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5년 말씀

심령이 죽으면 감사가 사라집니다.(삼하 07:18~2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5. 11. 1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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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일본군 해군 장교 가와 가미 기이치가 전쟁이 끝난 후 고국으로 돌아와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현실을 보았습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저 군인들 때문에 우리가 패전했다며 손가락질하고 노려보는 바람에 매일 분노와 좌절감에 시달렸습니다. 급기야 그는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얼굴을 제외한 온 몸이 마비되는 병에 걸렸습니다.

결국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 씨의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의사가 환자인 가와 가미 기이치에게 물었습니다. 기이치 선생, 낫고 싶으세요? , 낫고 싶습니다. 제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어요? , 무엇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럼, 저를 한번 따라 해보세요. 감사합니다.

 

매일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 찼던 기이치가 갑자기 감사합니다. 라고 말을 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의사가 오늘부터 감사합니다. 란 말을 하루에 1만 번씩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마비된 몸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돌아간 후 기이치는 병석에 누운 채로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매일 감사합니다. 를 되풀이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병을 고치기 위해 억지로 내뱉다시피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진심이 되어갔습니다. 그러자 분노와 적개심으로 불편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면서 얼굴이 밝아지고, 행동 또한 점점 부드러워졌습니다. 우울했던 집안 분위기가 밝아졌습니다.

하루는 막내아들이 감나무에서 잘 익은 홍시 두 개를 따 아버지께 드리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버지, 감 드세요. 그때 기이치가 감사합니다.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는데 그 순간 신기하게도 마비되어 있던 손이 움직이는 겁니다. 기이치도 아들도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손에서 일어난 기적은 이후 팔, 다리, , 몸 구석구석까지 이어지면서 굳어 있던 몸이 다 풀려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감사하면 질병도 고칩니다. 우리 모두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영육간에 치료의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1. 감사하는 마음은 인생을 돌아보게 합니다.

 

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다윗은 생전에 가장 간절했던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왕궁을 출입하는 선지자 나단에게 자신의 심경을 틀어놓았습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도다.

그러자 나단 선지자가 왕이여 건축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하며 맞장구를 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다윗에게 가서 말하라. 그는 군인으로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대상 22:08; 28:03) 성전 건축을 할 수 있는 적합자가 되지 못한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왕의 성전 건축을 하고자 하는 마음만 받으시고 건축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라고 통보를 하였습니다. 이에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성전건축의 부적격자임을 통보 받고도(삼하 07:17)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성전에 나아가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제가 누구입니까? 그저 베들레헴의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 아니었습니까? 저의 집은 또 무엇입니까? 그저 별 볼일 없는 집안입니다. 그런데도 이 귀한 왕의 자리에 이르게 하셨으니 감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왕의 위치가 아니라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의 위치로 내려서 돌아보았습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 같은 게 뭐라고 이런 대우를 해 주십니까? 하며 더욱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은혜와 복을 받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잠깐만 돌아보아도 하나님께 감사할 거리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여유가 없어서 감사를 생활에 옮겨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다 같이 한 번 돌아봅시다. 먼저 이 예배의 자리에 올 수 있는 건강한 두 다리가 있음이 하나님께 감사할 거리입니다. 관절염으로 아프다고요? 그래서 차로 모셔왔습니다. 또 여러분 모이면 말도 많고 좀 시끄럽지요. 그런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건강이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틈이 나는 대로 현재의 생활을 지난날에 비교하면서 감사의 거리를 찾습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문화 가치와 경제의 수준이 옛날에 비해 훨씬 잘 먹고, 잘 입고, 잘 누리고 삽니다. 배가 고파 죽는 것이 아니라 배가 터져 죽는 환경입니다.

그런데도 과거에 비하면 지금 우리의 행복지수가 더 낮습니다. 자살율과 이혼율과 경제사범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좋아지는 만큼 감사를 해야 함에도 감사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과거 시절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대에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체적으로는 멀쩡한데 치매나 정신병에 걸린 경우이고, 또 하나는 감사의 마음이 실종 된 불감증입니다. 사람이 감사의 불감증에 걸리면 원망과 불평이 찾아오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으로 바뀌어 집니다.

 

0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교도소와 기도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감사에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세상적인 환경은 교도소가 기도원보다 의식주 생활이 더 좋습니다. 그럼에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기도하는 분들은 감사와 찬양으로 천국을 만들어 가는데 비해 죄수들은 불평으로 계속 지옥을 만들고 있습니다.

 

 

 2. 감사하는 마음은 미래의 받을 복도 내다봅니다.

 

19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에서 베풀어주신 현재의 복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고백을 합니다. 거기에다 미래에 대한 더 큰 영적인 복까지 보장을 해 주시자 몸 둘 바를 몰라서 하나님, 이 종이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라고, 성도 여러분, 생명력 있는 감사가 무엇입니까? 은혜를 깨닫는 감사가 무엇입니까? 미래에 받을 복까지도 내다보는 영적 통찰력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가 내 마음에 자리 잡게 합시다.

