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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말씀이라면 순종하십시오(눅 05:01~1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4. 4. 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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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성도가 믿음의 길에 들어선 동기는 두 가지 형태일 것입니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신앙을 따라서 믿음 생활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둘째는 세상을 살다가 어떤 사건이나 계기를 통해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어떤 동기로 신앙을 갖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거의 환난과 역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것이 신앙의 출발점이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인생길에서 실패나 고난을 통해서 믿음의 길에 들어온 분도 있을 것입니다.

 

즉 사업에 실패한 일, 자녀 문제로 고민하던 일, 직장 문제 때문에, 죽을병에 걸려서, 그 밖에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말입니다.

그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에 나왔다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면 이는 분명히 복 중의 복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십시오. 베드로가 실패를 경험하고 난 뒤에 생명의 주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02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잡이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음날 일을 위해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육지에서 조금 떨어져서 언덕에 모여 있는 무리를 향해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0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대로 순종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말씀입니다. 왜냐고요? 일하는 도중에 그 일을 한 번 더하기는 쉽지만 다 마친 후에 다시 시작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을 막 끝냈으니, 집에 가서 자며 휴식을 취해야 할 처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느닷없이 낮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곤란한 일입니까?

어부의 상식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 명령을 베드로가 받았습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으로 판단해야 하겠지요. 그래서 오늘 말씀을 주님 말씀이라면 순종하십시오.로 정했습니다.

 

 

1. 주님의 말씀에는 내 생각을 내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0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일에는 다 전문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고기잡이에서는 비전문인 예수님이 전문인 어부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십니다. 곡해하고 들으면 달갑지 않은 말씀입니다.

어쩌면 마음이 상하는 명령일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래도 갈릴리 바다만은 제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는 나름대로 고기잡이 전문가입니다.

이에 비교해 예수님은 목수 요셉의 아들로서 대를 이은 목수입니다. 그런데도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05절 보십시오. 베드로가 주님 명령을 놓고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 이라고 단서를 붙이고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순종합니다.

베드로가 이런 단서를 단 것은 고기를 못 잡을지라도 주님께서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대로 한번 순종해 보겠다는 자세입니다.

 

말씀에((ῥήμα 레마)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당신의 말씀에 따라 내 생각을 접고 그대로 순종해 보겠다는 의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겠다는 표현입니다. 내일 아침에 던지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던지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바로 하겠다는 순종입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매우 가치가 있습니다. 잡히리라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 말씀을 순종하는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어부에게는 상식 밖의 일인 한낮에 깊은데 그물을 내릴 수 있는 확신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얼마 전의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때의 일 때문일 것입니다.

 

순서로 보면 요 02:01~11 기적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의 현장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화답합니다.

이에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02:05) 명령합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능력이 나타날 줄 믿었기 때문에 내린 명령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요 02:0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0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 하시매 갖다주었더니.

 

더는 다른 말씀은 없습니다. 세상에 이런 지시를 따를 수 있습니까? 도무지 따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하인들이 순종하여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가지고 갑니다. 가는 도중에 항아리의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지만 절대 순종함으로 기적이 일어난 현장을 베드로가 목격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 사건 때문에 주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나타납니다.

 

0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고기를 너무 많이 잡아 그물이 찢어졌다는 것은 복이 차고 넘치는 현장, 복이 터지는 현장 아닙니까?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많은 사람의 관심이 이런 부분에 있습니다. 물론 이런 복을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풍성히 받아 누려야 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성공의 위기는 자만이지만 실패의 은총은 겸손이다. 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했을 때 자연히 초점은 자기에게로 쏠리게 마련입니다. 사람의 본능은 성공을 이룬 자기를 과시하려고 목에 힘을 줍니다. 여기에 성공의 위기가 있습니다.

 

성공이 우리를 자만으로 인도하면 그 성공은 자기를 파멸로 이끌어 가기 쉽습니다. 반면 실패는 했지만, 그 실패로 인해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실패는 오히려 복입니다.

베드로가 오늘따라 여러 해 동안 익힌 어부의 감각과 상식으로 고기잡이했습니다. 결과는 여지없는 실패를 경험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밤이 지나도록 수고해도 얻은 것이 없지만 이라는 단서를 달고서 순종했습니다.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0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08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넘치는 복을 받은 후에 두 가지 놀라운 진리를 깨닫습니다. ①첫째로 예수님께서 주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 베드로입니다. 이 베드로의 상식을 깨뜨리고 기적을 일으키신 분은 바로 메시아 주님이십니다.

일상의 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베드로가 목격하였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05 선생님, 08 주여).

 

②둘째로 자기가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힌 것과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 사이에는 무슨 연관성이 있습니까?

실제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깨달으면 자기가 죄인임을 시인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능하신 그분 앞에 그저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면 됩니다. 나의 교만과 죄의 결과를 주님께 내어놓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신앙 고백의 핵심입니다. 여기에 신앙인의 참된 가치가 있습니다.

 

 

3. 변화된 베드로에게 주님은 사명을 주십니다.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베드로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보십시오. 말씀에 의지하여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한 그 순간부터 베드로는 주님의 은혜 아래 거합니다. 사람의 경험과 지혜가 보잘것없음을 느끼면서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으로 옮깁니다.

마침내 베드로는 주님께서 부르신 그 가치관을 따라 발길을 옮깁니다. 이제부터 베드로는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영혼 구원의 사역에 본격적으로 동참합니다.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의 생활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생명 길로 인도하는 영혼 구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때로는 수고스럽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할 때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로 나아가는 목적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태도입니다. 말씀을 깨닫고 주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때 자기만을 의지하던 생활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는 고백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신앙의 결단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오늘 나를 통해서 귀한 복음의 사명 감당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방향 전환을 합시다.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현재 나의 고집과 편견을 내려놓는 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목사님 하려고 해도 잘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요? , 포기가 안 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각고의 노력을 해야지요.

만일 내 힘으로 안 되면 성령님의 힘으로 해야 합니다. 포기가 전제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일은 언제든지 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언제 포기가 됩니까? 내가 지닌 것이 결국은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내려놓을 때입니다.

 

11절은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위대한 변화의 기적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광의 삶을 소개하는 이정표입니다.

성경의 이정표는 제대로 보고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항상 복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안내 역할을 합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푯대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생명의 주님을 만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옛 소련에서 신병들에게 신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무신론을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한 장교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신병들, 저기 하늘을 보라. 신(神)이 보이나? 안 보이나? 신병들이 일제히 안 보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장교는 그렇다. 신은 없다 하며 강하게 소리쳤습니다.

이때 신앙생활을 하는 한 사병이 벌떡 일어나서 손가락으로 그 장교의 머리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묻습니다. 여러분! 장교님의 머릿속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신병들이 일제히 안 보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병이 그렇습니다. 우리 장교님은 골 빈 장교입니다.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말씀에 대한 모든 순종은 포기가 선행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고기를 잡는 데 있어서 자신의 이성을 온전히 포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더 큰 포기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른 일입니다.

그들이라는 말은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같이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는 의미입니다. 인생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런 일이 쉬운 일입니까? 쉽지는 않지만 내가 생명의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때는 주님의 원하는 스타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혹 지금까지는 주님과 상반되는 길을 걸어왔다면 이제부터 우리의 삶의 방향을 한번 바꾸어 봅시다. 주님의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살아보자는 뜻입니다.

나아만 장군(왕하 05:01~14), 일명 탕자인 작은 아들( 15:11~20), 삭개오( 19:01~10) 이들은 변화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산 증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