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케이 미술관에는 프레더릭 왓츠라는(F. Watts, 1817∼1904) 사람이 그린 소망이라는 유명한 명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인 오바마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둥근 지구 위에 약하게 보이는 한 소녀가 남루한 옷을 입고 앉아 있습니다.
수건으로 얼굴 싸맨 것을 보면 맹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소녀의 손에는 여섯 줄은 끊어지고 한 줄만 겨우 남은 낡은 하프 하나가 들려져 있습니다.
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이 소녀는 남은 한 줄에 소망을 두고 하프를 계속해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줄밖에 없으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소녀의 뒤에는 멀리 보일 듯 말 듯 한 작은 별 하나가 희미하게 비취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망의 빛을 뜻하는 비침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 때 사람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던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 살다가 보면 인맥의 줄이 끊어지고, 금맥의 줄도 끊어지고, 세상 줄과 믿었던 사람과의 관계도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소망이 끊어진 것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가 있습니다. 비록 그런 상황에 놓여있다고 합시다.
그런 중에도 내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한 가닥 줄이 있습니까? 그러면 남은 인생을 얼마든지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가족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줄을 붙잡고 늘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종교에는 소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가진 소망은 가장 확실하고 영원한 소망, 차별화된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소망을 만들고 마귀는 절망을 만든다고 하지요.
믿음의 가족 여러분, 나의 마음을 덮고 있는 절망의 안개 같은 것이 있습니까? 소망의 빛으로 걷어내십시오. 오늘 본문을 읊은 시인의 메시지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굳은 소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믿음의 자리에 굳게 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신앙인의 소망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여러분과 함께 살피려 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로 정했습니다.
1. 사람에게 소망을 집중하지 말아야 합니다. |
0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귀인들(נָדִיבּ 나디브). 고관이라는 말로 여기서는 영향력 있는 사람 혹은 탁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 즉 열강(列强)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소망의 권력자도 귀인도 열강도 때가 되니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계속 사라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자들을 전폭 의지하지 말라고 명합니다.
사람은 유한하고, 사람은 변합니다. 사람은 머지않아 그 호흡이 끊어져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알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2001년을 가리켜 9.11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가장 강력한 안전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세계 무역 센터가 Osama bin Laden의 지시로 비행기 테러당했습니다. 비행기가 건물을 치면서 폭발을 일으켜 6천여 명이나 죽었기 때문입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인은 물론 세계의 모든 사람이 무너져 내리는 무역 센터의 건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까? 사람도 어떤 정부도 나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뛰어난 인간의 기술도 과학도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하며 또 한계가 있고 오류가 있습니다. 물질이나 세상 것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구축한 과학 문명을 너무 의지하지 마십시오.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서로 용서해 주고, 축복해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할 존재입니다. 사람을 지나치게 목을 매며 의지하면 분명히 실망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울 왕에게 얼마나 충성하였습니까? 목숨을 바쳐 충성하였기에 그런 다윗을 사울 왕은 사위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이제 왕의 사위가 된 만큼 많은 도움이 올 것으로 알고 더욱더 충성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울 왕은 남의 소리를 듣고 다윗을 정적으로 여깁니다. 정치 세계에서 정적은 내가 살기 위하여 할 수만 있으면 제거합니다. 그때부터 다윗은 죽음의 순간을 수없이 겪습니다. 그가 사울의 손길을 피하다 죽음의 환경에 처하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시 05:0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05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06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07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김을 당하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왕의 사위라고 다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다윗은 세상에 속한 모든 의지 대상을 포기하니 하나님께서 비로소 다윗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장하여 40년을 다스렸는데 다윗이 뭐 특별한 왕이라서 정권이 오래갔습니까? 그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 역시 허물이 있습니다. 약점도 있고, 실수도 있으며, 인간의 악한 냄새가 나는 사람입니다. 다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번영을 누렸습니다.
2. 왜 사람에게 소망을 두거나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까? |
0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흙으로 돌아가서(שׁוּב 슈브). 직역하면 그의 땅에 거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흙에서 온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창 02:07). 인간의 육체는 마지막에는 그것이 생겨난 곳으로 돌아갑니다.
창 0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직역하면 그의 생각(계획)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세우는 계획들은 한 날에 끝날 수 있습니다.
부자나 위대한 인물이 되겠다는 계획, 책을 저술하는 일, 과학 이론, 정치 수완과 같은 술책들도 한순간에 무(無)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보아도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한 이론이나 정책들이 그 주창자가 살던 시대가 지나고 나면 서서히 잊히지 않습니까?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도 내일이면 그 화려한 영광의 관을 벗게 됩니다. 세상 이치가 그렇습니다. 숨이 끊어지면 말없이 땅에 묻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를 지킬 힘도 없습니다. 남을 도울 힘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희망을 거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권력이 십 년 가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고(故) 이승만 대통령은 권력 연장을 위해 헌법을 고쳤고, 고 박정희 대통령 역시 유신 헌법을 만들어 정권을 연장했습니다만 그러나 그 정권이 영원히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왕의 충신 가운데 요압이라는 장군이 있습니다. 한때는 사울 왕의 수하에 있었는데 다윗이 군대 장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요압은 다윗이 아니면 그렇게 높은 지위를 얻을 수가 없었으므로 충성을 굳게 맹세합니다.
