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1년 말씀

침노하는 자가 터전을 잡습니다.(마 11:01~1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1. 4. 2.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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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라면의 달인 콘테스트에서 이경규 씨가 독특한 조리 방법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닭 육수를 이용한 이 라면 요리법은 전문 심사위원으로부터 가장 맛있는 라면, 맛과 영양이 조화를 이룬 라면이라는 등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28일 방송된 최종 결선에서는 2위에 머물렀습니다.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은 이경규의 일명 꼬꼬면이 유명 라면 업체인 H사와 상품화를 결정하여 9월께 출시 예정입니다.
그런데 지난 20일 남격에서 이경규의 꼬꼬면이 방송된 직후 21일 서울 노원구의 김 모 씨가 먼저 특허청에 꼬꼬면 상표등록 출원을 내었습니다.
한 개인이 20일 방송을 보고 먼저 꼬꼬면 상표등록을 했다 할까요? 그 바람에 H사 관계자는 꼬꼬면으로 상품을 출시하면 이미 상표등록을 한 사람의 상표를 침해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경구의 꼬꼬면으로 상표등록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경규 씨도 이 같은 약삭빠른 일에 대해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인지하고는 정말 빠른 세상이다. 어쩔 수 없지 않나? 라고 허탈해 했다 합니다.

 

요즘은 누구나가 사이버 공간에서 개인 도메인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등록하면 등록자 외에 다른 사람이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좋은 이름을 확보하기 위하여 치열한 사이버 전쟁을 치르는 형편입니다.

우리교회 홈페이지도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미 등록되어 있는 상태이기에 우리 외에는 아무도 김해삼일교회(gsamil.org)라는 이름으로 등록할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가 선점을 했기 때문이지요. 사이버 공간에서의 영토는 먼저 발견을 하여 등록하는 자가 차지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지금부터는 새로운 시대가 왔으니 용기 있는 자가 먼저 들어가서 취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나의 신앙영역에 적용하면 어떨까요? 천국을 교회로 적용하는 것 말입니다. 지금부터는 교회의 신령한 축복의 자리를 내가 강력히 침노하여 차지하면 되는 겁니다.

 


 1. 예수님은 천국 시민의 자격을 새롭게 발표하십니다.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 하면 신분상 격이 높은 상류층 사두개파 소속이며, 율법과 제사 법전을 제대로 공부한 현직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의 정치 구조상 소위 출세의 길이 보이는데도 세속과는 모든 것을 절연하고 광야의 은둔자의 길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의 비리를 들추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자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메시야 인줄 예측하고 몰려들었습니다. 이런 세례 요한의 행적을 못마땅하게 여긴 헤롯 왕이 그를 전격적으로 체포하여 수감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그를 당시의 통념을 뛰어넘는 두 가지의 품격있는 평가를 하셨습니다.

 

①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세례 요한의 인격, 권능, 종교적 지위 등이 다른 선지자들보다 우수하다는 뜻이 아니라 천국의 주체이신 예수님과 관련해서 해석하여야 하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기라성 같은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메시야 왕국을 멀리서 고대하고 사모하면서 예언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만
세례 요한은 그 나라에 가장 근접하게 다가갔습니다.
친히 메시야의 길을 준비했으며, 예수님을 직접 만나 그를 만백성에게 소개하였다는 점에서 구약 선지자들 중 최고의 위치를 차지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는 다른 선지자들과 비교해서 가장 큰 자에 속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②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천국은 메시야의 통치가 실현되는 모든 영역으로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이 땅의 나라와는 다릅니다. 영원에서 영원까지의 모든 나라 사람들을 포함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나라입니다. 따
라서 그 나라에 동참하는 자야말로 단순한 인간적 평가를 훨씬 초월하는 신적 영광에 동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세례 요한의 주 된 사역과 내용이 바로 이런 천국의 도래를 예비하고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작은 자 혹 큰 자의 대조는 인간적 자질이나 윤리적 우수성이 아닌 천국의 신적인 측면과 연관됩니다. 작은 자, 큰 자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작은 자는 예수님 이후의 모든 신약 교회의 성도들, 그리고 큰 자는 구약의 성도들로 해석하는 게 무난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그리고 구원의 의미를 깨닫는 자들은 구약에 속하여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데 그쳤던 세례 요한이나 구약의 어떤 위대한 인물보다 큰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천국 시민의 자격자가 사두개파나 바리새파 등 기존의 이스라엘 기득권층이 아니고, 그렇다고 소외나 억압을 받는 자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누가 천국 시민의 자격자입니까?
종교의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을 구원자이신 메시야로 믿기만 하면 그 사람이 천국 시민권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천국 시민의 자격을 예수님께서 새롭게 정리하여 선포할 때 마치 천국을 자신들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이스라엘의 기득권자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으며 얼마나 요동을 했겠습니까?

