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3년 말씀

우리가 어디로 가야합니까?(신 01:19~33)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3. 6. 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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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길에는 속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생 속도는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과 같아서 더욱 빨리 지나갑니다. 그래서 더러는 인생의 나이를 자동차의 속도에 비유하는데 여러분의 인생 세월의 속도는 얼마나 되는 것 같습니까? 제가 세대별로 이렇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10대는 마음은 토끼인데 시간의 속도는 거북이 정도로서 시속 10km쯤 될 거라고,

20대는 토끼처럼 적당하게 달리는 느낌의 20km일 것이고요.

30대는 사슴이 달리는 정도의 속도로서 이때부턴 시간이 느껴지고 피부도 노화 반응을 하나 아직 인생의 참 맛은 터득하지 못한 시기의 30km정도 됩니다.

40대는 타조 속도로 젊음에 대한 마지막 몸부림을 치면서 초조해 하나 뭔가를 제대로 이루지도 못하고 빨리 지나기 때문에 60km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50대는 빨리 달리는 자동차 같아서 어지럽기도 하고, 인생의 참맛을 조금은 알겠지만 제대로 음미하기에는 마음이 급한 70km입니다.

60대는 고속철도가 달리는 것과 같아서 시간의 브레이크를 밟고 싶어 하지만 고장 난지가 이미 오래인데다 그 속도는 80km이상이 됩니다.

70대는 비행기가 날아가는 느낌으로 어지러움을 느끼는 100km이고,

80대는 이제 속도의 개념은 사라지고 인생 자체도 보너스로서 몸도 가누기 힘들고 정신도 혼미한 130km이상 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세월의 속도는 어떻습니까? 모세는 인생을 넉넉잡고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 정도를 말하면서 그 연수를 날아가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90:10). 그래서 조금 나이를 든 사람들은 어떻게든 젊게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써는데 특히 여성들이 더하죠.

이런 분들에게 다가가서 나이보다 실제 모습이 훨씬 더 젊어 보이네요. 해 보세요. 한결같이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를 하는데, 여성들 그래도 속지 마세요. 그냥 립 서비스로 하는 겁니다. 오늘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진로 문제를 제시하는 말씀으로서 우리의 잠깐 지나가는 인생에 적용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 우리가 어디로 가야합니까? 로 정했습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나아갈 방향을 정해 주십니다.

 

21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신명기는 지난 40년간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계명을 재해석, 재정리하여 가나안 입성의 세 세대에게 전달한 설교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 말씀은 광야생활 40년을 마치고 가나안을 바라보는 요단 동편(Trans Jordan)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선포한 메시지입니다. 21절은 모세가 38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을 회고하면서 다시 거론을 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면서 지도자 모세에게 정보원을 먼저 이스라엘에 보내 지형을 정탐하도록 요청을 하였습니다. 모세가 이 일을 선하게 여겨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두 명을 대표자로 선정하여 사십 일간 가나안을 정탐하게 한 일은 우리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이 열 두 명이 사십 일간의 정보원으로의 사명을 마치고 돌아와 보고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 생각들이 두 갈래로 나누어졌습니다. 르우벤 지파 출신 삼무아를 비롯한 열 명의 정보원들은 그 땅이 좋기는 하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장대하고 강대한 민족들이 있어서 정복하기 어렵다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나안 땅을 준비하셨으니 전진을 하자고 확신에 찬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양쪽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은 이내 원망을 하였습니다.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이런 원망은 삶의 방향을 확정하지 못함으로 생긴 절망이요, 자신들 앞에 있는 강력한 원주민의 장애물을 극복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무기력의 탄식입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인생의 방향을 잘 알고 있습니까? 대개 진로가 불투명한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처럼 원망하고, 좌절을 잘 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삶에 있어서 다소의 고난과 시련이 따른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다 쏟아 놓는 그런 원망의 스타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는 했지만 한 때 인생의 방향을 잘 몰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자 의연한 태도로 앞날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11:0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무엇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암담한 현실에서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였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우리가 어디로 가랴? 하며 원망하는 이스라엘에게 반복해서 애굽의 바로 왕의 권세를 물리쳤던 그 하나님의 능력이 앞날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2. 부정적인 말에 동참하면 복된 자리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28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이스라엘은 10명의 정보원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는 우왕좌왕 하면서 우리가 어디로 가랴 하며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모세의 인도를 따라 즉각 가나안에 대한 도전을 하여야 하는데도 꿈이 무너지고 말았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합니까? 낙심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일사분란하게 모세의 지도를 따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전진하여야 할 때에 부정적인 말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현재의 처지가 이해는 됩니다. 왜냐하면 당시 가나안 성읍들은 견고하게 요새화되었고(13:28), 그 성곽이 하늘에까지 닿았다 하니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자기들의 느끼는 대로 행동하면서 원망하는 일을 수없이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망설임과 머뭇거림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대단히 위험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마침내 부정적인 사고는 애굽의 종살이로 돌아가고자 하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게 되며, 수백 년 간 조상 대대로 비전으로 내려온 약속의 땅을 포기하는 자리로 들어갑니다. 이쯤에서 한 번 돌아봅시다. 출애굽과, 홍해를 건넌 사건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아닙니까?

