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듀폰 사의 캐러더스(Wallace Hume Carothers, 1896~1937)가 1934년 석탄과 공기와 물을 합성해 만든 인조 합성 섬유 나일론(Nylon)이 있습니다. 거미줄같이 가늘면서도 강철보다도 강한 실이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잡아당겨도 잘 찢어지거나 끊어지지 않고 물에 젖어도 잘 구겨지지 않아 툭툭 털면 되는 신비의 섬유입니다. 이 섬유가 1953년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일본식 발음으로 나이롱이라 불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는 나일론 대신 나이롱으로 통칭하겠습니다.
나이가 조금 드신 분들은 나이롱이란 의미가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이 나이롱이 등장할 당시만 해도 일명 꿈의 섬유라 불렀습니다.
줄기세포 발견에 비견될 만큼 대단한 붐이 일어난 섬유입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나이롱이 결코 좋은 제품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꺼리는 섬유입니다. 왜 이런 섬유를 꺼립니까? 나이롱은 인공으로 섞은 천으로서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반면 순모나 순면이 더 좋은 줄을 알았습니다.
나일론(Nylon)의 나일은(Nyle) 니힐(Nihil 허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한때는 그렇게 주목받던 나이롱이 폴리에스터에 밀려나면서 이제는 가짜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나이롱 하면 겉과 속이 다른 내실 없는 모습을 뜻합니다. 사람에게 이 용어를 적용하면 가짜라는 의미를 풍깁니다. 매우 불명예스러운 말입니다.
오늘 나에게 이 나이롱이란 용어를 붙이면 매우 부끄러운 일이 됩니다. 그러면 이 오명을 속히 벗어나야 하겠지요? 그래서 말씀 제목을 「오늘 나이롱 신자 탈출합시다」로 정했습니다.
1.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를 단 자가 있습니다. |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나는 믿음이 있는 자라고 자부합니까? 그러면서도 믿음의 열매를 생산하지 못하면 이는 믿는 사람의 노릇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눈에 잠깐 무늬만 신앙인처럼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경건한 채 해도 하나님 앞에서의 나이롱 신자 꼬리표를 달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나이롱 신자라는 꼬리표를 심령 깊은 곳에 숨겨 놓고 살아갑니다.
또 사람들은 내가 깊숙이 숨겨 놓은 나이롱 신자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내가 말씀 밖에 머물러도 나이롱 신자 꼬리표를 알지 못합니다. 나는 가짜 신자입니다. 하고 공개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나의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말씀을 앞세워 그 사람의 일상을 살펴보면 나이롱 신자의 진위를 다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이롱 신자의 앞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07: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께서 소개한 이들이 외형으로는 얼마나 화려하고 대단한 신앙인처럼 활동하였습니까? 선지자처럼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그 외에도 많은 능력을 행하였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주님과는 상관없는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가 붙은 셈입니다.
나이롱환자라는 말 아시죠? 아프지도 않으면서 공갈, 보험금 혹은 그냥 휴가 등의 목적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을 지칭하는 은어(隱語)입니다. 80년대 초반 정치인들이 나이롱 환자 흉내를 내며 병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감옥에서도 편하게 생활하는 사람을 나이롱 죄수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권력형 비리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나이롱환자, 나이롱 죄수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여기서 파생된 나이롱이 교회에도 들어와 나이롱 신자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안의 전도 대상자를 나이롱 신자라고 부릅니다.
신앙심도 없으면서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의 모습은 없이 적당히 흉내만 내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미국 뉴욕시의 맨해튼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Broadway)라는 유명한 길이 있습니다. 아주 넓은 길이란 뜻입니다.
그 길이가 무려 200km 됩니다. 여기가 이렇게 유명한 것은 볼 것 즐길 것이 수도 없이 많아 사람들의 정신을 홀딱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유명한 금융가 월스트리트가 있고 최첨단 패션을 자랑하는 고급 옷 상점이 즐비합니다. 세계의 멋쟁이들이 모여들고 24시간 상영되는 포르노 영화관도 있습니다. 도박장 유흥가 뮤지컬 공연장 등 사람에게 세상 즐거움을 주는 요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술과 마약과 도박에 찌든 사람이 무수합니다. 향락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 많고 또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 요란하고 시끄러운 곳입니다.
