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물이 일국의 왕으로 등극하는 일에는 당사자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여러 환경과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이 참여하여야 가능합니다.
왕으로 등극하면 그 일에 참여한 사람들을 공로를 따져 적절한 상을 내립니다. 이를 논공행상(論功行賞)이라고 합니다. 사실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나라는 그래서 붙여준 말이 윤핵관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전 정부에서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들까지 무리하게 끌어내리는 일을 합니다. 이러다 보니 좀 시끄럽습니다. 국민은 이런 일 벌이는 것을 치사하고 지저분한 일로 여깁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 다양한 방법으로 왕국에 참여한 인물들을 노래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삼하 23장은 다윗이 말년에 부른 노래입니다. 다윗은 이 노래를 통해서 그 옛날 일을 회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며 자기를 돌아봅니다.
논공행상의 대상 약 6백 명이 나옵니다. 이들은 초야에서부터 다윗과 더불어 지냈으며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오늘 말씀의 출발점이 다윗이 거느린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다(새번역). 입니다.
이들 가운데 특별하게 세 사람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다윗의 측근 삼인방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피의 충성자 삼인방」으로 정했습니다.
1. 다윗은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그립다고 독백합니다. |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이 생각났습니다. 그러자 그 물을 길어다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라고 혼잣말(獨白)하였습니다. 물이 먹고 싶다는 뜻입니다.
물이 먹고 싶으면 직접 가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쉽게 물을 먹으러 갈 환경이 아닙니다. 현재 다윗이 베들레헴과 16km 정도 떨어진 아둘람 굴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다윗의 정권 초기입니다.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은 때입니다. 아직 예루살렘도 정복하지 못했고 거처도 확고하게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삼하 05:17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을 치러 올라옵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으니 축하 사절을 보냅니까? 아닙니다. 다윗과 한판 벌여 굴복시키겠다는 뜻입니다.
잠깐이지만 다윗이 블레셋 가드로 망명을 갔을 때입니다. 그만 죽음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가드왕 아기스가 다윗을 죽이지 않았습니다(삼상 27:01~12).
이유는 다윗을 당시 사울의 견제 세력으로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이 통일 국가가 되지 못하게 하려는 정치계산으로 너그럽게 대했습니다. 블레셋은 사울과의 길보아 전투(삼상 31장) 이후 이스라엘 지경에서 크게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01~03절). 그러자 다윗으로 인해 위협을 느낀 블레셋 군대가 총공격 해 옵니다.
이에 다윗이 블레셋 군대와 맞서기 위해 아둘람으로 나아가 굴 주변을 진영으로 세웠습니다. 고고학자의 탐사로 이곳 산 중턱에 약 4백 명 정도가 거주할 동굴을 발견하였습니다.
14 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이스라엘 진영은 아둘람에 진을 쳤고. 블레셋 군대는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삼하 05:17~25). 르바임은 거인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지명의 의미처럼 길이가 약 5km, 폭이 약 3km 정도가 되는 골짜기입니다. 지금 다윗이 머무는 곳은 산성(מְצֻדָה 메추다)입니다.
예루살렘을 확보하지 못했으니 아둘람 근처의 산성을 피신처로 삼고 전쟁을 지휘합니다(삼하 05:17).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은 지금 블레셋이 점령하여 요새로 삼았습니다. 다윗도 정권 초기 사활을 걸고 나라를 지켜야 하니 마음 상태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이 마시고 싶다는 혼잣말을 내뱉었습니다. 다윗이 목이 말라서 한 말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아둘람 굴을 비롯한 산성에도 우물이 있습니다. 군영이 설치되어 있는데 어찌 물이 없겠습니까? 양식도 있고 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아둘람 굴을 피난처로 삼고 지내다 보니 그 마음이 공허하고 답답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윗에게 고향 베들레헴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뛰어놀고 자란 행복의 터전입니다. 안정과 행복과 자유를 누리던 요람입니다.
