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4년 말씀

나는 나이롱 신자입니까?(약 02:14~1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4. 11. 2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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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듀폰 사의 캐러더스(Wallace Hume Carothers, 1896~1937)1934년 석탄과 공기와 물을 합성해 만든 인조합성 섬유 나일론(Nylon)이 있습니다. 거미줄같이 가늘면서도 강철보다도 강한 실이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잡아당겨도 잘 찢어지거나 끊어지지 않고, 물에 젖어도 잘 구겨지지 않아 털기만 하면 되는 신비의 섬유가 1953년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일본식 발음으로 나이롱이라고 불렸습니다. 4-50대 이상 세대는 나이롱이란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나이롱이 등장할 당시만 해도 일명 꿈의 섬유라 불리며 줄기세포 발견에 비견될 만큼 대단한 붐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나이롱이 결코 좋은 제품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기피하는 섬유가 되었습니다. 왜 기피하는 섬유가 되었습니까? 나일론은 인공적으로 섞은 천으로서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반면 순모, 순면을 더 선호하는 것은 이는 섞은 제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일론(Nylon)의 나일(Nyle)은 니힐(Nihil·허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한 때는 그렇게 각광을 받던 나이롱이 폴리에스테르에 밀려나면서 이제는 가짜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나이롱 하면 겉보기와는 다른 내실없는 것을 지칭하며, 사람에게 이 용어를 적용하면 가짜다. 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합니다. 또 신앙인에게 이 나이롱이라는 용어가 적용되면 그때는 불명예가 되는데 오늘 저는 누가 이 나이롱 신자인지, 어떻게 하면 나이롱 신자를 탈출 할 것인지에 대하여 강론하겠습니다.

 

 

 1.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를 단 자가 있습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그 믿음이 생산적이지 못한 형식적 신자라면 이런 사람은 믿는 사람의 노릇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의 눈에 일시적 무늬만 신앙인처럼 보였다 할까요? 아무리 경건한 체 해도 하나님 앞에서의 나이롱 신자 꼬리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 머문 사람이 아닐지라도 사람 앞에서는 나이롱 신자라는 그 꼬리표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형식적인 믿음생활을 해도 그 외식을 깊이 감추어 놓는다면, 나는 나이롱 신자입니다. 라고 공개를 하지 않는 이상 나이롱의 신자의 구별은 잘 안 됩니다. 그래도 굳이 구별을 해 본다면 그 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고 나이롱 신자인지의 유무를 짐작해 보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나이롱 신자의 앞날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0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이 소개하는 이들이 외형으로는 얼마나 화려하고 대단한 신앙인으로 활동을 하였습니까? 선지자처럼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그 외에도 많은 능력을 행하였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주님과는 상관없는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가 붙은 것입니다.

나이롱 환자가 있지 않습니까? 아프지도 않으면서 공갈, 보험금 혹은 그냥 휴가 등의 목적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을 지칭하는 은어(隱語)입니다. 80년대 초반에 유명 정치인들이 나이롱 환자 흉내를 내며 병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하고, 감옥에서도 편하게 생활하는 사람을 나이롱 죄수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권력형 비리 정치인들이 나이롱 환자, 나이롱 죄수의 주인공이라 할까요?

여기서 파생된 나이롱이 교회에도 들어와서 나이롱 신자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지금까지 자연스레 나이롱 신자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신앙심도 없으면서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셈이지요. 사실 우리 주변에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의 행적은 없이 적당히 흉내만 내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미국 뉴욕 시의 맨해튼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broadway)라는 유명한 길이 있습니다. 넓은 길이란 뜻입니다. 그 길이가 무려 200km로서 여기가 이렇게 유명한 것은 볼 것 즐길 것이 수도 없이 많아 사람들의 정신을 홀딱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유명한 금융가 월스트리트가 있고, 최첨단 패션을 자랑하는 고급 옷 상점들이 즐비해서 세계의 멋쟁이들이 모여들고, 24시간 상영되는 포르노 영화관을 비롯하여 도박장 유흥가 뮤지컬 공연장 등이 즐비하여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즐거움을 주는 곳입니다.

