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2년 말씀

혼돈된 가치관을 바로 세웁시다(눅 12:13~2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1. 2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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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나서 삶을 마칠 때까지 살아가는 나름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저마다 가치 기준에 따라 살기 때문에 삶의 방식도 다양합니다.

재물에 인생을 거는 사람도 있고, 학문에 인생을 거는 사람도 있고, 쾌락에 인생을 거는 사람도 있고, 명예에 인생을 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의 가족은 무엇에 가치관을 두며 삽니까?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은 세상 사람과 달리 어떤 것에 집중하며 삽니까?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지요? 돈이라고 하면 체면 깎일 것 같고 좀 고상하게 믿음이라고 하면 사실 믿음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양심 역시 불편할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이 가지는 믿음의 가치관은 어떤 것이어야 합니까? 세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가치관입니다. 하늘나라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진정한 가치관은 우리 눈에 보이는 가치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관이라고 안내합니다(고후 04:18).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먼저 천국의 가치관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합당하고 건전한 가치관이 내게 있습니까?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주의 사고가 우리의 의식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닙니까? 때로는 이런 것과 믿음을 흥정하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가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이 염려거리입니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보고, 수단과 방법을 무시하며 돈을 벌려는 이념이 염려거리입니다.

오늘 말씀은 많은 사람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은 혼돈된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잘못된 가치관을 정돈하기 위해서 제목을 혼돈된 가치관을 바로 세웁시다로 정했습니다.

 

 

1. 세상 사람은 삶의 가치관을 물질에 둡니다.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유대인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지혜로운 랍비를 찾아가서 부탁하여 해결하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도 한 사람이 형과 사이에 유산 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자 예수님께 찾아와 해결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선생님,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 중 제 몫을 형이 주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형에게 권면하셔서 받게 해 주십시오. 라는 요청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가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받지 못한 이유는 나오지 않습니다. 재산 분배 법은 율법에 정해져 있습니다(27:01~11, 21:15), 만일 법에 따라 분배가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랍비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도 당시의 풍습을 따라 예수님에게 부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 재물 때문에 생명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사람의 이야기는 비록 한 단면이지만 재물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시대뿐만이겠습니까?

오늘날에도 대부분 사람이 이런 물욕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이런 일로 다투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형을 권면해 달라는 이 사람은 세상 물질주의자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아도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질주의자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0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역에 전도하러 가서 군대 귀신 들린 광인을 고쳐주신 기적이 나옵니다. 귀신 들린 정도가 너무 심해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지지만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고쳐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귀신들이 안 쫓겨나려고 발악하다 마지막에 한 조건을 제시합니다. 옆에 있는 약 2천 마리의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조건입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자 그 사람은 온전케 되었습니다. 대신 2천 마리의 돼지 떼에 귀신이 들어가니 그만 미쳐 갈릴리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돼지 2천 마리면 상당히 큰 재산입니다. 요즘 시세 30만 원 정도로 막 밀어 계산해도 6억 원 정도는 족히 됩니다. 업자가 상당한 재물의 손실을 본 셈입니다이 일로 인하여 거라사의 주민들이 예수님께 이 지역을 속히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환영이 아니라 배척입니다. 이들 역시 생명을 살리는 복음보다는 잠시 있다가 떠나는 물질주의자를 상징한다고 보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거라사의 현장에 만일 우리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이 살고 있다면 어떤 청을 하였을 것 같습니까?

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분을 모시고 살기 좋은 지역 만드는 일을 하였을까요? 새마을 지도자 같은 분으로 말입니다. 거라사의 주민들은 재물 때문에 생명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한 낚시꾼이 새벽에 푸른빛 광채가 나는 잉어를 한 마리 낚았습니다. 그때 물고기가 눈물을 흘리며 낚시꾼에게 애원합니다. 나는 용왕의 아들입니다당신의 소원 세 가지를 들어줄 테니 나를 놓아주십시오. 그러자 낚시꾼은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면 다섯 가지 소원을 들어주면 놓아주겠다. 하고 욕심을 좀 부렸습니다. 그랬더니 물고기가 안 됩니다. 저는 세 가지 외에는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네 가지만 들어주면 놓아주겠다. 세 가지밖에는 안 됩니다. 그러면 세 가지 반만 하는 그 순간 물고기가 죽고 말았습니다. 뭍에서 너무 지체했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욕심의 비유입니다.

 

 

2. 신앙인은 삶의 가치관을 생명에 둡니다.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세상 사람은 재물을 삶의 가치관으로 삼습니다. 세상 것을 얻기 위하여 건강까지 내줍니다. 그리해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신령한 세계의 상실입니다.

그러면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은 믿음과 재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합니까? 먼저 재물은 내 곁에 영원히 머물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

돈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어디 돈 싫어하는 사람 있습니까? 있으면 있는 만큼 편리하고 유익합니다. 건전한 방법으로 소유하고 잘 관리하면 그것은 복입니다.

