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3년 말씀

예배자는 치유의 복을 받습니다.(마 12:09~1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3. 3. 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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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느 한 조사 기관이 미국의 아버지들에게 설문 조사를 하면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조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피곤하다. 돈이 없다. 조용히 해라. 는 말들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부모님 말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공부해라 하는 말이라고 하죠.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IT 강국에다 국민들 모두가 정보화 시대에서 대단히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피곤하다고 합니다. 피곤하다. 돈이 없다. 조용히 해라. 공부나 해라. 이런 소리들 때문에 좀 젊은 분들, 특히 학생들은 무척이나 심적 부담과 피곤을 느끼실 것입니다. 사회는 사회 문제로, 가정은 자녀의 문제로, 부부간은 노후의 문제로 피곤합니다. 모두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 열심히 달리다 보니 아예 피곤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와 자존심 또 체면을 위해 예수님을 걸고넘어지는 일, 제거하려는 일을 꾸미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시는 주님을 송사하며 죽이려고 하는 피곤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 무엇 때문입니까? 자기네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어느 책에서 보니 승부욕이 강한 사람은 운동하는 것이 하등 도움이 안 된다고 합니다. 운동을 안 하는 것이 건강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죠.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사실 운동을 하면서도 남보다 더 잘 하려는 생각만 하게 되니 매사에 꼭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운동하러 왔다가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고 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운동 안하는 게 오히려 좋습니다. 잘못하면 죽기 십상이니까요.

 

성도 여러분, 피곤합니까? 지쳐있습니까? 정말 죽을 맛입니까? 혹 운동으로 풀 일도 있겠지만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피곤한 문제를 풀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풀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풀리는 은혜와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은 예배를 귀히 여기는 사람을 찾아 주십니다.


09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한쪽 손 마른 사람. 고대 교부 제롬에 의하면 이 사람은 본래 석물 공으로서 오른 손을 사용하여 먹고살던 사람이었는데 그만 그 손이 오그라들어 장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06:06절도 그 사람의 손을 오른 손이라고 기록합니다.

회당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예배드리는 날 예수님이 찾아주신 그곳에 이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예배드리는 날을 아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오른 손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요즘처럼 장애인 배려를 받는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계에 대단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른 손을 쓸 수 없기에 어쩌면 생활력을 상실하여 무기력하게 살았을 것이고, 행동도 부자유하여 장래에 대한 희망도 별반 없는 사람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이 회당에 나간다고 특별히 누가 사랑을 해 주거나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는 일이 없었을 터인데도 꾸준히 회당에 나가는 것을 보면 믿음이 좀 좋았기 때문 아닐까요?

 

바로 그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람이 예배드리는 날을 귀하게 여겨 회당에 예배드리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불쌍히 여김 받고, 고침을 받아 살맛이 나고 신바람이 나는 기적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곳은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는 장소로서 그곳에서 우리의 사정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고할 때 하나님도 우리의 모든 사정을 들어주십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전에 나오는 것은 우리가 잘 믿든지 못 믿든지 하나님께서 불러내신 개별 초청 아니겠습니까? 나의 모든 생애를 디자인 하시는 하나님,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불러내었습니다(43:01,03).

그럼에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막아 버린 채 달아나기만 한다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혹 여러분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수확의 열매를 못 맺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어려움이 자꾸만 생긴다면 혹시 나 자신이 지금 하나님과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닌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주위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특별히 손 마른 사람 그러면서도 예배에 정성을 들이는 한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보여주십니다. 성경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같은 무력한 사람들을 돌아보라는 하나님 명령을 자주 소개하는데 그것이 이스라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른 손 마른 장애자를 돌아보시고 고쳐 주셨으니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병을 고친 날이 안식일이므로 시비가 되고 있습니다.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 팔 년 동안 귀신들려 있는 여자를 고치실 때도 회당장이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화를 내면서 시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3: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2. 왜 안식일에 병을 못 고치라고 합니까?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성경은 십계명에 관한 조항을 그렇게 복잡하게 다루지 않고 일하지 말라는 선에서 간단히 다루나(20:08~11) 바리새인들이 적용하는 안식일 조항은 좀 복잡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가리키든 교재인 구전 율법 미쉬나에는 하지 말라는 명령 365조와 하라는 명령 248조 등 613조가 있으며 그 중에 39가지는 안식일에 관한 금기 사항입니다.

