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질병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예기치 않는 질병들이 창궐하기 때문입니다. 너도 나도 질병에 대비하여 각종 보험에 안 들은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또 보험에 들었으니 병원에 안 가면 손해 보는 것 같아 자주 가게 됩니다. 당연히 의사를 만나게 되는데 여러분, 어떤 사람이 좋은 의사이던가요?
환자와 상담을 하고 난 후에 정확하게 진단해서 약물로 혹은 수술로 적절하게 치료를 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환자는 병을 고치기 위해 의사의 처방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요. 병원을 나올 때면 으레 처방전을 줍니다. 약국에 가서 약을 지으라는 거죠. 약국에서는 또 약사가 몇 가지 수칙을 안내해 줍니다.
그래서 의사, 한의사, 약사는 대충 다음과 같은 지시 사항을 내립니다. ①육류(鷄, 豚)를 금하라. ②술과 담배를 금하라. ③짜게 먹지 말라. ④심한 운동을 하지 말라. ⑤정신적인 충격을 피하라. ⑥너무 걱정을 하지 말라. ⑦잠을 푹 자라.
우리 모두 다 잘 아는 기본적인 상식들로 약을 먹으면서도 이 수칙들을 그대로 지키려고 신경을 쓰다 보니 더 골치가 아프고 몸이 시달립니다. 처방이 복잡하면 오히려 환자가 시달리게 되는데 병원이나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보면 매번 약 봉지에 비슷하게 적어주는 글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식후 30분에 먹으라는 겁니다.
누가 정해 놨는지 모르겠지만 밥 먹고 금방 먹으면 괜찮을 텐데 꼭 식후 30분을 지키라고 하니 기다리다가 못 먹고 넘어갈 때 많습니다. 그래도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금하는 원칙이나 처방전 수칙을 되도록이면 지켜야 건강이 회복됩니다.
하나님께서 로마서에서 인간을 진단하셨는데 그 결과는 모두가 다 죄인이며, 그 죄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이라고 하십니다(롬 03:23, 06:23). 다행히도 그 진단에 대한 구원의 처방전을 안내해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하나님의 구원 처방전. 이렇게 정하였습니다.
1. 구원에 대해 크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①시간적으로 오래 믿어야 되는 줄 아는 사람들. 선생님 구원받았습니까? 라고 물어 보면 저는 아직 멀었어요. 교회 나간 지 채 2년도 안 되었는걸요.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나 구원은 시간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②깨달음이 구원인 줄 아는 사람들. 이것은 세칭 구원파라는 이단이 범하는 오류로서 이들의 소위 구원관은 지도자 권신찬 유병언의 경험에 근거를 둡니다. 그들은 오랫동안의 종교 생활에서 확신이 없었기에 기성 교회 신자들도 다 자신들 같을 것이라 단정하고 모든 신자들은 예배, 헌금, 직분, 주일성수 등의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런 것에서 해방을 받는 것이 구원이라 가리킵니다.
이들의 소위 구원관은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 예수님의 보혈로 자신의 죄가 단번에 용서받은 것을 깨달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집회 타이틀은 항상 거듭 남의 비밀, 죄 사함의 비결, 이런 식이죠? 그러나 그들은 깨달음만을 강조하였지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는 일이 빠져 있습니다.
요 0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③행위로 구원받는 줄 생각하는 사람들. 많은 종교들과 심지어 유대교 내에도 이런 식입니다.
마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구약시대의 유대인들도 구원에 대해 매우 복잡한 것으로 오해를 하였습니다. 계명을 지켜라,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라, 길을 많이 걷지도 말라. 부터 남자들은 매년 일차씩 성지 순례를 하여야 된다는 규정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하나님이 주신 명령도 있고 사람들이 모여서 연구해 만든 유전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에 대하여 이런 복잡한 절차들을 거치라고 하셨다면 저도 여러분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너무 힘드니까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처방은 오직 하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지 그 어떤 다른 조건은 없습니다.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이며 여기에 더 보탤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는 이 진리의 복음이 너무 쉬우니까 사람들은 오히려 안 받아들이고, 또는 하찮게 생각하며, 오히려 소홀히 여깁니다. 구원이 그렇게 쉬운 줄 아십니까? 그런 공짜 구원이 어디 있습니까? 구원을 위해서는 고생도 해야 하고 선한 행동도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라고.
그러고 보면 인간이 얼마나 간사합니까? 어려우면 어려워서 못 믿겠다, 쉬우면 쉬워서 못 믿겠다. 하니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떻게 비위를 맞춰야 믿겠습니까? 참으로 인간은 변덕쟁이 입니다. 어려우면 어렵다, 쉬우면 쉽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간단한 구원의 길을 우리는 감사하며 삽시다.
2. 인간에게 구원의 처방전이 있습니다. |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구원의 처방전으로서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났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을 우리에게 구원의 주님으로 보내주셨다는 뜻입니다(고전 01:30). 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은 역설체로서 오직 믿음으로만 의를 받는다는 그런 뜻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의인된 우리는 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들리는 것으로 살지 않고, 환경으로 살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만 삽니다.
