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주전자 뚜껑에 구멍이 난 이유를 아시지요?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 사람이 밤새도록 끓는 물주전자 뚜껑의 딸가닥 거리는 소리에 잠 못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환자의 고통스런 불면을 보고 있던 주변의 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잠 못 이루는 환자를 도울 수 있을까? 를 생각하다 주전자 뚜껑에 구멍을 뚫는 아이디어를 고안하게 된 것입니다.
또 음료나 먹을 때 사용하는 주름빨대 아시지요? 이 기발한 아이디어도 외아들의 병 치료를 위해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했던 요코하마의 한 여인에 의해 고안되었습니다. 아들이 우유를 마시기 위해 상반신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겨워 하자 이 아들에게 누워서도 우유를 마시게 할 수는 없을까? 라는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결국은 주름빨대라는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이지요.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여 많은 돈을 가져오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성공을 부른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돈을 벌기 위하여 밤새도록 머리를 짜낸 결과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한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공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수많은 현장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7가지만 선별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갈릴리 사역이 아닌 예루살렘 중심의 기적을 소개하고 있는데 오늘 말씀도 그 중의 하나인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이적입니다.
1. 예수님은 명절에 소외된 곳을 찾으셨습니다. |
0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께서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고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명절만 되면 고향으로 내려가느라 한바탕 귀향전쟁을 치르죠? 도시에 와 있던 사람이 시골로 내려가는 것이 우리네들의 일반적인 명절 풍경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우리와는 반대로 시골에 있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성전 중심으로 명절을 지냅니다. 우리의 명절이 고향중심이라면 유대인의 명절은 성전중심 인 셈이지요.
오늘의 명절이 어느 명절인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대다수 학자들은 아마 제일 큰 명절인 유월절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하는 정도입니다, 이 명절에 수십만 명이 몰려든 작은 도시 예루살렘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서로 인사를 주고받고 축제를 즐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어쩌면 여러 구경거리와 도시의 황홀경에 넋을 잃고 말았을 같습니다만 예수님은 그런 잔치 분위기의 현장을 빠져나와 베데스다라는 못가를 찾으셨습니다. 이 베데스다에는 절망과 한숨을 끌어안고 신음하는 각 종 병자들, 세상에서는 버린바 된 세상이 포기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왜 이 곳에 각종 병자들이 몰려와 있을까요? 현대 의학이나 과학의 수준에서 볼 때 아마 잘못 된 전설이나 정보 때문인 것 같습니다.
03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0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이 부분은 괄호가 되어 있죠? 권위 있는 성경 사본에는 없는 부분인데 어떤 사본에는 있다는 뜻입니다. 즉 괄호안의 말을 추가하지 않으면 본문의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을까봐 고대 교부 때부터 삽입해 놓은 일종의 전설이죠.
04절 말씀처럼 된다면 정말 신통한 못이긴 한 데 그 못에 일등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만이 어떤 병이든지 고침을 받는 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였든 입소문이 대단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습니다.
정말 심각한 질병으로 고생하다 베데스다를 마지막 희망으로 여기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호기심에 구경삼아 온 사람, 앞날의 어떤 질병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목욕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온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을 중요한 부분 몇 구절 살펴볼까요.
0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예루살렘에는 성벽을 따라가면서 모퉁이 문, 에브라임 문, 골짜기 문 등 여러 출입문이 있는데 동북 편에 나 있는 문을 양의 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이 문 밖에 바로 양의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양문 곁에 빗물을 저장하기 위하여 못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규모는 목욕도 하고 수영도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못의 이름을 베데스다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이 못의 물은 주로 어디에 사용했을까요?
성전에서 희생 제물로 쓰이는 양들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올 때 반드시 양문을 통과하는데 이때 양을 이 못에 넣어서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러니 이 못이 얼마나 더럽겠습니까? 그럼에도 이 못가에는 행각 다섯 채를 지어놓고 이 못에 먼저 뛰어 들어가 질병을 치료하려는 많은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더러운 못이 질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과연 있을까요? 04절을 보면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한다고 했죠? 과연 천사가 내려와서 그런 일을 한다고 봅니까? 아니에요.
