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4년 말씀

나는 귀를 뚫은 종입니다(출 21:01~0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4. 2. 18.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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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피어싱(piercing)이 유행합니다. 피어싱이란 몸의 각 부위에 구멍을 뚫어서 링이나 막대 모양의 장신구로 치장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귀, 입술, 눈꺼풀, , , 배꼽 등의 부위를 뚫어 장식물을 부착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피어싱이란 게 마시면 마실수록 계속 더 마시고 싶은 콜라처럼 살을 뚫으면 뚫을수록 계속 뚫고 싶은 욕구를 일으킵니다.

대개 피어싱하는 사람은 뚫는 순간은 만족을 느낍니다. 그러나 다음 욕구를 위해 또 뚫을만한 다른 부위를 찾게 마련입니다.

인터넷 검색에서 피어싱을 찾아보십시오. 외국인 가운데 더러는 온 얼굴과 몸 부위에 장신구를 달아서 도무지 사람인지 동물인지 분간이 안 되는 예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귀걸이는 하지 않습니까? 이 자리에 계신 여성분 가운데 귀걸이는 웬만하면 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귀걸이의 유래를 잘 알고 있습니까? 귀걸이가 어떻게 유행하였느냐고 말입니다. 오늘 말씀이 귀걸이에 관한 설명을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즉 한 가정의 종이 자기 주인이 좋아서 그 주인을 영원히 섬기기 위한 종의 표시로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두 종류의 종이 있습니다. 날짜의 제한이 있는 임시 종과 귀를 뚫어서 날짜의 제한이 없는 영원한 종입니다.

 

귀를 안 뚫은 종은 평생 종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6년 동안만 주인에게 속하여 있다가 그 기간이 지나면 본래의 자유인으로 돌아갑니다.

주인은 안식년이 되면 그 종을 놓아주어야 하고, 그 종도 자유롭게 나갈 수 있습니다. 대신 혼자 종으로 왔으면 혼자 나가면 됩니다.

가령 결혼을 하고 왔으면 아내와 함께 나갈 수 있습니다. 만일 아내를 주인이 돈을 주고 사 와서 종에게 주었으면 아내는 물론 그 낳은 자식도 주인의 소유입니다.

반면 한 가정의 종이 자기 주인이 좋아서 영원히 섬기려 하면 그 종이 자원하여 영원한 종이 됩니다. 그때는 종의 표시로 귀를 뚫습니다(06). 그러면 이때부터 그 종은 행복하고 즐거움이 있는 생활을 합니다.

 

저는 이런 귀를 뚫은 행복한 종을 통해서 나는 귀를 뚫은 종입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이스라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종이 됩니까?

 

0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①전쟁에서 패전국의 포로를 종으로 삼는 경우입니다(민 31:09, 왕하 05:02). 악법 같지만, 이 법은 전쟁에서 가능한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또 적군이라도 생명을 보존할 수 있도록 위해서 생긴 법입니다.

 

②너무 가난한 경우나 혹 빚을 갚기 위해 자기를 종으로 파는 때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종으로 팔아 주인의 보살핌 속에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하는 불가피한 법입니다.

 

③자녀를 양육할 수 없어서 종으로 파는 경우입니다(출 12:02, 07, 레 25:39). 물론 이것도 주로 가난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종으로 팔리는 신세야말로 기막힌 처지입니다. 자유는 고사하고 무시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지기도 합니다.

옛날 종의 비참함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주인의 허락 없이는 결혼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오직 주인이 짝지어 주는 대로 결혼해야 했습니다.

 

심하면 결혼해서 좀 잘살고 있어도 주인이 이혼하라고 하면 이혼도 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주인이 절대 힘을 행사하였습니다.

심지어 주인은 마음대로 종을 희롱할 수 있었고 종은 주인의 갖은 학대와 힘든 노역에도 불평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절대적 복종을 해야 하니 주인의 권세는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종이 되는 것은 비극 중의 비극입니다.

종의 제도가 가장 왕성하던 로마 제국 당시는 종이 무려 육천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 사회에서 최대의 행운은 종으로 태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최고의 행복은 종의 생활을 하던 자가 종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는 일입니다.

 

그 당시 전해지는 유대인 남자들의 기도문에 의하면 남자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다음 세 가지의 감사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를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를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를 종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런 인간 부정과도 다름없는 종의 제도를 언약 백성 가운데 율법으로서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02절의 의미를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회에서 종의 제도는 한시적입니다. 그 기간이 6년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히브리 종은 육 년 고용된 계약 노동자입니다. 종이 그 기간을 지나 자유를 얻을 때는 더 이상의 값을 지급하지 않고 무조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주변 상황으로 볼 때 파격적인 제도입니다. 신명기 15:12~14절에는 근본정신이 사랑과 자비에 있음을 안내합니다.

 

12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이렇게 보면 종이 실제로 고난의 종살이 하는 것은 그렇게 억울한 일이 아닙니다. 먼저 삼 년은 자기의 몸값이나 부채의 반환 정도로 보아야 합니다.