이런 곳에 출입하기 위해 브로드웨이를 운행하는 사람들은 주로 믿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신앙인이 브로드웨이를 운행할 때 이 길을 나이롱 신자의 길이라고도 부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서 열심을 품고 있는 것처럼 하면서도 한쪽 발은 세상에 두고 있다면 나이롱 신자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만나지 못하여 미지근하여 살아갑니까? 어쩌면 교회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나이롱 신자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2. 혹 내가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를 달고 있습니까? |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예수님 사랑을 품었습니까? 이웃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이는 예수님의 사랑이 심령에 없는 증거입니다. 신앙 감각이 무디어진(엡 04:19) 나이롱 신자 증거입니다.
성경에는 다양한 형태의 믿음이 나옵니다. 작은 믿음(마 08:23~27), 큰 믿음(눅 07:01~09), 행함이 있는 믿음(약 02:22), 행함이 없는 믿음(약 02:17, 26) 연약한 믿음(롬 14:01), 굳은 믿음(골 02:05), 거짓된 믿음(마 24:24), 거짓 없는 믿음(딤후 01:05) 등으로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믿음들이 수시로 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큰 믿음이든 작은 믿음이든 그대로 고정되어 있으면 좋습니다. 수정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믿음은 환경 따라 좋은 쪽이던 안 좋은 쪽이던 변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김삼일 가족은 건강진단을 받는 것처럼 내 믿음이 건강한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내 믿음을 진단해야 합니다. 나이롱 신자가 되어 감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합니다.
말씀이 도무지 내 심령에 안 들어올 때가 있습니까? 도무지 기도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까? 찬양의 입술이 도무지 열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까? 온갖 잡념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교회에 가는 것이 그렇게도 싫어질 때가 있습니까?
그러면 내 믿음의 위기가 왔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권태기가 왔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이롱 신자의 길로 가고 있는 증거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이 잘 안 들어온다고 심령의 문을 닫고 살아야 합니까? 기도가 안 되니 기도를 중단해야 합니까? 찬양이 안 나오니 대신 유행가를 불러야 합니까?
바로 이때가 더욱 말씀이 필요한 때입니다. 더욱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더욱 잡념을 떨쳐버려야 할 때입니다. 더욱 교회에 갈 때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이롱 신자 꼬리표를 달고 살아갑니까? 자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나이롱 신자 꼬리표를 떼어야 할 때임을 잊지 마십시오.
현대인을 병들게 하는 철학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상대주의 ②실리주의 ③편리주의입니다. 이 가운데 편리주의가 과학의 발전과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며칠씩 걸리는 거리도 몇 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를 만드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리던 것이 이제는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은 부분을 기계가 대신해 주면서 스위치만 누르면 웬만한 것은 척척 해결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편리주의가 생활에 많은 변화를 불러옴으로 우리 모두 이런 것에 빠른 속도로 길들어 갑니다. 좋은 현상입니다만 그러나 이런 편리함이 사람도 사회도 병들게 합니다. 참고 기다려야 하는 일을 견디어 내지 못합니다. 불편하고 힘든 것은 외면합니다.