 


 2. 천국의 소망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모여듭니다.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당시의 기득권자들은 천국 시민의 자격을 논할 때 자신들과 같은 학식과 신분이 우수한 자들이 아닌 무식자나 세리 및 창기들은 들어갈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배웠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저들에게는 사람이 오지를 않고 기득권자들로부터 멀어진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게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으로 말하자면 그는 광야의 사람이요,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던 사람이었고, 예수님도 사람의 보기에는 고운 풍채도 없고 사람의 보기에는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사 53:02) 천한 동네 나사렛에서 출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세례 요한이 사역하던 광야에 사람들이 찾아왔고, 예수님의 복음의 현장인 회당이나 바닷가, 산, 광야에는 역시 항상 무리가 몰려왔습니다.

 

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겁니까? 천국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요, 영적 갈증을 풀어주는 생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대망하던 메시야 왕국의 소망 때문에 모여들었고, 로마제국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 죄악의 나라가 아닌 의인의 나라, 고통의 나라가 아닌 평안의 나라, 불안의 나라가 아닌 기쁨의 나라이었기 때문에 모여든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세례 요한에게는 현재와 함께 미래가 있었고, 순간이 아닌 영원한 나라의 소식, 천국의 소식이 있어서 이 메시지가 군중들의 가슴 속에 파고들기 때문에 모여든 겁니다.

 

마 21:3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고 멸시함을 당했던 세리, 창기, 각종 범죄자들, 이방인들에겐 대단히 희망적인 메시지 아닙니까? 당연히 예수님과 세례 요한에게는 침노하는 자와 같이 군중들이 모여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 천국의 주인공은 기득권을 가진 어떤 특정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라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에 이 메시지를 들으면서 모여들었다는 말입니다(마 04:23; 막 01:14,15).

 

하나님 나라의 소식이 군중들의 영적인 갈증을 시원케 한 것이라면 내 삶의 영역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을까요? 끼리끼리 모인다고 했는데 그러한 모임 말고 다른 유(類)의 사람들이 나로부터 신앙적인 매력을 느끼면서 모여듭니까? 찾아옵니까?

성도 여러분, 내 가정에, 내 사업장에 신앙의 위로를 얻기 위해서, 신앙의 상담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찾아옵니까? 그리고는 그들이 해결하여 기쁨으로 돌아가서 신앙생활을 더 잘합니까?

혹 내 주위에 고정 멤버를 제외하곤 사람이 없는 썰렁한 객석은 아닌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에게 걸림돌 요소가 있다면 무엇 때문입니까? 신앙의 매력 포인트가 없는 겁니까? 이제 소진한 겁니까? 나를 통한 메리트가 있을 것 같으면 지금부터라도 전화통이 불이 날 것이고 인터넷의 메일도 막 들어 올 것입니다.

