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이 태어났으나 생후 8개월 되었을 때 소아마비로 인해 중증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일찍부터 안타까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름은 강영순으로서 이 아이는 믿음 생활을 잘하면서 성장하였습니다. 21세 때 대 수술을 하여 어느 정도 걷게 되었고 또한 몇 년 동안 사귀던 사람이 있어서 혼담도 오고 갔습니다. 그러나 상대방 집안으로부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이런 형편에 놓이고 보니 얼마나 서럽습니까? 그만 강영순은 죽기로 작정합니다. 약을 먹고 죽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봐 산에 올라가 떨어져 죽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침내 죽으러 지리산으로 가는 데 도중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만지셨습니다.
영순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남들이 보기엔 보잘것없는 나무 한 그루지만 내가 택하여 가꾸고 바로 이 시냇가에 심었단다. 이 생각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때부터 강영순은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국내외의 산을 찾아 등산부터 했습니다. 장애인으로선 세계 최초로 타이완의 최고 높은 산 위산도 올랐습니다.
또 탁구도 배우게 되어 1989년도에는 장애인 전국 체육대회에서 우승까지 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1991년 9월 35세 때 몽골 한인 선교사 1호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마침 몽골 국가대표 탁구 감독 자리가 있어 그곳의 요청으로 선수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몽골 올림픽 협회와 체육협회로부터 많은 상까지 받았습니다.
지금은 강영순은 자기의 삶으로 사람들에게 복음과 사랑과 생명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보잘것없는 인생인 줄 알았지만, 하나님께서 만지심으로 인해 진정으로 복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나는 복된 사람입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면 어떤 기준 때문입니까?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 합니까? 돈을 많이 벌거나 명예를 얻은 사람, 육신이 강건하거나 성공한 자녀들을 둔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참 복이 많습니다. 라고 말해 본 적 있습니까? 혹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복이 많다는 말을 좀 들어봅니까?
한다면 주로 무엇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합니까? 복의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나는 어떤 복을 구합니까?」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복과 축복을 구분하겠습니다. |
0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구약성경에서 복을 표현할 때 2개의 단어를 사용합니다. 첫째 בָּרַך(바라크)라는 단어입니다. 구약성경에만 415번 정도 쓰였습니다.
이 바라크는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신의 권위로서 복을 내려 줄 때 사용됩니다. 또 신의 권위를 가진 대리인이 축복을 선포할 때 사용됩니다(창 01:22, 말 03:10).
사람의 선행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때문에 일방으로 받는 복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둘째 אֶשֶׁר(아쉬레이)라는 단어입니다. 구약성경에 44번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시편에 26번 잠언에 8번 그리고 욥기와 전도서에 등에 1번씩 나옵니다.
이 아쉬레이는 하나님과의 인격 관계에서 우리의 관점에서 만들어 내는 복입니다. 삶의 자세와 태도로 인해 복된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으로 주시는 복 바라크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얻을 수도 있고 얻지 못할 수도 있는 복입니다.
복이(אֶשֶׁר 바라크) 있도다. 정말로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행복의 출발점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바르게 섬기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음으로 만나지 않고 믿음 생활을 운운하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한 삶이 뭐가 그렇게 즐겁겠습니까?
믿음으로 삶을 디자인하지 않는 생활을 수정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또 예배 시간에 복이란 말을 들으면 좋습니다.
말만 들어도 벌써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아멘 소리도 더욱 커집니다. 신앙인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복과 축복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두 단어의 용도와 의미를 잘 모르고 사용하는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복과 축복의 단어를 명확하게 구분해 놓았습니다.
많은 분이 기도할 때나 설교할 때 또 대화할 때 성경의 뜻을 왜곡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복과 축복에 대하여 분명한 정리를 하겠습니다.
01절 말씀을 보십시오.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축복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실 때 축복을 주신다고 하지 않습니다.
더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이 가정을 축복해 주십시오. 이 사업에 축복해 주십시오. 라고 하는데 여러분, 합당한 용어로 들립니까? 아닙니다.
축복이라는 단어의 한문은 빌 축(祝)과 복 복(福)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우리가 하나님께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복을 빌어 주십시오. 라는 의미가 됩니다.
성경 66권 어느 곳에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거나 이와 비슷한 문구를 사용한 곳이 없습니다. 축복이란 단어는 사람이 사람에게 복을 빌 때 사용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 이 가정, 이 사업을 축복하오니 복을 주십시오. 한다면 적절한 표현이 됩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축복이란 단어의 의미를 몰라서 하나님께 잘못 사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고쳐야 합니다.
기도자는 자는 복의 주권이 없습니다. 따라서 복의 주권자인 하나님께 복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축복해 주십시오. 하면 이는 복의 주권자를 격하시키는 망발입니다.
