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통일왕국이라는 대업을 이룬 배경에는 유명한 장수들도 장수이거니와 이보다는 다윗의 마음을 잘 헤아려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하 23:14~17절에 보면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 할 때의 일로서 블레셋 진영에 들어 있는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이 몹시 마시고 싶었습니다. 지금 당장 물이 없어 갈증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이 우물물이 먹고 싶었던 것은 아마 어렸을 때의 옛 추억이 들어 있는 고향의 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탄식을 하자 다윗 곁에 있던 세 용사가 블레셋 진영에 뛰어 들어가 싸움을 벌이면서 그 우물물을 무사히 떠옵니다.
얼마나 기쁩니까? 그러나 다윗은 이 물을 먹지 않고 하나님께 바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 하리이다(17). 이는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 입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의 일화이지만 다윗을 따랐던 사람들의 충성심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전도자 바울의 사역에도 이와 같이 목숨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에 성공적인 전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롬 16:04절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소개하는 모습을 볼까요?
롬 16:0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오늘 말씀에는 바로 그와 같은 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에바브로디도라는 인물입니다. 그가 어떤 인물이며, 어떤 일을 하였는지를 오늘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빌립보교회가 바울에게 파송한 에바브로디도. |
25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에바브로디도의 축약형은 에바브라입니다. 이 에바브라는 골로새교회(골 01:07; 몬 01:23) 출신의 에바브라와는 구분되는 빌립보 출신 에바브라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그 이름으로 보아 이방인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어원적으로는 아프로디테라는 미의 여신의 이름에서 에바브로디도가 나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행 16장에 의하면 바울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복음의 무대를 옮겨 온 첫 선교지가 빌립보입니다.
유럽의 첫 선교지에 처음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바울과 자색 옷감장사 루디아와 만남, 귀신들려 그 힘으로 점하는 여종을 고쳐 준 일, 그로 인해 고소를 당하여 빌립보 감옥에 수감 된 일, 이 일로 인해 빌립보 감옥의 교도관이 회개하는 일 등을 거치면서 마침내 빌립보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는 전도자와 성도로서 이렇게 아주 특별한 관계가 맺어져 영적으로 안부를 주고받으면서 교제하는 사이입니다. 이런 가운데 바울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 이스라엘에서 소송을 당하여 로마에 재판을 받으로 왔다는 소식을 빌립보교회가 들었습니다.
그러자 빌립보교회는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바울을 위해서 뭔가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만 거리가 너무 멀다보니 마음뿐이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침내 빌립보교회가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교인 중에 한 사람을 대표로 선정하여 로마 감옥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바울을 위로하고 선교헌금도 전달하는 일을 맡기는 아주 중요한 일에 에바브로디도를 적임자로 뽑았습니다.
바울의 안부를 묻고 섬기는 일에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교회의 대표로 선정 되었다는 것은 그 만이 지니는 나름 믿음의 강점이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 대표자로서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만나기 위해 로마로 나섭니다.
요즘은 교통이나 통신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빌립보에서 로마까지 비행기로 가든지 아니면 자동차로 갈 수도 있고, 전화 한 통으로 소식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약 2천 년 전 빌립보에서 로마까지 가려면 교통편이 원할 한 것도 아니어서 마차를 타고가든지 그럴 형편이 안 되면 직접 걸어가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거리가 얼마나 될까요? 걸어서 약 한 달 정도 거리는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먼 거리를 에바브로디도가 걸어서 바울이 있는 로마 감옥에 도착하여 면회를 하고, 안부도 자세히 주고받고, 선교 헌금도 전달하였습니다.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바울은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낸 선교 헌금을 받고는 아주 유용하게 쓰일뿐더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제물이라고 표현합니다.
빌 0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2. 바울의 옥중 뒷바라지를 하다 병이 든 에바브로디도. |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을 면회하고 선교헌금 전달이라는 사명을 잘 감당했으니 여기까지가 에바브로디도의 역할입니다. 이제 빌립보교회로 돌아가서 보고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고 바울의 옥중 뒷바라지를 위해 감옥에서 함께 지내는 가운데 그만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고 맙니다.
에바브로디도가 감옥에서 죽을병에 걸린 것입니다(27). 과로인 것 같습니다. 바울을 도우러 온 사람이 오히려 바울에게 짐 덩어리가 되었으니 이 일로 바울이 근심 속에 빠지고 빌립보교회도 이 소식을 듣고는 충격 속에 빠집니다.
