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피할 수 없는 큰 두려움이 있습니다. 삶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죽음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여겨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흘러가는 시간은 무척 빠릅니다.
삶의 마지막이 언제 나를 찾아올지 모릅니다. 더러는 미리 유서 한 장을 준비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은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삶의 마지막을 국가를 위해 바친 안중근(1879.9.2.~1910.3.26. 31세) 의사(義士)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감격 되는 한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에 묻어달라.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모세의 후계자이며 가나안 정복을 마친 여호수아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다윗도 아들 솔로몬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라(왕상 02:01~03).
오늘 말씀에는 이스라엘의 주권자 다윗의 마지막 말이 나옵니다. 죽기 전에 하는 유언(遺言)은 아닙니다. 유언은 왕상 02:01~03절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에 꼭 당부하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피기 위해서 말씀 제목을 「영원한 언약을 바라보는 다윗」으로 정했습니다. 다윗은 마지막 남기는 노래에서 무엇을 고백하는지를 돌아보겠습니다.
1. 다윗은 자기를 제대로 돌아보았습니다. |
0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노라.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다윗왕의 유언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유언이 아닌 마지막 말이란어떤 의미입니까? 삼하 23장은 다윗의 인생을 한 편의 시(詩)로 표현하였습니다. 삼하 22장도 다윗의 시입니다.
두 시는 각기 다른 시기에 기록되었습니다. 22장은 다윗이 주변 국가들을 정복한 이스라엘 통치 초기에 기록된 시고 23장은 모든 역경과 좌절을 맛본 다윗의 통치 말년의 시입니다. 다윗은 인생 말년의 시 첫 말을 이새의 아들이라고 밝힙니다.
다윗이 아버지 이름 이새를 등장시키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합니까? 나는 평범한 촌부의 아들이다. 이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자기를 귀한 존재로 만들어주신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왕의 자리에 앉을 만한 가문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깜냥이 안 되는 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새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사울왕이 다윗을 비꼬아 말할 때 사용한 호칭입니다. 나발이 다윗을 멸시할 때 사용한 호칭입니다(삼상 20:30, 25:10).
이새의 아들이란 호칭을 왕과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영예로운 호칭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보잘것없음을 드러내는 호칭입니다.
삼상 20:30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삼상 25: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다윗이 이새의 아들이라는 말을 왜 밝힙니까? 나는 세상 조건으로는 조금도 내세울 조건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이 중심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높이 세워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 모세가 죽기 전에 축복의 시를 지었듯이(신 33장) 다윗도 임종 전에 그의 마지막 소원을 시와 노래로 표현합니다.
다윗은 목동 출신이니 세상 조건으로는 미천한 셈입니다. 시골 베들레헴에서 농사짓고 양을 키우던 이새의 막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기를 하나님께서 불러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찬양 외에 더 드릴 것이 있습니까?
실제 다윗은 양치는 소년 시절부터 악기 잘 타는 자로 이스라엘에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사울왕의 수금 연주자로도 활동한 다윗은 시성(詩性)도 매우 뛰어났습니다(삼상 16:16~23).
다윗이 지은 시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가진 시편 성경입니다. 대부분 시가 다윗이 기록하였기에 보통 다윗의 시편이라 부릅니다.
다윗의 시편 내용을 보면 하나님을 높이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을 의지하라. 그분은 나의 요새시요 반석이시다. 이런 표현입니다. 모두가 삶에서 체험한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자기를 노래를 잘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한국 상황에서 미덕은 나는 잘못합니다. 라고 말해야 겸손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는 노래를 잘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은 시적 표현입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저는 노래를 잘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잘난 척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순수하게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다윗은 실제로 노래를 잘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다윗이 나는 노래를 잘하는 자다. 라는 말은 입만 열면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항상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을 늘 찬양하였습니다.
2.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
0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다는 말은 내 안에서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입을 주장하는 주체가 감정이나 의지가 아니라 성령님임을 고백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성령님의 완전한 지배하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성령님이 주장하시는 상태를 성령님 충만이라 합니다(엡 05:18, 19). 다윗의 노래가 신적(神的) 권위가 풍기는 능력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입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을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삶의 방식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내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지를 살피고 점검하겠다는 각오입니다.
모든 일을 결정할 때 내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인지, 하나님 말씀에 합당한 삶인지를 생각하며 살겠다는 각오입니다. 앞으로도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살겠다는 각오입니다.