무엇을 믿는다고요? 인간 스스로 추구했던 모든 방법과 이론들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제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따르며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였고,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인격의 수준이 어떤지를 따지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믿기만 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너무도 간단하게 믿음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유효하며, 우리가 믿기만 하면 구원의 길로 이끄시어 실패하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지고 완성시켜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에 대한 말씀을 볼까요?
행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믿으면 구원을 받는데 나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내 집도 함께 구원을 받는다는 프리미엄이 붙어 있습니다. 대단히 놀라운 말씀 아닙니까? 아직까지 가족들이 믿지 않는 분들 낙심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잘 믿는 아내로 인하여 믿지 않는 남편이 거룩하게 되어 짐을 성경은 약속합니다(고전 07:14). 그런 의미에서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권 안에 들어온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되는 구원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말씀 앞에 우리는 그대로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더러는 명의를 찾는데 명의가 누구입니까?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잘 치료하는 사람입니다. 서툰 의사가 복잡하지 사실 명의는 하여간 복잡하지 않으며, 좋은 선생님은 항상 쉽게 가르칩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심령의 죄악을 치료하는 명의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요, 선지자 중의 선지자이므로 구원의 길을 복잡하지 않게 딱 하나 믿으라고만 하십니다. 얼마나 명확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무엇인지 알면 예수님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며 신앙생활은 정상 궤도에 올라선 것과 같은데 대부분이 구원의 키(Key)가 되는 믿음에 대하여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 0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석가모니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모하멧을 보냈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주셨으니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신 그분을 믿어야 구원에 이르며,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곧 십자가의 죽음인데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자, 완전한 구원자, 최종적인 구원자라는 사실이며 유일한 구원자란 비교할 만한 다른 존재가 없다는 말입니다.
3. 구원받은 자의 생활을 보겠습니다.(눅 19:01~10) |
눅 19:0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눅 19:01~10절에 의하면 삭개오는 부자요 세리장으로서 그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들을 시간대 별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0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관심을 가졌습니다.
03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예수님 만나는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0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만일 삭개오가 그냥 돌아갔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그는 키가 작은데다 많은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예수님을 보기 원하는 그 마음 때문에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이런 행동이야말로 난관을 극복하는 열정 아닙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보기 위하여 자동차 위에 올라가 본 일이 있습니까? 꼭 봐야 할 일이라면 그런 비상수단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 여겨지는데 그러고 보면 삭개오 이 사람 대단합니다.
05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삭개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05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의 심령에 주님께서 들어오시기를 원하심을 기억하십시오.
0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가 반응하는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막연한 관심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데서 부터 출발했지만 자기의 이름까지 부르면서 가정에 심방을 오시겠다고 하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즉시 삭개오는 예수님의 일행을 기쁨으로 모시고는 극진한 만찬을 준비하여 나눕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삭개오의 심령이 열려서 구원의 주님을 알아보고 영접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닌 햇수가 제법 많이 지나가도 이런 영적인 일들이 잘 안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즐거움으로 마음을 열어야겠는데 이리 저리 재면서 계속 망설입니다. 뭔가 믿기는 해야겠는데 안 믿자니 벌 받을 것 같고, 믿자니 거추장스러워 주일 낮에만 겨우 교회에 나오는 분,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이런 분은 흔들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삭개오가 주님의 일행을 모시고 집에 들어가서 만찬을 나눌 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말을 하였을 것 갔습니까? 많이 수군거렸을 겁니다. 교회도 처음 나오고, 예수님을 처음 믿으면 수군거리는 것이 많이 있게 마련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시부모도, 자식도, 친구들까지도 모두가 수군거립니다. 지금 삭개오는 많은 사람들이 계속 수군거리고 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예수님과 더불어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은혜가 가정에 넘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08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주님 내가 지금까지 양심을 어기면서 나만 살겠다고 욕심을 부리며 쌓은 것들을 보십시오. 절반을 구제헌금으로 내 놓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이런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도둑과 같은 자신의 모습, 불신앙적인 모습을 깨닫고 그런 삶에 대하여 종지부를 찍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회개가 뒤따라오되 먼저 호주머니부터 회개를 하기 시작하여 모든 생활 영역으로 이어집니다. 진정한 회개는 물욕을 비웁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어떤 학생이 큰아버지 회갑 날 회갑을 축하드립니다. 하고 인사를 해야 하는데 회갑이라는 말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큰아버지, 육갑을 축하드립니다. 그랬대요.
또 어떤 분은 친구의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문병을 갔는데 식물인간이라는 말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드님이 야채인간이 되어서 어떻게 하지요? 하고 위로의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구원의 길에 들어온 믿음의 가족들은 이런 세상의 인사법보다는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끼리의 인사법을 나눕니다. 이 시간 이렇게 나누시기 바랍니다. 천국 백성 되었음을 축하합니다. 김해삼일교회 가족 되었음을 축하합니다. 믿음의 길을 끝까지 잘 걸어갑시다. 내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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