한 마디로 소중한 정성과 사랑 그리고 끈끈한 인간미를 상실하였습니다. 결국 이런 편리주의가 우리의 인격이나 믿음까지 성숙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성숙은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많은 훈련과 연단 속에서 이루어져 갑니다. 신앙인은 건강한 믿음 생활을 위해서 편리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 하나 꼭 기억하십시오. 편리주의에 익숙해지면 인내의 믿음을 멀리합니다. 십자가 없는 믿음 생활, 희생이 없는 사랑, 헌신이 없는 예배를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편리주의 믿음 때문에 영적 감각이 없는 나이롱 신자가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3.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는 죽음입니다. |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고 하였습니다(20). 말로만 믿는 것이지 실제로는 믿지 않는 나이롱 신자라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야고보는 선행을 제외한 채 그저 말로만 믿는 믿음에서 벗어날 것을 명합니다, 나이롱 신자의 믿음에서 벗어날 것을 명합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자기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생명 구원의 역사도 일으키지 못합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 앞에서 엄한 책망과 무서운 심판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꼬리표라는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물건과 심지어는 사람에게도 꼬리표라는 게 붙습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 붙여진 꼬리표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할 수도 있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너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라는 꼬리표를 붙여 줘 봅시다. 분명 그 사람은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고 실패의 삶을 살 것입니다. 반면 너는 잘할 수 있어. 라는 꼬리표를 붙여줘 봅시다. 그때는 얼마든지 능력자로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심리학에 라벨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붙여진 꼬리표대로 변하는 습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가령 아이에게 너는 항상 꾸물거린다. 라고 말하면 아이는 정말로 행동이 느려지고, 반대로 너는 인사를 잘하는구나. 하면 정말 인사를 잘한다고 합니다.
말을 심하게 더듬는 키가 작은 한 소년이 있습니다. 이 소년은 말을 더듬는 일로 마음이 심히 괴로웠습니다. 그때마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너무 똑똑해서 그런 거야. 너처럼 똑똑한 아이의 머리를 네 혀가 따라오지 못해서 그런 거야.
이런 어머니의 칭찬과 격려 덕분에 이 소년은 어느새 학교생활에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결국 말을 많이 하는 시끄러운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 소년이 나중에 야구팀 투수와 아이스하키팀과 골프팀 주장으로 맹활약하였습니다. 학업을 마치고는 1960년 미국 굴지의 제조업체 GE의 말단 사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여 1981년 최연소 CEO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GE를 시장가치 120억 달러에서 4,500달러 끌어올린 최고의 CEO가 되었습니다.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미국의 잭 웰치의 이야기입니다(Jack Welch, 1935, 11, 19~).
여러분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어떤 꼬리표를 달고 나가시겠습니까? 김삼일 맨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일터로 나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김삼일 나이롱 신자 이런 꼬리표로 하루를 살겠습니까? 만에 하나 여러분이 나이롱 신자 꼬리표를 달고 산다면 이 꼬리표가 영적 죽음으로 안내할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행함이 없는 믿음, 생산력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 길이가 무척 짧습니다. 백 년 안팎으로 사는 정도입니다. 이마저도 시간이 많이 흘러갔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각자 각인 된 이미지가 있습니다.
좋은 이미지이든 안 좋은 이미지이든 말입니다. 내가 이웃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져 달라고 해서 이미지가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활 스타일과 모습에서 풍기는 인격이 상대에게 각인이 되어 그것이 나를 향한 꼬리표가 됩니다. 만일 내가 이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를 계속 달고 산다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오늘 우리 좀 과감하게 살릴 것은 살리고 버릴 것은 버립시다. 나이롱 신자 소리 듣는 거 싫잖습니까? 오늘부터 당장 떼어 버립시다. 그리고 믿음의 명예를 우선순위로 회복합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채널 A의 먹거리 파일 프로그램 있지 않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인데 먹거리에 관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비위생적이며 가짜 음식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음식에 대한 많은 잘못이 시정되고 있습니다.
나이롱 음식, 가짜 음식에 대한 분별력을 높여주기에 국민의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나이롱 신자를 깨달을 때 좋은 일꾼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1991년 이후 지난 20년간 미국 성인의 신앙생활에 관한 여론조사 데이터가 있습니다. 그 조사에 의하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19991년 35%에서 2011년 40%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정확하다고 믿는 이는 46%에서 38%로, 신은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이는 74%에서 67%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결혼식과 장례식 말고는 지난 6개월 사이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는 사람은 24%에서 37%로 늘었다고 합니다. 이는 분명 나이롱 신자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마 0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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