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인기 있는 사업 가운데 과거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용어가 많이 유행합니다. 그중에 외모 산업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미용실, 피부관리실, 스포츠센터, 성형외과 등입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매출이 약 7조 원이나 됩니다. 이런 외모 산업을 받쳐 잘 주는 곳이 성형외과입니다. 과거에는 보기 흉한 흉터 정도를 고쳐주는 정도이었지만 지금은 멀쩡한 부분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성형에 대해 일화가 많습니다. 한 준수하게 생긴 남자와 상당한 미모를 갖춘 여자가 결혼하였습니다. 얼마 안 있어서 2세를 임신하였는데 딸이 태어나면 틀림없이 미스코리아 감이라 여기며 상당한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아기의 인물이 전혀 아닙니다.
주위에서 흔히들 미인은 어릴 때는 좀 못 생기는 예도 있다고 말하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보는 데 아기가 자라면서 미인은커녕 양쪽 다 닮지 않은 못난이가 되어 갑니다.
그러자 남편이 아내에게 아무래도 아기가 병원에서 바뀐 것 같으니 유전자 검사를 한번 해 보자는 제안을하였습니다. 어떻게 우리 사이에 이런 아이가 나올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유전자 검사를 하려는데 장모님이 알고 말립니다. 여보게, 그냥 살게? 아니 장모님 무슨 말입니까? 아무래도 아기가 바뀐 것 같은데 어떻게 산다는 말입니까? 아니야 틀림없는 자네 아기가 맞아 여기 사진을 보라고.
그러면서 사진을 한 장 내미는데 그 사진 속의 아이와 자기 아이가 너무 똑같습니다. 이게 누구입니까? 자네 안 사람이지. 자네와 결혼하기 한 2년 전쯤 작업 좀 했어. 코 공사, 눈 공사, 턱 공사 등 말이야. 이렇게 해서 예뻐졌습니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은 일이기에 고쳐서 예뻐진다면 작업 좀 하시기 바랍니다. 단 하나님의 솜씨보다 더 좋다면 말입니다(창 01:31). 우리가 외모에 신경을 쓰는 만큼 심령 관리, 마음 관리에도 관심을 가지십시오.
마음이 굳어지지 않게 말입니다. 인체의 모든 부분은 굳어지면 죽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마음이 완고하면 죽음이 옵니다.」라는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마음을 완고하게 함이 무엇입니까? |
0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마음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중심 요소인 속사람을 의미합니다(벧전 03:04). 인간의 지성(잠 10:8)과 감정(시 34:18)과 의지(롬 10:10)의 자리(坐所) 말입니다.
완고하게(σκληρύνω 스클레뤼노). 굳어지다. 말라서 딱딱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애굽 왕 바로가 모세의 열 가지 재앙을 대항할 때와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출 09:35).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알고도 거부하는 성향으로 굳어진 인간의 심성을 가리킵니다.
잠 0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명의 근원은 외모와 육신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습니다. 아무리 외모가 수려할지라도 그 마음에 주님이 거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마음이 굳어진 사람입니다. 내 영혼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심령에 완고함이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완고함이 이미 자리 잡았다면 믿음으로 속히 풀어야만 합니다.
이 완고란 단어를 바울은 딤전 04:02 절에서 양심에 화인(火印) 맞은 사람으로 표현했습니다. 화인이란 피부에 심하게 화상을 입은 흉터입니다. 그 흉터가 감각을 잃으면 아무리 만져도 잘 모르듯이 완고란 말은 이런 상태를 말합니다.
딤전 04:0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사람의 양심이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도 있고 이렇게 화인을 맞은 양심도 있습니다. 마음이 완고해진다는 말은 감각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흉터처럼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에 대해 마음이 계속 굳어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도 아니며,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리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어도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회개에 대한 메시지를 들으면 당연히 크게 뉘우침이 따라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복음의 메시지, 회개의 메시지를 들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보겠습니다.
행 0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그런데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 그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 애통함이 따라야 합니다(마 05:04). 그런데도 심령이 무감각해집니까? 그러면 말씀을 들어도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마음이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에 대해 응답하지 않는 사람, 감각이 무디어진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1: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2. 마음이 미혹될 때 완고해집니다. |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 도다. 하였고.
