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3년 말씀

우리도 씨름 기도 합시다(엡 03:14~1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3. 7. 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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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 가운데 씨름을 제일 잘한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각자의 선호도를 따라 두 사람 정도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OO, OO일 것입니다. 사실 이 두 사람이 현역으로 있을 때 씨름 잘한 것은 누구나가 인정합니다이런 사람을 모델로 건강식품 만들어 돈벌이하는 제품이 있습니다. 그러면 세계에서 씨름을 제일 잘 사람은 누구일 것 같습니까? 역시 이OO, OO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딴 타이틀이 천하장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 세상에서 씨름을 제일 잘한 사람은 야곱인 것 같습니다.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과 맞짱 떠서 이겼기 때문입니다(32:24~25, 12:04). 그때 야곱이 씨름 우승 기념으로 받은 타이틀이 이스라엘입니다. 이 씨름 사건에서 나온 유명한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란 의미의 브니엘(פְּנוּאֵל 32:30)입니다.

 

야곱의 씨름 사건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보다 신령한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씨름 기도로 말입니다. 몸부림치는 기도로 적용하면 되겠습니다씨름 기도는 한 마디로 하나님을 향한 숨 가쁜 몸부림입니다.

하나님과 밤새워 씨름했던 야곱처럼 기도는 고단합니다. 그러나 고단한 씨름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에너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원동력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자세가 어떠합니까?

무릎을 꿇은 모습입니다(15). 유대인들은 서서 기도하는 것이 관례입니다(06:05, 18:11). 그러나 더 깊은 기도의 자리로 가기 위해 무릎을 꿇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은 씨름 기도입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우리도 씨름 기도 합시다로 정했습니다.

 

 

1. 우리 모두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기도합시다.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를 향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14). 무릎을 꿇은 기도인 만큼 간절함이 들어있는 씨름 기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속사람이 강건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성경에서 속사람은 육체에 속한 부패한 사람과 대조를 이루는 말입니다(고후 04:16).

 

속사람의 반대 용어를 바울은 겉사람으로 표현합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속사람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 속사람은 거듭난 성도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감동과 역사로 인해 강건해집니다(04:13). 성령님을 통해서 능력을 입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지금까지 속사람을 어떻게 가꾸셨습니까? 영혼이 얼마나 건강합니까? 영혼의 건강을 위해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하십니까? 겉사람을 꾸미는 만큼 속사람을 꾸미는 일에 관심 두십니까?

세상 사람은 잠시 지나가는 것들에 목숨을 겁니다. 생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여기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우리 믿음의 가족은 이것 하나 아셔야 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잘 꾸미고 좋은 것 먹고 열심히 운동해서 체형을 가꾸어도 결국에는 낡아진다는 사실 말입니다. 병들고 시들어져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는 동안 이 모든 것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좋은 치료기 사야지요. 잘 활용하십시오. 좋은 화장품도 사서 바르십시오. 좋은 약도 지혜롭게 드십시오. 가끔은 여행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이내 사라지고 말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빼앗기면 나중 이런 것과 헤어질 때 못 내려놔서 탄식이 옵니다. 안타까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육신 못지않게 영혼 건강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속 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일이야말로 복 중의 복임을 아십시오. 동시에 물질과 세상 속성에 관한 것도 잘 거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이런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물질 요소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최고 수단이 됩니다.

그런 것이 주어질 때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활용해야 합니다. 자기 욕심을 위해 깊이 감추어 놓고 때가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합리화하는 불신앙의 말을 매우 싫어하십니다속사람이 건강한 사람은 그렇게 변명하지 않습니다. 신앙인의 가치관이 무엇입니까? 믿음 생활을 잘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복을 잘 활용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사람이 늘 강건하기를 바라십니다. 강건 즉 영적 건강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무기력입니다. 낙심입니다. 절망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는 다니지만 무기력하게 지냅니다. 낙심 속에 절망 속에 우울함 속에서 맥없이 살아갑니다. 사탄이 공격하는 불화살을 맞은 것 갖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전혀 안 보입니다. 기쁨이 없는 삶처럼 보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록한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자기 마음 상태를 이렇게 나타내 보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07:22). 그래서 고린도교회를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후 04: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새번역).

 

 

2. 우리 모두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기를 기도합시다.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살아갑니다. 주님과 연합된 생활을 합니다. 주님과의 연합 후에는 내 마음을 항상 주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곳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인격의 중심으로서 속사람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말은 그때마다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거듭났으면 이제 내 속사람을 주장하시게 하면 됩니다.

 

계신다는(κατοικέω) 말은 거주한다. 정착한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속사람의 집에 내주하셔야 합니다. 내가 불편하지 않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그분과 함께 교제하며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바울은 믿음 안에서 주님께서 자기 속에 거하시는 주님을 이렇게 간증합니다.

 

갈 0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예수님께서 내 속에 계시려면 나도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동시에 삶의 모든 부분이 예수님께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혹 내 관심과 초점이 날마다 예수님이 아닌 세상 불신앙 요소를 넘나들고 있습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불편해서 머무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갑니까?

