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부흥이 잘 되지 않는 2천여 교회를 대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조사하여 발표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 사업을 할 돈이 없어서, 우리 교회는 인재가 없어서, 우리 교회는 지도력이 없어서 부흥이 안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하는 목사님이 면밀히 분석하여 얻은 결론은 부흥이 되지 않는 2천여 교회가 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도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모험심과 아이디어 부족이었다고 합니다.
1492년 당시에 지구가 둥글다는 학설이 유행할 때 아무도 지구가 둥글다는 확증을 나타내 보이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때 이탈리아의 탐험가인 콜럼버스(Columbus, 1451~1506)가 나서서 이렇게 외칩니다.
대서양을 횡단하면 반드시 육지가 있는데 하나님은 이 큰 목적을 위하여 만인 중에서 나를 택하셨다.
그는 이 원대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포르투갈 왕을 방문하였고, 스페인 왕을 방문하였으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고 겨우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1492년 8월 3일 3척의 배에 121명의 선원을 싣고 바로스 항을 출발하였습니다. 그의 출발도 모험이지만 신대륙을 발견하기까지의 여러 차례의 고난 속에서 하루는 선원들이 콜럼버스를 물속에 집어 던지려는 폭동까지도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콜럼버스는 굳센 믿음을 가지고 모험을 강행한 결과 신대륙의 발견자요, 성공자로 온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모험은 교회를 굳건히 세우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의 생명운동을 통하여 김해삼일교회를 세우는 일에 사명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명의식을 가지십시오. 이런 교회관으로 중단 없는 생명운동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생명운동에는 반드시 대적자들이 끼어듭니다. |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하면 먼저 사탄이 외부의 세력을 이용하여 교회와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이런 사탄의 흔들기 전략에 교회나 성도들이 결코 후퇴하거나 중단됨이 없이 신앙의 전진을 계속함으로 복음은 더욱 왕성해집니다. 그러나 사탄의 세력은 할 수만 있다면 생명운동을 중지하기 위한 온갖 믿음의 회유를 하는데 만일 이럴 때 생명운동을 멈추면 오히려 교회와 성도는 힘을 잃고 무기력하기가 쉽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령이 살아 있으니 대적자들이 끼어드는 것이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니 사탄의 시험이 따르는 것 아닙니까? 성도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영적 생명을 잃은 자에게는 사탄의 간섭이 결코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시절 사탄의 박해는 크게 두 가지로 반복을 하였습니다.
①육신적인 고통을 가하는 일입니다. 성도를 감옥에 가두고, 때리고, 고문하는 등의 육신적인 고통을 주는 박해입니다. 심하게는 죽이기 위하여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게 하고, 화형을 시키고, 십자가에 메달아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②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게 하고, 사랑이 식어져서 성도들끼리 서로를 미워하게 하고, 다른 가르침이 나타나서 분파가 되고 이단이 출현하는 일, 말입니다.
이런 육신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의 박해는 기독교의 오랜 역사동안 계속되어 왔는데 사도행전은 이 두 가지의 박해를 반복적으로 기록합니다. ①육신적인 고통(04:01~22), ②정신적인 박해(05:01~11), ③육신적인 고통(05:17~42), ④정신적인 박해(06:01~06), ⑤육신적인 핍박(06:08~07:60), ⑥정신적인 핍박입니다(08:18,19).
이렇게 사도행전에는 04장~08장까지 예루살렘교회가 성장할 때 이 두 가지의 박해가 되풀이 되고 있었으며 그런 가운데 교회는 계속 성장해 갔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박해를 잘 알아서 대처해야만 하는 것은 교회가 흔들리는 것을 기뻐하는 자가 사탄이며 반면 안타까워하시는 분은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감금과 위협을 당하면서도 위축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할 때 생명구원의 역사가 크게 나타났습니다. 교권자들, 공회원들은 이렇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남을 막을 수가 없고, 기독교로 인해 유대교가 점점 위축되자 유대교를 지키기 위해 사도들을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 새.
생명운동의 대적자들은 사도들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복음의 원천 봉쇄 작전을 펴고 있는데 왜 이런 신앙의 박해를 하는 겁니까? 한 마디로 교권자들의 기득권을 유지 때문입니다. 기득권에 대한 집착은 편견을 낳고, 그 편견은 자신들의 영적 시야를 가려서 마침내 생명운동의 걸림돌이 됩니다.
세상에는 초대교회 시절처럼 아직도 복음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이슬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기독교를 함부로 박해를 하며, 기독교인의 생명을 예사로이 해친다는 소식을 듣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에서 사도들이 직면한 상황이 어떠합니까? 교권자들은 사도들을 시기하여 감옥에 가두고(18),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히 금하는 때입니다(28).
3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2. 생명 운동에는 복음의 협력자를 붙여 주십니다. |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 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지금 사도들은 자신들의 목숨 문제가 걸린 중요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23절에 의하면 교권자들이 사도들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워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공회원들의 무법한 횡포에 한 사람이 제동을 걸고 나섭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이 사람의 이름을 가말리엘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가말리엘 앞에 바리새인이라는 신분을 추가해서 밝힙니다. 가말리엘에게 바리새인 신분을 밝히는 이유는 같은 공회원이면서 상류층을 형성하는 사두개인들의 교리에 정면 반박하는 바리새인들의 대표라는 의미입니다.
