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열두 사사

제3대 사사 삼갈.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쓰십니다(삿 03:31) .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2. 1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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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ational 그룹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회장은 94세의 나이로 삶을 마칠 때까지 570개 기업, 종업원 13만 명을 거느렸던 대기업의 총수였습니다.
그는 부유하게 자라지 않고 아버지의 파산으로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였으며, 자전거 점포 점원의 생활을 하면서 허약한 체질로 병마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한 직원이 회장에게 물었습니다. 회장님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성공을 하신 겁니까? 그러자 회장은 나는 세 가지 하늘의 은혜를 입었다네.

 

첫째, 가난 속에서 태어났기에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서는 잘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고 둘째, 또 약하게 태어난 덕분에 건강의 소중함을 일찍 깨달아 몸을 아끼었기 때문에 90살이 넘고도 이토록 건강하지. 셋째, 또한 초등학교를 중퇴했기에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받들어 배우는 데 노력하여 다양한 지식을 얻었다네. 불행한 조건들은 나를 성장시켜주는 기회라고 나는 생각하네.

 

마쓰시타는 세상 조건으로 보면 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불행한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적응하며 살다 보니 사회에 크게 유익을 끼치는 삶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삶의 흔적을 남겨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앞서 이스라엘의 1대 사사 옷니엘과 2대 사사 에훗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에훗이 죽고 난 후 잠깐의 혼란기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또 찾아왔습니다. 블레셋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며 침략해 온 것입니다.
이때 잠시 사사로 활동한 사람이 삼갈입니다. 이 사람은 그저 농부로서 땅을 일구며 평범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이 삼갈에 대하여 대()를 붙인다면 3대 사사입니다.
별로 주목받을 만한 인물이 아닌 좀 미천한 사람임에도 하나님께서 불러 제3대 사사로 쓰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삼갈처럼 약한 사람도 쓰임 받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아낫의 아들 삼갈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31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사사 삼갈은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과 더불어 6인의 소() 사사로 불립니다. 전국을 무대로 크게 활동한 사람이 아닙니다. 잠깐 쓰임을 받았기에 그렇게 불립니다. 31절 말씀은 이 삼갈에 대하여 아낫의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사회 원리는 한 사람을 문서에 기록하거나 등장시킬 때 아버지의 이름이나 아니면 태어난 지명, 아니면 신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명명합니다.
그래서 누구누구의 아들 아무개, 신의 아들 누구, 지명을 따라서는 어디 출신 누구 이런 식으로 부릅니다. 그 예를 몇을 들어보겠습니다.

 

부모의 이름을 따라 부르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고, 신의 아들이나 혹 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경우로는 여룹바알( 06:32), 벨드사살( 01:07) 엘리야(왕상 17:01) 등입니다.

지명으로는 막달라 마리아( 27:56), 아리마대 요셉( 19:38)이 있고, 그 아버지 이름을 따서 누구누구의 아들로 불리다 자기 이름이 된 바디매오( 10:46), 바돌로매( 06:14)도 있습니다.

 

고대 시대에는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대부분 일정한 기준을 적용합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의 상태를 따라 짓거나, 부모의 상태에 따라 짓거나, 아니면 부모가 아이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여부에 따라 짓는 것 등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상태나 부모의 아이에 대한 소망을 따라 지을 때는 그 부모가 가졌던 가치관이나 신앙관을 다소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아낫의 아들 삼갈, 이렇게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삼갈은 신앙 면에서는 크게 뛰어난 인물이 아니거나 아니면 별반 좋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낫(Anat)은 삼갈의 아버지 이름이 아니라 가나안 여신(女神)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아낫은 당시 가나안 원주민이 섬기던 태양신 격인 바알(Baal)의 누이이자 아내로서 전쟁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삼갈을 가나안 여신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당시 부모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정체성 없이 가나안 사람들이 섬겼던 우상을 따랐다는 증거로 보이기도 합니다.

 

 03:0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0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0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 들과 아세라 들을 섬긴지라.

 

이런 종교의 상황 속에서 삼갈의 부모는 여호와를 아낫으로, 아낫을 여호와로 생각하는 혼합주의 신앙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여호와의 신앙보다 바알과 아세라라는 그 우상이 더 크게 삼갈의 부모에게는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고는 하나님보다는 아낫이라는 우상 때문에 아들이 태어났다고 더 믿고 아낫의 아들이라고 이름을 붙인 겁니다.
이 아들을 아낫에게 바치겠다는 그런 뜻이고 보면 삼갈은 하나님과 우상을 섬기는 혼합주의 신앙의 부모 아래서 성장을 했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사람도 쓰십니다.

 

31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3대 사사 삼갈에 대해 부름을 받은 자세한 배경이나 내용은 나와 있지 않고 단지 그가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한 일 하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날마다 농사의 일에 사용하던 소모는 막대기를 무기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놀라운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소모는 막대기는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밭을 갈 때 사용하는 길이 약 2.5m 정도의 둥글고 두꺼운 일종의 연장입니다.