미혹되어(πλανάω 플라나오). 방황하다, 빗나간다는 마음으로서 저자는 출애굽기 17장의 사건을 예로 들면서 계속 방황하는 마음에서 돌아서라고 합니다. 이곳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에서 르비딤으로 가는 도중 마실 물이 떨어져 목이 마르자 모세 앞에 나와 원망을 하던 때입니다(출 17:01, 02). 모세가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 17:0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06 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반석에서 물이 솟아났습니다. 이 원망의 사건이 진정된 후 모세가 그곳을 두 가지 이름 맛사와 므리바로 지었습니다. 맛사는 시험, 므리바는 다툼입니다. 백성이 모세와 싸우려 했고, 하나님을 시험했기 때문에 맛사와 므리바라고 이름 지었는데 히브리서 저자는 바로 이런 마음이 미혹된 마음이라고 정의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교회 나오면서도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사나운 마음으로 싸웁니까? 가정에서도 그렇습니까? 말씀의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어려움을 당하면 그 인격이 나타납니다. 마음이 미혹되었는지 아닌지 나타납니다. 어려움이 올 때 시비와 트집을 잡는 것이 미혹된 마음입니다. 일이 잘될 때 즐거워하며, 승승장구할 때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삶의 환경이 어려울 때 원망하는 그 자세를 미혹된 마음이라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계속 이런 미혹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강퍅해지며, 딱딱하게 굳어져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를 계속 짓고, 거짓말을 계속하고, 성령님께서 찔러주는 죄를 외면하면 우리의 마음도 점점 강퍅해집니다. 이 시간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성령님의 X-ray 앞에 찍어보십시오. 외모만 신경 쓰지 말고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진단해 보십시오. 어떤 이는 학문이 마음을 밟고 지나갔고, 어떤 이는 과학이 밟고 지나갔고, 어떤 이는 철학이 밟고 지나갔기 때문에 말씀이 제대로 심기지 못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지금 심령이 굳어진 것 같습니까? 마음이 무엇인가에 의해 굳어지면 생명력은 그만큼 죽어가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생명은 굳어지면 그때는 신령한 면에서 위험합니다.
언제나 부드럽게 움직여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가장 큰 저주는 강퍅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겁니다. 반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는 완고한 대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때로는 쓰라린 고통을 주고, 어려운 시련을 겪게 해서라도 마음이 굳어지지 않도록 생명력과 은혜를 넘치게 주십니다.
시 81: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3. 마음이 계속 완고하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집니다. |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성경은 염려에 대해서 하나님과 관계되는 신앙의 문제는 하라고 하고, 세상 것과 의식주에 관한 것은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염려 대신 근심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두 가지의 의미로 설명합니다. 사람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사망을 이루고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영혼을 살린다고.
고후 0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2절에서 염려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서 직역하면 주의하라,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 밭을 가꾸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정원과 같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마음의 정원에 씨앗을 뿌리는데 분명 기쁨으로 수확할 것을 기대하며 뿌립니다. 내가 뿌린 씨앗으로 인해 아름다운 정원이 되기도 하고, 보기 흉한 정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어디서 내가 뿌리지 않은 풀씨가 날아와 무성한 잡초로 자랄 수도 있으므로 내 마음의 정원을 말씀으로 단장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완고한 마음이 되기 알맞습니다.
나쁜 생각, 음란한 생각, 죄에 관한 생각은 공부하지 않아도 내 속에서 잘 자랍니다. 반면 좋은 생각, 부드러운 마음을 키우기 위해서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마음이 계속 완고합니까?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고 했는데 무엇을 의미합니까? 구원의 자리에서 탈락한다는 말씀입니까? 12절 말씀을 좀 더 세밀하게 보겠습니다.
너희는 삼가(βλέπω). 보다. 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주의하라는 명령과 경고의(막 13:33) 메시지로 사용되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라는 표현을 보십시오.
당시의 성도 중에 더러는 기독교 신앙을 떠나 유대교로 돌아갈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도 하나님을 섬기므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 종교를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자는 바로 그런 자들을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은 자라고 규정합니다.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구원의 탈락자임을 미리 경고합니다.
18절을 보면 우리 마음도 완고하면 주님의 안식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예배당에 나오고는 있습니까? 그런데도 삶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없습니까? 우리 마음이 완고하게 될 때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영혼과 마음이 완고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까? 구원은 받은 것 같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의 생명과 상관없다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진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의 경고를 결코 경홀히 여기지 맙시다. 우리가 육신의 병이 나면 때로는 수술을 합니다. 옛날 같으면 다 죽어갈 병도 요즘은 의사들이 수술해서 살려놓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김삼일 가족의 병, 심령의 병이 들었을 때는 무엇으로 수술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딱딱해졌다면 고쳐야 합니다. 구원이란 말을 듣고 십자가 노래를 부를 때도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죄를 짓고 죄에 대한 설교를 들어도 나에게 와 닿지 않습니까? 마음이 강퍅해진 탓입니다. 그러면 치료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엇으로 치료해야 합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 0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놀라운 말씀, 우리의 영혼을 유일하게 수술하고 치유할 수 있는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에 능력이 나타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나도 모르게 깊이 숨겨져 있는 죄의 종양을 얼마든지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 마음을 치유 받은 사람을 소개하라고 한다면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에 잘못된 죄의 습관으로 인해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마음이 완고해졌습니까? 마음이 굳어지는 것을 고민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그 길만이 내가 사는 길이요, 은혜받는 길이요, 복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병 가운데 간 경화증이나 동맥경화증 등은 다 굳어서 그 기능이 정지되는 병임을 아시지요? 굳어지는 병 정말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나 육신이 굳어지는 병 보다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는 것은 더 크고 무섭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지금 완고한 마음입니까? 지금 회개의 자리에 들어 부드러운 심령으로 돌아갑시다. 이 길만이 내 심령이 사는 길이요 은혜받는 길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완고하게 됨을 면하고 한결같은 자세로 믿음 생활 유지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기업과 영광에 참여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벧전 03:0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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