그러다보니 술과 마약과 도박에 찌든 사람들, 향락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많고 또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 요란하고 시끄러운 곳입니다. 이런 곳에 출입하기 위해 브로드웨이를 운행하는 사람들은 주로 믿음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신앙인이 브로드웨이를 운행할 때 그 길을 나이롱 신자의 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노라 하면서, 교회에서 열심을 품고 있는 것처럼 하면서도 한 발은 세상에 두고 있다면 나이롱 신자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만나지 못하여 미지근하여 살아만 간다면 어쩌면 교회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나이롱 신자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2. 혹 내가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를 달고 있습니까?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웃을 향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면 이는 예수님의 사랑이 심령에 없는 증거요, 신앙의 감각이 무디어진(04:19) 나이롱 신자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에 대하여 다양하게 소개합니다.

작은 믿음(08:23~27), 큰 믿음(07:01~09), 행함이 있는 믿음(02:22), 행함이 없는 믿음(02;17,26) 연약한 믿음(14:01), 굳은 믿음(02:05), 거짓된 믿음(24:24), 거짓 없는 믿음(딤후 01:05) 등으로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믿음들이 수시로 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큰 믿음이던 작은 믿음이던 그대로 고정되어 있다면 차라리 좋겠지만 믿음은 환경 따라 좋은 쪽이던 안 좋은 쪽이던 변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기로 건강진단을 받는 것처럼 내 믿음이 건강한지를 확인하기 위한 믿음의 검진을 하여야 합니다. 나이롱 신자가 되어 감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하여야 합니다. 말씀이 도무지 내 심령에 안 들어 올 때가 있습니까? 도무지 기도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까? 찬양의 입술이 도무지 열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까? 온갖 잡념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교회에 가는 것이 그렇게 싫어질 때가 있습니까?

믿음의 위기가 왔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권태기가 왔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 한다면 나이롱 신자의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이 안 들어온다고 심령의 문을 닫고 살아야 합니까? 기도가 안 되니 기도를 중단해야 합니까? 찬양이 안 나오니 찬양 대신 유행가를 불러야 합니까?

 

바로 이때가 더욱 말씀이 필요한 때이고, 더욱 기도가 필요한 때이고, 더욱 잡념을 떨쳐버려야 할 때이고, 더욱 교회에 갈 때입니다. 더욱 성령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받으면서 나는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사람은 아닌가를 돌아보십시오. 지금은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를 떼어내야 할 때임도 잊지 마십시오.

 

현대인을 병들게 하는 철학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상대주의, 실리주의, 편리주의로서 이 가운데 편리주의가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이제는 며칠씩 걸리는 거리도 몇 시간이면 갈 수 있고, 하나를 만드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이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만들 수 있고, 많은 부분을 기계가 대신해 주면서 스위치만 누르면 웬만한 것은 척척 해결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편리주의가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옴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이런 것에 빠른 속도로 길들여져 간다 할까요. 좋은 현상입니다만 그러나 이런 편리함이 사람도 사회도 병들게 합니다. 참고 기다려야만 하는 일에 견디어 내지 못하고, 불편하고 힘든 것은 기피를 하는 바람에 소중한 정성이나 사랑, 그리고 끈끈한 정의 인간미를 상실하였습니다. 돌아보면 이런 편리주의가 우리의 인격이나 믿음까지 성숙시키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훈련과 연단 속에서 이루어져 갑니다. 다만 신앙인은 건강한 믿음생활을 위해서 편리주의를 경계하여야 합니다. 편리주의에 익숙해지면 십자가보다는 편리함을 먼저 생각하고, 십자가 없는 믿음생활, 희생이 없는 사랑, 헌신이 없는 예배를 생각하게 됩니다. 편리주의의 믿음 때문에 자신이 영적 감각이 없는 나이롱 신자가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3.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는 죽음입니다.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요, 20절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말로만 믿는 것이지 실제로는 믿지 않는 나이롱 신자라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야고보는 선행을 제외한 체 그저 말로만 믿는 지식적인 믿음, 나이롱 신자의 믿음에서 벗어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결코 자기도 구원하지 못할뿐더러 생명구원의 역사도 전혀 일으키지 못하고, 마지막엔 하나님 앞에서 엄한 책망, 무서운 심판을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꼬리표라는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물건과 심지어는 사람에게도 붙이기 때문입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 붙여진 꼬리표가 성공과 실패를 결정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너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라는 꼬리표를 붙여 줘 봅시다. 분명 그 사람은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고 실패의 삶을 살 것입니다. 반면 너는 잘 할 수 있어. 라는 꼬리표를 붙여줘 봅시다. 그때는 얼마든지 능력자로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심리학에 라벨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붙여진 꼬리표대로 변하는 습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가령 아이에게 너는 항상 꾸물거린다. 라고 말하면 아이는 정말로 행동이 느려지고, 반대로 너는 인사를 잘하는 구나. 하면 정말 인사를 잘 한다고 합니다.

