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2년 말씀

가룟 유다가 나가니 밤입니다.(요 13:21~3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2. 7. 2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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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경비행기가 비행을 하다가 야산 중턱에서 한 물체와 부딪혀 마을로 추락하면서 폭발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옆에 있던 건물 안의 사람들까지 많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난 산 중턱에는 미국 감리교 훈련센터가 있고 그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어서 경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등대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조종사는 십자가의 불빛을 보고 고도를 조정하여 산에 부딪히지 않도록 비행을 하는데 그날따라 야산 중턱의 철탑 십자가와 충돌을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던 AP 통신의 기자가 이렇게 타전했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바로 야산 중턱에 있던 철탑 십자가입니다. 사고가 나던 날 밤 그 십자가는 그만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불 꺼진 십자가는 아무런 유익이 없듯이 신앙의 불이 꺼진 신앙인도 역시 아무런 믿음의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영적 감각이 죽은 사람, 은혜 받지 못하는 신앙인이라면 이 역시 영적 어둠의 세계에 속한 사람은 아닐까요? 오늘 말씀을 보면 가룟 유다가 한 때는 은혜를 받고 능력을 나타내는 자리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둠의 세력에 붙잡혀 주님을 배반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갑니다.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나가니 밤이었다는 말씀은 영적인 의미에서는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지, 왜 이런 어두운 밤을 만났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회개를 거절하면 밤이 옵니다.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유대인들은 유월절 식사를 할 때는 떡이나 고기 조각을 무화과, 대추, 야자, 아몬드를 향료 등을 섞은 식초나 소금물에 찍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연회 주인은 손님에게 친절한 대접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떡 조각을 찍어서 손님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게 될 것을 아셨으며,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라고 이미 선언하셨습니다(06:70).

 

0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그런 주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떡 한 조각을 적셔서 주신 것은 그만큼 회개의 기회를 붙잡으라는 사랑의 표현으로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주님의 이런 사랑에 감사하기 보다는 더욱 더 예수님을 팔려는 강한 생각에 사로잡혔고, 사탄의 기운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최후의 만찬을 나누면서 그 중간에 친히 세족식을 하시고, 이어서 만찬을 계속 하는 가운데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21).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22:22).


그러자 제자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누구에게 대하여 하신 말씀인지를 놓고 의혹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2:23). 그야말로 쇼킹적인 선언이잖습니까? 즉시 베드로가 반응을 보이면서 예수님 품에 의지하여 누워있던 요한에게 눈짓을 하며 누군지 한번 물어보라고 합니다(24).

요한 역시 얼마나 궁금합니까? 그래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 자가 누구입니까(25)? 이에 예수님께서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26). 고 답을 하십니다.

가룟 유다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간접적인 대답입니다.

이 긴박한 순간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은 가룟 유다가 아! 예수님이 알고 계시면서도 내 이름을 공개하시지 않는구나. 내개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구나. 하며 마음을 고쳐먹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가룟 유다는 양심을 꽉 누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떡 한 조각을 찍어다 주실 때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생님을 팔려는 그 계획을 취소하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며 돌아서야만 하지 않습니까? 안타깝게도 가룟 유다는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흘려버리고 맙니다. 배반자 길에 들어서고 보니 사탄이 주는 생각을 제어하는 컨트롤타워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즉각 가룟 유다는 주님께서 회개의 문을 열어 놓고 마지막 기회를 주셨건만 즉시 걷어 차 버리고 밖으로 나갑니다. 예수님이 알 건 말 건 무슨 상관이야 하면서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포기하니 그 순간에 사탄이 가룟 유다를 완전히 장악해 버렸습니다.

 

이후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 관사로 가서 예수님을 팔기로 하고 흥정을 하여 은 삼십을 받습니다만 이런 배반자의 길, 물질 때문에 선생님을 판 그 길이 잘 되기나 했을까요? 이로 인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반면 가룟 유다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목을 맵니다만 그 목을 맨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시체가 땅에 떨어져 창자가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회개하여야 할 때 회개하지 않으면 영적 어두운 밤을 만나고 죽음이 오는 것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회개에는 때가 있고 그 때를 놓치면 영원한 한을 남기게 됩니다 

 

 

 2. 사명을 떠나면 밤이 옵니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가룟 유다에게는 열 두 제자로서의 공동체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열 두 제자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거기에다 회계의 직책까지 맡았다는 것은 여간한 복이 아닙니다. 이런 복을 아무나 받을 수 있습니까? 그만한 재능이 있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가룟 유다가 배반자의 길, 사명의 길을 이탈할 때 다른 제자들은 유월절 명절에 쓸 물건을 사러 갔거나, 아니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러 간 줄로 알았습니다.

우리는 사명자를 놓고 두 사람을 떠 올리게 됩니다. 가룟 유다와 맛디아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기를,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14:2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룟 유다, 정말 미스터리 한 인물이죠. 신령한 능력을 받고 그 능력을 행한(09:01~06) 인물 인데 그런 그가 어떻게 주님을 팔 수 있느냐? 그 말입니다. 그가 처음에는 얼마나 잘 된 사람입니까? 제자로 부름을 받았고, 계산과 예측에 상당히 밝아서(14:05) 공동체의 재정까지 맡아 봉사를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삼년이나 동고동락하면서도 은혜를 못 받으니 물욕에 사로잡혀 회계 부정을 저질렀고 주님까지도 파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돈이란 있으면 좋지만 좀 없다고 해서 억지로 있게 하려 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은혜는 받았을 때 잘 간직하고 누려야 하며, 복은 받으려고 머리를 무조건 밀고 들어가기 보단 이미 받은 복을 잘 누리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사명자로서 부끄러운 오점을 남긴 것이 무엇일까요? 제자 요한이 가룟 유다에 대해 성경에 도둑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도둑이란 칭호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그가 세상의 것을 무진 추구한 자임을 능히 알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12:0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탐욕 때문에 한 때는 그렇게도 실세라 일컫던 MB 4~6인방들이 뇌물에 연루되어 줄줄이 가룟 유다처럼 도둑의 소리를 들으며 감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신 열 두 명의 사명자들, 마지막 만찬장이 열리는 그 복된 자리에서 마지막에 자리를 박차고 나간 사람은 오직 가룟 유다 한 사람 뿐입니다. 사명을 던져 버리고 나간 때가 바로 밤이라는 사실을 아십시오. 이후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예루살렘교회가 모여서 요셉과 맛디아 두 명을 놓고 기도를 합니다.

