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2년 말씀

신령한 목마름을 해갈합시다(출 17:01~0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1. 12.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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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점점 추워 옵니다. 이제는 냉수가 아니라 따뜻한 온수 한 잔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전 예배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온수를 한 잔 가득 마시려 합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도 더 따뜻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육신이 마실 물은 시원한 냉수나 따뜻한 온수로 해갈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답답하도록 짓누르는 신령한 갈증은 잘 해갈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신령한 목마름을 어떻게 해갈(解渴)하여야 합니까?

그저 적당한 때가 오면 잘 풀리리라 믿고 시간만 보내고 있어야 합니까? 오늘 우리가 받을 말씀은 신령한 갈증 상태를 어떻게 해갈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상 목마름이 아니라 신령한 목마름입니다. 세상에 속한 여러 목마름도 해갈해야 하지만 신령한 목마름 해갈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신령한 목마름을 해갈합시다.」로 정했습니다.

 

 

1. 이스라엘의 목마름 현장을 보겠습니다.

 

0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혼란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시내 광야로 접어들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문제에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문제가 물이었습니다. 마라에 와서 머무는 동안 물은 있는데 써서 먹지 못하는 물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아우성을 쳤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 물을 먹을 수 있는 단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출 15:23~25). 당장 끼니 문제로 아우성칠 때, 또 고기 먹고 싶다고 난리를 피울 때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해결해 주셨습니다.

 

생수 문제와 식량문제가 잘 해결되어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 행진하여 르비딤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호렙산에서 약 20km 거리이며 원기 회복, 휴식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르비딤에는 원기를 제공할 만한 거리가 없고 심지어 쓴 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르비딤까지 와서 장막을 쳤습니다. 그런데 물 없습니다. 물 없는 어려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모세가 앞장서서 이곳까지 왔으니 최소한 마실 물과 양은 적을지라도 간식거리의 과일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르비딤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나무도 제법 있고 시원한 그늘도 있습니다. 지금은 베드윈족 아이들이 성지순례 온 사람의 손을 들어주며 팁을 구하는 곳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01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강한 의문점이 드는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출애굽기 15:17 말씀을 보면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는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메마른 광야에서 사람에게 마실 물이 없으면 매우 심각합니다. 목말라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물을 해결하라고 아우성을 칩니다(02).

그러나 모세인들 이를 해결할 힘이 있습니까? 장밋빛 같은 희망을 걸고 현실을 전진해 보지만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몰아치는 열풍으로 인해 질식할 것 같습니다. 견디어 내기 힘든 고통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현장은 죽음의 환경입니다. 그런데 이 현장을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환경과 비교하면 어떻겠습니까? 

문화와 경제와 주변 모습은 달라도 우리 현실이 이와 같다고 해도 됩니다. 요즘 현실은 우리의 사랑을 고갈시켜 버립니다. 신령한 자유를 메마르게 합니다. 

마치 열풍이 몰아치는 광야와 같습니다. 우리를 시원하게 하는 일이 별로 안 보입니다. 무더운 여름날에 목마른 사람이 냉수를 그리워하듯 시원한 일거리를 찾아보지만 여간해서는 찾기 힘듭니다. 사막을 가는 대상(隊商)이 오아시스를 기대하고 극심한 가뭄에 농부가 비를 기다리나 오아시스와 같고 굵은 빗줄기 같은 시원한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2. 고난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성을 잃었습니다.

 

0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불신자의 공동체 모습을 봅시다. 대부분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대안과 해결책보다는 특정인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다투는 일까지 진행합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이스라엘의 불평 공장 상황을 봅시다. 말이 점점 거칠어집니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뚝입니다.

불평 뚝, 원망 뚝 말입니다. 뚝이 없으면 마지막에는 갈라서고 맙니다. 메마른 광야에서 사람이 마실 물이 없으면 죽음과 직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까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을 많이 체험하였습니다.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일, 마라에서 물이 써서 먹지 못하게 되었을 때 달게 하여 먹은 일, 날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한 달 동안 메추라기 먹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기적을 수없이 체험하고도 지금 마실 물이 없다고 그만 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상황을 봅시다. 이해는 충분히 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꼭 지켜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영도자 모세를 향한 막말입니다. 그런데 그만 막말을 쏟아버리고 맙니다

막말하는 현장을 봅시다. 내뱉는 말이 무엇입니까? 호칭을 당신이라고 합니다. 영도자를 당신으로 부르다니요. 감정 조절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단번에 애굽 종살이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느냐고 할 것이 아니라 영도자님 하나님께 기도해서 이 현장을 해결해 주십시오. 하고 맡겨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의리의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합니다.