 

단순히 예수님을 영접했느냐? 이런 질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십니까? 내 모든 삶의 방향을 주님께 맡겼느냐? 이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는 어려움이 첩첩산중과 같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그만큼 버거운 상대입니다.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라도 넘어뜨리기 위해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닙니다. 이를 물리치는 길은 대적하는 일입니다(벧전 05:08~09).

성도 여러분, 혼자 힘으로 사탄의 세력을 거뜬하게 제압하였습니까? 지금까지 혼자서 불신앙의 세계를 상대로 싸워서 넉넉하게 이겼습니까?

 

내 속에 거하시는 주님께서 힘을 주셔야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 생활에서 무너지지 않고 잘 견딥니까? 계속 견디려면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더러는 목회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기도 지원을 요청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 부탁은 대부분 사업 문제, 지금 겪는 현실 문제, 물질 문제, 건강 문제 등입니다. 믿음으로 잘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부탁이니 당연히 기도로 지원해야지요.

 

힘든 일과 싸우는 모습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어려움을 믿음으로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시오. 고난이 물러가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여러분, 기도로만 문제가 해결되면 밤을 새워서라도 하면 됩니다. 문제는 중보 기도 후에 그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사는 일입니다.

이 부분은 기도자의 몫이 아니라 기도를 부탁한 당사자의 몫입니다. 이 삶을 누가 대신해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기도 지원을 부탁한 당사자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가능합니다.

 

 

3. 우리 모두 사랑으로 무장하기를 기도합시다.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19절이 잘 이해가 됩니까?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가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기를 위해서 올린 기도입니다.

의문 대명사 어떠함(τίς)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칭합니다(18).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옷 입기 위하여 우리 복을받는교회 성도는 기도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깨달아(καταλαμβάνω). 붙잡다, 이해하다 이런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사람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유한한 우리의 지식으로는 그 무한한 사랑 곧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뿌리를 내려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사람의 지식으로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체험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 모든 사람의 악함을 수용할 만큼 넓습니다(). 세상의 시간을 넘어서 계속될 만큼 영원히 깁니다(01:04~05),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로 올릴 수 있을 만큼 지극히 높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넉넉하게 구원할 만큼 깊습니다(02:01~03). 하나님께서 이 넓고 길고 높고 깊은 사랑을(廣長高深) 나타내신 방법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신 일입니다.

우리를 위해 속죄의 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게 하신 일입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사랑을 우리가 알고 실천하기를 기도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예수님 사랑과 우리의 사랑, 나의 사랑을 한번 비교해 봅시다.

내 사랑은 한 뼘도 안 되는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예수님 사랑을 한없이 크게 실천하는 것처럼 외칩니다.

그러나 나타나는 사랑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당장 우리의 사랑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봅시다.

 

교회에서 모임을 하거나 회의할 때 수용 못하고 열을 막 냅니까? 내 사랑의 넓이는 반 평도 안 되는 것으로 알면 됩니다. 사랑을 전혀 실천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대상이 있어야 증명됩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하고 이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교회 생활에서 가끔은 성경공부 하시지요? 왜 하십니까? 성경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지식을 쌓기 위함입니까? 남이 하니 그저 따라서 해 보는 겁니까? 목적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더 잘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 하나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으로 한 것만 기억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은 이 사랑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롬 05:0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우리는 이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기를 원합니까? 그 계획이 무엇입니까? 사랑에 갈급한 분들에게 다가갑시다. 그 공허한 가슴을 사랑으로 채워주는 일을 말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합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미국 프로 야구 선수를 지낸 커비 퍼켙(Kirby Puckett. 미네소타주 1960.3.14.~2006.3.6.) 이야기입니다. 그는 10년 연속 올 스타 멤버로 선발되었으며 6번이나 골든 글러브상을 받았고 소속팀 미네소타 트윈스가 월드 시리즈를 두 번이나 제패하는데 주역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1996년 클리블랜드 팀과 경기 중 상대 팀 투수의 공에 맞아 오른쪽 눈을 잃고 은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자기에게 상처를 입힌 투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몸을 빨리 피하지 못한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위로해주었습니다.

 

은퇴 경기를 마친 후 그는 팬들의 성원에 감사한 뒤 저의 야구 선수 생활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인생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오른쪽 눈 때문에 빠른 공을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눈이 하나 안 보여도 기도 응답을 받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아멘. 예수님 사랑을 잘 실천한 본보기입니다.

 

사람은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 살아갑니다. 마음이 오늘 교회에 가겠다고 결심하셨으니 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마음이 오늘 날씨 좋은데 해변으로 놀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으면 아마 가족과 함께 어느 바닷가에 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의 움직임대로 살아갑니다.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께서 거하시면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마음을 누가 경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씨름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간 선지자 몇 분을 보겠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06:10, 13).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서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왕상 18:42). 이사야는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해달라고 기도했고(35:03). 에스라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09:05~06).

 

마음을 늘 자기가 경영하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최종 결정권을 자기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위험한 사람은 마음을 자기가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경영하게 합니다.

02:02~03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세상 풍속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삶의 특징이 이렇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께서 경영하도록 맡기십시오. 나를 쳐서 주님께 복종시키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도록 씨름 기도로 나아갑시다.

 

고후 13:0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