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4년 말씀

신앙 갈등은 반드시 극복합시다(빌 02:01~0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4. 1. 20. 05:24
728x90

한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위하여 상부상조한 인물 가운데 사도 바울과 바나바만큼 복음의 열정을 품고 생활한 사람도 드뭅니다.

그런데 두 선교사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다 그만 헤어지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사도행전 1539절에 나옵니다. 당시 어느 정도의 갈등과 충돌이 있었느냐 하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습니다.

복을받는교회의 지난 때를 돌아보면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여러 이유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물론 그만한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던 사람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대단히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럴 때는 더 행복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갈등을 치료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젊은이들이 큰 소리로 싸웁니다. 그러자 저만치 한 신사가 돌아보며 말하기를, 이보게 젊은이들 왜 소리 지르고 싸워?

여기가 국회야, 교회야? 하더랍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교회의 이미지가 세상 사람에게 상당히 부정적 인상을 주고 있는 증거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성도 간의 신앙 갈등과 그리고 충돌 이것 대단히 위험한 요소임을 하셔야 합니다오늘 말씀을 통해 볼 때 빌립보교회가 겉으로는 아주 평안한 것 같지만, 안으로는 성도 간에 갈등의 요소가 다분히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복을받는교회에 이런 요소들이 있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우선 치료부터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행복한 교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의 갈등은 성도 간에 혹은 자기와의 사이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 갈등은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사람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갈등의 요소가 있습니다.

 

0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02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마음을 합하지 못하여 분리되고 사랑이 식는 요소 즉 불신앙의 갈등이 있다는 말씀을 전제로 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갈등 요소가 있습니다. 반면 자연 세계는 갈등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모임에 내가 개입하면 파괴와 분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갈등과 다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빌립보교회는 주 후 51년경 바울의 두 번째 선교 여행 때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이 이 교회에 본서를 보냈을 때는 주 후 62년 전후입니다.

교회 역사가 10년 정도 된 모범 교회로서 밖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 선교를 위한 일에 대단히 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의 사정은 일치가 잘 되지 못했습니다. 선교를 반대하는 이들로 인해 서로의 갈등이 여기저기서 노출되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는 어디에나 갈등이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좋은 직장이라도 나에게 행복을 보장해 줄 것 같지만 거기에도 갈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면 마냥 행복할 것 같지요? 그러나 그 부부간에도 역시 갈등이 일어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갈등이 일어납니다이런 갈등의 문제를 좀 해결하기 위하여 마지막에 찾아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알고 찾아간 교회에도 문제와 갈등이 있음이 우리의 고민과 아픔 거리입니다. 사실 처음 교회에 나오면 갈등이란 것을 잘 모릅니다.

교회 생활을 하는 초기는 사람들이 다 천사와 같고 누구나 반겨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줌으로 교회 생활이 무척 즐겁습니다.

하지만 즐거움이 갈등으로 변하는 시점이 있습니다. 그때가 주로 신앙생활이 조금 깊어지고 은혜를 알아 주님의 일에 불이 붙는 때입니다. 이는 가정도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혹 신혼 첫날부터 싸웠다는 얘기도 있고, 또 요즘 젊은이들은 야외촬영을 하고도 사진을 찾아가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게 신혼 때는 갈등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연애하는 시절에는 서로 양보하고, 서로 좋은 점만 생각합니다. 평생 꿈속에서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이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습니다.

신혼 시절은 행복 넘치는 소리가 나서 웃음소리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행복보다는 속이 끓는 소리, 근심 걱정이 끓는 소리, 와장창 살림 부서지는 소리가 막 납니다.

 

 

2. 갈등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0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내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갈등의 요소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상대보다 내가 더 돋보이려는 마음 때문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갈등의 주체자인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 불완전합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는 마치 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진정한 교회는 성자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교회가 거룩한 곳이어야 하고 사람의 소리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분들은 당연히 의인입니다. 그런 분들은 교회에 있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의인들의 처소는 하늘나라이기 때문에 속히 하늘나라에 가셔야 합니다. 이 예배를 드린 후에 속히 가십시오. 교회는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의 모형입니다. 상처 난 사람이 하나하나 모여서 치유 받는 병원처럼 일하는 곳임을 기억하십시오.

 

치유의 과정에서 아픔의 소리가 다소 날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 상처 난 사람들이 하나하나 치유됨으로 웃음소리가 나고 천국이 되어 갑니다.

