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4년 말씀

나는 세상의 빛입니까?(마 05:14~1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4. 11. 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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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4세기 경 그리스에 디오게네스(Diogenes B. C 412~323) 라는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가끔은 아테네 도시를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녔는데 이유는 그의 눈에는 아테네 도시가 어둠의 도시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러는 사람들이 묻기를 왜 밝은 낮에 등불을 들고 다닙니까? 하고 물으면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밝힐 사람다운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고 새롭게 하는 일을 감당하였는데 요즘은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문명의 발달로 세상살이가 편리한 탓도 있지만, 문제는 기독교인이 세상적인 모습에 동화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교회의 거룩성과 사회를 향한 기독교인의 빛 된 역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교회를 향하여 너나 잘하세요.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예수님 안에 머물게 하시고, 그 분의 생명 안에서 성숙하게 하여 다시 어두운 세상으로 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도 어두운 세상을 향하여 복음의 빛을 발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빛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를 말씀으로 살피면서 나는 세상의 빛입니까? 라는제목으로 강론하습니다.

 

 

 1.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내가 받습니까?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0513절의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와 동일한 문장 구조입니다. 문장 구조를 놓고 보면 너희가 주어로서 너희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너희만이 세상의 빛이야.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도 나는 너희만을 분명히 믿어. 라는 특별한 의미가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세상의 빛이라 할 때 이 빛이 어떤 의미의 빛입니까? 건전지를 넣어서 일시적으로 어둠을 비추는 그런 랜턴의 빛입니까? 혹 스마트폰의 손전등입니까? 여기의 빛은 악한 세상, 타락한 세상, 죄와 죽음으로 어두워진 절망의 현장을 비추어서 새롭게 구원의 세계로 안내하는 생명의 빛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는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에게 누구라고 하느냐 말입니다.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특별 훈련을 받고 있는 열두 제자를 말합니다. 좀 더 넓게 적용한다면 예수님을 생명의 주님으로 믿는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증거가 성경 에베소서에서 우리를 빛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엡 05:08).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놓고 봅시다. 현재의 제자들 수준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산위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의 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보았을 때 빛이 될 수 없지만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제자들이 별 것 아닌 존재이지만 앞으로 다듬어져서 귀하게 될 것으로 보고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다는 말입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이 말씀 앞에서 상당한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또 자기들의 수준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심에 대하여 감격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연약한 제자들 자신을 놓고 세상의 빛으로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허물의 굴곡이 심한 존재로서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주님 오실 때까지 한시적이지만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의 영역아래 있습니다(02:02). 반면 캄캄하고 어두운 세상 앞에서 우리 자신을 보면 얼마나 초라해 보입니까? 얼마나 작아 보입니까? 무슨 빛을 발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말씀을 요한복음과 한번 비교해서 살펴봅시다.

 

0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09:0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만하면 충분한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고, 제자들은 그 빛을 받아서 비추는 존재라는 사실 말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발광체이고, 제자들은 그 발광체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에서 세상의 빛입니다. 태양 빛을 받아 밤을 비취는 달처럼 말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가 충분히 정립이 될 것입니다. 악한 세상, 어둠의 세상을 정화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할 사명을 주시는 것으로 말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사는 우리 모두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이런 말씀을 전합니다.

 

05:0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2. 빛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예수님은 빛의 위치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빛은 산보다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하고(04), 등불도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야 더 멀리, 더 넓게 비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왜 천정에 전등을 달아 놓습니까?

그 이유는 천정에는 빛을 가릴 장애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낮은 곳일수록 빛을 가릴 수 있는 장애물이 많아서 낮은 곳에 전등을 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전등을 바닥에 둔다면 여러 물건들로 인해 빛이 가려지고 말 것입니다.

 

05절은 당시의 팔레스타인 관점에서 이해할 말씀입니다. 그들의 집은 오늘날의 집과 비교한다면 아주 작아서 등불 하나로도 충분히 집을 비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 가정에는 등불과 그것을 올려놓는 작은 선반이 있어서 일단 등불을 켜면 작은 선반에 올려놓아 집안을 비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잘 때가 되면 곡식을 담아서 되는 말로 덮어버립니다. 그러면 등불은 저절로 말속만 비추다 이내 꺼져버리고 맙니다. 우리나라의 60년대 농촌생활도 등불에 관해서는 거의 이랬습니다. 등불을 켜는 것은 당연히 집안을 밝히기 위함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은 등불을 꺼지 않는 이상은 말로 덮어두지를 않았습니다. 성도를 등불로 비유되는 빛이라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주님의 제자로서 그리스도를 잘 나타내는 매우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08:12) 하심과 같이 나도 믿음을 따라 당당하게 주님의 생명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빛이다. 라고 선언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성령님의 감동을 따라 사는 성도입니까? 그러면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추는 등불과 같은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는 성도들이 은밀한 곳에서 은둔생활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미 주님은 제자들에게, 오늘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비추는 진리의 등불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이런 등불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이 된 성도들은 이 기능을 사장하지 말고 나타내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삽시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자신을 쥐라고 생각하는 망상에 사로잡힌 청년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병원 출입문 앞에 서자 더 이상 밖으로 나가려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가 이상해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왜 그러고 서 있어요? 의사의 말을 들은 이 청년은 앞을 가리키면서 바로 저기 고양이가 있어요. 하며 벌벌 떠는 것입니다. 그러자 의사가 당신은 이제 쥐가 아니라는 걸 아셨지 않소? 라고 말하자 청년은 그건 틀림없습니다만 고양이 쪽에서는 모르고 있을 수 있잖아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내가 자부심을 가지면 이웃도 알고, 성도들도 알고, 세상도 알고, 사탄도 당연히 압니다. 성도들은 복음의 등불을 계속해서 비치도록 영적인 기름을 공급받으면서 성령님의 충만을 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반면 영적인 잠에 깊이 빠져 있는 성도들도 많이 있습니다. 기름이 없는 등불이라면 가물거리다가 이내 꺼져서 세상을 비출 수 없는 것은 아닐까요? 가치성을 잃어버리면 버려지고 맙니다.