바울을 도우려다 에바브로디도가 죽을병에 걸렸고, 병에 걸렸음에도 끝까지 바울을 도우고 있으니 바울에게 근심거리는 되었지만 얼마나 고마운 사람입니까? 그라고 왜 편한 생활을 왜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사람인 이상 고생도 덜하며 지내고 싶은 마음과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죽음의 병 앞에서 하나님, 왜 나를 이 먼 곳까지 보내 고생을 하게하고, 이렇게 병들어 죽게 하십니까? 라고 원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런 세상적인 불평과 원망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왜 일까요? 아마 그의 심령 깊숙한 곳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신령한 은혜와 평안과 기쁨이 있었을 것이고, 힘들고 아플 때 그의 마음에 찾아와 위로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이런 일꾼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옛날에는 의리나 충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요즘은 조금만 수가 틀리면 떠나고 마는 세상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내 목숨을 내어놓고라도 도와주고 싶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나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을 각오가 있는 그런 분이 있는 것 같습니까? 지금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이 죽을병에 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병들어 누워 있다는 소식을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듣고 걱정할까에 더 염려를 합니다. 이런 상황을 만났을 때 어찌해야 합니까? 선한 일을 하는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니 기도밖에 더 하겠습니까? 바울도 기도하고, 빌립보교회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문제를 풀어 가십니다.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에바브로디도의 건강을 회복시켜주셨는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아직도 필요한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의 일꾼인지는 에바브로디도를 호칭하는 부분으로 알 수 있는데 봅시다.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25).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파송한 에바브로디도를 보면서 진정으로 주님께 헌신된 사람이구나. 이런 사람이 진정한 믿음의 일꾼이며,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구나. 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3. 주님의 일을 목숨으로 감당하는 에바브로디도. |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수고를 바울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일 즉 주님의 일이라고 규정을 합니다. 주님의 일이라면 그 일은 주님께서 보시고, 주님께서 장래에 그 일의 수고를 따라 상급으로 갚으십니다.에바브로디도가 죽을 각오로 일을 함으로 죽을병이 들기도 했지만 바울에게는 옥중 생활이 그만큼 수월하였을 것이며, 또 얼마나 행복하였겠습니까?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아마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을 돕는 일에 빌립보교회 성도들 중 일부가 조금 반대를 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적극적 지지를 안 해 준 사람도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에바브로디도는 이런 사람들을 대신해서 바울의 옥중 뒷바라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이로 보건데 에바브로디도는 남의 부족한 자리에 자신이 들어가서 완전함을 채워주는 사람, 남이 해야 할 일을 대신 맡아서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이해를 시키고, 설득을 하되 사랑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사랑을 심어주고, 열심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열심을 심어주고,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게 믿음을 채워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일을 할 때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앞장서는 경우도 있지만, 더러는 사사건건 비판적이고, 비협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모이기만 하면 항상 시끄러움이 나오고, 문제가 확대되고, 신령한 일들을 혼탁하게 합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이웃에게,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좀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 주는 역할을 하는 분이되기를 바랍니다. 기도가 부족할 때 다가가 기도의 불씨가 되십시오. 충성이 부족하다 느껴지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충성의 돗자리를 깔아주십시오.
결석하는 성도들이 있으면 내가 찾아가서 권면하여 열심으로 믿음 생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 교회의 일해야 할 공간을 보십시오. 상대의 부족함을 원망하고 불평은 하면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 부족한 공간을 채우는 일에 내가 앞장을 서십시오.
에바브로디도의 열정적인 수고를 교회 일에 나 자신으로 비유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죽을 각오로 일을 한다면 어찌 우리 교회가 부흥하지 않겠습니까? 자기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일하는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교회의 양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제부터 에바브로디도처럼 교회의 일을 나의 일 보다 더 중히 여기는 생활로 전환합시다. 교회를 위해서 상대의 부족함을 불평의 시선으로 보지 맙시다.
빌립보교회처럼 우리 교회도 성숙하고 성장하는 모범된 교회가 되는 일에 여러분 모두 믿음으로, 눈물로 동참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내 집안일보다 교회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성도, 내 직장 일보다 교회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도들이 있을 때 부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생명보다 주님의 일을 더 중히 여겼기에 자신의 생명까지 걸어놓고 충성을 하였고, 죽을 각오를 가지고 일을 하였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죽을 각오로 일한다면 부흥이 될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일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교회는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을 위해 혹 이웃 교회 성도들이 와서 충성을 해 준다는 약속을 받은 일이 있습니까? 절대 안 해 줍니다. 내가 에바브로디도처럼 교회를 위해 생명을 걸고 충성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레드우드 국립공원(Redwood National Park)에는 거대한 붉은 나무들이 끝없이 자라는 숲이 있습니다. 비도 잘 오지 않는 곳에서 현재 최고 112m까지 자랐으며 그 나무 둥치가 얼마나 큰지 차가 왕래할 수 있는 터널이 나 있습니다.
나무의 굵기는 20여명이 손을 잡고 둘러서야 하는데 식물학자들이 비도 잘 오지 않는 이런 곳에서 이렇게 거대하게 자라는 나무를 놓고 그 뿌리가 과연 얼마나 깊게 박혀 있는지 궁금하여 조심스럽게 파헤쳐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의 뿌리가 보통나무의 깊이 정도 밖에 되지를 않았습니다.
식물학자들은 이상히 여기고 계속 뿌리를 따라 가 보니 뿌리가 옆으로 뻗어 다른 나무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대한 나무가 뿌리를 깊숙이 내리지 못했어도 강한 바람 앞에서도 굳건하게 지탱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은 나무의 이름을 더불어 사는 나무라고 부릅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들 중 가장 모범적인 교회가 빌립보교회라고 합니다. 이토록 모범적인 교회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일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죽을병에 걸렸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에바브로디도가 이제 빌립보교회로 돌아갈 때 성도들에게 빌립보서를 들려 보내면서 이렇게 권면을 합니다.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에바브로디도는 귀한 일꾼인 만큼 기쁨으로 영접하고, 또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교회에 있을 것인데 그런 분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권합니다. 여러분, 혹 내가 병들어 죽게 된 지경입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그 중심이 하나님 앞에 좋다면 그런 분들이 교회에서 크게 활동을 못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캘리포니아 주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붉은 나무가 서로 뿌리를 연결해 있었던 것처럼, 우리 믿음의 성도들 다 서로 사랑으로 연결합시다. 그렇게만 되면 교회는 든든해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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