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5년 말씀

나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섰습니까?(눅 15:01~0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5. 11. 2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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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일 오후 939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브라질 상파울로로 가던 대한항공 KE061편이 이륙한지 6시간 20분만인 23일 오전 4시쯤 긴급히 일본 삿포로 공항으로 회항을 하였습니다.

이유는 81세의 한 일본인 남성이 화장실에서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을 호소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객실 승무원들은 즉각 기내 방송으로 의사를 찾았고, 승객 중 브라질 국적의 의사를 통해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긴급 회항을 한 것입니다.

이때 비행기가 삿포로 공항 동남쪽 1350태평양 상공에서 회항을 하였는데 약 57,000달러의 비용을 날렸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 것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 사람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약 12시간을 지나 오후 4시 다시 출발을 하였으니 그 불편들은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3년이나 지난 이 일을 말씀 드리는 것은 오늘 말씀이 바로 생명을 구하는 일에 관한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말씀의 출발점을 보면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아주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저런 쓰레기 같은 놈()들과 어울리는가 하면서 막 수군거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런 수군거림을 아시고 잃은 양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런 소외되어 있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주님의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나도 길 잃은 영혼을 찾아 나섰습니까? 라는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1. 나는 길 잃은 영혼을 찾아다니는 목자의 심정입니까?

 

0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01). 이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상종하지 못할 자들로 분류되던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세리는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로마를 대신해서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고용된 창기보다 못한 대접을 받던 세무공무원들입니다. 죄인이라는 말도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죄인이라고 할 때는 율법 규정을 어기는 자로서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자신들과 철저히 분리하였고, 성전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을 통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이들이 잃은 양으로, 구원을 받아야 할 자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백 마리의 양의 비유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백 마리의 양들 중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방향을 잃어서 판단력이 없어진 상태, 죽음의 환경에 처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또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 양을 들에 두고 굳이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나가야 합니까?

경제논리로 하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위해 한 마리의 양을 희생하는 것 즉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 더 이익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목자는 왜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는 일에 전념을 합니까? 양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은 방향감각이 없는 동물로서 길을 잃으면 다시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동물입니다.

팔레스타인의 고원은 대단히 험한 곳으로서, 그런 곳에서 양이 길을 잃으면 사나운 동물들의 공격으로 꼼짝없이 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니 목자가 길 잃은 양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어떤 수고를 해서라도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길 잃은 양은 영적으로 유대인들이 증오하고 경멸하였던 세리와 죄인들을 지칭합니다. 그들의 처지를 보면 도덕적으로 허물이 크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정신적으로는 병든 존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현실, 오늘 김해삼일교회 성도의 입장으로 볼 때 길 잃은 양이 누구인 것 같습니까? 가장 먼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입니다. 다음으로 전에 교회를 다녔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장기 결석자입니다.

예수님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으나 아직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섬기던 교회를 떠나 아직도 정착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 믿음생활을 하다 여러 일들로 시험이나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난 사람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찾아와 전도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가족이나 친인척일 수도 있고, 내가 가장 가까이 하는 친구와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바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길 잃은 양입니다. 어느 특정인이 아닌 이상 우리가 찾고 만나야 할 길 잃은 양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만나는 것이 좀 귀찮고 싫지만 주님은 반드시 찾고 싶어 하십니다. 주님은 마귀에게 종노릇하며 방황하는 영혼들을 품에 안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교회에서 상처받고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영혼들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이들의 영혼도 우리처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04절 말씀 하반을 보면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목자가 사람을 동원하지 않고 직접 양을 찾아 나선 것은 어디쯤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지를 짐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길 잃은 양과 같은 영혼들을 직접 찾아 나서야 합니다.

 

0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2. 잃은 양을 찾아야 잔치를 할 수 있습니다.

 

0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사람의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세상에 태어났으면 그 생명은 대단한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태어난 생명,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잃어지면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05절을 보시면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았을 때의 심정을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표현입니까? 즐거워서 어깨에 메고 옵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부모님이 자녀를 목마 태우는 것처럼 어깨에 메고 집에까지 왔겠습니까?

어깨에 메고 오는 것은 자식을 목마 태우는 부모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 만큼 길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마음이 기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즉각 그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입니다. 마음이 상당히 흥분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기뻤으면 그 기쁨을 혼자 주체할 수 없어 잔치를 하느냐 말입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서 잔치를 한다면 어쩌면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가격보다 경비가 더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목자가 이렇게 잔치를 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눅 15장의 세 비유를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길 잃은 양을 찾은 비유(06), 드라크마를 잃었다 찾은 비유(09), 작은 아들을 잃었다 찾은 비유는(23) 잃은 것을 찾은 이후에 이웃과 함께 잔치를 하며 즐기는데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교회도 길 잃은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교회 전체에 기쁨이 됩니다. 이런 영적 기쁨을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교회를 다듬고 보살피는 사랑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을 찾아 데려오는 것이 중요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영혼을 더 잘 보살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일단 우리가 길 잃은 양과 같은 영혼을 어떻게 찾고, 만나야 합니까? 하나님을 멀리 떠나 길을 잃고 흩어져 세상길로 가는 사람들은 다 길을 잃은 영혼입니다. 하나님께서 꼭 찾으시는 영혼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혼이라면 천하보다 귀한 자임으로(16:26), 이들이 방황하며 지낼 지라도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방황하는 영혼에 대한 애착을 가질 때 그 애착은 사랑의 희생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한 영혼을 얻기 위해 주님의 심정으로 희생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15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때로는 힘들고 자존심이 상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그 영혼을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택한 자들에게 고난을 주어서라도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시험을 당한 자들을 볼수록 더욱 그들에게 다가갑시다. 길 잃은 영혼을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릴 때 누릴 신령한 기쁨을 내다보면서 영혼을 위한 사랑의 수고를 계속합시다.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 우리가 이번 김삼일 해피데이 20에는 결단코 길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심정으로 신령한 잔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길 잃은 영혼을 찾아서 주님께 올려 드리고 신령한 잔치를 하여야 합니다. 악한 영들이 우리의 복음 활동을 막을지라도 어디든지 찾아 나서야 합니다.