 

0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감히 모세와 다투다니요? 지금까지는 영도자 모세에게 원망만 하였습니다(14:12, 13, 16:02, 03). 그런데 이제는 물 문제로 모세와 싸웁니다. 이 같은 행위는 배은망덕한 행위입니다.

책임을 모세에게 돌리다니요. 하나님의 백성답지 않습니다. 합당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도 마음을 합하여 난관 극복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조금만 어려운 일을 만나면 무턱대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모세와 한판을 뜹니다. 다툰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모세와 다투는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과 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입니다. 모세와 다투는 것은 모세에게 임한 하나님의 능력과 종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불신하는 일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미성숙한 아이와 같습니다.그러면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합니까?

하나님 방법 외는 없습니다. 모세는 심각한 위기를 타개하고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잊고 있을 때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비상한 기도로 부르짖습니다.

 

0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악해져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3. 목마름의 현장은 하나님께서 해결하십니다.

 

06 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그 목마름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➊광야에서의 물 문제는 생존과 관련되는 일입니다.

➋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몰살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명령을 따라 지난 시절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실 때의 그 지팡이를 들고 시나이반도 최남단에 있는 해발 2, 291m의 호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산을 성경에서는 흔히 시내산으로 부릅니다(출 19:11, 18, 24:16, 레 26:46). 모세가 반석을 치라는 하나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갔습니다.

 

모세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먹으려면 시내산 반석으로 가야만 합니다. 모세는 조금도 의심 없이 나아갔습니까?

부정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눈살을 찌푸리며 근심에 눌리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비장한 각오로 호렙산을 향해 진행합니다.

물이 펑펑 쏟아질 현장을 믿음의 눈으로 내다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방법을 내다보며 호셉산 반석의 현장으로 갔습니다. 나일강을 치던 그 지팡이를 들고 갔습니다.

 

0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네 지팡이란 바로에게 내린 열 가지 재앙 중 첫째 재앙 때 모세가 나일강을 쳐서 피로 변하게 했던 그 지팡이입니다(07:15~21). 이 지팡이는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으로 모세와 함께하심을 보여주시는 상징물입니다(07:08~11). 

하나님께서 이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다시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제는사 막의 반석을 터뜨려 생수가 솟아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06절과 07절 사이 생략된 부분이 있습니다.

물이 풍성하게 흘러나왔다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좀 자세하게 기록하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쉬운 부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명령을 따라 반석을 칠 때 그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모두가 풍족하게 마셨습니다. 이후 이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자자손손 기억되는 행사로 발전합니다.

초막절이 되면 이 사건을 떠올려 찬양하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올릴 때 제사장이 실로암 우물에서 떠온 물을 부으며 나팔 소리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서 이렇게 찬양합니다.

 

시 78:15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물처럼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으며 16 또 바위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 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생수 사건은 만나 사건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증표입니다. 후일 사도 바울은 물을 신령한 음료로, 반석을 그리스도로 해석하였습니다.

 

고전 10: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당시 사막의 불볕 같은 더위로 인한 목마름 속에서 호렙산 반석의 물이 생명수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영혼의 목마른 자에게 신령한 목마름을 해갈해 주실 생명수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요 04:14, 07:37, 사 55:01).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낸 이 사건은 장차 갈보리산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상징합니다. 특히 반석을 통해 흘러나온 물의 양을 강(נָהָר 나하르)으로 표현하였습니다(시 105:41).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생수는 넉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르비딤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두 가지 대비되는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부분은 메마른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마름입니다.

다음은 반석에서 물이 강같이 흘러 저들의 목마름을 해갈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손길입니다. 메마른 광야와 목이 타는 백성의 상태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방황하는 모습을 뜻하는 것이고,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상징합니다.

사도 바울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이 사건을 구원 사역의 관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0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어떤 목마름이 내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괴로움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까? 자식 걱정으로 인해 애간장 타는 부모의 목마름입니까? 남편의 사업 걱정으로 타는 듯한 아내의 목마름입니까? 아내와의 불화로 애타는 아픈 남편의 목마름입니까?

자식에 대한 목마름입니까? 사람들은 이런 갈증을 해갈하려고 교회 밖에서 찾아 헤맵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인간의 이런 수고를 다 헛된 것이라고 규정합니다(전 01:08).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께로 오지 않고 계속 터진 웅덩이 같은 곳에서 생수를 찾고 저축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 55:0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