씨 뿌리지 말라, 밭 갈지 말라, 추수하지 말라, 단을 묵지 말라, 타작하지 말라, 곡식을 까불지 말라, 곡식을 씻지 말라, 곡식을 부수지 말라, 곡식을 가리지 말라. 반죽하지 말라, 떡을 굽지 말라, 양털을 깍지 말라, 빨래하지 말라, 타격하지 말라, 염색하지 말라, 실 잣지 말라. 실을 뒤틀지 말라, 두 끈을 묵지 말라.

두 실을 맞추어 짜지 말라, 짜인 실을 풀지 말라, 매듭을 짓지 말라, 매듭을 풀지 말라(옷고름을 풀지도 매지도 말라), 바느질 말라, 깁기 위하여 베 조각을 찢지 말라, 노루를 잡지 말라, 죽이자 말라, 동물의 껍질을 벗기지 말라, 껍질을 소금에 담그지 말라,

가죽 만드는 일을 하지 말라, 머리털을 밀지 말라, 머리털을 깍지 말라, 두 글자를 쓰지 말라. 두 글자를 쓰려고 다른 글자를 지우지 말라, 건축물 짓지 말라, 부수지 말라, 망치질하지 말라, 불이 꺼져 있으면 켜지 말고 켜져 있으면 끄지 말라, 이사하지 말라.

 

이 규례대로 한다면 죄인 아닐 사람이 없을 것이며 결국 이런 것들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저것 많은 조항을 덧붙여 놓은 것이지요. 오늘 말씀도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 모로 의논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10절의 안식일 지키는 문제를 구전 율법으로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원문에서 엿보다는 뜻을 지니는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올무에 걸려들기만을 관찰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고발하기 위하여 말과 행동 하나 하나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죄를 범하도록 조건을 만들어 놓고는 편견이라는 거울을 통해 보고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오른 손 마른 장애인을 만난 것입니다. 아마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같아요. 옳다구나 저 사람을 보고는 예수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오늘 잘 걸렸다. 잘 걸렸어.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대충 보고 넘어가야지 걸고넘어지겠다는 듯이 예민하게 보면서 눈에 쌍심지를 돋우지 마십시오. 그렇게 보면 덕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문제로는 한발 자국도 양보를 하지 않고 바리새인들의 예상대로 그 오른 손 마른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병 고치는 일을 안식일에 아예 하지 말라는 겁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고, 당장 고치지 않으면 죽게 될 사람조차 그만 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당장 고치지 않아도 죽지 않을 사람 곧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손 마른 사람 같은 경우에 고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치료하신 예는 한 두 번이 아닙니다. 01장에서 귀신들린 사람과 베드로의 장모를, 03장에서는 손 마른 사람을, 05장에서는 베데스다 못 가에서 38년이나 누워 있던 환자를, 09장에서는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13장에서는 18년 동안 귀신들린 여자를, 14장에서는 고창병 들린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 일곱 가지의 경우 역시 모두 며칠 더 지나고 나서 고쳐 주어도 괜찮을 병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안식일에 고치십니까? 예수님은 상대방의 입장, 환자의 차원에서 사람을 보셨습니다. 안식일에 보셨으면 안식일에, 월요일에 보셨으면 월요일에 그러니까 요일에 상관없이 고치신 겁니다. 선한 일도 마음먹었으면 그 즉시로 해야지 내일 해야지 하고 돌아서면 못하게 되고 때로는 천추의 한으로 남게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13: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한시바삐 풀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그 뜨거운 마음은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으며 안식일이어서 안 된다는 관습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시비가 없도록 타협적인 마음을 용납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환자를 매임에서 풀어 주어야겠다는 예수님의 깊은 사랑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하며, 사랑을 실천으로 옮길 때는 항상 수고와 함께 그에 따르는 곤경도 있음을 미리 아는 것이 좋습니다.

 

 

 3. 손 마른 자를 향해 두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06:0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서거늘.