 

 

 3. 혹 내가 길 잃은 양과 같은 사람은 아닙니까?

 

0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07절은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길 잃은 양을 찾는 비유를 영적으로 적용하는 말씀입니다. 길 잃은 양의 참 된 가치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구원을 받은 기존 성도들보다 죄인 된 자가 회개의 자리에서 주님을 부르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진정한 회개가 무엇입니까? 먼저 전제하여야 할 것은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인류 최초의 사람 아담의 후손 된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03:10,23). 원죄 때문에 죄인이고, 자범죄 때문에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이상 겸손해야 합니다.

 

자범죄란 원죄의 부패성을 가진 모든 사람이 삶 속에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죄의 가장 무거운 영향력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데 있습니다. 이런 자범죄를 가진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죄를 없애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도덕적 행위로, 선행으로, 종교생활로, 수도생활을 통해서 죄를 소멸시키려고 노력했으나 그럴수록 죄의 부패성과 죄책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이 죄인입니다. 이렇게 죄인임을 아는 자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회개입니다. 사람이 회개를 하여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합니다(02:16).

 

0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01:0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님은 여기서 길 잃은 양을 찾는 것을 회개해야 하는 것과 등식화시킵니다. 먼저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은 누구이며, 죄인인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아흔 아홉에 들어 있습니까? 잃어버린 하나의 죄인의 처지입니까? 내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만났다면 의인 아흔아홉의 공동체에 들 것입니다. 만일 내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직도 잃어버린 죄인입니다.

길 잃은 양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7가지 증세가 나타납니다. 첫째, 평안과 기쁨이 사라집니다. 둘째, 불안해져서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셋째,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넷째, 능력이 소멸됩니다. 다섯째,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합니다. 여섯째, 교회와 멀어지고, 교역자와 멀어집니다. 일곱째, 범사에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혹 내가 길 잃은 양의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닌지 목자의 심정을 부르면서 돌아봅시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 찾듯 나의 주님 이 죄인을 찾으셨도다.

(후렴) 양을 위해 생명 바친 목자의 수고 그 사랑을 잠시라도 잊지 말지라.

험산준령 헤매이는 어린양 찾아 나의 주님 산 가시에 찔리셨도다.

양 아흔아홉 마리 그보다 더욱 길 잃은 양 한 마리 양 사랑했도다.

목자는 어린양의 그 소리 알고 참다운 목자음성 양이 알도다.

어진목자 내 주 예수 이 몸 붙드사 푸른 초장 물가으로 인도합소서.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라서 견디지 못하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큰 종이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모든 동민들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간절히 당부를 하였습니다. 금년에는 우리 모두 한 사람씩, 두 사람씩 책임지고 전도합시다. 그리하여 장로님들로부터 모든 교인들이 한 사람 이상 전도하기로 하고 모든 동민을 다 맡았는데 한 사람만 남았습니다. 호랑이로 소문난 윤 노인이었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무섭던지, 그분을 전도하겠다는 교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상수라는 초등학생이 제가 윤 노인을 책임지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상수가 윤 노인을 책임지겠다고 하니,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네가 윤 노인을 전도하겠다고?

, 다음날부터 상수는 학교 가기 전에 윤 노인의 집에 가서 외칩니다. 할배요, 예수님 믿으세요. ? 야소 믿으라고? 이놈의 자식이 하며 윤 노인이 잡으러 오면 도망을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아이를 따라올 수 있습니까? 그래서 상수는 무사히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윤 노인의 집에 가서 대문을 열고 소리칩니다. 할배요, 예수님 믿으세요. 이놈의 자식이, 다음 날 아침에 또 할배요, 예수님 믿으세요. 하고 도망을 가면 할아버지가 따라옵니다만 역시 허사입니다. 그러면 상수는 또 학교로 도망을 가고, 또 오후에 할배요, 예수님 믿으세요. 라고 외칩니다. 며칠째 계속 그러니 윤 노인이 화간 단단히 났습니다. 저 놈이 나를 놀리는구나 하고 상수가 올 시간에 윤 노인이 대문 뒤에 숨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상수가 대문을 열고 할배요, 예수님 하는 순간에 그 무서운 윤 노인이 상수를 붙잡아 가지고 어른을 놀린다며 많이도 때렸습니다. 그렇게 맞고도 상수가 다음 날 아침에 또 와서 소리칩니다. 할배요, 예수님 믿으세요. 할아버지는 나가서 또 때리려 하다가 아니, 예수가 뭐기에 저 아이가 매를 맞으면서도 나에게 믿으라 하나? 예수가 뭐기에 그렇게 혼이 나고도 또 오지? 하면서 자기 발로 교회에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복음의 능력으로 전도 대상자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01:14절 말씀처럼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심전략을 합시다. 우리는 해피데이 20을 앞두고 한 생명을 하나님께 올리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음주일에는 신령한 웃음이 넘치는 해피데이 20이 되도록 내가 먼저 쓰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