이 못 아래에는 지하수가 흘러내렸고 이 물이 가끔 끓어오르면서 부글부글 거품을 내었는데 일종의 간헐 온천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현상을 과학이 발달되지 않는 시대이다 보니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돌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뜨거운 지하수와 수증기 그리고 분출되는 여러 가스에 의해 신경통 환자는 일찍 그 물에 들어감으로 혹 효과를 보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전문 병원들이 있어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시대가 아니라 약도 없고 고치는 의사도 제대로 없는 시절이다 보니 이런 것에 아무래도 맹신하였겠지요?
이런 일로 인한 소문이 이스라엘 전역에 나돌아 천사가 물을 돌릴 때를 고대하면서 그 날을 행각에 누워 하염없이 못만 바라보며 기다리는 겁니다. 모든 사물은 한곳에 집중하다 보면 그것이 좀 이상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병이 깊은 사람이 한 밤에 못의 물이 도는지를 좀 세밀히 관찰하다보면 시각적으로 물이 도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사람이 물이 돈다 하며 공개할까요? 절대 공개 안 해요. 그냥 못으로 냅다 뛰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달려가는 사람의 소리를 알아채고 뒤따라 갈 것이고 또 웃지 못 할 풍경들도 발생할 것입니다. 물이 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는 거죠. 완전 돕니다.
2. 예수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
0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신 그 사람의 병세가 무려 38년 째 입니다. 베데스다에 모인 모든 병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처진 사람인 것 같아요? 38년 된 병자라고 했으니 병자들 가운데서도 완전히 밀려버린 인생입니다.
말이 38년이지 얼마나 긴긴 세월입니까? 죄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했으니 이 사람의 나이가 제법 되었을 것 같습니다. 아마 한평생 병에만 시달려 온 사람으로 보입니다. 못에 뛰어 들어가는 일을 놓고는 38년 동안 병을 앓고 있었으니 해보나마나 항상 꼴찌 아닙니까?
이런 긴 병 때문에 옆에서 그를 도와줄 사람도 별반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가족도, 친지도 다 떠나고 말았으니 그의 마음속에는 부정적인 생각, 체념과 자포자기, 원망과 한탄, 극단적인 소외감과 고통으로 죽지 못해 사는 인생입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이 사람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며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세상이 거들떠보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만년 꼴찌 인생이지만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찾아오셔서 희망을 주십니다. 이 사람이 맹인인지, 다리 저는 자인지, 중풍 든 자인지는 밝히지 않지만 병세가 38년이나 되었고 한 번도 남보다 못에 먼저 뛰어들지 못했음을 볼 때 반신불수가 아닌가라는 짐작이 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질병에서 낫고 싶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병자는 속으로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라고 하였을 것 같아요? 그러면 예수님은 물어보나 마나 한 일을 왜 물어보십니까?
예,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병자의 회복의 의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입니다. 38년 동안 앓아누웠던 이 병자를 보십시오. 어쩌면 그 눈에는 희망의 빛이 사라진지 오래고, 거동할 힘도 없는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참으로 낫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동해야 하며,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소망이 끓어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베데스다의 물이 동해야 낫는 것이 아니라 네 심령의 물이 동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죄악 속에 파묻힌 그대여 참으로 거기서 헤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 오랜 세월 앉아있던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는 열망이 있느냐의 물음입니다.
베데스다 물이 아니라 심령의 물이 동하는 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마음에서부터 출발함으로 마음에 간절한 꿈을 안고 있어야 합니다. 병이 오래 되면 낫고자 하는 의지도 퇴색되어서 그냥 그대로 살고 맙니다. 고치면 좋고, 못 고치면 그대로 살다가 죽지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또한 마음으로 원하는 것과 입술로 고백하며 시인하는 것에는 분명 믿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으신 것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는 꿈이 있느냐?
