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갤럽 기관에서 지금 당신 얼굴에 만족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은 남자는 28%였고 여자는 13%였습니다.
두 번째 질문으로 당신 얼굴을 바꿀 수 있다면 바꾸겠는가? 질문하자 남자는 94%가 바꾸겠다고 하였습니다. 여자는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99%입니다.
이런 예는 대부분 사람이 자기 외모에 대해서 좀 불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자기 신체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의 답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①만족한다. ②만족 안 한다. ③이것도 얼굴이냐? ④나보다 잘생긴 사람 다 나와 봐. ⑤난 얼굴에 신경 안 쓴다. 이 중에 들어 있겠지요.
성형외과 의사 Maxwell Maltz(1899.3.10.~1975.4.7.). 현대인 중 95%가 열등감이라는 질병에 시달린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열등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비교의식에 의한 열등감에 빠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곳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은혜를 누릴 줄 알기 때문입니다. 김삼일 가족은 이런 은혜를 누립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우리 모두 열등감을 극복합시다.」로 정했습니다.
1. 열등감은 비교의식에서 생겨납니다. |
0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0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여기서 천천이나 만만은 원문상으로는 천(千)과 만(萬)으로 우리말의 운율(韻律)을 맞추기 위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사울은 그의 천을 죽였고 다윗은 그의 만을 죽였다. 라는 의미입니다. 천이나 만이라는 두 숫자도 많음을 상징하는 일반 표현입니다. 여기 여자들의 노래가 담고 있는 의미는 사울과 다윗은 많고 많은 원수를 죽였다. 라는 그런 뜻입니다.
여자들이 사울과 다윗을 천과 만으로 비교한 것은 여자들 노래 속에 당시의 민심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노래를 들은 사울 왕은 심기가 뒤틀어집니다.
왜 뒤틀립니까? 사울이 권력의 레임덕과 함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으로 인해 코너에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청년이 등장하여 골리앗을 단번에 제압해 버리자 사울은 그만 열등감에 빠지고 맙니다. 이때부터 사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무너집니다.
우리 주변 사람을 봅시다. 비교의식 때문에, 나는 열등하다고 느끼는 마음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또 비교의식을 통해서 나는 우월하다고 여기는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경쟁과 이웃 간의 비교의식 없이 태어나서 행복하게 사는 자녀도 부모님의 대리만족 때문에 경쟁심이 일어납니다. 열등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현실을 보십시오. 열등감과 비교의식의 문화는 유치원에 들어갈 때부터 몸에 배기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생활 모든 영역에 자리를 잡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 사회는 경쟁 사회입니다. 경쟁 사회에서 승리하기란 무척 힘이 듭니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영국의 기독교 문학가인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1.29.~1963.11.22.)는 악마가 인간을 파괴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비교의식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열등감은 나와 환경만 바라볼 때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보지 못하고, 세상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은 남을 비판하는 일을 잘하고 열등감도 잘 느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비교의식과 열등감의 나락에 빠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평생 싸워야 할 대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교의식에서 나오는 비교 가난이라는 사고(思考)입니다.
우리가 이 비교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큰 재물을 소유하고 좋은 환경을 만날지라도 자족하지 못합니다.
열등감의 종이 됩니다. 내가 궁핍하게 사는 것은 괜찮지만 남이 부유하게 사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2. 열등감은 악령이 틈타는 공간입니다. |
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노래를 들은 이상 사울이 어찌 비교의식이 안 생기겠습니까? 열등감에 왜 안 빠지겠습니까?
어쩌면 왕의 자리를 다윗에게 빼앗기겠다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하자 질투와 분노가 불같이 타오릅니다. 흔히 하는 말로 뚜껑이 열렸습니다.
악령이 들었다는 말입니다. 잠이 안 오니 밤새 이상한 소리를 막지르며 떠들어댑니다. 이제는 개인보다는 국가가 심각한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악령에 잡힌 일이 오늘뿐만 아닙니다.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무엘 선지자를 제치고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함부로 드린 일도 있습니다.
결과는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큰 노여움을 샀습니다(삼상 13:13, 14). 이후에 아말렉 군대와의 전쟁에서 승리 후에 모든 것을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선지자 사무엘이 사울과 절교를 선언했고 하나님도 사울을 버렸습니다.
삼상 15: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이 두 사건 이후부터 사울은 믿음과 기도의 길을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사탄을 향하여 마음을 열었습니다. 마침내 악령이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삼상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울은 악령이 그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다윗을 보호하고 격려해야 할 사명을 버렸습니다. 오히려 시기와 질투의 눈길로 보게 되었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열등감으로 가는 길목이요, 열등감은 더욱 악령이 틈을 타는 공간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열등감은 비교의식에 의한 결과로서 우울증과 더불어 무서운 정신병을 유발합니다. 지금 다윗이 사울에게 반기를 들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왕이 체통도 없이 이리저리 길길이 뛰면서 밤새 헛소리합니다. 정신병 치고는 정말 무서운 병이에요. 거기에다 충성스러운 신하 다윗을 죽이려고 까지 합니다.