지금 그곳을 갈 수 없어서 안타까워 내뱉은 말입니다. 블레셋과 전쟁하던 시기가 13절을 보면 곡식 벨 때입니다. 이런 때는 더위가 기승을 부려서 누구나 갈증을 느끼고 시원한 생수 한잔이 그리운 법입니다.
다윗은 그런 더위를 생각하며 여러 장수 앞에서 별생각 없이 베들레헴 성문 곁 생수가 그립다고 독백하였습니다. 지금은 왕이지만 어릴 때 뛰놀다 물 한 모금을 하던 때가 떠 오른 겁니다.
2. 측근 삼인방이 다윗의 마음을 채웠습니다. |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오늘 말씀은 다윗의 측근 장수 삼인방 이야기입니다. 다윗에게는 약 육백 명의 신실한 부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삼십칠 명은 특별용사입니다(39).
대상 11:10~47에는 16명의 용사가 추가로 나옵니다. 모세에게 아론과 훌이 있었던 것처럼 다윗에게도 충성스러운 측근들이 있습니다.
다윗이 왕권을 유지하는 데는 뛰어난 장군 요압과 신앙의 자문관 선지자 나단과 독실한 제사장 사독의 헌신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다윗의 왕권을 떠받치는 소위 삼인방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의 많은 용사 가운데 최고 두목은 아니지만 특별한 일을 한 충성된 일꾼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 삼인방입니다. 성경은 이들 이름을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삼인방 이름을 놓고 다양하게 추측합니다.
➊무명으로 처리하는 사람이 있고 ➋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08),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09), 아게의 아들 삼마(11)로 보는 사람이 있고, ➌스루야의 아들 아비새(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20) 무명의 한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이런 사람이라고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앞뒤 문맥을 보아 아비새와 브나야와 익명(匿名)의 한 사람으로 봅니다. 말씀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아비새는 이스라엘의 군대장관 요압의 아우이며 다윗의 생질입니다(대상 02:15~16). 아비새는 외삼촌 다윗을 보호하는 훌륭한 인품과 용기를 가진 용사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다닐 때, 압살롬의 반역으로 피난 갈 때,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할 때 다윗의 곁에서 큰 위로자가 되었습니다.
브나야는 다윗왕과 그 아들 솔로몬 정권에서도 막강하게 활약한(삼하 08:18, 23:20~22) 용사 중의 용사입니다. 한 사람은 확인이 안 됩니다. 이들 삼인방은 다윗이 한 말을 듣고 모여서 의논합니다. 왕의 소원을 이루어드리자는 의논입니다.
결론을 내렸습니다. 목숨을 다해 감당하는 것이 자기들 일이라고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아둘람에서 베들레헴까지 실제 거리는 50리도 더 됩니다. 대강 잡아도 왕복 백 리 적진 길을 치열한 싸움 끝에 돌파하였습니다.
어찌하든 삼인방의 행동은 무모한 일입니다. 왕이 아무리 그 물이 먹고 싶다고 해도 지금 전쟁 중입니다. 그 우물은 블레셋 적군의 점령하에 있습니다.
물 한 그릇을 위해 용사 셋이 적의 진영에 은밀하게 침투하는 일이 바람직합니까? 잘못되면 죽음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큰 손실입니다.
그런데도 치열한 싸움 끝에 베들레헴 성문 곁에서 떠온 물을 다윗에게 올립니다. 다윗이 그 물을 받아들고 어떻게 행동합니까?
장군들 수고했소. 나를 위해 이렇게 용감한 행동을 했으니 고맙소. 아~ 이 물을 마셔본 지가 언제이던가 하며 벌컥벌컥 마십니까?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왕이 베들레헴 고향의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해도 세 용사가 블레셋 군대와 싸우면서까지 이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물 한 그릇에 목숨을 걸 필요가 있느냐 말입니다.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왕이여 우리가 최선을 다해 베들레헴을 회복하여 우물물을 잡수시게 하겠습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이 말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삼인방은 상식과 현실 여건을 넘어 행동으로 옮깁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신 왕이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의 목마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의 목마름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3. 다윗은 삼인방의 일을 생명을 건 피의 행동으로 봅니다. |
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다윗은 그들이 생명을 걸고 떠온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 드립니다. 그렇게도 갈망한 베들레헴 성문의 물 아닙니까?
