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3년 말씀

<부활주일>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고전 15:12~1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3. 3. 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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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왕조 때 140여 개의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건설되었습니다. 현재 그 위치가 확인된 것만도 80개 정도가 되는데 이 중에서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한 변의 길이가 233미터, 높이가 148미터로 가장 큽니다.

이 피라미드는 2.5톤의 돌들을 아래에서 꼭대기까지 210단을 쌓아올렸기 때문에 사용한 돌의 개수만 해도 230만 여개나 됩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위해 약 10만 명의 노예가 석 달씩 교대로 일해서 2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자를 미라로 보관하면 그 영혼이 돌아와서 부활한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이처럼 수많은 인력과 시간을 들여서 피라미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피라미드 안에 있는 미라가 살아난 적이 없고, 오직 메말라 빠진 미라 그대로 남아있어서 영원히 살겠다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영생을 얻으려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도 소용이 없으며, 사람은 태어난 후에는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이후에는 심판만이 있습니다(09:27).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만일이라는 말을 가끔 사용합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을 가상적으로 말할 때 쓰이는 단어 말입니다. 1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반대로 죽은 자의 부활은 반드시 있다는 뜻으로 보아도 됩니다.

오늘 말씀을 받은 고린도교회가 있는 고린도 지역에는 영혼의 불멸은 믿으나 육신의 부활은 믿지 않는 헬라 사상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는 믿어도 죽은 후 육신을 떠나 자유롭게 된 영혼이 부활을 통해 다시 죄악의 근원인 육체에 감금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이 육체의 부활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줄 필요를 느껴 고전 15장 전체를 육체의 부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가 주장하는 이 부활에 대하여 역으로 만일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가정(假定) 하에서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이란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1. 전도하는 일이나 믿음의 행위가 다 헛된 것입니다.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고 가정하는 경우에 나올 일들에 대하여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전도 자체가 헛된 일이 된다고. 왜냐하면 전도의 근본이 예수님의 부활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복음의 키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었고, 가룟 유다를 대신해 사도를 보선한 목적도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01: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0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복음 전하는 일)에 증인이로다.

 

바울은 또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믿음도 헛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그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성도들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맙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를 설립한 일이나 많은 전도의 결과들도 헛된 일이 되고 말 것이며, 바울 선교 팀의 사역 역시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헛것이라는 의미는 이론(理論)을 위하여 가상적으로 말한 것일 뿐 사실과는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헛되어 질리는 만무하기 때문이요, 또 만일이라는 가정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전도하는 일이나 믿음의 행위에 대하여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는 가정법 아래서 헛된 것이라고 하였지 가정법이 아닌 이상 전도하는 일이나 믿음의 수고들에 대하여 더욱 우리의 삶의 에너지를 기울여야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의 주변에는 끊임없는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들고 찾아가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사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 속에 살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에 무엇이 헛된 것이고, 무엇이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제대로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2. 구원의 자리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죄 문제 역시 해결되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속죄 사역이 그의 부활로 확증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의 부활이 없다면 자신이 친히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도 거짓이 되며, 주님의 무죄성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가 될 수도 없습니다.

당연히 인생의 죄의 문제는 계속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서 우리 역시 구원의 자리에도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사죄의 은총을 받아 은혜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10: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사죄의 증표를 받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진정으로 있었다는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주님,

그분께서 만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지 못했다면 아직도 우리는 죄 가운데서 구원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 존재 아닙니까? 더 나아가 18절 말씀처럼 주님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결국은 망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과 핍박과 순교를 당한 자들은 아무런 보상과 위로가 없는 헛된 죽음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기독교 전() 역사를 뒤엎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그렇게 부정될 수 없는 중요한 사실로 확증 되었고 장차 우리도 그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살전 04: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은 돈, 부귀영화, 명예, 권세, 쾌락 등 이생의 것이 아닌 줄 아십니까? 그것들은 길어야 백 년 안쪽의 가치거리 일뿐 영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배설물과 같은 것들입니다.

