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양치기가 아침마다 양들에게 풀을 먹이고도 또 연한 풀을 뜯어서 우리로 가지고 들어가곤 했습니다. 이 일을 본 마을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 그를 따라 우리로 들어갔더니 양치기는 다리가 부러진 양에게 풀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쩌다가 양의 다리가 부러졌습니까? 양치기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하기를, 내가 일부러 부러뜨렸습니다.
마을 사람이 깜짝 놀라서 다시 묻기를, 당신처럼 양을 사랑하는 사람이 왜 양의 다리를 부러뜨렸지요? 양치기는 양을 쓰다듬으면서 말합니다. 이 양은 들판에만 나가면 자주 길을 잃고, 내가 가까이 가면 슬슬 피해서 도망을 칩니다.
목장 주변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많습니다. 아주 위험하지요. 그래서 제가 다리를 부러뜨렸습니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매일 풀을 먹이면서 정을 쌓다 보면 언젠가는 저를 알아보고 잘 따를 때가 오겠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채찍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채찍을 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려고 사랑의 매를 사용하십니다. 부모님이 재미가 있어서 자녀에게 매를 듭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녀들이 잘못하였는데도 징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의 자녀가 아니거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히 12:0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향해 직진하지 않고 멀리 돌아서 가는 길 때문에 심각한 정도의 원망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불뱀을 동원하여 많은 사람을 물게 하셨고 고통 가운데 죽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셨습니까? 우매하여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깨닫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원망한 이유와 왜 불뱀에게 물리게 되었는지 이런 일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불뱀을 만났습니까? 치료받읍시다. 입니다.
1. 불뱀을 만나기까지의 배경설명입니다. |
04 백성이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광야 여정에 관한 성경입니다. 오늘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에나 천국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의 신앙 이야기를 미리 적어놓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광야 길에는 원망과 불신으로 인한 반역의 흔적들이 배어 있습니다. 출애굽 후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사건, 매일 만나로 먹여 주시는 일, 반석을 쳐서 생수가 흘러나게 한 일이 있습니다.
이만하면 매일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저들은 눈만 뜨면 원망이요 입만 열면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04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에서의 후손 에돔의 방해로 인해(민 20:18~21) 평탄한 길로 진입하지 못하고 다시 바란 광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신 02:01; 삿 11:18).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여기서 마음이 상하니라. 는 짧다는 의미입니다. 즉 마음에 여유가 없으므로 인해 안목이 좁아졌다는 그런 뜻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여유가 없습니다. 안목이 좁으면 멀리 있는 복된 지점을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눈앞의 고통스러운 현장에만 사로잡힙니다. 이런 환경이 믿음의 전진을 가로막습니다. 사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고생 끝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38년간이나 광야에서 방황했으며 40년의 때가 다 되어 갑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불평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들의 삶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로 수 없는 기적을 체험하면서 지내왔습니다. 감사를 말하자면 어디 헤아릴 수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이 없습니다. 민수기를 보면 이스라엘이 은혜를 깨달았다든지 감사와 찬양을 올렸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다만 원망하였다는 말은 13번 나옵니다.
민 14:0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0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0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0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하는데 그 불평을 보면 은혜의 한계점을 벌써 넘어섰습니다. 이스라엘이 길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고 했잖습니까? 예, 물론 빨리 가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때와 일정표가 중요합니다. 지름길보다 돌아갈 때가 있으며, 때로는 시간이 오래 걸릴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나의 시간표가 아무리 중요할지라도 하나님의 시간표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시간표를 봅시다. 일단 40년이고(민 14:29~34), 민 13:34 절에 의하면 조금은 더 남아 있습니다. 기약 없는 세월이 아닙니다. 길어야 사십 년인데 그 시간이 거의 다 지나고 있습니다. 조금만 인내하면 됩니다. 일정표는 순서대로 기다려야지 너무 조급하면 안 됩니다.
2. 원망에 사로잡히면 불뱀을 만납니다. |
06 여호와께서 불뱀 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성지순례를 하면 당연히 광야길 코스를 갑니다. 그런데 광야에는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글거리는 햇볕, 풀 한 포기 없는 산, 드문드문 보이는 바위, 싯딤나무, 로뎀나무, 풀인지 나무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억센 풀 등 이런 것들만 보입니다. 이렇게 낮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밤이 되면 독충들이 나오고, 전갈이 나오고, 불뱀이 나옵니다. 이런 것들은 주로 낮에는 더위를 피해 모래 깊숙이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나옵니다.
밤이 되면 불뱀은 더욱 판을 치는데 여기 불뱀은 이스라엘이 지나던 아라바 광야 지역에 많이 서식하던 독사의 한 종류로서 등에 붉은 반점이 있습니다. 치명상을 입히는 독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 물리면 붉은 반점이 발생하고 열이 오르며 고통 가운데 죽기 때문에 불뱀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걸핏하면 불평과 원망하는 이스라엘, 마지막까지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불뱀을 보내었습니다. 불뱀으로 인한 그 죽음과 고통의 현장에서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가 왔다는 고백입니다.