 


 3. 나는 신령한 것을 얻기 위해 침노합니까?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침노
(侵擄, βιάζεται). 힘으로 진격하다, 격렬하게 빼앗다 등의 뜻으로서 이는 거룩한 능력과 막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임하는 역동적인 단어입니다. 실로 침노하는 자는 목표한 바를 쟁취하기 위해 확실한 동기를 가지고 과감한 행동을 취하는 사람이요, 목표를 향해 열정을 품은 사람입니다.
침노하는 사람은 힘과 활기가 넘치는 열정의 사람이요, 철저하게 자아는 깨어진 사람입니다.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와 함께 삶의 구조와 기질이 변화된 사람이요, 신령한 은총을 입은 사람으로서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을 향하는 자들입니다(마 07:13~14).

 

신령한 것을 얻기 위해 침노하는 자는 넘치는 수고를 더욱 많이 하면서도 자신을 나타내는 일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서는 묵묵히 일만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비록 말로는 표현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목적이 있을 것이고, 그 분명한 목적이 인생을 이끌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건강한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정체의식(who), 목적의식(why), 사명의식(what), 그리고 전략의식(how)이 분명하여서 모든 삶의 영역에서 반드시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에 의해 김해삼일교회는 아름답게 지어져 가며 발전을 해 나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신령한
교회에서 신령한 복을 잡기 위하여 얼마나 침노를 하십니까? 신령한 터전과 신령한 직분을 잡기 위하여 지금 얼마나 거룩한 침노의 계획을 세웠습니까?
신령한 목적을 육으로만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기도로, 봉사로, 전도로, 말씀으로, 사랑으로 밀어붙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세상적인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릅니다.

 

링컨(Lincoln). 사람은 자기가 결심하는 만큼 행복해질 것이다. 예, 나도 신앙의 앞날을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얼마만큼 결심을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침노하는 자의 터전입니다.
나는 교회에서 마땅히 바라보아야 할 신령한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신앙생활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하십니까? 단순한 인격수양입니까? 폭넓은 인간교제입니까? 세상 사람들이나 구할 법한 세상적인 것들입니까?
우리는 이런 것들보다 더 큰 신앙의 영적 보금자리를 잡기위해 수고의 열정을 하여야 합니다.

 

J. F. 케네디(1917, 5,29~1963, 11,22 제 35대) 대통령은 우리가 죽을 때에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네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그 질문에 그렇다. 하는 긍정적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첫째, 당신은 용감하였습니까? 둘째, 당신은 총명하였습니까? 셋째, 당신은 성실하였습니까? 넷째, 당신은 헌신하였습니까? 이 질문을 나의 교회생활에 적용하면 되겠습니까? ①당신은 믿음으로 용감하였으며 ②당신은 믿음으로 총명하였으며 ③당신은 믿음으로 성실하였으며 ④당신은 믿음으로 헌신하였습니까?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어떤 사람이 멋있게 생긴 자전거를 닦고 있는데 한 소년이 다가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하다가 자전거 주인에게 슬며시 물었습니다. 아저씨, 이 자전거 꽤 비싸게 주고 사셨지요? 그러자 자전거 주인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합니다.
아니, 이 자전거는 형님이 나에게 주신 거란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소년은 부럽다는 눈치로 금세 나도…. 라는 말을 합니다.
그때 자전거 주인은 당연히 그 소년이 자신도 그런 형이 있어서 이런 자전거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소년의 다음 말은, 나도 그런 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집에는 심장이 약한 내 동생이 있는데 그 애는 조금만 뛰어도 숨을 헐떡여요. 나도 내 동생에게 이런 멋진 자전거를 주고 싶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 신령한 터전을 잡기 위하여 침노를 하는 자는 무엇을 받고자 하는 자가 아니라 무엇을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는 자입니다. 나누는 일을 잘하는 것이 신령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마냥 나의 편이 아니고 영원히 기다려 주지를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 나의 믿음의 결심이 어떠합니까? 얼마나 나의 시간을 잘 관리하며, 얼마나 시간을 잘 활용합니까? 신령한 보금자리를 침노하여 얻기 위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습니까?

 

눅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 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