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1945년 5월 독일의 패배로 사실상 끝났습니다. 그러자 모든 유대인이 이제는 자기들이 당한 억울한 피 값을 찾겠다는 복수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독일 육군 중령으로서 유대인 학살을 담당한 아이히만 아돌프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행방이 아주 묘연했습니다.
그는 많은 유대인을 까닭도 없이 잡아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하고 끝내는 그들을 가스실에 집어넣어 강제로 학살한 장본인입니다.
이에 분개한 유대인들이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신 19:21) 갚을 수 있다는 율법을 떠올렸습니다. 아이히만을 끝까지 찾아서 자기들 법정에 세우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자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결국 1960년 5월 몰래 아르헨티나에 숨어 있던 아이히만을 체포하고 1961년 재판에 부쳐 그해 12월 15일 유죄 판결을 내려 1962년 5월에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1945년에 독일이 항복했으니 거의 17년간 땅끝까지 원수를 찾아서 체포한 셈입니다. 유대인들의 집념은 대단합니다. 이렇게 집요하게 복수를 한 것은 하나님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을 수 있다는 율법 정신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귀중함을 확인시켜 주신 율법의 정신입니다. 반면 본의 아니게 살인을 한 자에게 복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상반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또 다른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고의성 없이 부지중(不知中)에 살인하였을 때 긴급 구조를 받을 수 있는 도피성 제도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출 21:13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하나님은 부지중에 살인을 한 자에게 사랑의 방편으로 주신 도피성 제도가 있습니다. 이 제도의 신령한 의미를 살피면서 나의 도피성은 어디입니까? 라는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1. 도피성 제도는 하나님의 사랑 표현입니다. |
0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 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여호수아의 지도로 지파에 땅을 분배하였습니다. 수 19:51 절을 보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 족장이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기업 나누는 일이 마쳤다고 나옵니다.
수 19장까지는 가나안을 정복한 일과 기업 분배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명령을 전달합니다. 도피성(逃避城) 제도입니다.
이 도피성 제도는 일찍이 광야 시절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민 35:09~34, 신 19:01~13). 가나안 정복 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다시 명령하십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도피성에 관한 명령을 받을 때 이미 모세를 통하여 이 제도를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명령을 바로 실천에 옮깁니다.
하나님께서 도피성 제도를 갑자기 필요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해 놓으신 프로그램입니다. 광야 시절 모세를 통해 기록된 도피성에 대해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민 35:13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을 도피성이 되게 하되 14 세 성읍은 요단 이쪽에 두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 두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오래전부터 기획된 도피성 제도는 오살자(誤殺者) 즉 그릇 살인한 자를 위해 피할 길을 열어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표현입니다. 부지중 오살한 자가 누굽니까?
이는 살해할 의사가 전혀 없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원한이 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였거나 무엇을 잘못 던져 사람을 죽인 경우를 말합니다.
반면 고의 살인이란 철이나 연장, 돌 등으로 원한 때문에 밀치거나 기회를 엿보아 쳐 죽이는 일입니다(예.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 죽임).
이스라엘에서 이 도피성 제도야말로 복된 제도입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도피성 제도를 주셨습니다.
어떤 도피성입니까?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영원한 안식처인 주님의 교회로 나아오는 일입니다.
2. 도피성은 누구나 찾을 수 있습니다. |
0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요단강 서편의 가나안에 지정된 세 도피성이 있습니다(07). ①갈릴리 게데스(납달리) ②세겜(에브라임) ③기럇아르바(헤브론, 유다) 요단강 동편에도 지정된 세 도피성이 있습니다(08). ①베셀(르우벤) ②길르앗라못(갓) ③바산 골란(므낫세)
유대 전승에는 도피성으로 향하는 길에는 요소마다 도피성이라고 쓰인 큰 팻말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그 길도 약 14m 정도가 되는 아주 넓은 길입니다.
그리고 요단을 기준으로 하여 동서에 각각 3개 처로 설치된 도피성은 각 성읍 사이가 정삼각형을 이룰 만큼 서로 같은 거리에 위치하면서 모든 생필품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09절을 보면 이 도피성은 외국인들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왜 외국인에게까지도 열어줍니까?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인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보호와 인도를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누구든지 달려 달려올 수 있는 신령한 도피성입니다.
