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에 1937년에 완공된 금문교(Golden Gate Bridge)라는 유명한 다리가 태평양과 만(灣)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다리는 연간 9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을 한다고 하는데 이 유명한 다리를 건설할 때의 처음 1년 동안에 23명이 높은 곳에서 일을 하다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이런 위험한 일에 대해 기피를 하자 건설회사는 하나의 묘안을 내었습니다.
일을 하는 아래 부분에다 거대한 망을 깔아 놓은 것입니다. 이때부터 일을 하다 혹 실수를 하여 아래로 떨어져도 죽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안전망은 뜻하지 않은 효과를 가져왔는데 공사 진행이 20%나 빨라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떨어져도 죽지 않을 것이라 여긴 일꾼들의 동작이 빨라지고 작업능률이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압박해서 작업효율을 감소시키지만, 안전에 대한 확신은 맘 놓고 일을 하여 작업능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로마서 08장을 대단히 높이 평가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한 개의 반지로 본다면 로마서는 보석이고, 08장은 그 보석의 반짝이는 첨단(尖端)과 같으며(Spener), 특히 31~39절은 08장의 봉우리라고 표현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그 누가 나를 감히 대적할 수 있겠는가? 남은 인생 더욱 복음 전하는 일에 온 몸을 던지겠다고 각오를 합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하나님이 우리의 배경이면 아무도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라는 말씀은 문장 구조상 혹 오해가 되기도 하는 말씀입니다. 만일 이라는 가정법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더 세밀한 번역을 하자면 만일을 빼고 하나님이 우리의 배경되는 일이 확실하므로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 할 수 있겠는가? 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전능하신 분이에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감히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라는 믿음을 가지면 그때부터 이 세상을 담대히 살 수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31절 말씀을 역(易)으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하시면 누가 우리를 위하리요 라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뜻 깊은 말이죠? 루터가 말한 대로 하나님이 나를 대적하시면 그 누구도 나를 돕거나 편들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과 맞설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뜻입니다. 권력, 금력, 과학, 무력들이 사람과는 맞설 수 있지만 하나님과는 맞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하나님과 맞서 보려던 세력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 결과는 모두가 패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의 주관 아래 각 지파의 두령들 열두 명이 가나안 땅을 40일간 정탐 한 후 두 편으로 나누어져 보고한 사건 아시지요(민 13~14장). 먼저 열 명이 보고하기를,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입니다. 그러나 성벽은 높고 크며 그 땅 거민은 거인들이어서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하자 겁에 질린 백성들은 술렁거리면서 모세와 아론을 향해 불평을 막 늘어놓습니다.
그리고는 밤새도록 통곡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민 14:01~03). 원망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을 뻔했는데 왜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느냐? 차라리 지금이라도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라는 패닉상태입니다.
이때 열 두 명의 일원으로 다녀 온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렇게 담대히 외칩니다(06).
민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0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여호수아와 갈렙의 담대한 믿음의 현장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지는 말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외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과연 설 자리가 있겠습니까?
시 118:0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하나님은 우리 곁에 잠깐 있다가 떠났다 하는 그런 분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함께하시고, 지키시며 인도하셔서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분입니다. 이런 사실을 많이 체험한 바울이었기에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를 대적할 수 없다는 이 말씀을 내가 받기 위해서 단 하나 내가 하나님 편에 서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 편에 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이 우리의 배경이면 아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으로서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주님의 그 사랑에서 끊거나 떼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등 이 일곱 가지가 세상에서는 나름 상당히 힘이 있는 것들이지만 주님의 사랑 앞에서는 전혀 통하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안과 밖에서 위협하는 이런 요소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확실히 뒷받침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복음 때문에 굶주리고, 헐벗고, 매를 맞고, 환난과 죽음의 위기를 수없이 당했지만 주님께서 이런 것들로부터 계속 지켜 주셨기 때문에 마침내 승리하였다고 간증합니다.
