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史記)에 암탉이 울었으니 불길한 징조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 암탉이 울 시간이 아닌데 우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 글의 본뜻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일은 좋지 않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여자가 나서면 화가 생긴다.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나 유교권의 여러 나라가 현모양처의 옳은 말도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말로 무조건 눌러버렸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이런 식의 억압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이런 속담을 받아는 들이되 변경하여서 받아들입니다. 어떻게 변경합니까?
수탉이 홰를 치면 먼지만 날린다. 암탉이 울면 알이라도 남긴다.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한다, 이렇게 좋은 쪽으로 변경해서 부릅니다. 지혜로운 여자가 최고라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발과 아비가일 부부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를 가까이서 보면 남편은 매우 악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내는 매우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떻게 스타일이 다른 사람이 부부가 되었는지 세상일은 아리송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들 부부의 생활 터전인 마온과 광야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때는 다윗이 왕이 아니라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하여 방랑 생활할 때입니다.
수하의 6백여 명 부하들 식량과 생필품 조달을 위하여 이곳저곳 다니면서 목장의 가축을 지켜주고 받는 사례비로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비록 국가를 품은 큰 꿈을 가슴에 담고 있으나 다윗의 현재 처지가 매우 고달픈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윗과 나발 사이 그리고 아비가일 사이에 피비린내가 날 일이 발생합니다.
그때 아비가일이 지혜롭게 상황을 처리하여 위기를 잘 넘깁니다. 흔히 말하는 신의 한 수 같은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래서 제목을 「아비가일의 지혜를 닮읍시다.」로 정했습니다.
1. 다윗의 감정을 자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다윗은 부하들과 함께 바란 광야를 떠들다 잠시 머물렀던 마온이라는 동네에 이릅니다. 부자 나발이라는 사람이 사는 동네입니다.
다윗을 따르는 사람이 약 6백 명 정도 되니 먹을 양식은 항상 부족합니다. 마침 큰 부자 나발이 양털을 깎는 축제일에 다윗이 부하들을 보내 음식을 요청합니다. 양털 깎는 축제일은 주인이 목자들을 대접하고 이웃도 초청하여 대접하는 잔칫날입니다.
다윗은 나발의 잔치 소식을 듣고 자기도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부하들을 보냈습니다. 사실 나발의 목자들을 돌보아 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14).
그런데 다윗이 보낸 열 명 부하들이 나발로부터 음식은 고사하고 심한 모욕을 받고 돌아옵니다. 아주 민망할 정도의 거절로서 선전 포고를 당한 것 같은 거절입니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고대 근동 사회는 양털을 깎을 때 음식을 크게 장만하여 잔치를 벌이며 손님을 접대하는 관습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더러는 가난한 사람에게 금일봉도 나눠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발이 왜 다윗이 보낸 사람들을 박대하고 욕까지 합니까?
사실 다윗이 공짜로 음식을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음식을 요청할 정도의 뒷바라지를 해 주었습니다(15~16). 07절은 그 뒷바라지를 어떻게 해 주었는지를 밝힙니다.
07 네게 양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다윗은 비록 사울에 의해 쫓기는 몸이지만 마온 광야 남쪽에 사는 베드윈 족속과 아랍 족속의 약탈로부터 나발의 목자와 양들을 강력하게 보호해 주었던 일을 말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을 외적의 손에서 보호해야 함을 잊지 않았습니다(01~05).
다윗은 그때 일을 생각하고 예의를 갖추어 음식을 요청한 겁니다. 그런데 나발은 다윗으로부터 도움받은 사실을 모르는 척하고 거절합니다.
오히려 다윗을 놓고 주인을 배반하는 종과 같다고 평가합니다(10). 불충한 건달로 몰아붙입니다. 나발은 철저한 사울 지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갈멜에는 사울의 전적비가 세워지는(15:12) 등 사울의 영향권 아래 있었습니다. 나발은 토호(土豪) 세력이다 보니 사울 편에 섰습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다윗을 차기의 왕으로 보는데(삼상 23:17, 24:20) 하물며 일개 촌부에 불과한 나발이 다윗을 이렇게 평가한다는 말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둔감하고 미련한 자임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나발은 하나님 뜻과 시대 흐름을 읽지 못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배은망덕한 나발을 처리하기 위해 양털 깎기 축제 현장으로 4백 명 부하를 데리고 진격해 갔습니다.
13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2. 지혜로운 여자 아비가일이 등장합니다. |
18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나발의 축제는 이제 환희의 축제에서 피의 현장으로 바뀔 판입니다. 이때 나발의 목장에서 일하는 하인 하나가 급히 안 주인 아비가일을 찾아가서 상황을 보고하였습니다. 우리 주인이 다윗이 보낸 사람들을 모욕하고 주인의 양을 지켜준 다윗의 요청을 외면하였습니다.
다윗의 화까지 돋웠습니다. 한 마디로 큰일 났다는 보고입니다. 아비가일은 하인의 보고를 통해 위기를 감지하고 신속하게 움직입니다.
대개 많은 하인을 거느리는 부잣집 안주인은 하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교만한 마음으로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미련한 남편과 달리 판단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이미 사태가 벌어진 만큼 위기를 속히 수습해야 합니다. 긴급한 순간입니다. 아비가일은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고 다윗이 오는 길목에 나가 기다립니다.
다윗이 부하들을 무장하여 나발의 동네에 도착하자 아비가일이 가로막고 나섭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다윗 앞에 올리고 무릎을 꿇어 사죄를 구합니다. 남편 허물을 자기 허물로 돌립니다.
