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열두 사사

제4대 사사 드보라. 드보라도 사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삿 04:01~1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2. 1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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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할 때였습니다. 승승장구할 줄 알았는데 이내 러시아 카자크족이 포위하고 점점 포위망을 좁혀왔습니다.
한겨울의 한파를 맞아 프랑스 군대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카자크족이 모든 교량을 파괴하고 퇴로를 차단해버렸습니다.

매서운 추위 속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하자 나폴레옹은 강물이 얕은 쪽을 골라 병사들에게 부서진 다리의 교각을 붙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드디어 가교를 만들고 병사들을 철수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지막 병사가 건너가자 물속에서 교각을 붙잡고 가교를 만든 병사들에게도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교각을 붙든 채 얼어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매서운 추위 속에서 약한 병사들, 무명의 병사들이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터에 나서니 꼭 필요한 곳에서 적절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제4대 사사로 부름을 받아 직무를 잘 감당한 드보라에 관한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은 남자들이 합니다.

 

고대 전쟁은 강한 남자들이 합니다. 여자들이 전쟁하는 것은 신체 특성상 잘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상상치도 못할 드보라라는 한 여자를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사람의 관점으로는 정말 연약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약한 여자 드보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자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 야빈으로부터 구원하는 능력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드보라도 사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로 정했습니다.

 

 

1. 드보라가 사사로 부름을 받을 때의 사회 상황입니다.

 

01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에훗이 누구입니까? 베냐민 지파 출신 제2대 사사입니다. 에훗은 왼손잡이 즉 오른손을 잘 쓰지 못한 장애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모압 왕 에글론을 제거하였습니다.

이 지도자 에훗이 죽자 사사시대의 일반적 사회 현상(02:19)인 이스라엘이 또다시 타락하는 장면을 01절에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반복해서 죄악에 빠진 것은 마치 방금 목욕한 돼지가 다시금 오물 속에서 뒹구는 것과 같은 일에 비교됩니다.

 

02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하솔(Hazor). 납달리 지파의 지경에 속하는 북부 가나안 성읍 중 하나입니다(19:36). 강력하고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요새입니다.

정확한 위치는 분명하지 않으나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는 메롬 호수 부근입니다. 이전에는 여호수아 군대에 의해 파괴된 후 납달리 지파가 지배하였습니다(11:01~14).

야빈(Jabin)이라는 칭호는 여호수아가 이곳을 점령할 때도 나옵니다(11:01). 본 절에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하솔 왕을 가리키는 칭호에 해당합니다.

 

이 야빈 왕이 철 병거를 9백 대나 보유하고서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무려 이십 년이나 학대하였습니다. 이십 년이면 그 고난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에게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이방 신을 섬기는 일, 세속화의 걸음을 걷는 일 등 원칙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03:30 절을 보면 제2대 사사 에훗이 모압의 군대를 물리친 후 팔십 년이나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나옵니다. 팔십 년이라면 참으로 긴 세월인데 이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은 신앙의 세대를 이어가는 일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에훗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경험했던 은혜 세대가 끝날 무렵에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대부분이 이탈하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일은 하솔에 자리 잡은 가나안 왕 야빈(02~03)에 대한 부분입니다여호수아 11장에 보면 하솔은 강력한 가나안 토착 세력입니다(11:04).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임으로 인해 완벽히 멸망하였습니다(11:08~14). 그렇게 멸망한 하솔의 가나안 왕 야빈이 오늘 말씀에 보면 재기하여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심히 학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불신앙의 길로 나아갈 때 죄악의 세력은 구백 대의 철병거를 보유할 정도로 강력하게 재기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죄는 이처럼 잘 자라는데 신앙은 자라기는커녕 퇴보만 하고 있었으니 이것이 세상 속에 노출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타락의 회수가 쌓여 갈수록 고통을 당하는 기간과 강도도 점점 강해지고 있는데 8(03:08) 18(03:14) 20(04:03) 이렇게 말입니다.

 

 

2. 드보라는 사사로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습니다.

 

06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가나안 왕 야빈은 강력한 조직과 훈련으로 이루어진 무적의 철병거 구백 대에다 수하에 탁월한 군대 장관 시스라를 두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탱크 구백 대에 견줄 만합니다. 그 세력이 너무도 강력하여 주변 국가를 차례로 점령하고 이스라엘까지도 점령해 왔습니다.

무려 이십 년이나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다시 부르짖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드보라를 구원자 사사로 세워서 일하게 하십니다.

 

드보라의 등장은 여러모로 생각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여자가 민족을 다스리는 지도력을 행사한 실례는 이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04절에 보면 드보라가 랍비돗의 아내로 나옵니다. 랍비돗은 성경 역사에 더는 나오지 않음을 보아 아마 이때쯤은 세상을 떠난 인물이 아니었냐는 짐작이 듭니다. 또 드보라에 대해서도 여 선지자라고 소개되는 것은 예언자의 기능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이며 살았습니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영통(靈通)한 삶 속에서 전쟁할 때 적장이 누가 올 것인가를 알았고, 그가 전쟁에서 하나님의 진노로 패하고 죽을 것까지도 내다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와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것을 명령하시었고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렘 33:0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며, 기도하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며, 기도하는 사람만이 기적을 체험하는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황폐한 곳에서 영적 부흥을 갈망하며 하나님의 꿈이 자라는 땅으로 회복되기를 소망하는 한 사람 여선지 드보라를 주목하셨습니다그러면 드보라가 사사의 직무를 감당하면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일을 어떻게 추진하였습니까?