유대인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나흐만이 쓴 작은 금언(생활의 지표로 삼을 귀중한 내용을 가진 격언) 집이 있습니다. 빈 의자라는 제목이 붙은 책인데(당시 이스라엘 주재 박동순 대사가 한국어로 번역) 그곳에 보면,
나는 믿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아무리 멀리 길을 잃고 방황하더라도 내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내가 변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참으로 헌신하고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보실 때 나는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떠날 수도 떠나서도 안 되는 존재이며, 떠났더라도 다시 돌아와야 하는 존재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맺어진 사랑의 줄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의 생사 문제를 놓고 권력도, 무력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바울의 고백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우리의 행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그 사랑에서 끊어질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요일 0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추운 겨울에 아이들이 강둑에 모여서 연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한 어른이 지나다 보니 눈먼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연을 날리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또 놀려주고 싶은 생각도 들어서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얘, 너는 눈도 보이지 않는데 네 연이 하늘에 제대로 떠있는지 땅에 떨어졌는지 어떻게 아느냐? 그랬더니 이 눈먼 아이가 웃으면서 대답을 합니다. 연은 눈에 안보이지만요, 이 연줄이 이렇게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지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도 세상의 방법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감각으로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 눈 먼 아이의 연줄처럼 나의 영적 감각의 줄을 붙들고 있는 한 두려움 없이 평안하게 지낼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비록 지금 하나님은 내 눈에 안보이고, 내일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 나를 당기고 있음을 믿고 앞으로 전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고 환난과 고난으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려고 무차별 공격을 하나 그럴 때 확신 있게 38,39절을 고백하십시오. 능히 승리합니다.
3. 하나님이 우리의 배경이면 모든 일에 넉넉히 이깁니다. |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말은 신약성경 중 오직 여기서만 언급되는 단어로서 우리가 압도적인 승리를 얻고 있다는 뜻과(Black), 우리는 가장 혁역한 승리를 지속적으로 성취하고 있다(Lenski)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시련도 허락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살다 보면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위험 같은 시련들이 시시각각 우리에게 찾아오지만 그런 혹독한 시련들이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지는 못합니다. 때로는 그런 시련의 요소들이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데 물론 우리 자신의 힘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삼상 17:04~07절에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소개합니다.
삼상 17:0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0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0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0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1규빗 45cm. 2m 80cm 정도를 넘음)으로 장신이었고, 놋 투구와 갑옷을 입었는데 그 무게가 57kg 정도였습니다. 한 마디로 거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준비한 것은 고작 조약돌 다섯 개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조약돌 하나로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남은 돌이 네 개나 되었습니다. 넉넉히 이기고도 네 개가 남았다는 말입니다.
삿 07장에 보면 기드온의 삼백 명 군사가 미디안 군대의 사단 병력을 이긴 기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경우도 삼백 명의 작은 수로 넉넉히 이기고 남았습니다. 여기 중요한 것은 상대가 골리앗처럼 크냐? 작으냐? 미디안처럼 수가 많으냐? 적으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느냐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넉넉히 이기고 남는다는 말로서 문제는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 끊을 자도 없고 대적할 자도 없다는 믿음을 가진 자만이 문제를 풀어 갈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물맷돌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습니까?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구원과 멸망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겪는 시련이나 고통 그리고 아픔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리고 그 시련과 아픔 속에서 나의 믿음이 자라기를 기대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종합병원의 경우 아침 8시를 전후로 의사들이 병실을 회진합니다. 밤새 안녕하십니까.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시고요. 어떠세요. 더 힘들진 않으세요. 등 의례적인 인사말과 함께 환자에게 의사가 머무는 시간은 약 1분 안팎 정도입니다.
이것을 눈 깜짝 회진이라 하는데 아침 회진은 환자의 상태 점검, 수련의 교육 과정 수립 등을 위해 합니다만 그 짤막한 한 1분간의 만남도 환자에겐 힘과 위로가 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일 때가 많습니다. 너는 죄가 너무 크잖아. 너는 과거가 있어서 희망이 없어. 넌 그걸로 끝이다. 넌 재기하기 힘들어. 넌 파멸이야 라고.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의 죄를 사했으며 내가 널 위해 생명을 버렸다. 너는 희망이 있다. 다시 시작하라. 내가 너를 돕겠다. 내가 힘이 되어 주마. 넌 나의 소유라고.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성도는 비록 죄의 법에 사로잡혀 마음의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못했을지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정죄를 당하지 않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주님이 있기 때문이요, 또 26절에서 성령님도 우리를 위해 친히 기도하신다고 했고, 하나님도 우리를 확실히 위하신다고 했으니 삼위일체 하나님의 배경으로 인해 김해삼일교회 성도들은 앞으로도 세상을 든든하게 살아갈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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