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1년 말씀

이제 불평 뚝 원망 뚝 입니다(민 11:01~12).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1. 5. 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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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사님 한 분이 40년을 한 교회에서 목회하다 잘 미친 후 자기의 목회 철학 중 유익했던 일 한 가지를 소개하였습니다.

이 목사님은 교인 가정을 심방 할 때나 당회를 할 때, 혹 누구를 만날 때는 언제든지 성경, 찬송 외에 검정 표지로 된 노트 한 권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노트 표제가 교인 불평록입니다. 교인 중 누가 목사님을 찾아와서 어떤 교인의 비행이나 잘못에 대하여 불평을 늘어놓으면 목사님은 그 불평하는 교인에게 예, 그렇습니까? 하면서 그 노트를 펴고 펜으로 적을 준비를 하고 기다립니다.

 

, 여기 불평록이 있습니다. 자세히 말씀하십시오. 내가 여기 적어놓겠습니다. 그리고 끝에 확인하는 뜻에서 사인 하나만 남겨주십시오.

시간이 나는 대로 제가 그 잘못을 정식으로 문제 삼아 바로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불평하러 온 사람이 당황하면서 사실은 그게 아니고 뭐 기록에 남기고 사인까지 할 만한 이야기는 못 됩니다. 하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의 목회 40년 동안 불평록에는 단 한 줄도 교인의 허물이 불평으로 기록된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교회도 평안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도 한 마디 한 마디 쏟아내는 말에 서명한다는 심정으로 말하면 어떠할 것 같습니까? 인간관계가 따뜻하고 화목해질 것입니다.

책임질 수 있는 말, 내 인격을 걸 수 있는 말,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고, 신앙의 유익을 주고, 긍정의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을 합시다.

우리가 불평을 많이 하고 또 들어도 보지만 대개 책임을 지지 못하는 불평과 원망이 대부분입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불평하지 않아도 될 것을 불평하고, 때로는 감사해도 될 일을 불평과 원망으로 바꾸는 일을 자주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매사의 환경을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으로 바꾸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진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목을 불평 뚝 원망 뚝, 합시다.로 정했습니다.

 

 

1. 지금 누가 불평과 원망을 합니까?

 

0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이스라엘 백성이 일 년을 시내산 자락에서 머물며 지냈습니다. 메마른 광야와 같은 곳에서 지내는 동안 매우 지루하였을 것입니다.

마침내 구름 기둥이 증거막 위로 떠 올랐습니다. 이제 모세의 인도를 따라 언약궤를 앞장세우고 각 지파는 순서대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였습니다(10:33, 34).

이스라엘은 더 좋은 곳으로 간다는 설렘임으로 출발했습니다. 사흘 길을 행한 후에 다베라에서 진을 치고 머물게 되었습니다(11:03).
시내산에서 다베라까지 가는 길은 가장 메마르고 척박한 곳 중의 하나로서 지내놓고 보니 사흘 전까지 머문 시내산 자락의 환경은 좋은 편에 속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백성은 사흘 전 환경과 비교하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먹을거리가 넉넉하였던 때의 일을 비교하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01).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혈기를 절제하지 못하고 함부로 욕지거리하며 원망한 것 같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원망을 합니까?

 

0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누구입니까? 12:37, 38절을 보면 이들의 출처와 신분을 일명 잡족(雜族 עֵרֶב 에레브)이라고 칭했습니다.


출 12:38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하였으며.

 

이 잡족 속에는 이스라엘 여자가 애굽 남자와 결혼하여 살던(24:10) 통혼한 무리가 있습니다. 또 다양한 국적을 가진 자들이 애굽에서 노예 신분으로 건축 노역에 얽매였다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함께 따라 나온 자들도 포함됩니다.

이들 잡족은 선민의식이 없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뜻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저 애굽의 종살이를 벗어나고 싶은 순간의 감정을 따라 나왔습니다.

 

함께 출애굽 했으나 할례를 받기 전 이방인으로 분류된 자들입니다. 각자 연관을 맺고 있는 지파에 붙어서 식객으로 지내다 할례를 받으면 그 지파에 편입했습니다. 민족의 자긍심과 여호와의 신앙과 가나안을 향한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04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먼저 불평이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러운 현장을 만나면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이 잡족이 원망을 일삼았습니다. 그리하여 불평과 원망은 전염병처럼 이스라엘에 번졌습니다.

이스라엘을 부르는 또 다른 별명이 있는데 목이 뻣뻣한 백성입니다. 고집과 교만과 불신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이웃에게 불평을 쏟아내기 때문입니다(32:09).

 

 

2. 이들의 불평거리가 무엇입니까?

 

0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06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근거 없는 말로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원망 거리가 있습니다.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 시절에 먹던 생선, 오이, 참외, 수박, 부추, , 마늘 등을 지금 먹지 못하는 데다 어떻게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만 먹고 사느냐? 라는 불평입니다.

애굽에서처럼 무상으로 고기도 먹고, 생선도 가끔 먹으면서 또 참외, 수박, 부추, , 마늘 같은 채소도 곁들여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렇게 매일 매일 만나만 먹다 보니 기력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또 애굽의 여러 산물(産物)을 값없이 먹었다고 하지만 이것도 틀린 말입니다. 물론 나일강에서 많은 물고기가 잡히고, 나일강 주변 밭들이 비옥하여 각종 농작물이 풍성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값없이 받은 것은 아닙니다.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 빛 아래서 채찍을 맞으며 힘든 노예의 생활 한 대가로 이런 식물을 얻었습니다.

돈을 직접 주고 구한 것이 아니기에 값없이 받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사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권과 노동을 내주고 얻은 먹거리이니 아주 비싸게 산 것과 같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려면 오늘에 유익이 되도록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오늘을 불평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모조리 부정하는 불신앙과 다름없습니다.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사람의 말 중에 가장 버릇없는 말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06절을 보겠습니다.