이 년은 그동안 먹고 산 것에 대한 값으로 여기면 됩니다. 일 년은 나갈 때 얻는 물품값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처럼 당시 히브리인의 종에 대한 규례는 파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 규례는 종의 규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물질로 어렵게 된 사람을 돕는 규례라는 주장을 할 정도입니다.

부채를 지거나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을 데려다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살만큼 준비시켜 내보내는 제도가 바로 히브리인의 종의 제도입니다.

50년째가 되는 희년에는 종이 된 사람을 놓아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거기다 빚으로 잡힌 농토까지도 전부 되돌려주어야 했습니다.

 

 

2. 스스로 영구한 종의 길을 택하는 자도 있습니다.

 

0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같은 유대인끼리 종으로 삼았을지라도 칠 년째 되는 안식년에는 반드시 자유인으로 환원시켜 주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종이 된 사람이 특수한 사정이 있어서 주인을 위해 평생 종이 되겠다고 약속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때는 재판장 허락을 받아 송곳으로 그 귀를 뚫어 영원한 종이 되는 의식을 합니다.

 

귀를 뚫을 것이라. 고대 근동 지역에는 이런 관습이 있습니다. 완전한 예속(隸屬)과 순종을 나타내는 의식입니다(Knobel).

고대 근동인들이 귀를 뚫는 것은 곧 자유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귀를 뚫은 종은 아내나 자식들 때문에 주인을 떠날 수가 없는 종입니다. 평생 주인을 섬기겠다는 사랑의 약속입니다. 해방이라면 그 종이 죽는 날입니다.

 

혹 종의 마음이 바뀌어 주인의 집에서 나가려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주인이 재판장에게 이 사람은 귀를 뚫은 종입니다. 라고 한마디만 하면 떠날 수 없습니다. 귀를 뚫었던 흔적이 그를 평생 종으로 살게 하는 근거입니다.

귀를 뚫은 종은 빚 때문이 아니라 주인의 고마움 때문에 자원해서 종이 되었습니다. 주인의 집에서 떠날 선택권을 포기한 종입니다. 해방의 선택권을 포기하면 그때부터 그 종은 비천한 종이 아니라 진정 사랑의 종이 됩니다.

 

자기에게 자유를 허락한 주인이 너무 좋아서 주인님, 제가 나가서 자유를 누리지 않고 여기서 계속 눌러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집에서 영원히 종의 표시로 귀를 뚫으면 주인은 그날부터 종을 마치 아들처럼 대합니다. 이때부터 종의 신분이라도 그 멍에가 가볍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한다면 그리고 충성한다면 얼마나 그 신앙이 가치 있겠습니까?

가령 아내가 여보,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요. 내가 평생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하고 고백한다면 이 고백은 진정한 섬김의 고백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섬긴다면 그 멍에는 전혀 무겁지 않을 것입니다. 그 대상이 주인이든 남편이든 아내든 기쁨이 계속 유지됩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종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 말은 나와 주님과의 관계를 수직 명령계통으로 인정하겠다는 말입니다. 성도 간에는 섬기며 살겠다는 표시입니다.

 

 

3. 종은 어떤 생활을 하여야 합니까?

 

갈 0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유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까? 이제부터는 자유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등장합니다.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는 권면은 주님 안에서 서로 종노릇 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귀를 뚫은 종은 자원해서 종노릇 하는 사람입니다. 자원하는 종입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주님을 향하여 성도를 향하여 귀를 뚫은 종처럼 살면 어떻겠습니까?

 

①주님의 종노릇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 참된 자유를 주신 분, 죄 사함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의 종노릇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불행한 처지의 종처럼 부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종이 되라, 종노릇 하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자유를 주신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면서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②서로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수직 관계의 종이 아니라 수평 관계를 유지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섬길 뿐만 아니라 주님이 사랑하는 그 사람들까지도 자원하여 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피차 서로 복종할 수 있고 피차 종노릇 할 수 있으면 우리의 인간관계는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얼마나 풍요롭고 얼마나 아름다워지겠습니까?

목사가 먼저 성도를 섬기고, 성도가 목사를 섬기는 관계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교회는 얼마나 사랑이 넘치겠습니까?

아내가 남편을 잘 섬기고 남편이 아내를 잘 섬기면 매우 행복한 부부입니다. 경영주가 노동자를 잘 섬기고 노동자가 경영인을 잘 섬기는 직장에는 생산성이 높아집니다.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것은 교제의 근본 동기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종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인 노릇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서로 잡아먹으려고 쌍심지를 켭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종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주님의 종노릇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자원하여서 귀에 구멍을 뚫은 종처럼 우리도 자원하는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 종노릇 하지 못하는 공간에는 시기와 질투만 남습니다.

 

D. L. 무디는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 그가 얼마나 많은 종을 거느리고 살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종노릇 하였느냐? 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지배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앙인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섬겼느냐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종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 이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성도 여러분께서 주님을 사랑하면 진정으로 이웃을 섬기는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종의 자리에 임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종이 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얼마든지 종이 되어야 합니다.

 

빌 02:0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0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