진실한 성도의 소망은 부활에 있고 영원한 천국에 있기 때문에 때로는 그 진리, 그 소망 때문에 고난도 받고 순교도 감당할 수 있으며,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이 영화로운 소망으로 부활할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18절 말씀도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는 이 가정은 당연히 성립될 수 없는 말로서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오늘 말씀에서 지금 역설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3. 우리가 제일 불쌍한 자입니다.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바울을 포함한 모든 주님의 제자들, 고난을 당하고 순교까지 당한 성도들이 다 거짓 증인으로 판명될 것이고 동시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망이 없는 곳에 올인 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십계명의 제 9계명을 어기는 거짓 증인으로서 많은 영혼들을 불행으로 이끌어간 그 죄의 책임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이미 확실하게 이루어진 일인 만큼 그 예수님의 부활에 기초하여 주님 안에서 죽은 모든 자들도 부활에 참여 할 수 있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에 기초한 기독교의 성도들은 이제부터는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좀 넓은 아량의 저울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남에게 줄 때 다는 저울 앞에서는 내가 좀 적게 주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야 하고, 받을 때는 내가 좀 많이 받았구나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항상 손해를 본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에 기초한 믿음의 성도는 이웃과의 사랑을 나누는 일에 있어서도 언제나 조금 덜 준 듯이 여기고, 받을 때는 조금 더 많이 받은 듯이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생명의 복음, 이 복음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가치가 있고 영원하여 죽은 사람을 살리는 영의 생명수가 됩니다. 이 복음의 생명수를 우리의 이웃에게 아직도 내가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이제부터라도 이 생명의 복음을 따라 살겠다는 굳은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러는 예수님의 부활뿐만 아니라 장차 일어날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의학으로도 부활을 이룰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자들도 있고요.

 

1964년 미국의 에팅거 교수는 인간을 냉동 보존 했다가 해동시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암이나 불치병에 걸린 사람을 냉동 보존시켰다가 과학이 발달된 이후 해동시키면 병도 고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동참한 많은 사람들이 능히 의학은 그렇게 가능 할 줄로 믿고 불사주의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스스로를 냉동 창고 안에 들어가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많은 과학자들이 이 이론에 회의적입니다. 일단 냉동을 하게 되면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부피가 약 10% 쯤 증가하기 때문에 세포의 구조가 파괴되고 그 과정에서 세포는 탈수 현상으로 쭈그러듭니다.

이에 대해 냉동보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냉동 중 세포가 손상되지 않도록 글리세롤 용액을 넣고 영하 193로 급냉을 하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뇌세포 문제가 또 있습니다. 뇌세포가 산소공급을 받지 못하면 즉시로 뇌신경은 죽어 버리고 치명적인 손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인간의 힘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려고 노력하나 이 땅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영원한 삶은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목사님이 막걸리 드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라는 글이 있는데 간단히 소개하려 합니다. 초신자. 충격 받고 교회 안 나온다. 오래된 신자. 충격 받은 초신자 데리러 갔다가 같이 충격 받고 교회에 두고 온 성경 챙겨서 다른 교회로 간다.

청년회. 역시 우리 목사님은 앞서가는 분이야 하면서 다음 주 월례회 장소를 호프집으로 정한다. 서리집사. 충격 받고 안 나오는 오래된 신자 찾아가 세상에 하나님 말고 믿을 놈이 어디 있느냐며 목사를 욕한 다음 당장 제직회 열어서 노회에 보고하겠다고 협박한다.

안수집사. 대장 장로님 찾아가 목사 청빙 광고 내라 한다. 장로 1년차. 다른 교회 친구한테 좋은 목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장로 5년차. 잘 아는 좋은 목사 있다고 소개한다. 원로장로. 찾아온 당회원들에게 말한다. 그거 술 아니고 우유야, 나도 먹어봤는데 진짜 우유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우리가 이와 같이 분별력이 없거나, 믿음이 약하거나, 아직도 덜 성숙한 자리에 있다면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새롭게 믿음으로 다듬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장차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갈 것이며,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마지막 심판을 할 그때에 부활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혹 지나간 시간들만 모아 놓고 본다면 아직도 허물진 자리에 있지 않을까요? 오늘 각종 스타일의 허물진 모습들이 믿음으로 온전히 회복되어 영육 간에 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