한 모금 정도만 입에 대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은 괜찮지 않습니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고 이 물은 목숨을 걸고 다녀온 그대들의 피라고 말합니다.
삼인방이 행한 일을 생명을 건 충성으로 보았습니다. 피의 충성으로 보았습니다. 이 삼인방의 행동은 다윗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였습니다.
다윗은 핵심 장군들이 한 일을 보면서 감상에서 깨어납니다. 작은 향수 때문에 핵심 장군을 잃을뻔한 잘못을 깨닫습니다.
반면 삼인방 피의 충성은 영원히 빛나는 충성의 모델입니다. 이 피의 충성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영원한 충성의 본이 아니겠습니까?
충성을 말할 때 예수님께서 서머나교회를 향하여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계 02:10). 충성의 원리는 최고의 정성으로 최고로 드리는 일입니다. 충성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진정한 충성은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베다니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한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예수님께 옥합을 깨어 향유를 부어 드린 일 기억하십니까? 가룟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이 왜 허비하느냐며 비난할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14:0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최고의 충성과 헌신과 드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동시에 심령에도 기쁨이 샘솟습니다. 헌신과 충성의 길이 중단되지 않습니다. 오늘 충성의 삼인방을 생각해 봅시다. 다윗왕이 이들을 불러 놓고 물 떠오라고 명령하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나선 것은 왕의 향수를 풀어드리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블레셋의 적진 한복판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목숨이 위태롭지만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직 주군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려는 마음뿐입니다. 삼인방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줄 믿고 좋은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치열한 싸움 끝에 결국 다윗왕에게 물을 올려드렸습니다. 목숨을 걸고 길어온 물을 왕이 먹고 안 먹고는 삼인방과 상관없습니다. 이들은 왕의 마음을 헤아리고 풀어드리는 일로 족했습니다. 반대급부를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조건 없는 희생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십니까? 왜 그렇게 충성하고 봉사하며 섬깁니까? 직분에 대한 막연한 의무감 때문입니까? 그러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좋아서 충성하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쓰실 일군이 되기 전에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장합시다. 하나님은 멀리서 구경만 하는 구경꾼을 찾지 않습니다.
교회를 내 집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부흥을 위해서 일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두 가지 면으로 만납니다.
좋은 면과 나쁜 면입니다. 우리가 좋은 면을 보면 감사와 헌신이 나옵니다. 안 좋은 면을 보면 불평과 원망만 쏟아집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메시지를 보겠습니다.
벧전 0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나폴레옹의 일화에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전쟁에서 모든 병사가 목말라 할 때 나폴레옹이 남은 물을 가져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리하여 가죽 주머니의 조금 남은 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혼자 마시면 딱 좋을 양입니다. 왕이 마신들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변 모든 군사가 목마른 상황입니다. 그때 그는 수건을 꺼내 물을 적셔서 부하들 입술에 한 번씩 대 주었습니다. 순간 주변 분위기는 놀랍게 변했습니다. 저런 왕이라면 우리의 목숨을 바치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오늘 말씀 결과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겼는지 패했는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승리하였을 것입니다. 기록이 없는 것은 당연한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세 용사의 충성은 다윗에게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훌륭한 지도자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의 일치단결을 가져왔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용사입니다. 우리 교회의 용사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헌신의 모습을 정리해 봅시다.
하나님 영광이라는 목적을 모아야 합니다. 조건 없는 충성, 피의 충성이 필요합니다. 그날그날의 기분 따라 움직이면 건강한 믿음이 아닙니다.
좋으면 하고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안 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맙시다. 자기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피의 헌신자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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