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3년 말씀

찬양하며 기도하면 응답이 옵니다(행 16:16~3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3. 1. 21. 13:18
728x90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상학에서 쓰는 말로 1961년 미국의 에드워드 로렌츠(E. Lorentz)가 기상관측을 하다 생각한 원리입니다.

브라질 정글의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거대한 폭풍을 불러일으킨다는 이론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브라질 아마존 정글에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하며 날아갈 때 나비에 묻어있던 꽃가루가 날려 옆에서 바나나를 먹던 원숭이 등에 자극을 줍니다.

그러자 간지러운 원숭이가 자기 등을 야자나무에 대고 긁습니다. 그러자 그 야자나무가 흔들려 열매가 언덕에 떨어지면서 돌에 충격을 줍니다.

충격을 받은 돌이 움직여 다른 바위와 돌들도 따라 움직이자 순식간에 산사태가 나서 하천이 막히고 물이 범람합니다. 그 영향으로 분화구의 가스가 방출하지 못합니다.

가중된 압력이 바다에서 폭발하여 기상에 영향을 주면서 결국은 이것이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 텍사스를 덮친다는 논리입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큰 폭풍을 몰고 온다는 이 논리는 곧 작은 변화라도 마지막에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게 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곧 나비효과입니다.

 

처음에는 기상학 용어로만 사용되었는데 말이 점점 사회 전반에 걸쳐 확대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모든 분야에서 나비효과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의 모습 하나하나가 마치 나비의 날갯짓과 같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나 한 사람으로 보면 아주 작습니다.

 

이 나비효과가 우리 교회에 적용되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찬양과 기도를 통해 나비효과와 같은 사건의 출발점을 소개합니다

이 일을 기점으로 복음이 유럽에 정착되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찬양하며 기도하면 응답이 옵니다. 로 정하고 강론하겠습니다.

 

 

1. 오늘 말씀의 전후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占)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바울은 제1차 선교여행을 통해서(13:01~14:26) 소아시아의 여러 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후 바울은 그 교회들을 돌아보기 위해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의 선교지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돌리게(16:06~10)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아 온 곳이 빌립보입니다.

그런데 빌립보에서 놀라운 일이 계속 일어납니다. 먼저 루디아의 회심으로 인한 그 가정이 복음화되는 사건입니다(16:11~15).

 

이후 루디아의 가정에서 얼마간 지냅니다. 이 기간 바울 선교팀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납니다. 그러자 이 여종이 바울 일행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이어서 많은 사람에게 여러 날 동안  이분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구원의 길을 전하는 분들입니다(17).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빌립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루디아와 그 가족뿐입니다. 그 외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복음의 불모지에서 점하는 여종이 바울을 향하여 이분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고 하니 좀 좋은 일 아닙니까?

바울 일행의 복음 전파를 돕는 것처럼 보입니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귀신 들린 용한 점쟁이가 선전해주는 것은 좋은 일 아닙니까? 이에 대한 바울의 반응을 보겠습니다.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바울이 심히 괴로워합니다. 왜 괴로워합니까? 바울이 처음에는 점하는 여종이 복음을 소개하는 것처럼 여겨져서 너그러운 모습으로 넘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복음의 선포보다 귀신의 말에 집중하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일어난 셈입니다. 교묘한 사탄의 전략입니다.

 

바울의 복음을 선전하는 그 내면에는 복음을 자기의 점과 동등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매우 불순한 의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점하는 여종의 말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바울과 실라를 더 높이려는 사탄의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귀신 들린 여종이 하나님과 복음의 위대함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을 높이는 척하면서 자기를 더 높이는 교묘한 마귀의 전략입니다. 바울은 이런 마귀의 장난을 알고 괴로워합니다. 16절 말씀을 다시 점검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바울은 열악한 선교 환경에서 기도만 붙들고 있습니다. 점하는 여종의 소리를 기도의 능력으로 그 실체를 분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신령한 영의 통찰력과 지혜가 임함을 볼 수 있습니다여기 점치(Πύθων 퓌돈)는 종이란 악령을 입은 상태를 말합니다.

퓌돈은 아폴로 신전을 지키는 뱀의 이름입니다. 아폴로가 그 뱀 속에 거하면서 여자 점쟁이에게 점괘를 알려준다는 것이 당시 사람들이 믿고 있던 신화였습니다.

그 현장에 바울이 누구인지 알아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점쟁이만이 바울 선교팀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종들로 인정한 것이 바로 사탄입니다.

 

 

2. 기도하고 찬양하면 응답이 임합니다.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은 점치는 여종에게 붙어 있던 귀신을 쫓아내 버립니다. 그러자 여종의 점치는 능력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여종이 능력이 안 나타나니 돈벌이도 할 수 없습니다. 여종을 이용하는 자들의 이익도 완전히 무너진 셈입니다그러자 여종의 주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당국에 고소합니다.

즉시 빌립보 관원들 앞에 바울과 실라를 세웠습니다. 고소 내용은 경제 손실입니다그러나 겉으로는 정치 문제로 포장합니다(20~21).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바울과 실라는 옷이 벗겨진 채 심한 매질을 당한 후 깊숙한 감옥에 가둡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발에 차꼬까지 채웠습니다. 탈출을 불가능하게 한 장치입니다(22~24).