 

그러나 물질이 내 인생의 목적으로 자리 잡으면 그때부터 신앙의 위기가 옵니다주님을 향한 신앙 초점이 흐려집니다. 가룟 유다의 길에 들어섭니다. 혹 내가 잘못된 재물의 길을 갑니까? 만일 돈에 사로잡혀 살아가면 그 즐거움은 매우 짧습니다.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성경 진리에서 이탈하여 돈을 바라보면 결국 세속의 물질에 침몰학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십니다.

탐심이 무엇입니까?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입니다.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속성입니다. 예수님은 재물을 생명 수준에서 다루십니다.

 

생명(ζωή 조에).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육체의 속성에 집착한 나머지 생명에 관하여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풍족한 돈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생명과 돈 어느 것이 중요합니까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생명과 돈 어느 것을 택하겠습니까?

생명입니까?. 그러면 그에 알맞은 신앙생활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육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시지요?

 

영원한 삶은 영벌의 세계 지옥에서 사느냐? 아니면 영생의 세계 천국에서 사느냐입니다. 이런 영원한 삶은 세상에서 행한 믿음으로 결정됩니다.

그런데도 이 중요한 생명을 돈과 바꿉니다. 돈을 위해 내어놓습니다. 돈에 집착하여 살아갑니다. 생명을 버리고 열심히 쌓은 재물을 제대로 누리기나 합니까?

 

시 39:0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셨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도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과부가 넣은 두 렙돈이야말로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이 넣은 것이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중에도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다.

 

동전 두 렙돈은 세상 가치로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정도의 소액입니다. 분명히 작은 액수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그 속에 담긴 여자의 믿음과 정성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렙돈 이야기를 말씀하셔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행한 일은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반드시 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일러주기 위함입니다.

 

 

3. 믿음에서 이탈한 가치관은 파멸을 만납니다.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누구에게 어리석은 자라고 하십니까? 자기의 삶에 대하여 나름 세밀한 계획을 세웠다고 자부심을 가진 부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16~19).

어리석은(ἄφρων. 아프론). 이 말은 정신없는 자, 무분별한 자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본이심을 거부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자입니다(14:01).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겠다는 부분을 보십시오. 부자는 여러 해를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오늘 밤에 어리석은 부자의 영혼을 가져가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오늘 밤은 그의 계획이 완전히 물거품 되는 날입니다어리석은 부자의 소유물은 그의 생명을 단 하룻밤도 연장 못합니다. 영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 있을 때 생명 관리를 잘하여야지 타임아웃 되면 끝입니다.

 

잠 23:0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성경에서 돈 또는 재물이 언급된 곳은 2,300절이 넘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와 돈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38개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가 재물입니다. 이처럼 돈은 신앙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돈에 대한 경고를 많이 보냅니다. 경고를 아멘으로 받고 돈의 유혹에서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돈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대부분 사람은 돈을 얻기 위해 가진 애를 쓰지만, 돈의 위험에 대한 경계심은 느슨합니다돈의 매력에 빠지고 돈이 내 삶의 가치관으로 자리 잡으면 그때부터 파멸도 자리 잡습니다. 이런 물질주의 가치관을 극복하는 일이 나의 급선무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나는 싫어하고, 주님께서 보실 때 하찮은 것을 나는 목숨처럼 여기면 주님과의 동행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려면 주님의 가치관을 공유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삶과 가치관에 있어서 사람의 생명을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재물에 혼돈이 오면 멸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잘못된 헌금 사건 아시지요? 간단히 살펴볼까요? (05:01~10).

베드로가 이들 부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03)?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09).

당일에 부부가 불행한 죽음을 맞았습니다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 아시지요. 역시 파멸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가 멸망 당하기 직전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구약시대 가나안 전쟁 때 아간이 하나님께서 금한 전리품을 횡령한 사건 아시지요?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매 당일에 아간의 모든 재물과 가족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07:01~26).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가치관의 혼돈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전한 가치관이 왜곡되어 물질과 향락과 폭력으로 혼돈되고 있습니다.

돈에 대하여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는 일, 성경이 안내하는 물질관을 다시 세우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소금과 빛 된 삶으로 살기 원하는 신앙인의 가치관에 혼돈이 오면 복음의 길이 막힐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돈이 아니라 예배드림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은 그런 가치관을 가진 자를 찾으십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이 처한 현실이 참으로 힘이 듭니까? 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믿음을 팽개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까? 그래도 믿음의 가치관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예배로 극복합시다.

 

2001710일 자 로이터통신(리스본발)에 따르면, 3년째 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개가 있다고 소개하였습니다.

포르투갈 북부의 소르바도에 사는 검둥이 개로서 이름은 프레타입니다. 이 개는 매주 주일이 되면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730분에 에르메신데에 있는 교회에 도착합니다.

시간에 맞추어 강단 옆에 자리를 잡고 예배 순서에 따라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앉을 때는 프레타도 그대로 따라 합니다예배가 끝나면 프레타는 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갑니다.

 

그래서 이 개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아오고 또 교인 수도 늘어났다고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듭니까혹 개만도 못한 자는 아닌지 돌아봅시다

우리 믿음의 가족은 삶의 가치관을 다시 세웁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쓰임 받는 일꾼이 되십시오. 재물에 대한 가치관을 믿음으로 잘 세우는 복된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