그러나 그가 왕의 뒤에서는 아주 간사하게 굴었습니다. 다윗이 통일 왕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이스라엘 지파의 군대 장관 아브넬이 다윗에게 찾아와서 의논합니다. 부하를 데리고 와서 투항하겠으니, 평안을 약속하겠느냐는 물음입니다.
다윗은 이 귀한 일을 놓고 평안을 단단히 약속했습니다. 전쟁하지 않고 투항하겠다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분명히 평안을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넬은 기쁘게 돌아가는데 그만 이 일을 요압에게 고자질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요압은 즉각 성문을 막 나가는 아브넬을 불러서 왕이 긴밀히 할 말이 있어서 자기를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순식간에 칼로 배를 찔러 죽이고 말았습니다(삼하 03:26, 27). 물론 다윗에게는 이 일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아브넬이 얼마나 다윗을 원망하며 죽었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왕이 어떻게 이런 배신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원망 말입니다. 주위 사람도 다윗을 신의가 없는 사람으로 평가했을 것입니다.
요압은 훗날에 아마사라는 장군을 한 명 더 죽였습니다. 다윗은 늦게서야 이 일을 알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즉시 죽은 아브넬의 장례를 다시 잘 치러 주었습니다. 북이스라엘에서도 처음에는 다윗이 시킨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요압이 자기 정치 영역이 줄어들까, 봐 행한 일로 밝혀졌습니다. 다윗은 그런 요압을 그냥 경계만 하고 맙니다.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임종 전에 솔로몬에게 유언합니다. 네가 손을 볼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그 첫째로 요압을 지명하였습니다.
왕상 02:0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0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이처럼 사람에게 소망을 두고 의지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말씀 03, 04절은 쓰라린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향해서 기록되었습니다.
김삼일 가족의 주변을 잘 돌아보십시오. 사람을 믿고 의지하다가 낭패를 당한 일이 많지 않습니까? 잘 구별해서 만날 사람을 만나도록 합시다.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아예 만나지 않는 지혜를 가지고 살아야만 신앙이 든든해집니다.
3. 사람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
0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 처로 삼는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왜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합니까?
야곱이란 발꿈치를 잡았다는 말로서 다른 말로 하면 속이는 자란 말입니다. 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야곱의 일생을 돌아보면 야곱은 정말 야곱과 같은 인생을 삽니다. 남을 속이고, 약삭빠르고, 약탈자로서의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복을 가로채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고쳐질 수 없고 변화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연단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이스라엘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의 허물이 큽니까? 클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여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으로 세우시는 분입니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개표원들이 열심히 개표하던 중이었습니다. 한 투표용지에 약 5천 원에 해당하는 돈이 접혀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개표원들이 호기심에 그 투표용지를 펴보니 모든 후보에게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그 밑에는 그놈이 그놈이다. 개표하는 사람들만 불쌍하니 이 돈으로 포도주나 사서 드시오. 약간의 논의가 있고 나서 개표원들은 그 돈으로 포도주를 사 먹었다고 합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은 여러분,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온 세상이 고유가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어느 정치가나 또 현 정부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모든 부분을 익히 아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소망을 둔다는 말은 그 의미가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분명히 실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놀라운 일이 생겨날 것입니다. 도울 힘이 없는 약한 인생으로부터 일단 물러서십시오.
나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사랑하시고, 훈련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이 시간 여러분은 야곱의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고 놀라운 은혜와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시 121:0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0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한 미국인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 가족을 모아놓고 차례대로 굿나잇. 하고 인사하였습니다. 그런데 막내의 차례가 되자 굿바이. 하였습니다. 막내는 아버지가 다른 형제 굿나잇이라고 하면서 왜 자기만 굿바이라고 하셨는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얼마 남지 않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말합니다. 아들아, 네 형은 모두 예수님을 믿으니 내가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너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이제 너와 나는 영원한 이별의 자리에 놓여있기 때문이란다.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붙잡고 말합니다. 아버지, 저에게도 굿나잇이라고 해 주세요. 저도 예수님을 믿고 장래의 소망을 따라 살겠어요. 라고 말을 합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원하는 대로 굿나잇이라고 인사하고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지금 시대는 쉽게 흔들리는 시대입니다. 소망이 별로 안 보입니다. 돈 줄, 인 줄, 권력의 줄, 빨랫줄 등 이런 줄들은 유행 따라 쉽게 흔들리고 변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줄이 다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희망의 줄, 하나님과 우리를 묶는 줄은 절대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기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로 나아오십시오. 하나님께 더욱 매달리십시오. 그리고 소망의 줄을 든든히 붙잡고 나가십시오.
고후 0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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