0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징계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부터 살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때 불필요한 고집과 불평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초자연의 방법을 동원하십니다. 이 일이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약 05:0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밖에 서 계시느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주로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래도 그런 매를 맞기 전에 정신 차려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 물로도 하시고, 불로도 하시고, 때로는 전쟁의 고통을 통한 징계로도 하시고, 전염병으로도 하십니다. 그래서 그 심판이 더욱 무섭습니다.
민 14: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감사와 찬양이 사라지고, 매사에 불평과 원망의 노예가 된 자는 복의 터전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이 상하면 멀리 보지 못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어려움으로 불평을 합니다. 마음이 상할 때는 빨리 마음을 진정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계속 불평과 짜증이 나오고 이전에 받았던 은혜까지도 다 쏟아버리게 됩니다.
3. 불뱀으로부터 치료는 놋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0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우리가 불뱀의 징계를 당하였습니다(07). 이제 회개하오니 살려주십시오. 라고 간구할 할 때 하나님께서 08절로 처방전을 주셨습니다. 불뱀은 불평할 때 오고 놋뱀은 회개할 때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08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08 ….그것을 보면 살리라. 09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아주 중요한 일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상하게 만든 불뱀은 복수로 되어있고 저들을 구원하는 놋뱀은 단수로 되어있는 것 말입니다. 죄는 다양할지라도, 치유의 길은 단 하나 놋뱀이지 여러 갈래의 길은 결코 아닙니다.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것이 무슨 치유가 되겠습니까? 불뱀에 물려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을 향하여 장대 끝을 쳐다보라니
얼마나 어이없는 일입니까?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그들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 있는 것이지 놋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쳐다보면 살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므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인데 혹자는 놋뱀을 보기를 거부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불뱀에 물리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뱀이라는 말만 들어도 끔찍한 데다가 그것의 모형을 만든 놋뱀을 쳐다본다는 것이 여간 마음에 내키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놋뱀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마음에 결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뱀에 물려 부은 몸을 이끌고 놋뱀을 매달아 놓은 곳까지 가야 하는 나의 의지입니다. 그런데 더러는 불뱀에 물려 독으로 죽어가면서도 놋뱀을 쳐다만 본다고 사는가? 세상에 이런 일은 없어 하면서 자기 고집을 부리다 죽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걸어와서 놋뱀을 쳐다봄으로 치료함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가족의 등에 업혀 와서 치료함을 받기도 했을 겁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놈아, 저거 안 보면 죽는 거야 하면서 외치는 어머니 손에 억지로 끌려와서 치료함을 받기도 했을 겁니다. 반면 딱히 방법이 없으니 한번 해 보기나 해 보자. 밑져봐야 본전 아닌가? 하면서 그곳까지 반신반의하며 가서 바라보고 치료함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겸손히 나가서 치료함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순간의 치료는 약을 바르고, 살을 도려낸다 해도 소용없고, 환자를 가슴에 끌어안고 목 놓아 울어도 소용없고, 그저 놋뱀을 바라보아야 치료가 됩니다. 하나님은 불뱀의 독성을 제거하는 유일한 치료법으로 장대에 높이 들린 놋뱀을 보듯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밖에 없음을 구원의 원리로 제시합니다(요 14:06).
십자가처럼 생긴 높은 장대 위에 놋뱀을 만들어 걸어 놓고는 누구든지 이 놋뱀을 바라보는 사람은 치료함을 받을 수 있겠다는 처방입니다. 요한복음 03장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관원 니고데모와 거듭남에 대한 비밀을 말씀하시면서 오늘 본문의 한 부분을 인용하셨습니다.
요 0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이 있습니다. 그는 구두 수선공 아버지와 남의 집에서 빨래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집은 가난했고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로 매일 술에 취해 돌아와 아들을 학대했습니다. 사람은 이런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난 안데르센이 어떻게 좋은 동화를 쓸 수 있었는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안데르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나의 불편한 환경 속에서도 나에게 베풀어진 복을 붙들기로 했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무서울 때도 많았지만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듣기를 즐거워했습니다. 나는 다락방에 누워서 상상하기를 즐거워했습니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여전히 좋은 분이라고 믿었고, 나의 가난한 집을 나의 복이라고 믿었습니다. 나는 가난했기에 성냥팔이 소녀를 쓸 수 있었고, 내가 못생겼다고 놀림 받았기에 미운 오리 새끼를 쓸 수가 있었습니다.
렘애 0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 시로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지금 어렵고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고난과 시련이 더 좋은 믿음을 만들어 냅니다. 불신앙으로 인해 불뱀과 같은 환경을 만났습니까?
놋뱀의 상징이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얼마든지 더 좋은 환경으로 전환할 수 있고,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지금 불신앙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나의 구원자이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앞으로 마음껏 복을 주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불신앙을 치료받고 믿음으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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