24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위기의 순간을 돌파하기 위해 나타난 나발의 부인을 봅시다. 03절에 이미 소개되었고 14절부터 등장한 아비가일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품성을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두 명의 아비가일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나발의 부인이고 다음은 나하스의 딸로서 다윗의 이복 누이입니다(대상 02:16, 17).
아비가일(אֲבִיגַּל). 내 아버지가 기뻐하다. 기쁘게 하는 자. 이런 의미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이 아비가일입니다. 따라서 아비가일이 등장하기 전 그의 성품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03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한 개인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기 때문입니다(대상 22:12). 특히 용모가 아름답다는 말은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다 갖추었다는 뜻입니다(아 04:10).
아비가일은 내 편 네 편을 떠나 누가 옳으냐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옳고 그름을 떠나 우선 누가 내 편이냐를 따집니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나발은 자기 남편이고 다윗은 남인 줄 압니다. 그런데도 내 편 네 편을 떠나 누가 옳으냐? 잘못되었느냐를 놓고 판단합니다.
남편과 자기 집의 멸망을 구하기 위해 자존심 버리고 용서를 비는 아비가일의 행동이 돋보입니다. 신실하고 지혜로운 여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남편 나발의 허물에 대해서 그가 불량한 자이오니 아예 상대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맡겨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때 다윗은 참지 못할 분노로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는 복수를 이미 세워 놓은 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비가일의 믿음의 지혜에 감동하여 나발을 치려는 계획을 백지화합니다. 한순간에 백지화하는 일이 쉬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순간입니다
33 또 네 지혜를 칭찬할 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 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3. 아비가일은 신령한 흐름을 볼 줄 알았습니다. |
28….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위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아비가일은 남편 나발과 달리 신령한 감각이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은 광야에서 쫓기는 몸으로 남의 양 떼나 지켜주는 신세지만 곧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될 인물로 보았습니다. 아비가일은 이스라엘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었습니다.
사울 왕이 다스리는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였으며 하나님께서 머지않아 다윗을 들어 쓰실 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내 주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입니다(28). 아비가일은 판단력이 뛰어난 믿음의 사람입니다. 국가의 장래 일을 헤아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봅시다. 신령한 지도자 사무엘이 떠남으로써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가 고갈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올바른 정치보다는 권력 유지에 급급하여 정적을 함부로 제거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기업가들은 정당한 노임을 주지 않고 돈벌이에 빠졌고 향락에 젖어 있었습니다. 평등사회를 꿈꾸는 이스라엘은 구제의 손길이 닫혔습니다. 이가봇 시대가 다시 오고 있는 때입니다.
이런 시국에서 다윗을 대하는 아비가일의 태도, 아비가일의 대화, 아비가일의 진정성, 아비가일의 겸손, 아비가일의 말씨는 그 삶을 빛나게 합니다.
우리 복을받는 가족이 닮으면 좋을 법한 모범 성품입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을 통하여 자기를 영접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라고 여깁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런 시대에서 미래를 볼 줄 아는 신앙의 안목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재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이런 믿음의 지혜로 자기의 가문을 구했습니다.
다윗도 복수심에 빠지지 않도록 방패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보지 않고도 단번에 하나님께서 붙들어서 사용하시는 귀한 인물임을 알아보았습니다(26~31).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먼저 자기의 부족함을 보아야 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종말론의 관점에서 주님의 오실 때가 가까워짐을 보아야 합니다. 영원무궁한 세계가 곧 펼쳐질 것을 내다보아야 합니다.
행여나 자기 욕심에 취해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파멸의 길로 향하고 있지 아니한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인생의 날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더욱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귀한 삶을 불신앙의 일로 낭비해서는 아니 됩니다. 눅 12장의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 아시지요(눅 12:13~21). 그는 먹고 마시고 재산을 축적하면서 자기 과시를 인생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깨어 있어서 물욕을 초월하는 마음으로 살면 잘 풀립니다. 이웃을 섬기는 삶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섬김의 도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시대를 볼 수 있고 진리와 죄악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웃의 허물을 나의 허물로 삼는 자세는 세상을 구하고 공동체를 구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נָבָל)이요. 나발은 바보처럼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나발을 정의하면 어리석은, 우매한, 괴악한 이런 뜻입니다(삼하 13:12, 시 14:01). 한번 생각해봅시다. 이런 악한 의미를 풍기는 이름을 어느 부모가 지어 주겠습니까?
짐작하건대 나발은 본명이 아니라 그의 특성으로부터 붙여진 별명일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나발은 시대의 흐름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이내 나타날 다윗 왕조에 대하여 전혀 감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오죽하면 그의 아내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이라고 하겠습니까?
25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반면 아비가일은 역사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주권자로 쓰실 것을 보았습니다(28~31). 그래서 공손하게 접대하였습니다.
멸문지화를 당할 정도의 상황을 믿음의 지혜로 잘 넘겼습니다. 남편 가문 모두의 생명 구하는 일을 극적으로 이루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이 사실을 모르고 동네 사람과 계속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아비가일의 마음이 얼마나 실망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아비가일은 남편 체면을 살려주었습니다.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침묵하였습니다. 입이 없어서 침묵합니까?
조용하게 처리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 날 아침 술이 깬 나발은 아비가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나갔습니다. 열흘 후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죽었습니다(37~38).
잠 14:0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나발은 다윗을 잘 대접하여 나중에 큰 영예를 얻을 단 한 번의 기회를 죽음과 바꾸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함으로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렸습니다.
반면 아비가일은 믿음의 지혜로 다윗의 아내가 되어 둘째 아들 길르압을 낳았습니다(삼하 03:03, 대상 03:01). 왕후가 되는 자리에까지 나아갔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런 지혜로운 삶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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