그렇게 한다고 하나님의 능력이어디 얽매입니까? 한밤중쯤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찬양합니다.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기도와 찬양입니다.

 

고난의 환경에서 기도하고 찬양하는 일은 은혜받은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어떤 환경이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으니 감옥도 내 집과 같고, 은혜를 받으니 온몸을 족쇄로 감아도 불편하지 않고, 은혜를 받으니 몸은 지치고 고달파도 마음은 행복합니다절망의 자리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면 가능합니다.

 

세상 사람이 흔히 기뻐하는 것을 나도 기뻐하는 것은 별것 아닙니다. 자녀가 좋은 학교에 들어간 일로 좋아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은 별것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얼마든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와 같은 이유로 감사헌금을 드렸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부처에게 기부금 드리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이 뒷받침되고 날마다 힘이 넘쳐서 감사하고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까?

물론 믿음이 좋아 그리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거듭나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은 이런 일보다 믿음으로 하는 감사를 더 높여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세상 사람이 모르는 신령한 기도와 찬양이 따라야 합니다. 형식의 기도와 찬양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의 관계로 누리는 기도와 찬양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아는 신령한 기쁨의 샘이 있습니까? 일이 풀리든 풀리지 않던 항상 끊임없이 솟는 은혜의 샘이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하고 찬양하며 누리는 기쁨은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그 수준이 대단히 높은 신령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 신령한 기쁨을 잘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수들이 듣더라(ἐπακροάομαι 에파크로아오마이). 여기 듣는다는 의미는 죄수들이 바울과 실라의 기도를 듣고 찬양을 감상했다는 뜻입니다.

거의 죽을 만큼의 매질을 당하고 또 손발이 묶여 있으면서도 다른 죄수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힘있게 찬양했습니다. 이런 기도와 찬양에는 응답이 임합니다.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은혜의 결과를 나타내는 접속사 이에(δέ 라는 말을 보십시오. 26절에서 중요한 것은 라고 하는 말입니다. 다가 두 번이나 나옵니다.

지금 이들을 막고 있던 모든 문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감옥은 죄수의 탈출을 막기 위해 이중삼중 겹겹이 문을 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문이 동시에 열렸습니다. 문만 열린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들을 옭아매고 있던 모든 수갑과 차꼬도 풀렸습니다.

 

여기 또 눈여겨보아야 할 말씀은 모든 사람입니다. 분명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찬양을 불렀습니다. 결과는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가 자유를 맞았습니다.

내가 은혜를 받으니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주고 근심을 덜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힘입니다. 내가 은혜를 받으면 가정도 잘되고, 사업도 잘되고 직장도 잘되고 친구도 잘되고 주변 사람도 잘되고 이웃도 잘되는 일이 나타납니다.

 

 

3. 기도하고 찬양하면 구원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27,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간수가 자다가 깨어 보니 옥문이 열렸습니다. 간수는 당연히 죄수들 도망한 것으로 생각하고 검을 빼 자결하려 합니다죄수가 탈출하면 간수가 대신 책임을 지고 죽어야 하는 법 때문입니다

이때 바울이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우리가 다 여기 있으니 죽지 말라. 그 순간 간수가 크게 감동하며 신앙고백을 합니다(30). 이어 바울은 간수에게 말합니다.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복음의 은혜 앞에 간수는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합니다. 자기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이후 간수는 전도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과 도시가 변화되고 복음화되어 마침내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단순히 지진이 나고 차꼬가 풀리고 옥문이 열리는 일을 기적이라 합니까? , 이 일도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기적은 죽어가는 생명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일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바울을 지키던 간수와 그의 집안이 구원받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사람의 심령이 열리는 것 이것이 기적입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은 물질세계의 변화와 잠깐의 이익을 수반하는 일들이 따른다고 그것을 기적이라 말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일으키는 기적은 먼저 내 심령의 문이 열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일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일입니다. 이런 기적은 하나님께 맡길 때 시작됩니다.

 

나를 통해 은혜받는 사람 구원 얻는 영혼이 나오면 이것이 진정한 기적입니다. 신령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이런 기적을 만들어 갑니다.

신령한 흐름을 내게서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복을받는교회에 기적이 임하고 그 기적이 다른 사람의 심령을 열어가는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런 각오를 오늘 다져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이제부터 복을받는교회 한 분 한 분을 통해서 신령한 나비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찬양과 기도에 응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양에 옥문이 열리고 간수의 심령이 열린 것처럼 여러분의 신령한 몸부림이 신령한 나비효과를 나타내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끊임없는 마귀의 궤계와 미혹이 응답과 기적을 일구는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교회를 일구어 나가는 일에 헌신하는 여러분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찬송할 때 믿음의 통찰력과 분별력이 생깁니다. 나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변화를 일으키면 그 영혼의 가치는 천하와도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지나쳐버린 바로 그 사람이 바로 이런 가능성을 지닌 사람일지 모릅니다. 천하보다 귀한 사람의 영혼을 더욱 소중하게 여깁시다.

한 사람의 변화가 큰일을 합니다. 나의 작은 신령한 날갯짓으로 인해 거대한 폭풍을 일으키는 나비효과를 일으킵시다. 이 일에 우리가 모두 쓰임을 받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