이스라엘 자기들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치 자기들의 능력으로 된 것처럼 여기다 정작 가나안 원주민들 앞에서는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돌아섭니다. 이에 모세는 종살이의 근성, 무기력한 근성, 무기력한 믿음으로는 복된 자리에 들어가지 못함을 40년 전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고합니다.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모세는 망설이면서, 머뭇거리고, 부정적인 말에 동참하다 그만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된 것, 그 부정적인 사고 때문에 11일 후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을 두고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생활을 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거론합니다.

약속의 땅을 뒤로 한 체 광야에서 큰 시련과 고난을 당하다 60만 이상 되는 출애굽 1세대들이 불뱀과 목마름과 땅의 갈라져 삼킴과 전쟁 등으로 죽게 된 역사 말입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가나안이 바라보이는 길목에 돌고 돌아서 왔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그 험난한 광야의 40년 여정을 넘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놓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 우리의 힘으로 된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앞길을 하나님이 인도하실 줄로 믿고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맡기는 일을 잘 하지를 않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대한 검증이 없이 거저 내 힘으로만 하려 하는데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복과 화가 결정됩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 뜻을 믿고 순종하면 복된 결과를 누리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을 거부하고 불순종하면 그 결과로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인생을 살던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결과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자신의 삶이 어떠하며 또 날짜는 얼마나 남았다고 생각합니까? 많이 남았습니까? 그러면 어떤 일을 하면서 살 것입니까? 김해삼일교회에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 주일을 귀히 여기고, 예배를 귀중히 여기고, 교회를 귀중히 여기고, 직분을 귀중히 여기는 삶을 사십시오. 망설이거나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3. 하나님의 인도로 복된 곳에 이릅니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하나님이 먼저 그 길을 가신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의 인도자요 목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양 무리를 인도하는 목자처럼 우리보다 앞서 진행하시면서 우리 인생길을 인도하시며 그 과정 과정마다 당하는 시련과 고난까지도 살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되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인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이 불기둥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능력의 상징으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후에 광야생활 40년간을 거쳐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할 때까지 이 두 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 기둥이란 말은 서로 다른 별개의 두 기둥이 아니라 한 기둥이 이중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14:24).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신적 임재의 표상입니다. 즉 낮에는 서늘한 구름 기둥으로 사막의 뜨거운 햇빛과 열기 및 질병으로부터, 밤에는 찬란한 불 모양(09:15,16)으로 혹한이나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겠다는 증표입니다.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그리고 내 영혼이 쉴 곳은 어디인지를 미리 아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만큼 불안해하거나 좌절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너희를 안으사.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표현하는 말 아닙니까? 히브리말로 한 몸이 되어 행동한다는 뜻으로서 도와주고, 떠받들고, 계속한다는 의미입니다. 40년 전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 있을 때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몇 갈래가 있었습니다.

열하루만 가면 되는 지름길이 있었고, 먼 길을 돌아갈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믿음으로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앞날에 무슨 일을 만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처지를 아시기 때문에 앞서 행하시면서 우리의 복된 삶을 위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디자인하십니다.

 

40: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밤에는 불기둥과 같은 은혜로, 낮에는 구름기둥과 같은 은혜로 인도하셔서 우리의 삶을 복되게 인도하십니다. 우리 함께 인생길을 즐겁게 걸으면서 승리하도록 서로 사랑으로 격려하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201316일 복권 1등에 당첨되지 못했다고 비관한 한 2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인천 계양경찰서에 따르면, 택시 기사인 A씨는 인천시 작전동 지하 원룸에 혼자 살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A씨 수첩에 복권 1등에 당첨되면 살고 1등이 안되면 죽겠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서울 신대방동에서는 23세의 여성이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 1차 시험을 통과했으나 2차 시험에 낙방한 뒤 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없다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서울 여의도에서는 26살의 치과 수련의가 아내가 생수로 저녁을 지으려고 하자 경제도 어려운데 수돗물로 밥을 지으라 하며 다투다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고 10층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이런 책 제목도 있어요. 나는 스물아홉이다. 나는 뚱뚱하고 못생겼다. 나는 혼자다. 나는 취미도 없고 특기도 없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왜 이럽니까?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역경과 어려움을 당할 때 고무공처럼 튀어 오르는 회복탄력성이 없기 때문에 작은 문제를 만나도 유리공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일어서는 정신적인 근성, 어떤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잡초근성이 없으면 이런 결과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불기둥으로,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삶의 길이 보입니다. 승리의 길이 보입니다. 기쁨으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면 걱정과 근심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안아주시는 전능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분과 함께 인생길을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