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3년 말씀

[종려주일] 나도 예수님의 흔적과 자랑거리가 있습니까?( 갈 06:11~1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3. 3.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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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 목사가 기독교 복음이 금지되어 있는 불교국가 미얀마에서 선교하다 체포되어 17개월 동안 교도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방에 수감을 하면서 발목에 쇠고랑을 채웠기 때문에 발목에 깊은 자국이 생겼습니다. 이후 저드슨 목사가 석방이 되자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의 설교 때문이 아니라 그의 발목에 있는 쇠고랑 자국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백인이 이런 고생을 하면서 전할 때에는 반드시 이 종교에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 복음을 전하는 나 자신 말보다 이런 예수님의 자국을 지녀야 할 것이며 아니면 상징적인 예수님의 자국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무릎과 눈에 기도의 흔적, 우리의 손에는 헌신과 충성의 자국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에서 당한 상처를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 흔적을 없이 하고도 부활 할 수 있지만 오히려 못자국과 창자국을 그대로 지니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도 그런 고난의 흔적을 가지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남긴 말씀 가운데 특별히 17절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생각하면서 나도 예수님의 흔적과 자랑거리가 있습니까? 라는 제목으로 강론하려 합니다.

 

 

  

 1. 바울은 예수님의 흔적을 가졌다고 고백합니다.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사람에게는 다양한 종류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육체에 새겨진 각종 상처의 흔적들, 수술의 흔적들, 인간관계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한 흔적들 등 여러 가지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환경들은 우리에게 이런 흔적들을 안겨주는데 그 흔적들이 때로는 기쁨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이 되기도 합니다. 흔적 즉 낙인(烙印, 스티그마)이 무엇입니까? 이 낙인은 주인의 소유물들에 대한 인정표로서 주로 가축이나 노예들에 대하여 찍는 불도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낙인이 사람에게 해당 될 때는 정말 불행한 흔적으로서 이 불도장이 찍힌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 신분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낙인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자기 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낙인이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반면 유대인들도 몸에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라는 의식으로서의 할례의 흔적을 가지며 또한 그 할례의 흔적을 최고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난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으며(17:12; 12:03) 외국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는 성인이라도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16:03). 또한 유대인들은 할례 받지 못한 외국인들을 향하여 부정한 자, 멸망 받을 자라고 여겨 아예 상종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대교 출신 신자를 놓고 비유대인 출신 신자들이 언젠가 부터는 할례를 부러워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는 몇몇 유대교 출신 신자들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이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일로 인해 죄 사함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님과 관련된 혹 어떤 믿음의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런 믿음의 자랑거리가 있습니까? 바울도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고 고백하는 것은 고대의 낙인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몸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 예수님의 흔적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여러분 나름대로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성경부터 읽어보겠습니다.

 