 

주님께서 손 마른 자에게 치료의 방법으로서 두 가지의 일을 명령하시는데 잘 보십시오. 일어나라(03:03; 06:08). 손을 내밀라. 입니다. 첫 번째 일어나라는 명령은 쉽게 순종할 수 있는 일로서 손 마른 자는 회당 안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손을 내밀라는 명령은 손 마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로서 원문에는 정확하게 손을 펴라 입니다. 이 사람은 두 가지 명령에 다 순종을 했는데 문제는 두 번째 명령입니다.

 

손을 내밀라는 명령은 주저하거나 잘 안 된다고 거부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어 그 명령에 화답하였습니다. 순종은 축복의 문을 열어갑니다. 주님은 때로는 우리에게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명령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 앞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논쟁하거나, 손익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기엔 좀 힘들어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다소 절망적이고, 오그라져서 펼 힘이 없고, 살맛이 없다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명령하실 때 그저 아멘하고 실천에 옮기면 됩니다. 신앙생활에 영적인 균형을 잃고 살아갑니까?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신령한 영의 지체가 말라 들어가고 오그라드는 사람이 있습니까?

출석은 잘 하는데 봉사를 안 하며, 성경은 읽는데 기도를 안 하며, 헌금생활이 제대로 안 되며, 마음은 있는데 교회의 현장에 없습니까? 이는 영적으로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노는 일은 잘 하는데 하나님의 교회에 일하는 것은 외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는 잘하는데 전도는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영적으로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혹 기분이 좋으면 잘 하는데 기분이 나쁘면 팽개치기도 합니까? 이 모두가 영적 장애자의 모습이에요. 빨리 순종하면 빨리 회복시켜 주심을 믿고 순종의 자리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도온(Eleanor L. Doan)이란 학자는 교인의 십계명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읽어보니 알기 쉽게 설명을 해 놓았고 얼마든지 순종 할 수 있는 일로 보였습니다.

교회에 출석을 잘하라. 아무리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교회에 나오지 않거나 예배에 자주 빠지는 사람은 결코 믿음이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일찍 나아오라. 교회의 모든 모임에 항상 늦게 참석하는 사람은 결코 훈련된 교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신앙의 훈련이 잘된 성도는 시간을 잘 지킨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나아오라. 주일 예배에 혼자 참석하는 분들은 자기만 천국 가고 식구들의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무관심형의 성도입니다.

가능한 한 앞자리에 앉으라. 교회에서도 뒷자리에만 앉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은혜의 경험을 아직 못한 분이거나 시험 중에 있는 경우입니다. 억지로라도 앞자리에 앉는 훈련을 하십시오.

중보 기도로 준비하라. 교회에 오셨으면 입을 닫고 성도를 만나도 눈으로 인사를 하시고, 마음의 문을 열고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기도는 마음의 그릇을 닦는 시간입니다.

그날의 말씀을 묵상하라. 주보에 나와 있는 성경을 찾으셔서 몇 번이고 마음에 와 닿을 때까지 묵상하며 읽으십시오. 설교 시간에 성경을 못 찾아서 뒤척거리면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됩니다.

다른 분들의 편의를 생각하라. 교회에서 행동할 때에 다른 사람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교회 안에서 소리는 도레미 이상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설교자와 찬양단은 예외입니다.

낯선 분에게 친절 하라. 그들은 교회의 귀빈입니다. 처음 오신 분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여러분의 친절을 통해서 예수님을 더 일찍 배우게 될 것입니다.

깨끗한 헌금을 하되 즐거이 하라. 헌금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고후 09:07).

축도가 끝나도 서둘러 나가지 말라. 목사님과 꼭 악수를 하고 나가십시오. 여러분에게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준비했고 또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 기도한 사람입니다.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순종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손 마른 사람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보다 더 쉬울 것입니다. 이제부터 믿음의 순종으로 축복을 체험하는 일꾼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바리새인들의 관심과 초점은 하나님과 이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 때문에 유대교에서 자신들의 명예와 지위가 흔들린다고 생각한 종교적 이기심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하고 바라는 모든 일들이 주님 안에서 잘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더욱 새롭게 하시고 오그라진 것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살맛나고, 힘이 생기고,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강건하도록 귀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의 복이 우리 믿음의 가족들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