 

미국의 한 청년이 청년답지 않게 늘 감사를 생활화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이 청년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절단하였습니다. 한창 일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인데 다리 하나가 없는 것을 생각하다 보니 많은 고민과 절망 속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믿음의 눈이 뜨이면서 이 청년은 아직도 자신에게 다리 하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리 하나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면서 희망의 고무다리를 장착하였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복을 내다보면서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어서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그 다리 하나에 의지해서 아프리카로 건너갔는데 이내 식인종들이 덤벼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 선교사는 고무다리를 식인종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식인종들이 그 다리를 씹어보는데 잘 씹히지 않자 그때부터 놀라움으로 이 선교사를 신적 존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원망 속에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감사하기보다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불평을 일삼는다면 이는 믿음이 깨어진 증거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하는 마음으로 믿음을 회복합시다. 예수님을 앞세워 미래에 받을 복을 믿음으로 내다봅시다. 앞날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복된 계획이 있음을 믿고 나아갑시다. 그러면 기쁨이 있고, 넉넉함이 있고, 감사함이 넘쳐나는 생활이 될 것입니다.

 

감사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받는 단계, 둘째 감사의 단계, 셋째 드리는 단계입니다. 받는 단계는 새가족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주로 하나님께 맨날 복을 달라고 하고, 성도들의 관심과 사랑 권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둘째 단계인 감사하는 단계는 믿음이 조금 성숙해져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과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단계입니다. 셋째 단계인 드리는 단계는 말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드리고 물질과 정성을 다해 헌신하는 성숙한 신앙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가 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헌금도 십일조도 드리게 됩니다. 교회의 각종 모임에도 들어가서 봉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진정한 믿음의 성도는 이처럼 드리는 단계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감사는 표현을 할 때까지 감사가 아니다. 는 말,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감사합니다. 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고 합니다. 행복은 물질이나 문명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입술에 감사의 소리가 끊어지지 않으면,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기만 하면 미래에 주실 하나님의 복을 믿음의 눈으로 확인하여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3. 심령이 죽으면 감사가 사라집니다.

 

38:18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사람은 호흡이 끊어지면 사랑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살아있는 자 만이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할 말이 있거든 지금 하십시오. 감사할 일이 있거든 지금 당장 하여야 합니다. 육신으로 죽었던, 영적으로 죽었던 간에 죽은 이상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감사도 중단됩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그 시간부터 감사의 생활이 끊어집니다.

 

20141027일 서울광장에서 이상한 대회가 열렸습니다. 1회 멍 때리기 대회인데 50명이 참여한 멍청한 대회였습니다. 멍 때린다는 말은 시퍼렇게 멍이 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나간 것처럼 아무 반응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말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있을 때 멍 때린다고 합니다. 대회 주최 측에 따르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해주자는 취지에서 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회 우승자는 9살 김지명 여자 어린이입니다. 9살 어린이가 하루 6곳씩 학원을 다니다 보니 쌓이는 피로와 압박을 멍 때리는 것으로 풀어왔다고 하는데, 우승 트로피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이 주어졌습니다.

이어서 201574일 오후 4시 제 2회 국제 멍 때리기 대회가 북경 세계무역천계 청사에서 80명이 참여하여 진행 되었습니다. 매년 이런 대회가 연장되어 갈 것입니다.

 

저는 이런 대회를 폄하하려 않습니다. 문제는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내려놓는 프로그램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모임의 특징은 찬양이 없습니다. 기도가 없습니다.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고 찬양이 없는 곳이라면 구체적으로 그곳이 어디입니까? 무덤(스올)입니다. 사망의 세계입니다. 지옥이란 말입니다. 이런 곳의 특징은 감사가 없고, 찬양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고 찬양이 없는 마음은 근심, 걱정, 염려의 창고입니다. 반대로 감사와 찬양이 있는 마음이라면 은혜의 터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살아있고, 찬양이 살아 있는 성도는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생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만났을 것이고, 현재도 만나고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는 주변 사람이 바뀝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기적의 씨앗이 자랍니다. 어떤 환경이든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평안이 옵니다. 기도와 찬양은 감사의 바탕에서 이루어지며, 감사가 없는 기도, 감사가 없는 찬양은 사람에게는 들릴 수 있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문제도 풀리지 않습니다. 진정한 감사에서 출발되는 기도와 찬양이야말로 풀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한 기도와 찬송을 보십시오.

그들이 낮에 복음 때문에 억울하게 당한 고문들에 마음이 사로잡혔더라면 감사의 기도와 감사의 찬송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원망의 기도만 드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올리니 풀리고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감사하는 얼굴에는 적이 없고, 감사하는 인격에도 적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인생은 언제나 그의 삶이 모질고 거칠게 살아갑니다. 조금만 눈을 열어 세상을 보십시오. 부유한 환경에 거하여도 인생을 거칠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힘든 환경에 거하여도 부드럽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감사의 차이입니다. 사람이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일에 감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0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하는 사람은 비가 올 때 하나님이 비를 주셔서 곡식이 잘 자라겠구나 하지만, 감사가 없는 사람은 오늘 비가 오니까 땅이 질겠구나 하고 불평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포도를 먹으면서 맛도 좋고 비타민도 많은 과일이구나 하지만, 감사가 없는 사람은 포도는 씨가 많아 귀찮은 과일이라고 불평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장미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지만, 부정적인 사람은 가시가 많아서 틀렸다고 합니다. 다 보는 영적 시각이 달라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감사가 넘치는 생활로 바뀌어 지기를 원하십니다. 새롭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감사를 앞세워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