창 14: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창 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2. 나는 지금 어떤 복을 구합니까? |
0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0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04절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성도의 가정과 그 가족에게 주실 복을 기록해 놓은 말씀입니다. 먼저 03절을 보십시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리로다. 이 문구는 부부를 통하여 얻어지는 번성의 복을 상징합니다. 이어지는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זַיִת 자이트) 같으리로다 는 말씀도 주목하십시오.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 적절한 후손의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후손의 복 중에 감람나무와 같다는 복은 이스라엘의 농업의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람나무를 올리브나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올리브(olive) 나무는 그 어떤 나무보다도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콩, 참깨, 들깨, 해바라기 같은 식물성 기름을 얻을 수 있는 식물이 이스라엘에서는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식물성 기름은 유일하게 감람나무에서만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올리브기름을 짤 때는 일하는 사람들이 잔치하듯이 기쁨으로 4단계의 과정을 통해서 짜냅니다.
①첫 번째, 기름을 짤 때는 기름틀에 비교적 가벼운 돌을 올려 짭니다. 그리고 이 기름은 하나님께만 드려 성전의 제물로, 관유로 또 등대에 불을 밝히는 데 사용합니다.
②두 번째, 기름을 짤 때는 더 무거운 돌을 올려 짭니다. 이 기름은 가정에서 떡이나 나물을 무치는데, 식용으로 사용합니다.
③세 번째, 짜는 기름은 주로 가정의 등잔이나, 약용이나 미용으로 사용합니다. 네 번째 짜는 기름은 잿물을 부어 비누를 만들기도 하고 기계의 공업용으로도 사용합니다.
감람나무와 같다는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의 자녀는 올리브기름과 같이 다양하게 쓰임 받는다는 뜻입니다. 아주 요긴한 인물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다는 말씀의 궁극적인 의미가 무엇입니까?
시편 기자는 세상에 속한 여러 물질주의 요소들 잠시 내 곁에 있다가 떠나는 것들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복, 영적인 복을 소개하려 함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물질의 복을 추구할 것이냐? 아니면 신령한 세계의 복을 사모할 것이냐? 양자택일하라는 말씀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세상에 태어나는 환경이 다릅니다. 제각각입니다. 불행하게 태어나고 싶은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잘못된 유전자를 받아 고통을 겪거나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힘겹게 살아가는 때도 있습니다. 가난한 부모님을 만나 공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흔히들 지독히도 복이 없다고 말합니다.
또 태어나고 보니 부모님은 부자였고 좋은 머리를 물려받은 데다 가정환경까지 좋아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럴 때 참 복도 많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생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주어진 좋은 조건 때문에 오히려 그 조건이 불행과 파멸로 끝나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재벌 그룹 총수가 자살하는 일도 있습니다. 정치계에서는 한때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이내 감옥에서 탄식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흔히 말하는 세상 복의 조건이 진정한 행복이 되지 못했음을 확인하는 셈입니다.
어떤 상황을 만날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신령한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 인생이 참으로 복된 인생 아닙니까? 바로 우리 모두 구해야 할 진정한 복입니다
3. 하나님은 시온에서 복을 주십니다. |
0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시온(צִּיוֹן)은 예루살렘을 칭하는 말입니다. 이 시온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시온은 감사와 영광을 올리는 거룩한 곳입니다. 시온은 은혜의 요람입니다. 이스라엘 전부입니다. 시온이 없는 이스라엘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지역은 교통의 편리를 위하여 지역마다 시온을 향해 올라가는 길을 직선으로 닦습니다. 구부러져 있으면 넓고 평평하게 닦는 일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바로 닦인 곳의 마지막 종착점이 예루살렘 성입니다. 시온성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면서 제사를 올리고 은혜를 받습니다.
이스라엘은 일 년에 세 차례 즉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에는 12세 이상 되는 남자는 의무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출 23:17).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특별히 시온에서 복을 주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도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살지도 않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내가 받을 수 있습니까?
시 84:0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성도이면 됩니다. 사람들 마음을 하나하나 살펴보십시오. 특별히 자기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얼마나 많이 굽어 있습니까? 편견으로 굽어 있습니다. 미움으로 꼬여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뒤틀릴 대로 뒤틀려 있습니다. 좁을 대로 좁아져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시온의 대로가 시원하게 뚫리려면 먼저 막힌 담과 구부러진 담이 없어야 합니다. 성경은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는 담이라고 선언합니다.
사 59:0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시온의 대로가 열립니다. 좁은 나의 마음도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교회를 향한 대로가 열립니다.
그때는 기도가 막힘이 없습니다. 찬양이 막힘이 없습니다. 말씀이 막힘이 없습니다. 어떤 말씀을 들어도 걸림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의 길이 열려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복을 받으려면 먼저 시온의 대로를 여십시오. 마치 고속도로와 같이 넓고 곧은 큰길을 열면 어떤 사람의 말이 스쳐 가도 걸림돌이 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인생은 복된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행복의 근원이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에 있지 않음을 잘 압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도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시 118: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신령한 시온의 대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힘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고 문제를 풀어 가는 관계를 말합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인생 정글을 헤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기준을 기초로 해서 살아갑니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까?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그 감정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말씀에 기초를 두지 않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주위의 말들에 기준을 두면 더욱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말씀이 자리 잡아서 내 인생의 기준이 되도록 하십시오.
미국 워싱턴에는 링컨이 애독하던 성경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성경 중에서도 그의 손때가 많이 묻어 있는 구절이 시편 34편 04절 말씀입니다.
시 34:0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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