 

말을 심하게 더듬는 한 소년이 있습니다. 말을 더듬는 일로 마음이 상해 괴로워 할 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너무 똑똑해서 그런 거야. 너처럼 똑똑한 아이의 머리를 네 혀가 따라오지 못해서 그런 거야. 이러한 어머니의 칭찬과 격려 덕분에 소년은 어느새 학교에서 자신감이 충만하여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시끄러운 아이가 되었습니다.

키는 작았지만 야구팀의 투수로, 아이스하키 팀과 골프 팀의 주장으로 맹활약을 펼치다 학업을 마치고는 1960년 미국 굴지의 제조업체인 GE의 말단 사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해 1981년 최연소 CEO의 자리에 오르고, GE를 시장가치 120억 달러에서 4500달러 끌어올린 최고의 CEO가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미국의 잭 웰치의 이야기입니다(Jack Welch, 1935,11,19~).

 

여러분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어떤 꼬리표를 붙이고 나가시겠습니까? 김삼일 맨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일터로 나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나는 김삼일의 나이롱 신자라는 꼬리표로 하루를 살겠습니까? 만에 하나 김삼일의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를 달고 산다면 그 꼬리표가 영적 죽음으로 안내할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행함이 없는 믿음, 생산력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 길이가 무척 짧습니다. 백년 안팎으로 사는 정도입니다. 그마저도 시간이 많이 흘러갔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가운데 각자가 사람들에게 각인 된 이미지가 있습니다. 좋은 이미지든 혹은 안 좋은 이미지든 말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져 달라고 해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 생활 스타일, 내 모습에서 풍기는 인격이 상대에게 각인이 되어 그것이 나를 향한 꼬리표가 됩니다. 때문에 내가 나이롱 신자의 꼬리표를 계속 달고 산다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우리나라 박근혜 대통령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 대통령이 되었기에 독재자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떼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계속 독재자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좀 과감하게 살릴 것은 살리고 버릴 것은 버립시다. 나이롱 신자 소리 듣는 거 싫잖습니까? 오늘부터 당장 떼어 버립시다. 그리고 믿음의 명예를 우선순위로 회복합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채널 A의 먹거리파일 프로그램 있지 않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인데 먹거리에 관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비위생적이며 가짜 음식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음식에 대한 많은 잘못이 시정되고 있습니다. 나이롱 음식, 가짜 음식에 대한 분별력을 높여주기에 국민의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이 되듯 우리의 믿음도 나이롱 신자를 깨닫고 새롭게 변화를 받음으로 인해 쓰임 받는 일꾼이 됩니다.

 

1991년 이후 지난 20년간 미국 성인의 신앙생활에 관한 여론조사 데이터가 있습니다. 그 조사에 의하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구원받기를 바란다는 사람은 1999135%에서 201140%로 늘어났지만 성경은 전적으로 정확하다고 믿는 이는 46%에서 38%, 신은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이는 74%에서 67%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결혼식과 장례식 말고는 지난 6개월 사이에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는 사람은 24%에서 37%로 늘었다고 하니 이는 분명 나이롱 신자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합시다.

 

0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