이 가말리엘은 유대인 율법 학자로서 위대한 랍비 힐렐(Hillel)의 손자이며, 사도 바울의 스승이기도 합니다(행 22:03). 누가는 가말리엘에 대하여 계속 소개하기를, 율법 교사이고 국민 전체에게 존경을 받으며, 그의 학식과 덕망을 아무도 따를 자 없다.
이 가말리엘의 판단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던지 그 반대파인 사두개인들도 그 의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일을 만날 때 가말리엘이라는 율법학자를 등장시키는 비상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 중요한 일들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곤경에 처할 때 역시 비상적인 하나님의 방법을 동원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한 사탄의 어떤 공격도 생명 운동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은 복음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진리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가말리엘이 어떻게 문제를 푸는 지를 봅시다.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가말리엘이 그 까다로운 공회원들, 교리적으로 자주 충돌하는 유대인 실력자들을 능히 설득을 하여 사도들의 목숨을 구하는 현장을 40절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단 사도들의 생명은 구명되었지만 공회원들은 다시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을 하고는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엄한 협박을 합니다. 견뎌내기가 힘들 정도의 채찍질을 당하는 사도들, 아마 공회원들이 너희들 안 죽이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알아라.
그런 의미의 채찍질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공회원들이 사도들에 대해 격분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건데 예, 하나님은 생명 운동이 진행되는 현장을 외면치 않고 돌아보시되 비록 고난의 현장에 있을지라도 서서히 풀어 가십니다.
시 118:0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0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3. 중단 없는 생명운동을 하여야 합니다. |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 하니라.
고난의 환경 속에서도 생명운동을 쉬지 않는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살이 찢어지도록 맞아도 기쁘고, 몸이 상하여도 눕지 않고 더 뜨겁게 기도하고 전도했던 용사들입니다. 스데반은 목숨을 빼앗겼고,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고, 야고보는 헤롯의 칼에 죽었고, 바울은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중단 없는 생명운동을 하는 사람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믿음의 선진들은 능욕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고, 오히려 능욕을 받으면서 믿음은 더 자랐으며 예루살렘교회는 더 부흥하고 강해졌습니다. 생명의 위협과 심한 고통의 현장에 놓일수록 쉬지 않는 기도, 쉬지 않는 예배의 모임을 앞세우는 것은 이 기도와 예배가 바로 생명운동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아무리 풍성한 말씀의 양식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오히려 신앙의 교만 병에 걸려 말썽꾼으로 등장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만일 생명운동, 복음운동을 중단한다면 당장 신앙생활의 마비현상이 나타날 것이며 자칫 사탄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임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부터입니다. 사탄과의 전쟁도 지금부터이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안일함의 태도를 깨뜨리는 것도 역시 지금부터임을 아십시오. 우리의 영의 운동, 중단 없는 생명운동은 바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혹 예수님을 믿고 난 후 폭풍우가 몰아치면 믿음의 새싹이 돋아나기 위한 징조로 받아 들이십시오. 믿음생활은 일단 믿겠다고 결심했으면 죽어도 믿는 것이고, 교회에 나오겠다고 작정했으면 비가 오나 눈이오나 나와야 합니다.
우리 교단에는 세례 받기 6개월 전에 행하는 학습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 제도는 성경에도 없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오직 한국 교회에만 있는 것인데 우리교회도 적용을 합니다. 어느 나라이든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하면 즉시 세례를 주는데 왜 번거로운 학습 제도를 한국 교회에서 계속 시행을 합니까?
그 유래는 서양 선교사들이 처음 우리나라에서 선교할 때에 한국 사람들은 너무 변덕이 심했기 때문에 만들었습니다. 믿겠다고 약속하고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 한 번 교회 나왔다가 아니면 몇 번 나왔다가 그만 두는 사람들, 하여간 믿는데도 변덕이 심했기에 오죽하면 학습 제도를 만들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믿음의 자리, 생명 운동의 자리로 내가 먼저 가야 합니다. 가다가 지쳐서 변질되는 자리가 아니라 주님 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변치 않고 걸어가야 할 생명운동의 길을 진행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여러분은 숙주나물의 유래를 아시지요? 옛날 조선시대에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밀어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를 때의 일입니다. 이때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대해 성삼문 이하 여러 집현전 학사들이 죽음으로서 항거하였으나 그러나 그들과 함께 동문수학한 신숙주는 변절을 합니다. 그때부터 여름날 하루만 지나면 쉬어 못 먹는 녹두 나물을 숙주나물이라고 불렀습니다.
눅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42절을 보면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어떤 곳에 있든지 간에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 즉 구주이심을 전하는 일에 올인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이며, 이런 현장이 우리 김해삼일교회 성도의 모습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중요한 생명운동을 쉬지 않는 이 일 때문에 우리의 영이 숨을 쉽니다. 이 생명운동을 성도 여러분의 직장으로, 여러분의 사업장으로, 일터로 옮겨가십시오. 그리하여 복음의 열매를 내가 거두는 복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매력이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즉시 축복의 문이 열리고, 문제가 해결되고, 아프던 병이 떠나고, 안 되던 일이 술술 풀려 나가는데 있지 않습니까? 생명운동을 통하여 이렇게 다양하게 영육 간에 열리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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