11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많은 사람이 동창회 나갔다 온 후에 열등감과 무력감에 잘 시달린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절대평가로 받아들이던 삶에서 친구들을 만남으로 자신을 상대 평가하게 되고 그래서 자존감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한 칸 방에 살아도 아이들 건강하고 가족끼리 알콩달콩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동창회 나가보니 학창 시절에 자기보다 못한 친구가 50평짜리 아파트에서 산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자기 신세를 한탄하게 됩니다. 외모도, 소유도, 성공도, 자녀의 출세도 비교의식으로 생각하면 늘 불만이고 늘 짜증스럽게 됩니다. 이내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마귀는요? 우리 생각 속에 슬그머니 들어와 남과 비교하도록 충동질합니다. 누구누구는 이런데 너는 뭐냐? 누구누구는 벌써 결혼해서 애가 둘인데 너는 뭐냐? 아직도 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빚에 쪼들리고 있나? 차라리 믿음을 포기해라.
이런 식으로 속을 뒤집어 놓을 때는 믿음의 사람도 마귀의 충동질에 넘어지고 맙니다. 비교의식과 열등감이야 말로 악령이 틈타는 공간임을 아시고 심령 관리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3. 다윗은 열등감이나 위기를 기도로 극복합니다. |
시 54:01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베들레헴에서 나이가 많은 이새의 팔 형제 중 막내의 위치입니다. 그는 자기 형들이 전쟁에 나갔을 때 형들의 양들을 대신 돌봐주는 목동이었고, 형들이 대소사를 나눌 때는 밖에서 물심부름 정도를 하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사람을 선정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으려 할 때입니다. 그때 다윗은 아버지의 안중에도 없이 들에서 양 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는 왜 형들의 모임에 낄 수 없는 거야? 나는 왜 형들처럼 근사한 일을 못 하게 하는 거냐고 탓하지 않고 그저 자기에게 맡겨진 분량만큼 묵묵히 일만 했습니다. 아버지 양을 치면서 목동 생활할 때도 별 존재감 없었습니다.
가장 형편없게 보인 다윗인데도 나중에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왕손의 혈통을 받은 것이 아닌데도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습니까?
그는 결코 비교의식으로 상대와의 소모적인 경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 열등감이 스쳐는 갈지언정 심령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자기의 마음을 잘 지켰습니다.
어떤 일을 만나든지,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지, 사면초가의 환경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목숨을 거는 기도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마침내 다윗을 크게 들어 쓰셨습니다.
시 54:01절도 십 사람들이 다윗의 숨어 있는 곳을 밀고하는 바람에 나온 기도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군사로부터 이리저리 피하다 결국은 포위당하여 절체절명 위기를 만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환경 앞에 놓이자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시 54:01). 하나님은 기적이 절대 필요한 기도에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 사울의 추격을 피해 다니는 방랑자 생활을 십 년이 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다윗이라고 열등감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그가 심혈을 기울인 시편을 보십시오. 고통과 외로움, 열등감 두려움으로 몸부림을 쳐야 했던 순간이 떠날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범사에 욕심을 비우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 한판 대결을 보십시오. 단 하나,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 받는 일을 볼 수가 없어 전쟁에 나선 것이지 개인의 어떤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삼상 17:45~47).
다윗의 가치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복된 세계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출신이 다르고, 문화의 배경이나 성장 과정이 다르고 은사나 재능이 달라도 이런 일의 차이로 열등감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고유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각기 재능을 따라 각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를, 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마 25:14, 15).
중요한 것은 각각 그 재능대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이 충분히 감당할 만큼 믿음의 분량대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달란트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은 달란트의 많고 적음을 비교해서 무시하고 조롱하기를 잘합니다.
하나님은 모두를 귀한 자로 보십니다. 차별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받은 환경과 재능을 탓하지 마십시오.
김해삼일교회 귀한 성도로 쓰임 받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십시오. 교회도 목사도 여러분을 외형적인 일들로 비교하여 특별 가치성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열등감을 오직 기도로 풀어가는 다윗처럼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성도 여러분은 누구와도 비교하지 마십시오. 초라하지 않습니다. 혹 열등의식이 있습니까? 그 열등감에서 해방에서 나오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에 대해 놀라운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장애인으로서 미국의 영웅이 된 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다 뉴욕주의 상원의원이 되었습니다. 윌슨 대통령 행정부에서 해군 차관보를 지냈으며 1920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그의 꿈이 현실로 점점 다가오고 있을 때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제 그는 정치 생명은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쌓아 올린 공든 탑이 하룻밤에 무너지고 신체도 홀로 거동조차 못 하는 휠체어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인생 밑바닥에서 다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신체의 기능회복, 정계 복귀, 소아마비 정복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자기와 경쟁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 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주지사 되고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가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는 사람과의 모든 비교에서 자유 하였습니다. 그는 장애인이 된 상태에서 세운 장기 목표를 현실에서 하나씩 달성해 나갔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재활훈련을 하다 보니 일어서서 연설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 연설로 인기가 회복되었습니다.
결국 정계에 복귀했습니다. 소아마비 재활센터를 건립하여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들이 잘 성취되어 나갔습니다.
드디어 1932년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4선까지 한 루스벨트 대통령(F.D. Roosevelt 제32대 1882.1.30.~1945.4.12.)입니다.
루스벨트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기의 달란트를 개발하지 않았다면 어찌 위대한 삶을 살 수가 있었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으므로 인해 귀하게 쓰임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 앞에 자신이 존귀한 자임을 확신하고 우울증이나 열등감을 완전히 떨쳐버리면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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