롬 10: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말씀은 2천 년 전의 말씀임과 동시에 오늘 이 시간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의 질병이 고침받기를 원하느냐? 부진한 사업이 다시 한 번 회복되기를 원하느냐? 고통스러운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하느냐? 라고 물으십니다.저는 성도 여러분의 모든 문제가 회복되기를 진정으로 원합니다. 여러분을 억누르고 있는 모든 죄악의 문제, 질병의 문제, 물질의 문제, 정신적인 문제에서 놓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말 04:0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3. 예수님은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십니다. |
0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찾아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실 때 이 사람은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갔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물이 움직일 때에 내가 도와주겠다. 내가 부축해주겠다고 약속 하지 않고 지금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38년 동안이나 누워 있던 병자에게 지금 당장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는 것은 잘못 이해하면 조롱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이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0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러면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주님의 말씀 앞에 이 병자는 아멘하면서 의심 없이 걸어갔습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아요. 예수님은 은혜를 귀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사람에게 능력으로 임하십니다. 주님의 능력을 힘입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 못 이름이 뭐라고 했습니까? 베데스다이죠.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못이 아무리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라 해도 주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은혜의 집이 될 수 없습니다.
베데스다가 은혜의 집이 아니라 예수님이 은혜의 집입니다. 우리는 온갖 헝클어진 문제를 가지고 어디로 가야하며, 무거운 근심거리를 가지고 어디에 가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믿음의 발걸음으로 주님께 나오십시오. 나의 내 딛는 발걸음에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걸림돌 같은 것이 있습니까? 뛰어 넘으세요.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 앞에 아멘 합시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의 어려운 상황,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 속에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안고 있는 고통의 문제를 들고 걸어가라. 이 말씀 앞에 지금까지는 38년 된 병자처럼 나도 무기력 했지만 이제 믿음으로 아멘 하면서 기적을 창출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아직도 내가 안고 있는 안 풀리는 고통스런 문제가 많습니까? 고민 속에 빠져서 도무지 인생 살맛이 없는 것 같습니까? 이런 것들이 신앙의 발목을 꽉 잡고 있어서 신앙의 맥박이 전혀 뛰지를 않습니까?
앞으로 나아가려니 출구가 보이지 않고, 뒤에서는 나를 추격하고 죽이려는 자들이 뒤따라오고, 옆으로 보아도 피할 자리가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38년 된 병자를 만나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 시간 만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분으로 인하여 물질의 문제, 건강의 문제, 신령한 은혜의 문제를 다 해결함 받기를 축원합니다.
마 0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마 09: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오늘 말씀의 베데스다 못에 관한 메시지는 웬만큼 교회생활을 한 분이라면 단번에 스토리를 줄줄 꿸 정도로 대단히 친숙한 이름입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와 관련된 모임이나 사업체에도 이 이름을 붙인 데가 많습니다.
베데스다교회, 베데스다기도원, 베데스다요양원, 베데스다합창단, 베데스다선교회, 베데스다상담소 베데스다옷가게, 베데스다 스포츠 마사지 센터 등도 있습니다. 베데스다가 등장하는 성경의 흐름과 별 상관없이 보이는 업종에까지 버젓이 그 이름이 사용되는 것을 볼 때 베데스다라는 브랜드 가치가 대단함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나 이 베데스다라는 명칭을 쓴다고 해도 자비의 집이라는 믿음의 향기가 풍겨나지 않으면 그 사업이나 공동체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그곳에 가시지 않으면 더욱 베데스다의 가치가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의 사업체에 베데스다의 가치가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섬기는 김해삼일교회가 참 베데스다 되신 주님께서 임하심으로 인해 복된 은혜의 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8년 된 이 병자는 자기를 못에 넣어줄 사람을 한 사람도 가지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에서 단 한사람의 소망마저도 사라졌을 바로 그 순간이 주님께서 찾아오시는 시간이요 주님을 만나야 할 때입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을 내가 만난다면 바로 이때야말로 반드시 내가 주님을 만나서 은혜 받아야 할 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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