 

 

 3. 그러면 나는 세상의 빛입니까?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16절 말씀을 통하여 특별 주문을 하십니다. 잘 보십시오. 우리가 사람 앞에 빛을 비치게 하여 나타나는 두 가지의 주문입니다. 첫째 주문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과연 그리스도인답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세상의 빛 된 역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착한 행실이 어떤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볼까요? 일단 내 모습에서 먼저 예수님의 모습이 보여 지는 것입니다. 녹아지고 희생하고, 섬기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학교에서 소나기라는 단어로 3행시를 지었는데 이렇게 지었습니다. 선생님이 운을 띕니다. . 소방차가 불난 집에 불을 끄고 있다. . 나는 신나게 불구경을 했다. . 기절했다. 우리 집이 불타고 있기 때문이다. 3행시가 어쩌면 우리의 삶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요? 남의 어려움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정작 내일이라면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하듯 눈이 벌게서 설치듯 말입니다

 

벧전 0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둘째 주문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열두 제자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듯이, 내 손과 발이 닿는 곳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달 할 수 있다면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어떤 책에 보면 교인들을 다음과 같이 다섯 분류를 하였습니다. 혹시 내가 해당 되는 것이 있는가? 잘 비교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달구지 같은 교인. 이는 밀어 주어야만 가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같은 교인. 끈을 붙들고 있지 않으면 언제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르는 사람. 고양이 같은 교인. 계속 토닥거려줘야 만족하는 사람. 럭비공 같은 교인.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는 변화무쌍하고 예측불허의 사람. 풍선 같은 교인. 잔뜩 부풀어 있어 누가 살짝만 터치해도 이내 폭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섯 종류 다 부정적인 모습들로 하나님의 영광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는 아니겠지만 우리교회에 이런 분들이 있지 않을까요? 요즘 크리스천 범죄율이 전체의 3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기독교인은 겨우 16% 밖에 안 되는데 범죄율은 약 두 배나 됩니다. 이러니 전도의 길이 막히고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밝은 세상입니까? 밤이면 도회지의 거리는 네온사인으로 휘황찬란한데도 세상을 왜 어둡다고 합니까?

지식이 크게 발달했고, 문화도 크게 발달했고, 과학기술도 크게 발달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환경이면 죄악은 점점 줄어들어야지 않습니까? 그런데 훨씬 더 크고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악한 세상, 어두운 세상이라고 합니다. 죄악이 가득하여 온갖 악이 범람하고 있다는 그런 뜻이지요.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독일에 로렐라이라는 유명한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골짜기의 한쪽 편 산기슭에는 대형 거울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저 산위에 왜 거울들이 세워져 있는가? 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안내자들은 설명합니다. 이 지역이 포도밭인데 독일은 일조량이 모자라는 나라로서 포도가 익는데 지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족한 햇볕을 보충하기 위해서 이런 장치를 하였습니다. 즉 맞은 편 언덕에 거울을 장치해서 그 거울에 반사되는 햇볕을 다시 맞은 편 포도밭의 포도송이에 쬐이게 하여 익히는 것입니다. 햇빛이 부족한 자연의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 역시 이런 원리를 도입하면 어떻겠습니까? 세상 살아가는 동안 빛으로서 가치를 다하기 위해 세상의 빛이라 선언하신 예수님의 빛을 비추어주는 복음의 거울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일, 말입니다.

 

빛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면에서 두렵고 위협적인 어두움을 제거하고 밝히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영적 어두움이 물러가는 곳에 생명의 빛이 드러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빛의 역할을 잘 하기 위해서는 더욱 이웃과의 좋은 만남의 관계를 높여야 합니다.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빛을 받은 우리가 그 빛을 세상에 제대로 비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계속 어둡습니다. 이제부터 인간관계의 폭을 넓힙시다. 자신에게서 가족, 가족에서 친척, 친척에서 친한 친구, 친한 친구에게서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보여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