 

한쪽 끝은 뾰족해서 소를 몰 때 찌를 수 있게 되어있으며, 다른 쪽 끝에는 작은 삽이 달려있어 밭을 갈거나 손질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갈이 이처럼 무기라고 칭하기에는 너무도 빈약한 막대기를 가지고 6백 명의 블레셋인들을 물리쳤다고 나오잖습니까? 이런 일은 삼갈이나 막대기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배후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여 주는 겁니다.

 

31절 말씀을 보면 전후의 사정을 생략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에훗 후에 다시금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에서 삼갈을 부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위기를 만났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당시의 서쪽 해변에 자리 잡은 강대국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온 일입니다.

 

블레셋(פְּלִשׁתִּי). 사사(士師)시대에 가나안 거민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족속으로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힌 민족입니다.

블레셋은 가나안 원주민이 아닙니다. 그레데에서 가나안 남부 해안 지대로 이주해 온 해양 민족으로 인종학으로는 노아의 둘째 아들 함(Ham)을 조상으로 합니다.

해양 민족이다 보니 가나안 원주민처럼 무지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일찍부터 도시국가를 형성함으로 인해 문명과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특히 정치, 경제, 군사, 종교 면에서 가나안 원주민보다 훨씬 우월했기 때문에 가나안 지역을 거의 장악하였습니다. 사사시대뿐만 아니라 사울 왕과 다윗 왕(삼상 13:19~22, 14:52), 남북 분열 왕조 동안 내내 이스라엘을 괴롭힌 민족입니다(왕상 15:27.  09:08~12).

이런 위기의 상황 앞에서 삼갈은 성령님의 감동을 입고 처음에는 하나님, 저 같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농사나 짓는 촌부 처지에 무슨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기구나 움직이는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면서 반문하였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그 누가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삼갈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였겠지만 이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였으리라 여겨집니다.


비록 무명의 한 촌부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자 평소에 사용하던 생업의 도구 소모는 막대기를 무기로 삼아 블레셋 군대를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여러 정황을 보아 그가 농사일하고 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마을을 공격하여 양민을 학살하거나 학대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 같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삼갈은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들고 있던 소모는 막대기를 가지고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6백 명이나 죽였다고 합니다.

 

무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빈약한 막대기인데 이것으로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습니까? 배후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할 수 있습니다.
나의 평범함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만 받으면 능히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손에 들려 있던 점심 한 끼의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에서 일어난 기적을 상기하십시오( 06:01~13).

사실 우리에겐 사람 앞에 내놓을 만한 것보다 감추고 싶은 약점이 더 많겠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이용하여서도 큰일을 능히 이루심을 기억하십시오.

 

 

3. 이제 나도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 06:0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자기의 부족함을 알면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사사 삼갈의 교훈은 지극히 평범했던 그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대단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순종은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줄 아시지요. 오늘 나의 믿음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순종입니까? 불순종입니까? 신뢰입니까? 불신입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나를 통하여 큰일 행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으십시오.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를 통해서 우리 김해삼일교회를 부흥케 하실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전 0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평범한 모습 그대로를 받으셔서 놀랍게 변신시키는 분입니다. 내가 순종하고 의지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아주 보잘것없는 것을 들어 위대하게 사용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조건과 형편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의지하는 일입니다. 역사는 바로 거기서부터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약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 마치 버려진 것처럼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맡기고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놀랍게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다윗이 물맷돌 다섯 개를 들고 하나님을 신뢰하여 골리앗을 향해 나아간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삼상 17:17~54). 그때 다윗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시지요.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소모는 막대기나 물맷돌은 사람이 볼 때는 모두 하찮은 물건이지 무슨 큰일을 할 때 꼭 필요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큰 역사의 도구가 됩니다.

삼갈이나 다윗은 싸움은 사람의 실력이나 수의 많음이나 무기의 강함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렸다는 사실을 안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쓰신다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사람을 들어서 놀라운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생각하지 말고, 자기의 무능함을 보지 말고, 자기가 가진 도구의 무력함을 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강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는 날에는 고통스러운 환경을 개선하고 역전시킬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0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 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신완선 교수가(1959, 충주 출생, 성균관대학교 시스템경영공학부)  Color leadership(더난출판사, 2002.06.10.)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로베로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나치에 저항했던 레지스탕스들이 처형당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저항 운동과는 상관없이 얼떨결에 붙잡힌 장사꾼 한 명이 처형장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돈이나 벌며 살아왔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냐? 그러자 처형을 기다리던 한 레지스탕스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당신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이 죽어 마땅한 점이오. 전쟁은 5년이나 지속하고 조국과 민족은 멸망 직전에 놓여 있었소. 그런데 당신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이오?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요.

 

삼갈은 시골의 농부로서 세상의 조건으로 보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기는 아무래도 모자라는 자임에도 하나님은 사용하셔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모두 이처럼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자기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 어떻게 해야 잘 쓰임을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거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으로 들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이제는 좀 생각하며 살아야 할 때입니다.

어떤 삶의 문제이든 내가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선봉장이 되십시오. 나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일꾼이 될 수 있다는 이 음성을 듣고 확신하며 돌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