교회가 이런 병원임을 알고 있으면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픈 사람들, 상처 난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 모자라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그 첫 손님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으로 구성된 성도들이 구심점인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 안에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하는 강력한 동질성이 있어서 이 동질성으로 평화를 이루어 나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 신앙을 제외하면 우리는 다 제각기 상당히 모난 사람들이며, 때에 따라서는 문제의 메이커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오랜 세월 획일주의 사고와 체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양성을 잘 인정하지 못합니다. 다양한 것에 대한 훈련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양성에서 오는 필연적인 충돌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충돌을 갈등 요소로 봅니다. 따라서 서로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다양성은 아름다운 것이며 하나님의 복입니다. 교회는 독창하는 곳이 아니라 합창하는 곳이며, 공동체의 삶을 온전히 가꾸어 나가는 곳입니다.

 

롬 0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지상교회는 계속 사탄의 공격을 받기 때문에 거룩한 교회일지라도 교회 안에는 언제든지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실 일어나고 있고요.

그런데 교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잘 풀리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인의 갈등을 통하여 사탄이 침투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요소가 나를 조종하고, 내 형제자매를 조종합니다. 성도들도 조종합니다. 갈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금부터라도 사탄의 조종을 받지 않도록 자신을 잘 살핍시다.

 

 

3.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03….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미 갈등이 발생했으면 그때는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 생활에서 무서운 것은 갈등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교회 생활에서 갈등을 느끼는 것은 내가 교회에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한 멤버가 되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교회 생활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정열도 없으면 갈등도 생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나쁜 인상도 잘 주지 않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은혜를 받기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교회 생활에서 상처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어야 시험을 덜 받습니다.

갈등을 긍정으로 생각하면 그 갈등이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더 성숙시킬 수 있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베드로는 갈등 요소를 사랑으로 치료하라고 권면합니다.

 

벧전 04:0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0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 요소를 감정으로 바꾸지 마십시오. 갈등의 원인과 문제의 요소는 감정 때문에 일어납니다. 물론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감정으로만 살면 그 삶이 사탄이 이용하는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내 감정대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 뜻대로 살겠다는 표시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는 사람은 감정을 초월하는 인격으로 문제를 풀어갑니다.

 

한 늙은 인디언 추장이 자기 손자에게 자기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큰 싸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 싸움은 어린 손자의 마음에도 일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추장은 궁금해하는 손자에게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얘야, 우리 모두의 속에서 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데 바로 두 늑대 간의 싸움이란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서 그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 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또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인데 그가 가진 것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

손자가 추장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어떤 늑대가 이깁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추장은 간단하게 말합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성도들을 믿음의 가족으로 보아야 합니다. 알고 보면 가족 간에도 토닥거리며 싸우는 일이 숱하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들은 그 싸움을 결코 감정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감기는 것 같아도 금방 풀려서 여보, 형님, 누님, 아우님 하면서 웃으며 한데 어울려 별일 없는 듯 잘 지냅니다. 그러니 남의 싸움에 괜히 편들지 마십시오. 큰일 납니다.

13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사이에 물질 문제로 감정 상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내 갈등과 고민이 표출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문제를 적절하게 풀어갑니다.

 

창 13:0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0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예수 안에서 우리 화목 됐네. 예수 안에서 우리 화목 됐네. 하나님의 영광 함께 누릴 소망 있네. 예수 안에서 우리 화목 됐네.

예수 안에서 우리 기뻐하네. 예수 안에서 우리 기뻐하네. 하나님의 영광 함께 누릴 소망 있네. 예수 안에서 우리 기뻐하네.

예수 안에서 우리 사랑하네. 예수 안에서 우리 사랑하네. 하나님의 영광 함께 누릴 소망 있네. 예수 안에서 우리 사랑하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곁에 있는 우리 모두 다 주님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자매입니다. 다 예수님을 믿는 한 가족입니다.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이 땅에서 잠시 얼굴 보고 살 분들이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한 한 가족으로 살게 될 멤버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제들과 갈등이나 하라고 이 자리에 불러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교회를 봉사하면서 섬기라고 부르셨습니다.

디모데후서 04:11을 보면 신앙생활의 갈등으로 인해 갈라졌던 바울이 마가를 향하여 손을 내밀면서 초청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딤후 04:11….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관계에서 때로는 이웃이 상대방이 내 감정에 들지 않을 수 있고, 내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귀하게 여기시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때는 나도 그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 뛰어들면 나도 그들을 일꾼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내 기분과 감정대로 저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교회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형제를 바라보면 됩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신앙생활을 좀 오래 하고 유력한 자가 되면 갈등이 없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목사로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목사만큼 갈등과 고민과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아니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모든 아픔과 갈등이 목사의 아픔과 갈등일 수 있고, 여러분의 눈물과 한숨이 저의 눈물과 한숨일 수 있습니다.

혹 그런 아픔과 갈등들 때문에 교회를 떠나야 하고 슬럼프에 빠져야 합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제부터는 복을받는교회를 건강한 교회로 만들어 세워야 합니다. 믿음의 가족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는 일에 온갖 힘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