한편 메튜 헨리는 여섯 도피성의 이름이 지니는 뜻을 그리스도와 연관 지어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거룩한 곳을 뜻하는 게데스는 성전 되신 그리스도를(요 02:19),
어깨를 뜻하는 세겜은 정사를, 어깨에 멘 그리스도를(사 09:06),
교제를 뜻하는 헤브론은 신자가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고후 05:18, 19),
성채를 뜻하는 베셀은 성도들이 피할 성채 되시는 그리스도를(시 91 : 02),
높은 곳을 뜻하는 길르앗라못은 성도들이 높은 하늘에 앉게 하시는 그리스도를(엡 02:06),
기쁨을 뜻하는 골란은 성도에게 기쁨을 주시는 그리스도를(요 15:11) 각각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각각 6개 처의 도피성은 하나같이 찾기가 쉬운 특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은 어려운 철학이 아닙니다.
세상 어느 민족이든지 차별함 없이 찾으려 결심만 하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복음을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복음이라고 소개합니다.
골 0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3. 도피성은 자기의 죄를 자백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
0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무슨 말입니까? 살인자를 성읍의 장로들이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부지중 살인한 자가 도피성에 들어가는 절차가 있습니다.
도망을 온 자는 먼저 도피성 성문 어귀에 서서 성읍의 장로들에게 자기가 저지른 사고의 자초지종을 자백하여야 합니다.
나는 고의가 없이 부지중 살인죄를 저질렀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면 성읍의 장로들이 듣고 심사하여 고의성이 없다고 인정될 때 받아들입니다.
이때부터 도피성의 토지를 부여받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혹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때는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06).
이 규정은 무엇을 뜻합니까? 놀라운 구원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 대제사장은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만일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가 도피성으로 피하러 왔을 때는 어찌합니까? 오히려 그를 복수자의 손에 넘겨 그에 상당한 응보를 받게 합니다.
신 19:11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상처를 입혀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면 12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죄가 없다고 생각되면 도피성에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도움을 청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죄가 있으면 구원의 도피성을 찾아야 합니다.
이 시간 나의 신앙 상태를 한번 점검해 봅시다. 나는 죄가 전혀 없는 의인입니까? 성경은 죄 없다는 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롬 3:10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비록 가벼운 죄는 지었지만, 살인자는 아니라고. 아니 꼭 칼 같은 흉기로 살인해야만 살인입니까?
예수님은 마 05:22 절에 형제에게 라가라고 욕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도 이미 살인한 자라고 규정을 하였습니다.
내가 던진 말이 살인하는 줄도 모르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부지중에 오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요일 0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우리가 세상에 머무는 동안은 죄를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원죄와 자범죄를 함께 지닌 죄인임을 부정할 자 없습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행동으로 지은 죄, 마음으로 지은 죄가 없다고 할 자 누구입니까? 저와 우리 여러분 모두가 다 도피성을 찾아야 할 죄인입니다.
도피성에 들어가는 조건은 나의 죄를 하나님께 제대로 고백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죄를 진술하지 않으면 도피성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요일 01:0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지금은 잘 안 보입니다. 한때는 부산 공항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 길가에 눈길을 끄는 간판 하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경찰은 3분 거리에 있습니다.
민중의 지팡이인 여러분의 경찰이 3분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자리 잡고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요청하라는 안내입니다.
선량한 시민에게는 반갑고 친절한 안내이겠지만 반대로 소매치기나 마약밀매업자, 현상 수배자들에게는 긴장되는 두려운 말일 것입니다. 자기네 뒤를 쫓고 있는 경찰이 3분 거리에 있다면 체포되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냐? 이 말입니다.
도피성에 들어가기만 하면 의식주가 완전 무료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주거지, 토지까지 정해 주어 살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아셔야 합니다. 도피성으로 피한 자라도 도피성 안에 있을 때만 그의 생명을 보호받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정말 대단히 위험합니다. 혹 부득이하여 그 도피성을 벗어나면 그때는 복수자로부터 죽음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민 35:26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가면 27 피를 보복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피 흘린 죄가 없나니.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오살자라도 그 도피성을 떠날 때는 그를 죽이려는 복수자의 위험이 따릅니다. 도피성 되시는 예수님을 등지고 나가는 그 순간부터 죽음이 찾아옵니다.
요 15:0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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