 

01: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공동의회 결과는 맛디아가 사명자로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01:21~26).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에서 누구에게나 받은 은혜와 가진 재능을 따라 사명을 주십니다. 그 사명을 잘 감당하면 큰 은혜와 복을 받게 될 것이고, 반면 그 사명을 가볍게 여겨 떠나게 되면 불행의 밤을 맞게 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에덴동산을 지키고 다스리라는 사명을 주셨는데 그 사명을 떠나 선악과를 따먹고 나니 영적인 밤과 사망이 찾아왔습니다하나님의 사명을 떠나면 밤이 오고, 사명을 거부하면 파멸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사명을 맡겨주실지라도 거부하지 마십시오.
가룟 유다처럼 나가지 마십시오. 영적인 밤을 맞습니다. 사명에서 벗어나는 그 순간 영적인 암흑을 만남으로 인해 신령한 눈도 감겨질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떠나면 밤이 옵니다.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가룟 유다가 그 떡 조각을 받고 나간 것은 예수님을 영원히 떠난 죽음의 길입니다. 돌아오지 못할 길, 불행의 길로 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유다는 예수님을 팔려던 계획을 깨끗이 포기하고 다른 열 한 명의 제자들과 함께 복된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데 그만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은혜의 자리를 떠나고 나니 밤이잖습니까? 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음이듯이 예수님을 떠나면 그 순간부터 지옥의 삶을 만납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영원한 밤 즉 죽음에 이르고 말았습니다겉으로는 틀림없는 예수님의 제자요, 삼년 동안이나 충실하게 훈련 과정을 마친 제자로서의 조건을 갖춘 것처럼 보였습니다나름대로 어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는데 그 욕망의 조건이 바로 돈이었습니다(12:06). 처음부터 주님을 따르는 의도가 잘못되었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을 주님께로 고정시키십시오. 그러면 어둠을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사탄은 자기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으면 스스로 포기하며, 사탄이 아무리 유혹을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맞서면 도망을 갑니다.

사탄이 가룟 유다의 마음을 흔들어도 예수님 곁에 끝까지 버티고 있었더라면 영원한 배신자, 영원한 어둠의 자식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신선이 흐려지면 어둠을 만납니다. 행여나 나도 가룟 유다처럼 계산적인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배신할 준비를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무슨 일을 하든지 돈이나 명예나 자기 이익만을 집착하게 되면 그 결과는 반드시 배신으로 나타나게 됨을 아십시오. 지금 나는 어떤 목적과 어떤 동기를 가지고 교회를 다닙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나의 작은 이익들을 위해서입니까? 믿음의 꿈을 꾸십시오. 선한 목적을 위한 일이라면 그 선한 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며, 주님 안에서 든든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가난한 가정에서 똑같이 자란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은 구걸하는 처지의 생활을 하는 반면 동생은 훌륭한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기자가 어떻게 두 사람이 상반된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먼저 형제가 자란 집에서 살고 있는 형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 집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는데 Dream is nowhere(꿈은 어느 곳에도 없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형은 20년이 넘게 그 글귀를 보면서 삶을 비관하며 지내다 가난하게 된 것입니다.
어서 기자는 동생의 연구실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혹시 어렸을 때 집에 걸려 있던 액자를 아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교수는 아, 알다마다요. 그런데 혹시 그 글귀의 띄어쓰기가 잘못된 것 아니었나요? 라고 말합니다. 동생은 그 글을 Dream is now here((꿈은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읽었던 것입니다. 이 해석이 동생에게 꿈을 불어넣었고 동생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과 꿈이 없다며 비관하는 사람은 이처럼 성공이냐 실패냐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꿈을 꾸면서 인생을 가꾸십시오. 그러면 영적인 밤을 만나지 않을 것이며, 비록 시련은 만날지라도 가룟 유다처럼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해부학자 가드너는 사람은 오른쪽 귀가 왼쪽귀보다 듣고 판단하는데 더 예민하다고 했습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눌 때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십니까? 주님의 왼쪽에는 바로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왼쪽에 앉아 있었기에 그의 오른쪽 귀는 주님의 바로 옆에 있었고 주님의 말씀이 언제든지 들릴 수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이 듣지 못하도록 가룟 유다에게 조용히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가룟 유다는 그 마지막 말씀도 못들은 채 하면서 외면했습니다.

 

그 결과는 영원한 어둠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 주님은 가룟 유다가 배반의 길로 나아가는데도 그를 향해 아무 말도 않으셨습니까? 이때 만약 주님께서 가룟 유다가 배신자라고 그 자리에서 폭로하였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그러나 주님은 배반자를 알면서도 그저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만 했지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마지막까지 가룟 유다를 사랑하면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나를 향한 말씀으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대한 영적 감각이 흐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의 인생을 덮는 어둠의 세력들, 나의 사업과 터전에 밀려오는 어둠의 세력들이 오늘 깨끗하게 물러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