 생겨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숙박업과 매춘 업입니다. 자연히 퇴폐적인 요소도 생겨납니다. 이런 막달라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마리아, 복음서는 그의 행적에 대하여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다소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렸다 고침을 받은 여자인 만큼 당연히 균형 잡힌 생활, 건강한 삶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숫자의 의미를 특별히 부여합니다. 2는 증인의 수, 3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수, 4는 땅의 수, 7은 완전수, 12는 열 두 지파, 혹은 구원의 수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완전수에 해당하는 일곱 귀신, 7을 적용한 것을 보아 마리아가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혀 있던 여자라고 간접적으로 밝힙니다.

사람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여자, 어쩌면 부모나 친척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혼자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는 방랑자 생활을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인데 누가 거들떠보기나 하겠습니까? 결혼도 하지 못한 천덕꾸러기의 인생일 뿐입니다

 

복음서에는 이 마리아가 12차례 정도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마리아를 특징 지워 주는 하나의 수식어가 바로 일곱 귀신이 나간 자, 즉 일곱 귀신 들렸던 여자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시달리던 여자라는 의미입니다.

일곱 귀신이 들렸다면 군대 귀신이 들렸다는 의미로 봅니다. 군대 귀신에게 사로잡힌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날부터 폐인으로 산 대단히 불행한 여자입니다. 군대귀신이 들려서 폐인의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예를 성경에서 보겠습니다. 거라사의 광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얼마나 피폐한 삶을 살았는지 보겠습니다.

 

05:0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 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0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08:27절을 참조해서 이 거라사의 광인을 보면 오래 동안 옷을 입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출하여 지내고 있습니다. 무덤 사이에 거하고 있습니다. 밤낮을 구별하지 못하고 괴성을 지릅니다.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습니다(05:05).

이런 정도라면 이게 어디 사람의 모습입니까? 인간으로서의 인격을 모두 잃어버린 짐승의 수준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군대 귀신이 들려서 이런 수준의 삶을 사는 여자입니다

 

 

 

 

  2. 예수님을 만난 후의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

 

 

08:02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0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막달라 마리아,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서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했던 여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남으로 마리아를 점령하고 있던 일곱 귀신이 나가는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영육 간의 고통스런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이제 정상적인 삶의 자리로 돌아온 마리아, 즉시 주님을 섬기는 은혜의 자리로 이동을 합니다. 전에는 귀신이 들려서 귀신이 시키는 대로 끌려 다녔지만 이제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리에 섰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은 성령님의 감동대로 봉사를 합니다.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체면상 못 이겨서 하는 봉사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우리의 주변이나 교회 안의 공동체를 보십시오. 은혜를 받고 섬기는 일인지, 사람의 생각을 따라 섬기는 일인지는 충분히 구분을 할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봉사하는 모습은 아주 조용합니다.

서로를 세워주면서 기쁨으로 봉사의 길로 갑니다. 반대로 사람의 생각을 따라 봉사를 하는 사람은 나팔을 사방으로 불어대기 때문에 많은 소리가 납니다. 시끄럽다. 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는 출발은 좋은 데 시험에 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03절을 보십시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하여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 다른 여러 여자들이 자기들의 소유로 주님과 제자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섬김의 자리에 가장 앞장을 선 사람이 마리아입니다. 01절을 보면 섬김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모습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 할 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람으로 세워주면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01~03절까지가 헬라어 원문에서는 한 문장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중심 되는 부분이 두루 다니시며,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입니다.

 

복음을 들고 두루 다니는 일에 예수님과 열 두 제자, 그리고 섬기는 여자 멤버들이 동참을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섬김의 멤버들을 보십시오. 어떤 여자는 귀신들렸지만 고침을 받았고, 어떤 여자는 병 고침을 받았고,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다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어떤 여자는 귀신에 들린 적도 없고, 병을 고침 받은 적도 없고,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아름답다고 하는 수산나는 조금은 격이 있는 여자입니다. 그 외에도 다른 여자들이 있는데 이들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섬기는 일에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흠집을 내거나 마음이 안 맞아서 같이 일을 못하겠다는 그런 말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서로의 약한 부분을 덮어주며 섬기고만 있습니다

 

11:12 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 하느니라. 13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사람들 가운데 두루 다니면서 한담하는 자들이 있고, 이집 저집 두루 다니면서 남의 약점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남의 말을 합니까? 남의 말 하는 게 음식으로 치자면 별식과 같아서 재미가 있고, 맛이 있어서입니다(18:08).