드보라는 무엇보다 사사의 자리에 나아갔을 때 자기의 장점이 무엇이고 또 단점도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비록 사사이기는 하나 여자인 이상 여자로서의 지니는 단점을 알고는 하나님, 나 같은 연약한 가정주부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할지를 기도했습니다. 자기의 약한 부분을 대신할 일꾼을 찾아내었습니다. 조금 전 읽은 06절입니다바락. 납달리 지파 출신으로서 침략자 야빈의 도성인 하솔에서 동북쪽 4.8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드보라가 굳이 멀리 떨어진 북부 납달리 출신 바락을 부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곧 지파 간을 초월한 사랑의 관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비록 자기 지파의 사람이 아니어도 국가의 일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과감하게 발탁하였습니다. 이런 행정이야말로 넓은 마음을 가진 일꾼이고 할 수 있습니다.

 

06….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너는 …. 가라. 드보라는 여자로서 자기가 일선에서 직접 군대를 지휘하기에는 적합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대신할 바락을 불러 앞장을 세웁니다.
철병거 구백 대와 함께 침략한 군대장관 시스라의 군대 앞에서 변변한 무기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바락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명령을 내립니다.

그 담대함이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런 확신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때로는 달걀로 바위 치는 것과 같은 환경으로 보일지라도 믿음의 눈으로 도전하십시오. 믿는 날부터 기적이 열립니다.

 

 

3.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주실 승리를 미리 내다보았습니다.

 

0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셨느니라.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 여기서 넘겨준다는 말은 꼼짝 못 하게 한다는 의미로서 이 말은 승리는 곧 당신의 것입니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드보라를 통해 바락에게 승리를 주시겠다는 말씀은 살아있는 능력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을 침략한 야빈 왕과 시스라의 군대가 꼼짝없이 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08절을 보면 드보라의 부름을 받은 바락은 반드시 전투에 드보라와 함께 출전하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왜 드보라의 명령을 받고도 고집을 부립니까?

 

물론 이해는 갑니다. 당시 야빈 왕의 구백 대 철병거는 공포의 대상이며 이 특수 부대와 맞설 수 있는 적수는 가나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야빈과 맞서 싸울 이스라엘에는 무기다운 무기가 별로 없고(05:08), 전략적인 면에서도 이스라엘은 야빈 왕의 적수가 되지를 못합니다.

이런 현실을 알고 있는 바락이 드보라에게 당신이 직접 가면 내가 앞장서서 싸우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한 마디로 불신앙 아닙니까?

 

드보라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자기와도 함께 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락은 그만 믿지 못합니다. 여기까지가 바락의 믿음의 한계입니다.

지금 누구와 누구의 전쟁입니까? 이스라엘과 야빈 왕과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과 야빈 왕과의 전쟁입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이스라엘의 승리입니다.

그런데도 바락은 믿음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드보라가 반드시 함께 가 줄 것을 요청하자 드보라는 바락과 함께 전쟁에 나서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09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삶에 대한 시각이 부정이면 부정의 삶을 살 수밖에 없고, 창조적인 눈으로 삶을 바라보면 그 삶은 창조적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면 행복한 사람처럼 사고(思考)하십시오. 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십시오. 불행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면 불행한 사람처럼 사고하고 불행한 사람처럼 행동하십시오. 분명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드디어 전쟁이 시작되면서 사사 드보라가 하나님의 전쟁에 동참을 호소하고 바락이 군사를 모집하면서 제각기 반응들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지도자들의 말을 따라 기꺼이 헌신하여 전투에 참여한 사람의 면면을 보면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서 1만 명이 자원하여 주력군 역할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지파가 협력함으로 군사가 한 4만 명 정도 되었습니다(05:08).

반대로 드보라의 전쟁 동참 요청에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단 지파, 므낫세 반 지파는 남의 일처럼 손길을 놓고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드보라가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이후 전쟁에 참여한 사람과 참여하지 않은 사람을 향해 노래로 칭찬과 지적을 합니다(05).

 

먼저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향하여는 내 마음을 차지한 당신들(05:09), 나는 참으로 그대들을 사랑하며 존경합니다. 나는 당신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오(Matthew Henry).

반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이기주의 생활을 하던 사람들을 향하여(05:15) 노래로 지적합니다. 르우벤 지파는 양의 우리에 앉아 있구나.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나 감상하면서 전쟁 참여를 할 것이냐를 놓고 토론만 벌이다 시간을 다 허비하였구나.

단 지파는 배를 타고 무역이나 하면서 언제나 전쟁이 끝나려나 하며 기다리고 있구나. 아셀 지파는 그저 전쟁을 남의 일처럼 관심 없이 자신들의 생업에만 종사하고 있구나. 라고 지적합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일을 할 때 한 가지 기억하여야 할 일은 동참하지 않은 사람을 놓고 실족하거나 불평, 원망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동참자가 있으면 좋겠지만 동참한 그 숫자가 적더라도 그 일을 소중하게 여기기만 하면 그 생각들은 매우 귀한 생각입니다.

지금 여자 사사 드보라를 누가 세웠습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세운 일꾼이라면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순종하고 따르면 되는 겁니다. 이후에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가운데 드보라와 같이 쓰임 받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으며,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증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평범한 가정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힘이 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여자니까 할 수 없다는 고정 관념을 깨뜨리고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바꾸십시오. 나 같은 사람이, 아니면 연약한 여자가, 아니면 별로 내 세울 것도 없는 내가 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더 적극 자세로 나오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여 선지자이며 사사인 드보라, 암울하던 민족의 장래 앞에서 기가 죽어 축 처진 백성을 격려하던 사람 드보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은 드보라처럼 우리 김삼일 가족도 잘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만 하면 어떤 일이든 능히 감당할 수 있음을 믿으시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곳에도 도전하여 교회 부흥의 기초를 놓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