 

0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나님께서 못 먹여 주셔서 기력이 약해졌다고 말합니다. 먹을 것이라고는 달랑 만나밖에 없다는 불평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불평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날마다 내려주신 만나는 가장 완전한 건강식입니다. 완벽한 식품, 즉 우주인이나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대단한 식품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근 일 년을 먹고 지낸 이스라엘은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다 쓰러져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불평과 원망을 할 정도로 건강합니다.

문제는 만나가 처음에는 대단히 맛있었습니다. 일 년 정도 먹다가 보니 지겨워져서 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처음 만나를 먹을 때 감탄하며 한 말이 있습니다.

 

출 16: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지금 이스라엘이 머무는 곳은 아직 정착지가 아닙니다. 이제 시내산을 출발했으니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열흘 정도는 지나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광야 생활을 조금만 참으면 가나안의 풍성한 곡식과 과일을 먹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현주소는 광야입니다. 불평할 때가 아닙니다.

이 척박한 땅에 매일 아침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며, 지금까지 조금도 수고하지 않고 생활비 내지 않고 일 년을 지냈습니다. 큰 은혜요, 큰 감사 거리요, 큰 복입니다.

 

그런데도 매일매일 감사가 아니라 불평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이들의 허물이 무엇입니까? 바로 불신앙입니다. 죽게 되었다고 원망할 때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물이 쓰다고 원망할 때 단물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고기 먹고 싶다고 원망할 때 메추라기를 마음껏 주셨습니다. 또 목마르다고 원망할 때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앞에서 수군 뒤에서 수군거립니다. 저들이 최소한의 믿음만 있어도 기적과 받은 은혜를 원망으로 바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불신앙이 최고의 죄입니다.

 

3. 나도 불평과 원망을 합니까?

 

10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믿음의 가족 여러분,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기 소신과 주관을 버리고 남의 불평 소리에 감염되는 사람입니다. 원래 불평과 원망은 전염성이 강해서 듣다 보면 서서히 감염되어 감을 아시지요. 불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상대방의 불평과 원망을 자기의 불평과 원망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내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마귀가 가져다주는 은혜의 걸림돌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사람을 미혹할 때 터무니없는 말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加減)하여 비슷한 말로 미혹하였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모두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두가 선동자의 불평에 깊이 동조하여 원망과 불평을 막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신앙생활을 하는 데는 악영향 끼치는 말들은 가능하면 듣지 않아야 합니다. 들었을 때는 빨리 씻어 버려야 귀가 복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그 말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 말에 내가 동조하는 그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는 서서히 상실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으로부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덕스러운 말만 듣는 특별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혹 상대방이 내게 불평합니까? 원망 거리를 선동합니까? 그럴 때는 이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십시오.

 

과연 내게 덕스러운 말로 들립니까? 상대방 인격이나 신앙을 깨뜨리려는 말인지 자기변명과 자기의 허물을 합리화시키려는 말인지 분별하십시오.
아니면 공동체를 해치려는 말인가? 혹은 그 말에 이기주의 요소가 가득한가? 이 사람이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되는가를 살펴보십시오,

악한 의도로 하는 말처럼 들립니까? 아니면 선한 의도로 하는 말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 하나는 아십시오. 불평하는 사람은 항상 뒤에서 문제를 생산하는 공장장이란 것을.

 

마 07:0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0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신앙도, 꿈도, 민족 긍지도 없이 섞여 나온 인종들은 힘든 고난을 인내로 극복하지 않습니다. 틈만 나면 불평과 원망으로 소동을 일으킵니다.

이쯤에서 다시 보겠습니다. 섞여 나온 무리가 소동을 일으키며 선동하더라도 본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과 불평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바라볼 것을 바라보고, 닮을 것을 닮아야지, 왜 섞여 사는 무리의 행동을 닮습니까? 본받을 것과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고전 10: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불평과 원망은 불신자의 영역입니다. 좀 안타까운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이런 악한 요소를 배웁니다. 아주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웁니다.

원망하는 사람과 어울리면 같이 원망하게 됩니다. 불평하는 사람과 어울리면 같이 불평하게 됩니다. 의심하는 사람과 어울리면 같이 의심하게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큰 문제가 무엇인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섞여 나온 무리의 불평과 원망을 여과 없이 계속 받아 준 것이 문제입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는 불평 현장을 만날 때 어떻게 합니까? 과감하게 떠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불평과 원망 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바꾸어 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불평과 원망 그치며 삽시다. 섞여 나온 잡족의 불평과 원망 때문에 이스라엘은 불신앙에 오염되었습니다.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거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홍해의 죽음 같은 환경에 섰을 때 홍해를 열어주신 기적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늘에서 매일 매일 내라는 만나를 먹고도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였습니다. 매일매일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은혜를 체험하면서도 원망과 불평에 감염되어 있었습니다.

 

약 05:0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밖에 서 계시느라.

 

원망은 하면 할수록 그 폭이 크고 넓어집니다.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도 원망을 시작하면 점차 주변은 원망의 대상으로 바뀝니다. 내 속에 있는 원망을 노출하면 그때부터 열 가지, 백 가지 원망으로 확산합니다. 세상만사가 더욱 원망스러워집니다.

김해삼일 가족이 원망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원망하는 사람과 일단 접촉을 피하고 봐야 합니다. 불평이 가득 찬 사람과 교제하면 결국 오염됩니다.

그런 사람은 집단 형성을 위해, 마치 세뇌하듯 다른 사람을 세뇌하고 동조자를 만듭니다. 더 깊은 함정에 빠지기 전 원망하는 유형의 사람과는 사귐을 단절하십시오. 그게 내가 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