늘 집에서 밥만 먹다가 음식점에 가서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처럼, 남의 말 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남의 말을 하는 것이 공동체를 헤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며 살아가는 원칙을 준수하여야 합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

 

20: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 베드로, 그 외에도 아직 열 제자들이 있는데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향한 마리아의 섬김 때문입니다.

한 때는 사람들 세계에서 소외되어 살았던 마리아 이지만 주님의 은혜를 받은 후 부터는 주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고 섬기는 일에 올인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의 상황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모두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도망을 갔습니다. 열두 제자와 그 많은 열렬 팬들까지도 말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두려움을 이기고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식을 마무리하기 위해 장례물품을 미리 준비를 하였습니다(16:01).

그리고 안식 후 첫날 어두울 때에 아무도 찾지 않는 그 적막한 무덤, 예수님이 안장되어 있는 장소로 왔습니다. 그 무덤을 행해 오면서도 우리는 힘이 약해서 무덤을 막고 있는 돌문을 열수 없을 텐데 누가 대신해서 돌문을 열어줄꼬 라는 염려를 주고받으며 왔습니다.

 

16:0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의 무덤 문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큰 지진이 나고 주님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무덤을 가로막고 있던 돌을 한쪽으로 치워버렸습니다(28:01,02).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렇게 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놀라서 마가 요한의 다락방으로 달려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되어 진 상황을 전합니다.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서 도둑질 해 같습니다(20:02). 라고.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베드로보다 요한이 더 빨리 달려갔습니다(20:01~04). 마리아도 다시 무덤 있는 곳까지 왔는데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확인하고 떠난 후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장례용품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돌아 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장례식을 반드시 치러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후 이런 지극한 믿음의 섬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마리아는 울면서 무덤 안을 구부려 들여다보다 흰옷 입은 두 청년(천사)을 봅니다. 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산(묘지)지기 같은 사람도 보입니다. 마리아는 울면서 묘지를 관리하는 자에게 물어봅니다. 우리 선생님 시신이 안 보이는데 혹시 가져갔습니까? 이때 동산지기의 모습을 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향해 부르십니다.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말로 랍오니 하니.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정겹게 불러주시는 그 음성에 마리아는 놀라움과 기쁨에 어쩔 줄을 모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영광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마리아에게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말하라(20:17)는 부활의 증인의 사명도 받았습니다.

이에 마리아는 부활의 소식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달려갑니다. 고통과 슬픔과 눈물을 단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생명의 뉴스를 가지고 말입니다. 이제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되었고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증인의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대하면서 아무리 비천했던 사람이라도 주님의 은혜를 입고 헌신하는 마음만 가지기만 하면 얼마든지 복된 자리에 이를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전해오는 한 문서의 이야기임을 전제로 말씀드립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194512월 아랍지역의 나그함마디(Nag Hammadi) 시에서 북동쪽으로 약 6.2마일 떨어진 하므라 돔이라는 마을 근처 자발 알 타리프(Jabal al-Tarif) 절벽 돌덩어리에서 한 원주민 농부가 파피루스로 된 상자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속에는 12개 정도의 사본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 도마 복음서, 빌립 복음서, 가룟 유다 복음서 등으로서 이런 문서들은 정경이 아닌 문서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런 영지주의 외전들에 속하는 것들 가운데 베드로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좀 나오며, 특별히 막달라 마리아가 사도행전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이유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질투 때문에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탁월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베드로와 경쟁을 하게 되자 베드로가 마리아에게 저희 곁에서 떠나라고 하소서. 라고 예수님에게 간청하는 모습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믿거나 참조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마리아가 귀하게 쓰임을 받는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훗날 전해지는 문서들에 보면 열두 제자의 명단에는 베드로의 이름이 먼저 나오듯이, 여자의 이름이 나오면 항상 그 명단 첫 자리에 막달라 마리아가 등장을 합니다. 남자들과 대등한 예수님의 제자로 등장하는 것도 다 마리아 자신의 믿음의 결과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천대받을 만한 위치에 있어도 예수님 안에만 있으면 얼마든지 주님과 함께 동행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지위 고하, 지식의 많고 적음,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나라 선포를 위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기독교의 초기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사도들 중의 사도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그 사실을 사도들에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부터 몇몇 신실한 여인들을 전도 여행에 합류(合流)시킴으로서, 천국의 일꾼이 될 자격이 외적 조건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사모한다면, 또 그렇게 행하며 살기 원한다면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부활주일을 맞아 먼저 내 믿음부터 부활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