다윗은 한 나라의 주권자로 등장한 후 아무리 재정이 필요하고 국고를 채우고 싶어도 함부로 세금을 거두거나 기업가들을 억압하지 않았습니다.
정권이 좀 불안정할 때도 사울처럼 무당에게 묻는 일을(삼상 28:06~14) 하지 않았습니다. 정적을 힘으로 누르고 전 정권에서 협조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권을 자기의 사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정적을 제거하려는 유혹이 찾아와도 하나님과 상대하여 세상 욕망을 물리쳤습니다. 다윗이 어떤 때는 한심스러울 정도로 당하고 쫓기며 살았습니다.
바보 같은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왕이 되기 전 십 년간 도망 다니던 시절 원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복하지 않고 그냥 넘겼습니다(삼상 24:01~17, 26:01~12).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를 함부로 치면 안 된다는 소신 때문입니다.
삼상 26:0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다윗은 그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이 달려 있음을 행복으로 여겼습니다. 말씀의 감동과 인도함을 따라 행하였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어떤 일을 결정지을 때도 마지막은 하나님 말씀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새벽기도 시간에 말씀을 작은 소리로 묵상하였습니다(시 63:06).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하였습니다(시 19:10).
다윗은 항상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결론을 내리고 행동하였습니다. 말씀의 인도가 아니면 함부로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말씀을 입술에 달고 사는 자만이 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의 삶이 함께 묶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이 자기를 안전하게 업어서 인도해주셨음을 알았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말씀은 하나님의 에너지입니다. 말씀을 읽고, 말씀 안으로 들어가고, 말씀이 내 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낄 때 다윗처럼 은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히 0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3. 다윗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바라봅니다. |
0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래 잘하는 자로 세워주셨습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01). 자기 안에 영혼의 기쁨과 신령한 즐거움이 가득 차 있다는 뜻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다윗은 자기 후손에서 메시아가 오실 약속을 받았습니다. 모든 소원의 집중을 자기 가문에서 메시아 오심에 두었습니다.
그 증거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라는 문구입니다(03). 이 문구는 구약 시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할 때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구약성경에서 158회 나오는 호칭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모세가 바로왕을 만나 대화를 시작하는 첫 말입니다.
출 05:0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속량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호칭입니다. 다윗이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이 호칭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속량 사역의 주인공이신 메시아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얼마나 든든한 분인지를 안내하기 위해 또 특별 호칭을 사용합니다. 어떤 호칭인지 03절을 읽겠습니다.
0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이스라엘의 반석(צּוּר 추르). 반석이란 웅장함과 견고함을 비유하는 용법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비유 호칭입니다(삼하 22:03, 47),
하나님의 불변성(不變性)과 흔들림 없음을 강조하는 호칭입니다. 하나님은 거대한 바위와 같이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안내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여기 언약은 삼상 07:08~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한 것은 장차 자기의 가문을 통해서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 언약의 성취는 가까이는 자기를 이어 왕이 된 아들 솔로몬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멀리는 천 년쯤 후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서 이루어졌습니다(마 01:16).
다윗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은 때가 되면 이루어짐을 수없이 체험하였습니다. 그 체험을 토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 짐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훗날 자기 가문에서 메시아가 나실 것을 최고의 소원으로 설정하였습니다. 지금이 아닙니다. 미래의 소원입니다. 멀리 믿음으로 이루어질 것을 내다보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만 술을 마시지 않아도 목구멍에 가시가 돋기 때문에 견딜 수 없다고 느끼는 술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존경하는 은사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술꾼은 밤을 새워 그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는 술이 사람 몸에 얼마나 해롭고 독이 되는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책을 다 읽은 술꾼은 큰 충격을 받았고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큰 결심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내가 이것을 절대로 안 하겠다. 이걸 또 하게 되면 자기를 용서할 수 없다. 나는 결코 다시는 안 할 것이다. 무엇을 안 한다는 말입니까? 책 읽기를.
술을 끊겠다고 할 줄 알았더니 책을 안 읽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 복을받는교회에 많습니다.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놓치고 허무한 것을 중요하다고 붙잡는 일이 바로 우리 아닙니까? 우리는 교회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혹 내가 원하는 세상 길은 아닌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이 일을 소홀히 여기면 눈물 흘릴 때가 옵니다. 자기를 제대로 돌아보는 지혜를 구축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떠나지 않도록 말씀 안으로 들어갑시다. 말씀이 내 입에 붙어있게 합시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떠나지 않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시다(시 119:43).
시 119:10~11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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