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고후 11: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우리가 나름대로 짐작해 보면 바울의 몸에는 복음 증거 때문에 가지게 된 특이한 흔적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팔뚝을 본다면 빌립보 감옥에서 차꼬에 채였던 흔적을 볼 수 있을 것이고, 또 그 어깨 언저리에는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을 뻔했을 때에 입은 흉터를 볼 수 있을 것이고, 허리에는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으면서 생긴 깊은 상처를 볼 수 있을 것이고, 특히 태장으로 세 번이나 맞은 흔적은 그 어떤 흔적보다도 고통스런 흔적일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자기 몸의 흔적들을 한 마디로 예수님의 흔적이라고 말하는데 다른 말로 영광의 상처라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자신의 몸의 찢긴 상처나 매를 맞아 흉해진 자국을 볼 때마다 나는 진정 예수님께 속한 종이구나. 라는 깊은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기록한 성경의 서두에서 항상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바울이라고 소개를 하는데 이는 자기의 생각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고백입니다.   14:0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은 믿음생활의 현장에서 혹 어떤 예수님의 흔적이 있습니까? 믿음의 흔적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있다면 그것은 신령한 면에 있어서 대단히 영광스러운 표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인(sign)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자는 십자가만 자랑하며 증거합니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는 세상에 속한 그 어떤 것들이라도 내려놓겠다는 각오이고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증거하는 삶을 우선순위로 삼겠다는 그런 표현입니다.바울의 고백 중 유명한 한 구절이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04:13). , 이와 같은 신앙의 자세를 가진 삶의 스타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 십자가를 증거하는 삶의 길로만 달려갑니다.   십자가가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연약함과 불행의 상징이었지만(고전 01:25) 바울은 이런 불행의 요소를 오히려 자랑거로 여기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흔적을 갖지 않고도 얼마든지 잘 믿을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는데 왜 고난의 흔적을 스스로 택하고 있습니까? , 주님의 종이 되기로 작정한 이상 주님의 고난을 믿음으로 체험하기로 마음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흔적을 가져야겠다고 각오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이 어찌 된 일입니까? , 그것은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를 불행의 요소로 보지만 바울은 그 십자가에서 구원의 은혜와 생명 구원의 역사가 나타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이력서를 보십시오. 유대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랑거리가 많았던 인물입니다. 훌륭한 가문에다 명석한 두뇌, 당시의 최고의 학벌과 정결한 도덕적인 삶 등. 그러나 진리 되신 생명의 주님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는 지금까지의 자랑거리로 여겼던 그 모든 것이 별 무가치 한 것임을 깨닫고 오히려 분토와 같이 여긴다고 했습니다.   03:0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0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믿음의 사람은 세상적 자랑거리의 목록들을 배설물과 같은 것으로 여길 뿐 자랑의 거리로 삼지를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참된 자랑 거리는 삶의 기쁨과 유익을 주고, 헛된 자랑 거리는 삶을 해치는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세상 사람은 잘난 용모를 자랑하고, 미끈한 육체를 자랑하며, 호화로운 액세서리 값비싼 외제 승용차를 자랑하고, 남보다 좀 더 많이 있고 또 안다는 사실을 가는 곳마다 자랑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랑 거리는 그림자와 같은 허상일 뿐 진정 참된 자랑 거리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셔서 그 분이 나의 삶을 주장하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고전 0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02:0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자기의 못남을 알고, 자기의 추함을 알고 자기의 연약함을 알아서 그저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무릎의 사람으로 사십시오. 초대교회 시절 사도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복음이 복음으로서 전달되고 가르쳐 지는 일로서 이 복음 증거와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을 가장 복된 일로 여겼습니다. 복음증거가 좀 힘들지라도 이는 신앙인의 최대의 의무와 특권으로서 바울은 십자가에서 나타난 이 구원의 사랑을 증거 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고전 0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에게는 죄 사함의 기쁨이 있고, 질병에서 치료함을 받으며, 고난과 고통이 물러가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영원한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한 삶과 신령한 은혜의 복을 동시에 누리게 됩니다.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흔적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까? 피하려 하기보단 믿음으로 감당하십시오. 축복의 문, 복음의 문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주후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소집된 니케아 종교회의 때 모인 목사님들의 수가 약 300여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 회의에 참석한 목사님들 중에 오른 눈이 뽑힌 사람, 양손이 다 잘려 버린 사람, 두 다리가 잘려 버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로마의 박해시대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 잡혀가서 고문을 당한 결과로 눈이 뽑히고 팔과 다리를 잘렸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온 몸은 흉터 투성이었는데 그때 성찬식을 집례 했던 감독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님을 위해 박해를 받다가 온 몸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고난의 흔적이요, 주님을 사랑했던 사랑의 흔적이요, 주님 앞에서 칭찬받을 가장 영광스런 흔적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사랑함으로서 영광의 승리를 하였지 않습니까?

 

오늘 고난의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통 즉 못 박힘과 채찍질 당함 그리고 가시면류관과 창에 찔림이 바로 나를 위한 고난이었음을 되돌아보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