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5년 말씀

십일조는 하늘 문을 엽니다.(말 03:07~12)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5. 11. 2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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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문들이 있습니다. 학업의 문, 취업의 문, 사업의 문, 결혼의 문, 행복의 문 등 말입니다. 이 문들이 열리면 성공을 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나, 이 문들이 열리지 않으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불행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의 인생살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은 어떤 문이겠습니까? 바로 하늘 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이 다 열려있어도 하늘 문이 닫혀 있으면 허사가 될 것이며, 반면 하늘 문만 열려 있으면 세상의 모든 문이 닫혀도 살길이 열릴 것입니다.

 

오늘은 십일조에 관하여 설교를 하는 날입니다. 부분적으로는 십일조에 관한 말씀을 가끔 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11년 만에 합니다. 앞으로는 십일조에 관한 직접적인 설교는 제가 목회를 마치는 날까지 하지 않으려 합니다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혹 최근에 우리교회에 나오신 분들은 십일조에 대한 부담을 갖지 마시고 또 시험에도 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1. 십일조의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교회와 그 제도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중에 십일조는 율법시대의 것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다 끝났다. 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십일조를 검색해 보면 부정적으로 글을 올린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정말 십일조가 끝났습니까?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와 상관없는 사람들이요, 틀림없이 이상한 곳에 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율법 이전부터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봅시다. 아브라함이 고대의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 감사함으로 대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야곱의 십일조도 보십시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밧단 아람으로 가던 중 벧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장래의 약속을 받고 감격 속에 세 가지 서원을 합니다.

 

28: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의 세 가지 서원을 간단히 살펴봅시다.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평생 섬기며 살겠다는 서원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이곳 벧엘에 제단(성전)을 쌓겠다는 서원인데 20년 후에 이 서원을 지킵니다(35:07).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이 서원은 제단을 세우는 과정에서 십일조의 헌납으로 되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35:01~07).

야곱의 이런 십일조 서원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이 드린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은혜와 감격 속에서 나온 믿음의 예물로서, 은혜를 체험한 후에 드린 예물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이 드린 십일조는 율법이 생기기 약 5백여 년 전에 시작된 헌금입니다. 구약성경의 첫 권 창세기에 십일조가 나오고, 마지막 성경 말라기도 십일조를 다룹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구약시대 십일조를 어떻게 이해하셨습니까?

그대로 인정하시고 계속 하라고 하십니다. 대신 형식적으로 드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인 만큼 믿음과 정성으로 드릴 것을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드리는 십일조의 성격을 믿음이 결여 된 지극히 외식적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로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십니다.

 

박하는 독특한 향내를 지닌 채소로서 주로 유월절 쓴 나물의 양념과(12:08) 회당의 방향제(芳香劑)로 사용되었습니다. 회향은 미나리과 식물로서 양념에 사용되는 식물이며, 주로 약품과 향료에 사용을 많이 하였습니다. 근채는 식물로서 이 역시 미나리과에 속하며 그 열매는 양념이나 약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상에서 나열한 세 가지 식물은 이스라엘의 농작물 중 매우 사소한 수확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소한 종류를 나열하신 것은 당시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외적으로는 레 27:30절의 규례(規例)에 따라 얼마나 십일조를 철저히 드렸던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세세한 식물도 십일조로 구분하여 드렸지만 형식으로 드렸고, 정작 십일조를 드리는 믿음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드림에 앞서 믿음과 정성으로 드리라 하십니다.

 

23:23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 십일조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성도 여러분은 십일조가 무엇인지 잘 아시지요. 문자적으로 우리의 모든 소유의 십분의 일,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50: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십시오. 십일조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성전고에 드릴 것을 말씀하는 것이고, 나머지 십 분의 구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활용하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드려야 하는데 우리가 이것을 변경하거나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범하는 날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것이 되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듯이 우리도 은혜로운 삶에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십일조만큼은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을 따라 드려야지 다른 방법을 사용하면 안 되는 줄을 아십시오. 만일 사람의 방법으로 변경하면 그것은 자칫 횡령이나 도둑질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섬기는 교회에 드려야 할 것을 다른 곳에서 자기 마음대로 정해 드리는 것이나 다른 교회 혹은 단체 혹은 개인 목회자에게 드리는 식으로 말입니다. 혹 그런 곳을 지원하고 싶으면 아직도 자신에게 십 분의 구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하면 자신도 좋고, 받는 당사자도 좋습니다.

각종 헌금 즉 주일헌금, 선교헌금, 감사헌금, 절기헌금 건축헌금도 나머지로 하고, 오직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달리 적용하거나 해석하여 어떤 명분을 갖다 부쳐도 결과는 안 하는 것이고 도둑질인 것입니다.

 

0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십일조란 하나님이 나의 주인 됨을 고백하는 가장 중요한 헌금으로서, 나의 몸과 마음과 물질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는 우리의 자세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친히 책임져 주실 것임을 소망하는 헌금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다 하나님께서 얻게 하신 결과가 아닙니까?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실 것을 바라보고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목적이라면 잘못 투자(?)한 것 인줄 아십시오. 십일조는 우리의 삶의 감격과 신앙고백으로서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우선순위의 삶을 살겠다고 고백하는 각오로 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계산해도 현재의 수입을 가지고는 십일조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꼭 써야 할 것을 떼고 나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더 수입이 늘면 그 때는 드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나 나중의 방법으로 가능할 것 같습니까? 십일조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지 여유가 생기면 하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3. 십일조는 하늘 문이 열리는 통로입니다.

 

10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를 드리는 곳에는 놀라운 복이 임합니다. 그 놀라운 복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우선순위가 하늘 문이 열리는 복입니다. 이 말씀은 말라기 선지자의 말이 아닙니다. 이일기 목사의 말도 아닙니다. 오직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 한량없는 복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복들이 임한다는 말씀은 바로 나를 위한 복된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를 통하여 하늘 문이 열리기만 하면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나라의 경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세계의 경제가 어려워도, 지금 우리의 경제 쇼크가 있어도, 하늘 문만 열리기만 하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그리고 생각해 보십시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복의 통로로서 누구든지 믿음으로드리기만 하면 하늘 문이 열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다는 의미는 영육간의 복을 받는다는 그런 뜻입니다.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가장 많은 십일조를 드려야 하늘 문이 열리거나, 어느 일정한 수준 이상의 예물을 드려야만 하늘 문이 열린다면 경제가 열악한 사람은 평생 하늘 문을 못 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소득이 많은 자나 적은 자나, 그 중의 십분의 일을 구분하여 드리면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은혜이며,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복의 제도입니다. 11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메뚜기를 개역성경에서는 황충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 곤충들은 논밭에 떼로 몰려다니면서 모든 곡식을 사정없이 먹어치웁니다. 그래서 이 떼가 몰려오면 완전 황폐화가 됩니다. 우리의 세상살이에도 어떤 사람에게는 이 메뚜기 떼와 같은 것이 달려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땀 흘리고 힘써 모아 놓아도 다 먹어 치우듯 가져 가 버리는 이 인간 메뚜기 떼를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우리의 수고의 열매를 빼앗기지 않게 해 주십니다.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수고하여 지은 농산물이나 사업의 결과물이 결실을 못하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기한 전에 떨어지는 농작물들, 제 맛도 안날 뿐더러 당연히 제 값을 받지 못해 큰 손해를 당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올 해 안 되면 내년에 도전해도 됩니다. 문제는 인생살이의 조기 낙과입니다. 가령 학업을 하다가 졸업을 하지 못하거나, 사업을 하다가 중간에 중단하거나, 직장에 다니다가 중간에 퇴직하는 것, 또 당선 무효 형을 당하여 그 직에서 내려오는 일들을 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11절을 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결론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콜게이트 치약의 창설자인 콜게이트(영국)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중풍병자이고 어머니는 결핵환자이었습니다. 그는 먹을 것이 없어 방황하던 중 미국으로 가는 상선을 몰래 탔는데 한참을 타고 가다 그만 발각이 되었습니다. 그는 끌려가서 매를 맞으며 문초를 당하는 중 가정 사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돈벌이를 하려고 몰래 배를 탔다고 실토를 하고 난 후 다행히도 그 선장의 양자로 입양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선장이 늙은 후 그 배를 팔아 치약회사를 설립하고 회사 이름을 콜게이트라고 하였는데 콜게이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주일성수, 십일조 훈련을 엄격히 받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오른쪽 주머니에는 십일조를, 왼쪽 주머니에는 수입금을 넣도록 훈련받으면서 자란 결과 훗날 치약 공장을 세워 큰 성공을 합니다. 그리고 십 분의 오까지도 드렸고, 콜게이트 대학을 설립하여 하나님의 선교를 크게 하였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데도 왜 복을 받지 못합니까? 즐거움과 감사로 하지 않고 세금 바치듯 잔뜩 부담스러움으로 내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교만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십일조의 생활을 하십니까? 하늘 문만 열리면 메마른 광야 같은 곳에서도 살 길이 열립니다. 반면 하늘 문이 닫히면 아무리 좋은 곳에 있어도, 아무리 상황이 좋아도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십일조는 자신을 드리는 헌신의 고백이요 진실한 믿음의 시험이기 때문에 십일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십일조라고 적당히 바치면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십일조 하시는 분들 중에 억지로 하는 사람이 있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분 좋으면 하고, 기분 나쁘면 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일 년 중 9개월 낸 사람, 6개월 낸 사람, 또 다른 사람이 하나 안하나 봐가면서 체면상 하다 보니 3개월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이런 일들을 믿음으로 틀고 일어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